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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13화

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13화: 주문 없는 계좌

서유리가 보낸 메일에는 금갑건설의 IR 회신과 기업어음 발행 공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기자가 오전에 받은 답변은 짧았다.

차환 예정 자금은 시장 상황과 자금 운용 계획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조달할 예정입니다.

강진호는 문장을 한 번 읽고 발행 공시를 열었다. 공시는 장 마감 직전인 오후 세 시 오십이 분에 올라와 있었다. 금갑건설은 석 달 만기 기업어음을 새로 발행했다. 직전 발행분보다 만기는 한 달 짧아졌고 표면금리는 삼십오 베이시스포인트 높아져 있었다.

회사 쪽은 차환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차환을 하고 있었다.

진호는 모니터 두 개를 번갈아 보았다. 한쪽에는 탄력적 조달이라는 문장이 떠 있었고 다른 쪽에는 짧아진 만기와 높아진 금리가 떠 있었다.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회신은 언제 왔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서유리가 답했다.

"오후 두 시 십칠 분이요. 기자가 처음 질문한 건 오전이었고요. 공시는 그 뒤에 올라왔어요."

"기자는 발행 공시를 보고 질문한 게 아닙니다."

"네. 기존 단기차입금하고 매출채권 회전일수를 보고 물은 거예요. 회사가 답을 정리한 다음에 발행이 나온 거죠."

진호는 수첩을 펼쳤다. 시간을 적은 뒤 그 아래에 공개 자료와 해석을 나눠 썼다.

공개 확인: 3개월 CP 발행, 직전보다 금리 상승, 만기 단축.

해석 보류: 차환 압박 여부.

미래의 그는 이 숫자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2008년이 오면 금갑건설은 더 비싼 돈으로 더 짧은 시간을 사게 된다. 그때가 되면 회사의 공시도 변명도 시장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금갑건설은 아직 한 번의 발행을 마쳤을 뿐이었다. 금리가 오른 이유가 회사만의 사정인지 시장 전반의 움직임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걸로 기사 쓸 수 있습니까?"

"안 돼요."

서유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업어음 한 번 발행했다고 위험하다고 쓰면 그게 더 이상하죠. 다른 건설사도 같은 조건인지 봐야 해요. 신용등급이 비슷한 회사들이 다 만기를 줄였다면 시장 문제고 금갑건설만 유난하면 그때부터 회사 문제를 의심할 수 있어요."

진호는 펜을 굴렸다. 손끝이 자꾸만 마우스를 향했다. 계좌만 열리면 지금 당장 하락 쪽에 돈을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생각은 너무 편했다.

미래를 안다는 이유로 현재의 근거를 건너뛰게 만드는 편안함이었다.

"비교할 회사를 정해 주세요."

"태운건설하고 서린산업이요. 같은 기간 공시에서 만기와 금리만 먼저 뽑죠. 숫자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남겨요. 빈칸을 추측으로 채우지는 말고요."

"알겠습니다."

서유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진호 씨는 이 회사가 곧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호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금갑건설 본사 건물이 멀리 보였다. 아직은 유리 외벽이 깨끗했고 출입구에는 아침마다 검은 승용차가 줄지어 섰다.

"생각이 아니라 확인하려는 겁니다."

"그 차이를 지켜요. 제가 보는 자료 안에서는요."

"지키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수첩 맨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확신은 기록이 아니다.


오후 늦게 증권사에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선물옵션 계좌 개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진호는 퇴근 종이 울리기 전 가방을 챙겼다. 박태성이 그의 움직임을 봤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다만 자리를 지나며 낮게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금갑건설 자료철 정리해 둬요. 수령 시간하고 회람 경위도 빠뜨리지 말고."

"네."

지시 하나가 늘어날수록 그의 시야도 좁아졌다. 동시에 그 지시가 없었다면 전략기획실이 직접 던질 질문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증권사 선물옵션 창구에는 퇴근길 손님이 몇 명 앉아 있었다. 직원은 진호의 신분증과 접수 번호를 확인한 뒤 계좌 개설 완료 화면을 보여 주었다.

"교육 확인이랑 위험고지 절차는 끝났습니다. 예탁금도 최소 기준으로 반영됐고요."

"오늘 주문할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합니다. 다만 어떤 거래를 생각하시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직원은 화면을 돌려 주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 갔다.

"지수 풋옵션은 시장 전체가 꺾이는 쪽에 대비할 때 쓰는 방법이고 만기가 가까워질수록 시간가치가 빠집니다. 방향을 맞혀도 시점이 늦으면 손실이 날 수 있어요. 개별 건설주를 직접 공매도하는 건 대주 물량과 회수 조건을 따로 보셔야 하고요."

"대주 물량이 있으면 만기까지 계속 들고 갈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여자가 회수를 원하면 상환 통보가 올 수 있어요. 담보 비율도 바뀔 수 있고요. 특히 개인 대주는 장기간 버티는 수단으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진호는 그 말을 천천히 받아 적었다. 미래에서 그는 하락의 날짜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장이 그 날짜에 맞춰 친절하게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이른 풋옵션은 시간이 지나며 값이 닳는다. 너무 이른 공매도는 대주 회수와 담보 부담이 먼저 목을 조인다.

아는 미래가 가장 위험한 순간은 기다리지 못할 때였다.

"건설업종 리포트도 한 부 더 받을 수 있습니까?"

"네. 다만 리포트는 투자 권유가 아니고요."

직원이 건넨 리포트에는 업종 호황과 수주 잔고가 먼저 적혀 있었다. 뒤쪽 몇 장에야 PF 우발채무와 단기차입 비중에 관한 경고가 작게 붙어 있었다. 시장은 아직 밝은 쪽을 더 크게 읽고 있었다.

