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제구력이 SSS급

2화: 마운드 위의 격자무늬
“한 번만 더.”
박대웅이 포수 마스크를 이마 위로 밀어 올렸다.
늘 장난기가 먼저 튀어나오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방금 미트 한가운데에 꽂힌 공의 충격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송준혁은 말없이 새 공을 쥐었다.
실밥의 솟은 부분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정확히 걸렸다. 어깨에는 통증이 없었다. 대신 눈앞 허공에는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오렌지빛 선이 대웅의 미트까지 이어져 있었다.
[타겟 포인트 재설정.]
[추천 릴리스 각도: 78.2도]
[손목 회전축 오차 허용 범위: 0.04도]
준혁은 짧게 숨을 뱉었다.
전력으로 던질 필요는 없었다. 공을 빠르게 만드는 근육보다 공을 흔들리지 않게 내보내는 각도가 먼저였다.
‘선에 맞춘다.’
왼발이 올라갔다.
디딤발이 흙을 찍는 순간 격자 한 칸이 하얗게 빛났다. 준혁의 팔은 그 빛을 따라 내려왔고 손끝은 오렌지빛 선의 시작점을 정확히 스쳤다.
쉬익-!
공이 낮게 깔려 뻗었다.
대웅의 미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퍼억!
불펜 안쪽 철망이 포구음을 받아 쩌렁쩌렁 울렸다.
대웅은 공을 빼내다가 왼손을 한번 털었다.
“미친…… 진짜네.”
“뭐가.”
“방금도 똑같은 데 꽂았잖아. 일부러지?”
준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실제 궤적 대비 목표 궤적 오차: 0.09mm]
[투구 안정도: 92%]
[권장 조정: 상체 개방 시점 0.03초 지연]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몸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회귀 전 그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던 바늘 같은 통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운드와 손끝과 미트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송준혁!”
덕아웃 쪽에서 김태수 감독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감독은 턱 끝으로 그라운드를 가리켰다.
임시 스코어보드에는 8 대 1이라는 숫자가 걸려 있었다.
5회초, 1사 만루.
충주정보고는 신일고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몸 풀렸으면 올라가. 여기서 끊어.”
대웅이 작게 욕을 삼켰다.
“아무리 연습 경기라지만 저 상황에 너를 올린다고?”
“못 믿겠냐?”
“방금 공을 봤으니까 더 모르겠어. 네가 왜 갑자기 저러는지.”
준혁은 공을 글러브 안에 넣었다.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회귀했다는 말도 눈앞에 이상한 시스템이 보인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말한다고 믿어줄 사람도 없었다.
“그냥 미트만 대.”
대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 준혁을 노려보던 그는 툭 웃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일은 하나지.”
대웅은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먼저 홈 플레이트 쪽으로 뛰어나갔다.
준혁은 천천히 마운드를 향해 걸었다.
흙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낡은 펜스 너머에서 신일고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 충주정보고는 실전 감각을 맞추는 상대로도 부족한 팀이었다. 스코어는 벌어졌고 베이스는 가득 찼고 타석에는 4번 타자가 들어섰다.
“쟤 구속 얼마나 나오냐?”
신일고 덕아웃에서 누군가 물었다.
“좋아야 130 후반이지. 제구도 별로라던데?”
웃음이 터졌다.
준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마운드 위에 발을 올리는 순간 잠깐 비 내리던 밤의 기억이 스쳤다. 텅 빈 관중석, 부서지던 어깨, 배트에 맞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공.
그는 투수판 앞의 흙을 발끝으로 고르게 밀었다.
‘이번에는 끝내러 올라온 게 아니야.’
준혁이 글러브 속 공을 꽉 쥐었다.
‘다시 시작하러 올라온 거다.’
홈 플레이트 뒤의 대웅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직구.
타석의 강민재가 방망이를 어깨 위에서 천천히 흔들었다.
