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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호선으로 출근합니다만?3화

오늘도 2호선으로 출근합니다만?

오늘도 2호선으로 출근합니다만?

3화: 결재선 돌파

복합기가 종이를 토해 냈다.

드르륵.

기계음이 울릴 때마다 승강장 바닥에 복사 용지가 한 겹씩 깔렸다. 종이들은 바람도 없는데 선우 쪽으로 미끄러졌다. 흰 면 위에는 검은 글자가 번졌다.

수정

보완

재작성

글자가 완성될 때마다 종이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종이 수십 장이 한꺼번에 날아오면 칼날보다 나을 게 없었다.

선우는 문턱 안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줄부터 만들어 주세요. 가방끈이든 넥타이든 길게 이어서요. 문 안쪽에 묶고요."

승객들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복합기 뒤에서 나온 야근의 망령들이 종이 위를 밟고 다가오고 있었다. 놈들의 결재판에는 여전히 선우의 이름이 붉게 떠 있었다.

강선우

추가 수정

"빨리요. 제가 신호하면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안경 쓴 최민호가 먼저 넥타이를 풀었다. 손끝이 심하게 떨렸다. 그는 넥타이 한쪽을 문 손잡이에 묶고 다른 쪽을 중년 여자에게 건넸다.

"이걸로 되겠어요?"

"됩니다. 끊어지면 다음 걸 묶어요."

"선우 씨는요?"

선우는 승강장 안쪽을 보며 대답했다.

"저는 아직 퇴근 승인이 안 났습니다."

정면의 망령 하나가 결재판을 들었다. 빨간 펜이 선우의 이름 위를 천천히 긋자 머릿속에서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선우 대리님 수정본 확인 부탁드립니다.

목 뒤가 서늘해졌다. 눈앞에 엑셀 표가 겹쳤다. 수십 개의 칸이 비어 있었고 빈칸마다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락된 항목을 채우지 않으면 숨도 못 쉴 것 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눌렀다.

선우는 사원증 줄을 손바닥에 더 세게 감았다.

"요청은 접수했어요. 처리 기한은 미정입니다."

알림창이 흔들렸다.

특성 [직장인의 깡다구]가 머릿속을 짓누르는 감각을 밀어냈다. 피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기획안 출력물 한 장을 집었다. 커피가 말라붙어 제목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망령들에게는 그 얼룩 하나면 충분했다.

선우는 종이를 복합기와 객차 사이 한가운데로 던졌다.

"민호 씨. 텀블러 뚜껑 열어 주세요."

"네?"

"남은 커피요."

최민호는 선우가 문턱에 세워 둔 텀블러를 겨우 집었다. 뚜껑을 열자 식은 커피 향이 얇게 퍼졌다.

"저 종이 위에만 부어요. 다른 데 말고."

최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객차 바닥에 엎드려 손을 뻗었다. 커피가 가느다란 줄기로 기획안 위에 떨어졌다.

검은 얼룩이 종이 한가운데에 번졌다.

미결

망령들의 걸음이 멈췄다.

가장 앞의 놈이 고개를 꺾었다. 뒤에 있던 놈들도 같은 방향을 봤다. 결재판 위의 붉은 글자가 선우의 이름과 미결 표식 사이에서 빠르게 흔들렸다.

"미결..."

"확인..."

"결재..."

망령들이 종이 쪽으로 몰려들었다.

선우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놈들은 업무를 완수하려는 괴물이 아니었다. 미완성된 일을 보면 물어뜯으려 드는 버릇이 있을 뿐이었다. 평소 회사와 다르다면 사람이 아니라 망령이 결재를 올린다는 점 정도였다.

"하나의 미결 건에는 한꺼번에 달라붙는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망령 둘이 같은 기획안을 향해 결재판을 내리쳤다. 판자 모서리가 맞부딪쳤다. 붉은 펜촉도 서로 엉켰다. 놈들은 상대를 밀어내며 종이를 차지하려 했다.

선우는 그 틈을 향해 뛰었다.

종이 바닥이 구두 밑에서 밀렸다. 복합기가 기다렸다는 듯 새 용지를 뿜어냈다. 이번에는 종이들이 발목 높이까지 쌓이며 선우의 다리를 감쌌다.

업무 범위 확대

발목이 조여 왔다.

선우는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사원증 목걸이를 가장 가까운 망령의 결재판 손잡이에 걸었다. 카드가 걸린 순간 목걸이 줄이 팽팽해졌다.

[사무용품 무기화 Lv.1]

[사원증 목걸이: 임시 구속 도구]

망령이 몸을 돌렸다. 결재판 위에서 선우의 이름이 진하게 빛났다.

강선우

수정 담당

"담당자 맞습니다."

선우가 줄을 잡아당겼다.

"그래서 반려합니다."

망령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선우는 왼손의 텀블러를 높이 들었다. 스테인리스 바닥이 조명에 번뜩였다.

깡!

텀블러가 망령의 붉은 펜을 정확히 때렸다.

펜촉이 부러졌다.

망령의 입에서 눅눅한 종이가 찢기는 소리가 터졌다. 결재판 위의 선우 이름이 번지더니 한 글자씩 지워졌다. 놈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늦어졌다.

선우는 발목을 조이던 종이를 걷어찼다. 다른 망령 하나가 옆에서 결재판을 휘둘렀다. 그는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판자 모서리가 어깨를 스쳤다.

