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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감사관은 탑 보상도 압류한다1화

세무감사관은 탑 보상도 압류한다

세무감사관은 탑 보상도 압류한다

시놉시스

탑 보상이 빌딩 지분과 병원비 권리로 떨어지는 시대. 서울광역시 탑보상감사과 7급 감사관 한도윤은 대형 길드의 미신고 보상 자산을 압류하러 나갔다가, 장부 위에 떠오르는 붉은 주석을 본다.

1화: 붉은 주석

한도윤은 병원비 독촉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없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다음 달 청구서에서 숫자는 더 커져 돌아왔다.

미납 치료비 4,870,000원. 금일 18시 이후 장기 약제 예약 자동 취소 예정.

도윤은 휴대폰을 엎어 놓고 흑림길드 보상 신고서를 펼쳤다. 서울 제1탑 12층 공략 보상. 강남역 뒤편 삼우로 19번지 빌딩 지분 31.6퍼센트.

신고된 것은 18.2퍼센트뿐이었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누군가 몰랐거나, 누군가 숨겼거나.

대형 길드가 모를 가능성은 낮았다.

"한 주무관."

과장석에서 부르는 소리에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 건, 오늘 꼭 나가야겠어?"

"72시간 신고 기한이 오늘 오전 열한 시까지입니다."

"흑림길드야. 변호사 셋은 기본으로 올 텐데."

"그러면 통지서를 네 장 더 가져가겠습니다."

과장은 안경을 벗고 눈가를 눌렀다. 말리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가서 깨지더라도 부서 이름이 덜 나오게 하라는 뜻에 가까웠다.

도윤은 압류 예고장, 현장 확인서, 보상 원장 열람 신청서를 차례로 가방에 넣었다.

탑은 사람에게 현금을 뿌리지 않았다. 빌딩 지분, 임대료 수납권, 채무 조정권, 병원비 면제권 같은 현실의 권리를 보상으로 줬다. 그래서 탑 보상은 등기부와 세무 신고, 의료 청구 시스템에 붙었다.

그리고 권리가 생기면 세금과 공공 기여도 생겼다.

도윤의 일은 그 사이에서 사라진 숫자를 찾는 것이었다. 화려한 공략자가 아니라, 사라진 권리의 꼬리를 따라가는 감사관.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병원 번호였다.

도윤은 받지 못했다. 지금 받으면 목소리부터 흔들릴 것 같았다.

그는 대신 서류철 첫 장에 시간을 적었다.

현장 출발 09:18.

현장 집행관 문태겸은 시청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큰 체격에 낡은 방패 케이스를 둘러멘 남자는 도윤을 보자마자 박하 사탕을 씹었다.

"오늘 흑림?"

"네."

"좋은 아침은 아니네. 저쪽은 압류 딱지 붙이면 건물보다 사람을 먼저 흔들어."

"사람 흔드는 건 압류 대상 아닙니다."

"그 말 현장에서 하면 더 맞기 쉬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택시 창밖으로 서울 제1탑의 검은 외벽이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 박힌 세로의 절벽. 그 안에서 나온 권리들이 도시의 통장과 병원 전산과 부동산 등기에 달라붙었다.

그 권리를 숨기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했다.

공략자가 목숨 걸고 얻은 몫이라고.

도윤은 그 말의 절반은 맞다고 생각했다. 위험을 감당한 사람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했다.

다만 신고하지 않은 권리는 보호가 아니라 은폐였다.

흑림길드 빌딩 로비에는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요원 셋, 회계팀장 하나, 고문 변호사 둘.

그리고 금테 안경을 낀 남자가 가장 뒤에서 웃고 있었다.

"서울광역시에서 오셨군요. 강율입니다. 전략실장."

강율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도윤도 공무원증만 보였다.

"탑보상감사과 한도윤입니다. 2031년 6월 17일 접수된 미신고 보상 민원과 관련해 현장 확인 및 임시 압류 집행을 진행합니다."

"민원 하나로 대형 공략 보상을 멈추시겠다?"

"민원 하나와 등기부, 보상 신고서, 임대 수익 배분표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도윤은 파일을 펼쳤다.

빌딩 지분은 흑림길드가 12층 공략 보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임대료 수납권 일부는 사흘 뒤 흑림자산관리로 넘어갔다. 신설 법인의 대표는 강율의 처남이었다.

보상 신고서에는 그 이름이 없었다.

강율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그건 관리 위탁입니다."

"위탁이면 원권리자가 신고서에 남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빠졌습니다."

"한 주무관님."

강율은 일부러 직급을 낮춰 불렀다.

"탑 보상은 공략자들이 피 흘려 가져온 권리입니다. 행정이 숫자만 보고 건드리면 다음 공략은 누가 합니까?"

"피 흘린 권리도 신고 대상입니다."

"현실을 너무 모르시네. 공익 좋죠. 그런데 공익이 개인 사정까지 챙겨 주지는 않습니다."

강율의 시선이 도윤의 휴대폰 쪽으로 짧게 내려갔다. 엎어 둔 화면의 병원 알림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도윤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문태겸이 한 발 옆으로 움직였다. 보안요원 하나가 따라 움직이다 멈췄다.

도윤은 감정을 문장으로 바꾸지 않았다. 기록으로 바꿨다.

"현장 관계자, 집행 목적과 무관한 사적 사정을 언급하며 압박성 발언."

"그걸 압박으로 적습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적습니다."

강율은 잠깐 침묵했다. 불리한 것은 말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도윤은 압류 예고장을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았다.

종이가 닿는 순간, 천장 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

탑과 연결된 자산이었다. 현실에서 압류 절차가 시작되면 탑 내부의 보상 정산 홀도 반응했다. 건물 안의 사람들 몇이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봤다.

