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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1화

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

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

시놉시스

지구와 이계를 잇는 거대 구조물 만마의 탑이 나타난 뒤 사람들은 층을 오르며 힘과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강현우는 시스템 오류 때문에 1층 튜토리얼에 갇혔다. 레벨과 스탯은 남는데 지형과 몬스터만 리셋되는 반복 속에서 그는 슬라임과 고블린을 수억 번 베고 1층의 모든 숨은 조건을 파헤쳤다.

만 년째 되는 날. 드디어 시스템이 그를 놓아주려 한다.

1화: 만 년째 마지막 튜토리얼

슬라임이 튀어 올랐다.

강현우는 눈꺼풀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초록빛 덩어리가 그의 뺨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둘로 갈라졌다. 손목을 휘두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튜토리얼 지급품인 녹슨 단검이 들려 있었다.

[슬라임을 처치했습니다.]

[누적 처치 수: 100,000,000]

현우는 눈앞의 창을 물끄러미 보았다.

"억 단위는 처음 보네."

놀랍지는 않았다. 첫 번째 슬라임을 잡았을 때 그는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백 번째를 잡았을 때는 시스템이 잠깐 꼬였다고 생각했다. 만 번째를 넘겼을 때는 하늘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이제 억 번째였다.

욕도 오래 하면 닳는다. 남는 것은 습관처럼 가벼운 숨뿐이었다.

평원 끝에서 고블린 셋이 튀어나왔다. 활을 든 놈 하나. 돌도끼를 든 놈 하나. 뒤쪽 수풀로 돌아가 협공 판정을 띄우는 놈 하나.

만 년 동안 역할을 바꾼 적 없는 튜토리얼 세트였다.

"오른쪽 두 걸음. 화살. 왼쪽 흙먼지. 도끼."

현우가 낮게 읊었다.

그의 몸이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화살은 한 박자 늦게 원래 어깨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왼쪽 땅이 꺼지며 흙먼지가 솟았고 돌도끼가 그 안을 갈랐다.

현우는 단검 끝으로 도끼 손잡이를 톡 건드렸다.

손잡이가 부러졌다. 고블린의 팔목과 어깨가 이상한 방향으로 접혔다. 나머지 둘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기본 회피 숙련도가 한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이미 획득한 칭호입니다.]

[이미 획득한 칭호입니다.]

[이미 획득한 칭호입니다.]

"알아. 네가 준 거잖아."

현우는 손등으로 창을 밀었다. 시스템 창은 종잇장처럼 옆으로 밀려났다. 예전에는 만질 수도 없던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귀찮은 벌레를 치우듯 치울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갇힌 1층은 정상적인 1층이 아니었다.

다른 도전자라면 기본 이동과 기본 공격을 배우고 포털을 밟아 2층으로 올라간다. 현우는 매번 보스를 쓰러뜨리고도 같은 문장 앞에서 멈췄다.

[2층 이동 조건 미충족.]

[튜토리얼을 재시작합니다.]

레벨은 남았다. 스탯도 남았다. 기억도 남았다.

지형과 몬스터만 새것처럼 갈아 끼워졌다.

10년까지는 탈출 방법을 찾았다.

100년까지는 시스템의 빈틈을 찾았다.

1000년이 지나자 빈틈이 친구보다 익숙해졌다.

그리고 만 년째의 오늘. 현우는 리셋 직전의 공기를 맡으며 보스 숲으로 걸어갔다.

숲 안쪽에는 낡은 나무문이 있었다. 문 위에는 친절한 문구가 박혀 있었다.

[초보 도전자는 파티를 권장합니다.]

현우는 그 문구를 올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랑 파티할 사람이 있었으면 그 사람이 먼저 미쳤지."

문이 열렸다.

안쪽 보스 방도 늘 같았다. 중앙에는 늙은 홉고블린이 서 있었다. 키는 사람보다 조금 컸고 손에는 녹슨 장창을 들었다. 첫 대사도 늘 같았다.

"크르륵. 약한 인간. 여기서 네 시험은 끝난다."

현우는 손을 들었다.

"대사 스킵."

홉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장창 끝이 일곱 갈래 궤적을 만들었다. 보통 도전자라면 잔상으로 보이는 초보자용 페이크 패턴이었다.

현우의 눈에는 느린 그림이었다.

첫 찌르기는 심장보다 두 치 아래. 두 번째는 회피 방향 보정. 세 번째는 보정에 반응한 목을 노리는 함정. 네 번째부터 일곱 번째는 겁먹은 도전자의 발을 묶는 장식.

그는 앞으로 걸었다.

장창이 가죽 아머 앞에서 멈췄다. 멈춘 게 아니었다. 현우가 손가락 두 개로 창날 옆면을 누르고 있었다. 홉고블린의 팔에 힘줄이 솟았다. 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도 고생 많았다."

현우가 말했다.

"만 년 동안 같은 대사 치느라."

단검이 짧게 움직였다.