큰 키와 두꺼운 팔뚝. 고교 선수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하체가 단단했다. 그는 헬멧 아래 눈으로 준혁을 대충 훑었다.
바로 그때 타석 주변 공간이 붉은 선과 푸른 선으로 갈라졌다.
[타자 예상 스윙 궤적 분석 중.]
[주요 타격 포인트: 바깥쪽 허리 높이.]
[밀어치기 장타 위험 67%. 회피 구역 표시.]
강민재의 배트가 지나갈 길이 붉은 띠처럼 허공에 그려졌다.
바깥쪽 가운데는 위험했다. 거기로 공이 들어가면 힘으로 밀어도 우중간 깊숙한 곳까지 날아갈 수 있었다.
대웅이 바깥쪽 낮게 미트를 댔다.
준혁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대웅의 눈이 커졌다.
준혁은 글러브 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몸쪽 낮은 코스를 가리켰다.
만루에서 몸쪽.
공 하나 빠지면 밀어내기였다. 고교 연습 경기라 해도 포수가 쉽게 받아들일 사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웅은 결국 미트를 안쪽 무릎 아래로 옮겼다.
[타겟 좌표: x -0.31, y 0.58, z 18.44]
[릴리스 가이드라인 활성화.]
[권장 출력: 83%]
준혁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힘은 선을 흔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같은 시작점과 같은 회전축이었다.
쉬이익-!
공이 손끝을 떠났다.
강민재의 앞발이 반 박자 늦게 열렸다. 몸쪽 공이라고 판단한 순간 방망이가 나오려다 멈췄다.
퍽!
“스트라이크!”
심판의 목소리가 짧게 터졌다.
신일고 덕아웃의 웃음이 끊겼다.
대웅은 미트를 한번 내려다본 뒤 공을 돌려주었다.
미트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준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바로 그 자리였다.
[목표 궤적 오차: 0.11mm]
[타자 반응: 스윙 시작 지연. 몸쪽 의식 상승.]
준혁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보인다.
강민재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보였다. 공이 어느 길로 가야 배트 중심을 피하는지 보였다. 감으로 찾아 헤매던 답이 이제는 격자 위에 떠 있었다.
두 번째 공.
대웅은 다시 직구 사인을 냈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만 달랐다.
바깥쪽 낮은 모서리.
강민재가 몸쪽을 의식하는 지금이라면 가장 멀게 느껴질 공간이었다.
준혁의 왼발이 내려앉았다.
손끝이 오렌지빛 선을 통과했다.
쉬익!
이번에는 강민재의 배트가 나왔다.
금속 배트가 공보다 조금 위를 스쳤다.
슉!
“스트라이크 투!”
헛스윙.
강민재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타석 바닥을 스파이크로 긁었다. 고개도 한 번 갸웃했다.
“공이 왜 저기서 살아?”
그 혼잣말은 포수 마스크 안의 대웅에게도 들렸다.
대웅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공은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 회전축이 똑바로 서 있어서 마지막까지 높이가 죽지 않았다. 타자가 생각한 궤적보다 손가락 두 마디쯤 위를 지나갔다.
덕아웃 앞 김태수 감독도 팔짱을 풀었다.
‘방금 두 공. 릴리스가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고교 투수들을 봐왔다.
컨디션 좋은 날 한두 공이 제구되는 투수는 많았다. 그러나 같은 팔 각도와 같은 손끝 위치에서 서로 다른 코스를 찌르는 투수는 드물었다.
더구나 김태수가 알던 송준혁은 그런 투수가 아니었다.
구속은 평범했다. 제구도 흔들렸다. 승부처에서 믿고 올릴 카드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마운드 위의 아이는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선을 긋고 있었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만루.
강민재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대웅은 세 번째 사인을 내기 전에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야. 진짜 괜찮냐?”
“뭐가.”
“몸쪽 한 번 더 요구하면 나도 무섭다. 얘 맞으면 넘어간다.”
준혁은 강민재를 흘끗 보았다.