진호는 접수증과 리포트를 파일에 넣었다. 주문 화면으로 들어가는 메뉴는 바로 옆에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끝날 일이었다.

그는 메뉴를 누르지 않았다.

지점을 나와 자취방 근처 문구점에서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샀다. 책상에 앉아 첫 장을 펼친 뒤 날짜 아래에 다섯 줄을 적었다.

옵션 계좌 개설 완료.

예탁금 최소 반영.

금갑건설 대주 및 옵션 주문 없음.

주문 보류 사유: 비교 공시 확인 전.

판단 근거: 공개 자료와 외부 분석만 사용.

마지막 줄을 쓰고도 한동안 노트를 덮지 못했다.

예전의 그는 이승준이 시키는 대로 돈을 움직였다. 자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면서도 지시받은 숫자만 넘겼다. 누군가 이유를 물으면 더 위에서 정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 끝에는 아무 기록도 없었다.

이번에는 움직인 돈만큼 움직이지 않은 손도 남길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박태성은 진호를 팀장 자리 옆 작은 회의 테이블로 불렀다. 테이블 위에는 금갑건설 자료철과 새로 출력한 기업어음 발행 공시가 놓여 있었다.

"전략기획실에서 연락 왔어. 앞으로 금갑건설 CP 관련 자료도 이 창구로 모으라고 하더군."

진호는 자료철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네."

"네가 할 일은 간단해. 자료 받으면 시간 적고 누구한테서 받았는지 적고 나한테 올려. 열람 요청이 들어와도 네 판단으로 주지 말고."

박태성은 발행 공시 위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외부에서 또 질문이 들어왔다며. 어디서 그런 말이 도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시장하고 회사 일 섞지 마."

진호는 고개를 들었다.

"공개 자료를 읽으면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을 강진호 씨가 만든 건 아니고?"

"회사 자료를 전달하거나 외부에 질문을 요청한 적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장 알아본 적도 없고?"

질문의 끝이 날카로웠다. 진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공개된 기사나 리포트를 본 적은 있습니다. 업무 자료와 섞은 적은 없습니다."

박태성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거짓말을 잡아내려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진호의 답에는 부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 선 넘지 마. 신입이 회사 이름 걸고 괜한 소리 만들면 제일 먼저 다치는 건 본인이야."

"주의하겠습니다."

박태성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빈 열람대장을 밀어 주었다. 수령 시간, 수령자, 요청 부서, 회람 여부, 반납 여부가 인쇄된 표였다.

통제는 더 촘촘해졌다.

진호는 대장을 받아 들며 그 반대편도 보았다. 전략기획실에서 그를 직접 부르려 해도 박태성의 결재선과 기록을 넘어야 했다. 불편한 벽이었지만 지금은 그 벽이 필요했다.

자리로 돌아오자 김미나가 빈 종이컵을 들고 서 있었다.

"또 커피만 마셨어요?"

"아직입니다."

"아직이 제일 문제라니까요."

미나는 책상 위에 샌드위치와 우유를 내려놓았다. 진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나가기 전에 먹은 거 확인할 거예요."

진호는 포장을 바로 뜯었다. 억지로라도 한 입을 먹자 미나가 힐끗 돌아봤다. 그 짧은 확인이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미래를 아는 사람에게도 현재의 하루는 배를 채우고 일을 끝내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밤이 되자 서유리에게서 비교표 초안이 왔다.

금갑건설, 태운건설, 서린산업. 같은 신용등급 구간의 세 회사를 한 줄씩 놓고 최근 기업어음 발행 공시의 날짜와 만기와 금리를 적은 표였다. 비어 있는 칸도 많았다. 공시마다 조건을 모두 적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진호는 태운건설 공시를 다시 열었다. 장 마감 뒤 올라온 발행분은 반년 만기였다. 금리는 직전 발행과 거의 같았다. 서린산업은 같은 날 발행 공시가 없었다.

그는 서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운건설은 반년입니다. 금리도 크게 안 올랐고요."

"봤어요. 그렇다고 금갑건설이 위험하다는 결론은 아직 아니에요. 발행 규모도 다르고 담보 조건도 알 수 없으니까요."

"압니다."

"그 표를 어디에 쓰려고 하죠?"

진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위의 두 줄이 너무 작았다. 미래의 파국과 비교하면 티도 나지 않는 차이였다.

그러나 파국은 언제나 작은 차이를 지나왔다.

"무너질 회사를 찍는 표로는 안 씁니다."

"그럼요?"

"어느 회사가 시장에서 더 비싼 값을 내고 시간을 사는지 보는 표입니다."

서유리는 잠시 조용했다.

"그 표현이면 괜찮겠네요. 다음 공시가 나와도 같은 기준으로만 채워요. 말이 바뀌었다고 추측을 늘리지 말고요."

"네."

전화를 끊은 진호는 새 노트를 펼쳤다. 오늘의 기록 아래에 비교표에서 확인한 두 칸을 옮겼다.

금갑건설: 3개월, 금리 상승.

태운건설: 6개월, 금리 유지.

그 아래에는 더 크게 적었다.

주문 없음.

계좌는 열려 있었다. 하락을 향한 길도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길을 밟을 수는 없었다.

금갑건설이 산 시간의 값이 정말 남들보다 비싸졌는지 확인할 때까지는.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서 새 공시 알림이 깜빡였다.

금갑건설의 추가 기업어음 발행 예정 공시였다.

진호는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먼저 읽는다.

그다음에 기록한다.

주문은 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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