셔츠가 찢어지고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선우 씨!"

최민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줄 당기지 마세요!"

선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결재판에 묶인 망령을 놓지 않았다. 펜이 부러진 놈은 다시 이름을 찍지 못했다. 힘이 빠진 몸을 질질 끌고 문턱 쪽으로 물러났다.

뒤의 망령들이 따라붙었다. 미결 기획안을 두고 싸우던 놈들까지 고개를 들었다. 종이 바닥을 긁는 구두 소리가 사방에서 겹쳤다.

문턱까지는 여섯 걸음이었다.

선우는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망령이 결재판으로 그의 손등을 찍으려 했다. 선우는 사원증 줄을 한 번 더 감아 결재판을 옆으로 틀었다. 공격이 비껴간 자리에서 종이 바닥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종이 띠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긴급 수정 요청

눈앞이 흐려졌다. 끝내지 못한 보고서들이 머릿속에서 쏟아졌다. 팀장이 한숨 쉬는 얼굴도 보였다. 새벽 두 시에 들어온 메시지가 귓가에 붙었다.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되냐는 말은 끝내 못 했던 기억이었다.

선우는 숨을 들이켰다.

"다른 사람도 합니다."

그는 문 안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객차 안의 승객들이 동시에 줄을 잡아당겼다.

넥타이와 가방끈이 팽팽해졌다. 중년 여자는 두 손으로 줄을 감았고 최민호는 이빨까지 악물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들의 허리를 붙잡았다.

선우의 몸이 문턱 쪽으로 끌려갔다.

그와 함께 펜이 부러진 망령도 앞으로 쏠렸다. 놈의 구두가 전동차 문턱 바로 앞 흰 선을 밟았다.

푸른 불꽃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망령은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정장 안쪽이 납작하게 접히더니 결재판과 함께 한 장의 종이처럼 찌그러졌다. 몸은 접힌 서류 더미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바닥에 푸른빛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강남역 승차권 파편 2/3

[강남역 하급 망령 처치]

[승차권 파편 수집 진행: 2/3]

선우는 문턱에 한쪽 무릎을 짚고 파편을 주웠다.

첫 조각과 닿자 차가운 전기가 손가락을 타고 올랐다. 두 파편의 가장자리가 맞물리며 작은 지하철 표 모양을 만들었다. 아직 한쪽이 깨져 있었다.

"두 개예요."

최민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나만 더 하면 되는 거죠?"

"그럴 겁니다."

선우는 짧게 답했다.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질문 하나에 답 하나를 주는 장소가 아니었다. 시스템은 늘 조건을 던져 놓고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그래도 손에 든 두 조각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그 순간 복합기가 멈췄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끊기자 승강장 전체가 지나치게 조용해졌다. 종이 위를 기어오던 망령들도 그 자리에서 멎었다.

복합기 전면에 달린 작은 화면이 켜졌다.

승인권자 후보 확인

강선우

선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후보는 무슨. 지원한 적 없는데."

화면 아래의 투명한 덮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안쪽은 텅 빈 기계실이 아니었다.

검은 종이 띠가 사람 하나를 의자에 묶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붙은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손목과 발목에는 결재선처럼 붉은 선이 감겨 있었다.

여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투명 덮개를 두드렸다.

탕.

소리는 작았지만 선우에게는 복합기보다 크게 들렸다.

"사람이 있어요."

최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우도 보고 있었다.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유리와 거리 때문에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대신 복합기 화면에 글자가 한 줄씩 떠올랐다.

결재 대기 00:01:39

승인 거절 시 재작성 처리

여자의 몸을 묶은 종이 띠가 한 번 조여 들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문 안쪽의 승객들이 숨을 삼켰다.

"저거... 재작성 처리가 뭔데요?"

누군가 물었다.

선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다만 종이 띠가 사람의 팔을 조이는 모습만으로도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건 충분했다.

복합기 옆의 철문이 조금 열렸다.

문틈 너머로 개찰구가 보였다. 붉은 도장이 찍힌 막대들이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앞 바닥에는 마지막 승차권 파편으로 보이는 푸른 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문 위 글자가 바뀌었다.

승인권자 입장

보류 건 1건

선우는 어깨의 상처를 눌렀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조금 묻어 나왔다. 지금 문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지대까지의 거리가 멀어진다. 망령도 다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돌아서면 저 여자는 저 기계 안에서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는 객차 안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서 더 나오는 사람은 없어요. 줄은 그대로 잡고 있어요. 제가 세 번 두드리면 바로 당기고요."

최민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또 혼자 가려고요?"

"혼자는 아닙니다."

선우는 문가에 걸린 넥타이와 가방끈을 가리켰다. 볼품없는 줄이었다. 그래도 조금 전 그 줄은 그를 다시 끌어왔다.

"당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최민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안 놓칠게요."

선우는 깨진 승차권 두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사원증 줄을 손에 감고 텀블러를 단단히 쥐었다.

복합기 화면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00:01:12

마지막 파편은 철문 안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누군가의 퇴근을 대신 승인해야 하는 여자가 갇혀 있었다.

선우는 문턱 밖으로 한 걸음 나갔다.

"보류 건부터 처리하죠."

그의 시선이 복합기를 향했다.

"오늘은 아무도 여기 남아서 야근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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