타자의 어깨가 조금 빨리 열리고 있었다. 두 공이 모두 존 모서리에 들어오자 이제는 맞히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몸쪽 높은 데 보여줘.”
“볼로?”
“응. 눈만 흔들면 돼.”
대웅이 준혁의 눈을 들여다봤다.
불펜에서 보았던 멍함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아주 차갑고 선명한 집중만 남아 있었다.
“알았다. 대신 빠지면 내가 욕한다.”
“미트만 움직이지 마.”
대웅이 다시 홈으로 돌아갔다.
준혁은 공을 쥐었다. 시스템의 선들이 다시 열렸다.
[유인구 경로 계산.]
[타자 시선 상승 유도 확률: 74%]
[위험: 중심부 진입 시 장타 확률 81%]
위험하다는 붉은 표시가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를 뒤덮었다.
준혁은 그 위를 지나가는 얇은 푸른 선을 선택했다. 스트라이크처럼 보이다가 마지막에 손 하나 높게 빠지는 길이었다.
쉬익-!
강민재의 배트가 움찔했다.
하지만 멈췄다.
“볼!”
1볼 2스트라이크.
강민재는 헛웃음을 흘렸다.
“제구 되는 척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준혁은 그 작은 변화를 보았다. 방망이 끝이 처음보다 조금 내려갔다. 높은 공을 본 뒤 다시 낮은 공을 의식하는 자세였다.
마지막 공.
대웅의 사인은 바깥쪽 낮은 직구였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대웅도 더 묻지 않았다.
[결정구 경로 추천.]
[목표: 스트라이크존 외곽선 접촉 지점.]
[릴리스 포인트 허용 오차: 0.06mm]
허용 오차가 더 좁아졌다.
조금만 밀리면 볼이었다. 조금만 가운데로 들어오면 장타였다. 하지만 그 사이의 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준혁은 숨을 멈췄다.
그라운드의 소음이 멀어졌다.
주자들의 리드 폭도 대웅의 미트도 강민재의 배트도 모두 격자 안의 좌표로 변했다.
‘여기서부터.’
왼발이 내려앉았다.
허리가 돌고 어깨가 따라 나왔다.
손끝이 오렌지빛 선의 시작점에 닿았다.
‘여기까지.’
쉬이이익-!
공이 바깥쪽으로 뻗었다.
강민재의 방망이가 반응했다. 배트 중심이 공을 향해 내려왔다.
그러나 공은 그 중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회전축이 흔들리지 않은 직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라앉지 않고 바깥쪽 무릎 높이를 스쳤다. 배트는 공보다 손가락 두 마디 위를 갈랐다.
퍼어억!
대웅의 미트가 닫혔다.
“스트라이크! 아웃!”
순간 야구장이 조용해졌다.
신일고 4번 타자 강민재가 방망이를 든 채 굳어 있었다.
1사 만루에서 130 후반의 직구 네 개로 삼진.
순식간에 아웃카운트가 하나 늘었다. 그것도 존의 네 귀퉁이를 자로 잰 듯 찌른 승부였다.
대웅이 공을 쥔 채 일어났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너 진짜 뭐냐?”
준혁은 마운드 위에서 글러브를 한번 쥐었다 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다시 얻은 몸과 눈앞의 격자가 하나로 맞물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김태수 감독이 덕아웃 앞까지 나왔다.
그의 눈은 더 이상 패전 처리 투수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송준혁.”
준혁이 고개를 돌렸다.
감독은 잠시 말을 멈췄다.
스코어는 여전히 8 대 1이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는 방금 말도 안 되는 공 네 개를 던진 투수가 서 있었다.
“한 명 더 잡아봐라.”
준혁은 공을 받아 들고 다시 투수판을 밟았다.
눈앞의 격자무늬가 더 선명하게 빛났다.
마운드는 더 이상 처형대가 아니었다.
그가 해답을 쓰는 칠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