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시놉시스
인류가 광속 항해를 실현한 시대.
인류 최후의 장거리 개척선 아르카디아는
미지의 외우주를 향한 항해 끝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곳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용.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
신의 기적을 행하는 사제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탐사대는 자신들이 전설 속 판타지 세계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된 유적 속에서
이상한 흔적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역사.
그리고 세상이 숨기고 있는 거대한 비밀.
별의 끝에서 도착한 개척자들은
과연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1화: 마지막 개척선
우주는 깊고 차가운 침묵에 빠져 있었다.
어떠한 생명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칠흑의 심연. 그 아득한 어둠을 가르고 거대한 금속의 방주가 소리 없이 나아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멀고 무모한 여정을 위해 건조된 마지막 개척선, 「아르카디아」.
길이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초거대 함체는 인류 과학 문명의 결정체이자, 모성(母星)을 잃어버린 종족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차가운 선체 내부에서 깨어 있는 생명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들과 승무원들은 기나긴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채, 얼음처럼 차가운 냉동수면 장치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직 거대한 함선을 통제하는 인공지능과, 정기적으로 깨어나 함교를 지키는 당직 수색대원들만이 이 적막한 항해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함교의 광활한 관측창 앞에 서 있던 사내가 낮게 침을 삼켰다.
그의 이름은 강이안. 아르카디아의 보안 책임자이자 탐사대의 선봉을 맡은 남자였다. 짙은 검은색 제복을 입은 그의 눈동자는 창밖의 어둠보다도 깊고 단단해 보였다.
"아직도 텅 빈 허공뿐인가."
이안이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그 질문만 이번 턴에만 마흔두 번째네요, 팀장님."
등 뒤에서 경쾌하면서도 약간은 피곤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선의 항로를 책임지는 수석 항법사, 윤하린이었다. 그녀는 헝클어진 갈색 머리를 대충 묶어 올리며 홀로그램 콘솔 앞에 앉아 있었다.
"보안 팀장으로서 함선의 안전을 확인하는 건 당연한 의무지."
"안전이야 AI가 초당 수억 번씩 체크하고 있죠. 그냥 지루해서 그러시는 거 다 압니다."
하린이 장난스럽게 웃자 이안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
사실 하린의 말이 맞았다. 광속 항해란 경이로운 과학의 성취였지만,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견뎌야 하는 인간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지루한 과정이었다. 몇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검은 우주와 멀리서 깜빡이는 항성들. 그것이 그들이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순간이었다.
윙-! 윙-! 윙-!
함교 전체에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하며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굳어졌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권총집으로 손을 뻗었고, 하린은 콘솔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AI, 상황 보고해! 엔진 트러블인가? 아니면 성간 물질 충돌?"
이안이 외쳤다. 함선의 메인 인공지능인 '세라프'의 차분한 음성이 경보음 사이를 뚫고 울려 퍼졌다.
[경보 상황이 아닙니다. 항성계 진입 감지. 궤도 감속 모드 가동합니다.]
"항성계 진입이라고?"
하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가 서둘러 홀로그램 화면을 조작하자, 함선 전방의 우주 공간이 굴절되며 나타난 새로운 태양계의 좌표가 그려졌다.
[목적지 좌표와 99.8% 일치. 황색 왜성을 중심으로 한 8개의 행성 확인. 제3행성에서 고농도의 산소 및 수증기 반응 감지.]
"드디어... 도착한 건가?"
이안은 굳은 자세로 관측창을 바라보았다.
공간의 왜곡이 서서히 풀리며 은빛의 광속 항해 궤적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행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와 대륙을 덮은 초록빛 대지, 그리고 그 위를 수놓은 백색의 구름.
그것은 이안을 비롯한 아르카디아의 탑승객들이 오랜 시간 꿈속에서만 그리던, 잃어버린 고향 지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말도 안 돼..."
하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수백 년의 방랑, 수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마침내 인류가 새로 둥지를 틀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낸 것이다.
[경보를 취소합니다. 전 승무원 및 이주민들의 단계별 해동 절차를 시작합니다.]
AI의 안내 방송과 함께 아르카디아 내부가 활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다른 승무원들이 하나둘 함교로 들이닥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 사이에서, 이안은 홀로 창가에 가까이 다가가 푸른 행성을 응시했다.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 그리고 기묘한 이질감이 그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린, 행성 분석 데이터 중에서 이상한 점은 없나?"
이안의 차분한 목소리에 하린이 눈물을 닦으며 콘솔을 확인했다.
"음, 대기 성분이나 중력은 거의 완벽해요. 지구의 98퍼센트 수준이라 별도의 환경 적응 장치도 필요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하린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왜 그래?"
"이거... 인공적인 전파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아요. 이렇게 생명 반응이 가득한 행성인데도 전자기적 소음이 전혀 없어요. 완전한 침묵이에요."
"문명이 없다는 뜻인가? 단순한 원시 행성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라? AI, 화면 3번 구역 확대해 봐."
하린의 지시에 홀로그램 화면 중 하나가 급격히 줌인되었다. 행성의 성층권 부근, 구름 사이를 뚫고 나아가는 거대한 물체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아르카디아의 센서에 잡힌 첫 번째 외계 생명체였다.
"저게... 뭐지?"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은 함선의 금속 선체만큼이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구름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온몸을 덮은 황금빛 비늘은 태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고, 길게 뻗은 목 끝에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안광을 뿜어내는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길이 약 350미터. 유기체 생명 반응 확인. 날개 구조와 대기 밀도의 비율로 보아, 일반적인 물리 법칙하에서는 비행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AI의 분석 결과가 흘러나왔다.
함교 안의 환호성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화면 속의 괴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인류의 고대 신화 속에나 등장하던 존재와 완벽히 일치했다.
"드래곤...?"
누군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그 순간, 행성의 지표면 한가운데에서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력한 푸른빛의 광주기가 뿜어져 나와 우주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갔다.
삐이이이이!
다시 한번 함선의 경고음이 고막을 찔렀다.
[경보. 행성 표면에서 미지의 에너지 방출 확인. 감지된 에너지는 기존의 열역학 법칙을 무시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석 불가.]
우주를 건너 도달한 새로운 세계.
그곳은 인류의 과학이 가닿지 못하는, 마치 신화와 마법이 살아 숨 쉬는 경이로운 대지처럼 보였다.
이안은 굳게 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이 아름답고도 기괴한 행성이 과연 인류의 새로운 요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종말의 덫이 될 것인가.
같은 시각.
행성의 울창한 침엽수림 너머, 고색창연한 돌탑 꼭대기에서 한 소녀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하늘 가장자리에 걸쳐진 아르카디아의 선체를 조용히 담았다.
소녀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별의 아이들아."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세계의 톱니바퀴가, 마침내 천천히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