"12층 보상 정산 홀 원장 사본을 확인하겠습니다."

강율 옆의 변호사가 바로 말했다.

"원본 접근은 거부합니다."

"원본이 아니라 사본입니다. 거부하시면 거부 사유를 서면으로 받겠습니다. 이후에는 원장 훼손 우려로 보전 처분부터 신청합니다."

변호사는 강율을 보았다.

강율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사본만 보시죠. 원본 접근은 탑운영청 승인 없이는 안 됩니다."

회계팀장이 얇은 출력물을 가져왔다. 12층 공략 보상 정산 홀에서 내려받은 사본이었다.

도윤은 종이를 받자마자 숫자를 따라갔다.

지분 보상. 임대료 수납권. 유지비 상계권. 관리 위탁 수수료. 탑 내부 보급품 선지급분.

문서는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현장에서 보는 깨끗함은 대개 두 종류였다. 정말로 정리된 문서. 그리고 지워야 할 것을 너무 성실히 지운 문서.

도윤은 지분 항목 아래의 빈칸에서 시선을 멈췄다.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붉은 점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처음에는 눈의 피로라고 생각했다. 밤새 수납권 흐름을 대조했고, 병원 문자까지 겹쳤다. 헛것을 볼 조건은 충분했다.

그러나 붉은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점은 선이 되고, 선은 종이에 없는 문장이 되었다.

누락 자산 흐름 감지.

도윤은 숨을 멈췄다.

문장은 출력물 위에 있었지만 출력물의 글자는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쓸어도 종이는 매끈했다. 그런데 눈은 계속 읽고 있었다.

미신고 보상 자산: 지하 3층 환자보호권 1건.

환자보호권.

실무 지침에서 두 줄로만 본 단어였다. 특정 환자의 치료비, 병상, 약제 우선권을 보장하는 의료형 보상 권리. 사례가 드물어 보통 운영청 별도 관리로 넘어간다고 되어 있었다.

도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는 어머니의 문자를 떠올렸다. 금일 18시 이후 장기 약제 예약 자동 취소.

바로 그 생각을 눌렀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흑림길드 12층 보상 원장 사본에 신고되지 않은 의료형 권리 항목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 그 이상은 바람이었다.

감사관이 바람으로 압류하면, 압류가 아니라 약탈이 된다.

"한 주무관."

문태겸이 낮게 불렀다. 도윤의 얼굴이 달라졌다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강율도 눈치챘다.

"뭔가 찾으셨나 봅니다?"

도윤은 사본을 내려놓았다.

"흑림길드 12층 보상 중 신고 누락 가능성이 있는 권리 항목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항목입니까?"

"현 단계에서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먼저 원장 보전 절차를 진행합니다."

강율의 표정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사본 한 장 보고 보전이라니. 권한 남용입니다."

"사본 한 장이 아닙니다. 등기부, 임대 수익 배분표, 보상 신고서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의료형 권리입니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도 강율의 눈빛이 바뀌었다.

도윤은 압류 표식 신청 패드를 열었다. 이 단계에서 잘못 누르면 징계 로그가 남는다. 탑 보상은 행정이 마음대로 빼앗는 전리품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재산이고, 때로는 누군가의 생존권이었다.

그는 빌딩 전체를 지정하지 않았다.

흑림자산관리 명의로 넘어간 임대료 수납권 중 신고 누락 의심 비율만 임시 동결 대상으로 넣었다. 의료형 권리는 압류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직 원권리자도, 이전 경로도, 법적 근거도 부족했다.

대신 보전 신청 항목에 적었다.

12층 보상 원장 사본의 의료형 권리 항목 열람 보전. 지하 3층 관련 로그 포함.

패드가 낮게 울렸다.

로비 중앙 대리석 바닥에 푸른 선이 생겼다. 선은 흑림자산관리 명의 수납 계좌가 표시된 증빙 서류로 뻗더니, 얇은 사슬 모양의 표식으로 변했다.

임시 동결.

보안요원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가 문태겸의 시선을 보고 멈췄다.

"그 선 넘으면 집행 방해야."

문태겸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나도 보고서 쓰는 법은 배웠거든. 맞으면 어디부터 아픈지도 꽤 자세히 적을 수 있고."

보안요원은 뒤로 물러났다.

강율은 도윤을 똑바로 보았다.

"한도윤 감사관님. 오늘 하신 일, 후회하실 수 있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현장 관계자가 집행 공무원에게 불이익 가능성을 고지함."

"협박으로 몰 생각입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적습니다."

강율은 입을 다물었다.

도윤은 통지서에 시간을 적었다. 오전 10시 46분. 신고 기한까지 14분 남은 시점이었다.

압류 표식은 로비 바닥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도윤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 주석이 원장 사본 가장 아래에 한 줄 더 떠올랐다.

환자보호권 원권리자: 열람 조건 미충족.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알고 싶은 마음이 알아낸 사실처럼 굳어질 것 같았다.

도윤은 원장 사본을 증거 봉투에 넣고 봉인했다. 봉투 모서리에 사건 번호를 적는 손이 조금 늦었다. 그 정도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절차는 서울광역시 탑보상감사과에서 통지합니다."

빌딩 밖으로 나오자 제1탑의 그림자가 도로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오전인데도 그늘은 저녁처럼 차가웠다.

그제야 도윤은 병원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문자 하나가 새로 와 있었다.

한미정 보호자님, 금일 약제 예약 취소가 보류되었습니다. 사유 코드: 미확인 보상 조정.

도윤은 걸음을 멈췄다.

보상.

방금 본 붉은 문장과 같은 단어였다.

문태겸이 앞서 걷다 돌아봤다.

"왜 그래?"

도윤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화면이 아직 뜨거웠다.

"확인할 장부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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