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시놉시스
평범한 야간 자율학습 시간, 세화고등학교가 통째로 거대한 던전으로 변해버렸다. 몬스터가 창궐하는 복도, 외부와 단절된 지옥.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은 오직 김한결에게만 나타난 '매점 인벤토리 시스템'이다. 매점의 빵과 우유를 무기와 포션으로 바꾸며, 그는 친구들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해 학교라는 미궁을 돌파하기 시작한다.
1화: 야자 시간에 생긴 일
지잉- 지잉-.
책상 구석에서 진동이 울렸다.
김한결은 반사적으로 교탁 쪽을 살폈다. 감독 교사인 수학교사 '독사'는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었다. 한결은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한아름: 야, 너 아직도 매점에 초코우유 남아있는지 알아? 나 배고파 죽을 거 같아.]
소꿉친구이자 옆 반인 아름이의 카톡이었다. 한결은 픽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김한결: 아까 7교시 쉬는 시간에 갔을 때 세 개 남았더라. 지금 가봐야 문 닫았을걸?]
[한아름: 아, 망했네... 오늘 야자 너무 길다. 그치?]
오늘따라 유난히 공기가 무거웠다. 창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이따금씩 부는 밤바람 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왔다.
한결은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화고등학교 3학년 5반. 입시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학생들은 숨죽인 채 펜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
"어? 지진인가?"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떨림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책상이 덜컹거릴 정도로 진동이 거세졌다. 엎드려 자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고, 졸던 독사도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났다.
"다들 책상 밑으로 들어가! 침착해!"
독사의 외침이 무색하게, 진동은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단순히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교실 벽면의 콘크리트가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회색빛이 아닌 탁한 보랏빛 이끼 같은 것이 순식간에 벽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벽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결은 본능적으로 창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을 본 순간,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운동장이 보여야 할 자리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렁텅이와 기괴한 발광 식물들이 가득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는 달도 별도 없었다. 오직 붉은빛을 띠는 기이한 안개만이 학교를 감싸고 있었다.
"세상에..."
학교가, 아니 학교가 있는 공간 자체가 통째로 어딘가로 옮겨진 것 같았다.
삐- 삐이이이-!
갑자기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귀를 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한결 역시 극심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이명 너머로,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시스템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구역 코드: 세화 고등학교 (Sehwa High School)]
[난이도: C (초보자 구역)]
[동기화 완료. 생존자들의 '직업'을 무작위로 할당합니다.]
"직업? 시스템?"
한결은 당황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기이한 빛의 문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검사', '궁수', '마법사(F급)', '일반인'...
심지어 독사의 머리 위에는 '채찍술사'라는 괴상한 명칭이 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한결의 눈에 들어온 자신의 정보는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특수 조건 충족 확인: 매점 누적 방문 횟수 1,000회 이상, 포인트 적립 1위, 매점 아주머니와의 유대감 'MAX']
[히든 직업 '매점 주인'의 권능이 개방됩니다.]
[고유 권능: '매점 인벤토리(S)'를 획득하였습니다.]
"매점... 주인?"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남들은 칼을 쓰고 마법을 부리는데, 고작 매점 주인이라니. 하지만 실망할 틈도 없었다.
쿠쾅-!
교실 뒷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튕겨 나갔다. 그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사람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초록색 피부를 가진, 동화 속에서나 보던 괴물이었다.
"키에에에엑-!"
입가에 침을 흘리며 날카로운 단검을 든 고블린이었다. 놈의 눈은 굶주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선은 가장 가까이 있던 학생에게 고정되었다.
"아, 악! 오지 마!"
뒷자리에 있던 민수가 소리를 지르며 가방을 던졌지만, 고블린은 가볍게 피하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독사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놈의 민첩한 움직임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죽는다.'
한결의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저대로 두면 민수의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결은 근처에 있던 자신의 가방을 열어젖혔다. 가방 안에는 방금 전 쉬는 시간에 사두었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시야에 반투명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대상을 '매점 인벤토리'에 등록하시겠습니까?]
[대상: 신성 초코우유 (200ml)]
'등록!'
한결이 마음속으로 외치자, 가방 안에 있던 초코우유가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동시에 한결의 손바닥 위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아이템 변환 가능!]
[신성 초코우유 -> 하급 체력 회복 포션 (전환 비용: 10포인트)]
[보유 포인트: 1,000 (초기 보너스)]
'변환해!'
찰나의 순간, 한결의 손에 들린 것은 초코우유 팩이 아니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담긴, 영롱한 빛을 내뿜는 붉은 액체였다.
"이게 왜 포션으로... 아니, 이게 아니지!"
한결은 다시 한번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먹다 남은 '불꽃 쫄면' 컵라면이 하나 더 있었다.
[대상: 불꽃 쫄면 (매운맛 5단계)]
[아이템 변환: 화염 속성 폭발탄 (전환 비용: 50포인트)]
'이거다!'
한결은 주저 없이 '화염 속성 폭발탄'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컵라면 용기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표면에는 뜨거운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고블린이 민수의 목을 향해 단검을 내리찍으려는 찰나, 한결이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던졌다.
"이거 처먹어, 이 괴물 새끼야!"
폭발탄은 정확히 고블린의 등 뒤에 적중했다.
콰앙-!
강렬한 굉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교실 내부를 집어삼켰다. 고블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불길 속에서 타올랐고, 화염의 여파로 교실 뒷벽까지 검게 그을렸다.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0 던전 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교실 안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화염이 잦아들고, 고블린이었던 것은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아이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결을 바라보았다. 한결 역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의 열기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한결아... 너 방금 뭐 한 거야?"
민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결은 대답 대신 창밖을 보았다. 복도 저편에서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내지르는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지옥으로 변한 학교에서, 매점 주인 김한결의 처절한 생존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