목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홉고블린의 무릎이 꺾였고 장창이 가루처럼 흩어졌다. 시스템이 만든 무기 판정을 시스템보다 먼저 해체한 결과였다.

[보스 몬스터 늙은 홉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튜토리얼 클리어.]

현우는 숨을 멈추었다.

여기까지는 늘 같았다.

곧 실패 메시지가 떠야 했다. 하늘이 깨지고 평원이 초기화되어야 했다. 슬라임은 다시 첫 번째가 되고 고블린은 또 같은 화살을 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창이 멈췄다.

[오류 로그를 확인 중입니다.]

현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뭐?"

[장기 미정산 기록 발견.]

[기록 범위: 10,000년]

[튜토리얼 1층 반복 클리어 횟수 산정 실패.]

[히든 미션 정산을 시작합니다.]

허공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창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수천 개의 문장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칭호: 슬라임의 종말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고블린 교관의 악몽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함정 위를 걷는 자를 획득했습니다.]

[칭호: 튜토리얼의 주인을 획득했습니다.]

[고유 권능 후보가 감지되었습니다.]

현우는 빽빽한 창들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문질렀다.

"이걸 이제 준다고?"

시스템 창 하나가 그의 손짓에 밀려났다. 그 뒤쪽에 검은 창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비정상 누적자 감지.]

[탑 상층 규칙과 충돌 가능성이 있습니다.]

[격리 유지 권장.]

현우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격리?"

그 한마디에 보스 방의 공기가 내려앉았다. 만 년 동안 쌓인 마력이 조용히 바닥을 눌렀다. 돌바닥에 금이 갔다. 오래된 튜토리얼 방이 비명을 내듯 삐걱거렸다.

"못 올려 보낸 게 아니라 안 올려 보낸 거였나?"

대답은 없었다. 창들은 빠르게 깜빡였다. 들켜서는 안 될 문장을 숨기려는 것처럼 빛이 흔들렸다.

현우는 손가락을 들어 검은 창을 눌렀다.

[접근 권한 없음.]

"1층에서 권한 따지는 거 아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여긴 내가 더 오래 살았다."

손끝이 빛을 파고들었다. 창이 버티려 했으나 버티는 방식마저 현우에게는 익숙했다. 1층 함정 판정과 같은 결이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밟게 만들고 도전자의 발목을 잡아 돌리는 낡은 규칙.

현우는 그 선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꺾었다.

검은 창이 찢어졌다.

[권능 확정: 만신의 짬밥]

[상대의 공격 궤적과 시스템 판정을 사전 예측합니다.]

[권능 확정: 튜토리얼 파괴자]

[상위 층 규칙 충돌 시 1층 판정을 강제 적용합니다.]

[경고.]

[경고.]

[경고.]

경고음은 깨진 종소리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문장이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1층을 완벽히 정복하셨습니다.]

[2층 이동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2층으로 이동합니다.]

현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기다린 말은 들었을 때 오히려 멀게 느껴졌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녹슨 단검을 주웠다. 튜토리얼 지급품이라며 수없이 버렸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만 년이 지나도 손에 가장 익은 것은 결국 이 싸구려 단검이었다.

그는 손잡이에 남은 흠집을 엄지로 훑었다. 첫해에는 몇 번이나 부러뜨렸고 열 번째 해에는 날을 갈아보겠다고 슬라임 점액에 담가두었다. 백 번째 해에는 고블린 뼈로 손잡이를 바꾸었다가 리셋에 사라지는 꼴을 보고 한참 웃었다.

그 뒤로는 고치지 않았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두었다. 무뎌진 날로도 벨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편이 더 빨랐다.

현우는 단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세상에서 가장 값싼 무기였고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무기였다.

"가자."

그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했다.

"이번엔 진짜로."

보스 방 뒤쪽에 문이 열렸다. 처음 보는 문이었다. 푸른 계단이 아래도 위도 아닌 곳으로 뻗어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1층에서는 맡을 수 없던 흙냄새와 피 냄새와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현우는 문턱 앞에서 한 번 뒤돌아봤다.

평원은 벌써 무너지고 있었다. 슬라임이 태어나던 웅덩이도 고블린이 숨던 수풀도 보스 방의 갈라진 돌바닥도 빛으로 풀렸다.

만 년의 감옥이었다.

동시에 만 년의 수련장이었다.

그곳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말을 걸 상대도 없었다. 웃어줄 누군가도 없었다.

그래도 현우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고생했다. 나도. 너희도."

대답은 없었다. 그 침묵마저 익숙했다. 그래서 현우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림이라면 이미 만 년치로 충분했다.

그가 계단에 발을 올렸다.

[2층 생태계 경고: 늑대형 마수 다수 출현.]

[도전자 평균 생존율: 37%]

[파티 구성을 권장합니다.]

현우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튜토리얼보다 세냐?"

대답 대신 빛이 터졌다.

만 년 동안 닫혀 있던 1층의 문이 처음으로 그의 뒤에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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