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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5화

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

평판 고쳐야 사는 보건교사

5화: 잠긴 문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제가 잠근 데예요."

백민재의 말이 끝나자 체육관의 잡음이 더 크게 들렸다.

치직.

천장 스피커는 사람 목소리 대신 마른 전류 소리만 뱉었다. 시선은 민재의 손에 들린 배터리와 열쇠 꾸러미로 쏠렸다.

"그럼 네가 옮긴 거 아니야?"

누군가가 담요 뒤에서 말했다.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만 얇게 다물었다.

윤서하는 그 앞에 한 걸음 섰다.

"잠갔다는 사실과 영상을 옮겼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그녀는 골판지를 집어 들고 굵은 펜을 댔다.

확인: 서버실 백업 신호 존재.

미확인: 영상 이동자와 잠금 목적.

"지금 확인할 건 영상이 남았는지예요. 민재가 왜 잠갔는지는 영상과 기록을 보고 나서 묻겠습니다."

문재익이 앞으로 나왔다.

"학생을 분리하고 행정실이 확인해야 합니다. 증거 훼손 우려가 있습니다."

"분리하면 누가 무엇을 봤는지 다시 사라집니다."

서하는 펜 뚜껑을 닫았다.

"민재는 열쇠를 들고 동행합니다. 하린은 시간과 출입을 기록해요. 김세영 선생님은 문서 표기만 확인해 주세요. 도윤 씨는 이동 안전을 봐 주세요."

"저는 왜 빠집니까?"

문재익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행정실 자료 대조 때는 문 실장님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영상 원본이 먼저예요."

오하린이 종이와 펜을 가슴에 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시간부터 적겠습니다. 열쇠를 누가 쓰는지도요."

김세영은 자기 반 학생들을 돌아봤다.

"이름은 보지 않겠습니다. 표기만 확인할게요."

조은별이 배급대에서 냄비 뚜껑을 덮었다. 묽은 죽 냄새가 조금 더 진하게 퍼졌다.

"다섯 명 넘으면 밥줄 비어. 확인할 사람만 빨리 다녀와."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더 크게 의심하느냐가 아니었다. 다음 국자가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민재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제 물건도 다 적으세요. 나중에 또 숨긴 거 있다고 하지 말고."

서하는 그를 보았다.

"적을게. 숨긴 물건과 사건 증거도 같은 말이 아니니까."

민재의 손가락이 열쇠 고리를 한 번 세게 쥐었다가 풀렸다.

중앙 복도는 체육관보다 차가웠다. 창문 틈으로 스민 안개가 바닥에 얇게 붙어 있었다. 강도윤은 앞에서 손을 들었다.

모두가 멈췄다.

계단 아래 유리문에 회색 얼굴 하나가 이마를 대고 있었다. 혼탁자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손잡이가 흔들릴 때마다 금속이 작게 울렸다.

딱.

도윤의 눈이 좁아졌다. 그는 손전등을 켜지 않은 채 벽에 붙었다.

"오른쪽으로. 발 끌지 마세요."

민재가 하린의 팔꿈치를 잡아 한 걸음 뒤로 물렸다. 유리문 너머의 혼탁자는 같은 동작을 두 번 더 반복하다 계단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집에.

젖은 목소리가 멀어졌다.

서버실 문 앞에는 비상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문재익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민재는 자물쇠를 가리켰다.

"저거 제가 달았어요."

하린의 펜 끝이 멈췄다.

"왜요?"

"방송 장비가 계속 없어졌으니까요. 비상시에 쓸 배터리도요."

"누가 뜯어 보려고 했어요. 안에는 제가 가져다 둔 배터리도 있고."

도윤이 자물쇠를 살폈다.

"문은 카드로도 열립니까?"

"원래는요. 자물쇠는 밖에서 못 들어오게 한 거고."

서하는 자물쇠와 문고리, 민재의 열쇠를 차례로 사진으로 남겼다. 하린은 출발 시간 아래에 09:06. 민재 열쇠로 비상 자물쇠 해제.라고 적었다.

"열어."

민재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저 안에 제 장비도 있어요."

"그래서 네가 같이 보는 거야."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딸깍.

복도 끝에서 무언가가 벽을 긁는 소리가 났다. 도윤이 곧장 문을 밀어 열고 모두를 안으로 들였다.

서버실 공기는 뜨거웠다. 꺼진 본체들 사이에서 작은 UPS 하나만 파란 불을 깜빡였다. 책상 아래에는 배터리 팩과 연장선이 정리돼 있었다.

민재가 먼저 말했다.

"방송 살릴 때 쓴 거예요. 학교 와이파이 죽으면 이걸로 내부 연결만 남길 수 있어서."

그는 장비 쪽으로 손을 뻗지 않고 제자리에 멈췄다.

서하는 배터리 팩과 연결선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린아. 배터리와 UPS가 민재가 설명한 위치에 있었다고 적어."

"네."

"장비는 가져가지 않습니다. 영상 확인이 끝난 뒤 체육관에서 보관 방식을 정해요."

민재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민재가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파란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치직.

체육관 스피커에서 들리던 잡음이 천장 케이블을 타고 서버실 안에서도 울렸다.

"UPS가 자동 복구 신호를 보낸 거예요."

민재가 낮게 말했다.

"완전히 죽은 건 아닌데 오래 못 버텨요. 영상은 한 번만 볼 수 있어요. 다시 꺼지면 파일 목록도 날아갈 수 있고요."

"필요한 것만 본다."

서하가 말했다.

"시간, 봉투 표기, 이동 방향. 그 외에는 멈춰."

민재는 잠깐 그녀를 보더니 마우스를 잡았다.

민재가 문제 시간대 파일을 열자 화면 전체에 흰 점이 쏟아졌다.

18:40.

급식실 전원이 처음 튀었다고 민재가 말한 시간이었다.

영상은 서버실 안쪽 카메라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부분만 비스듬히 찍혔다. 18시 41분에 문이 열렸다. 화면 아래의 출입 기록 표시가 한 번 깜빡였다.

민재가 손을 멈췄다.

"카드 출입 로그도 남아 있어요."

"아직 말하지 마. 먼저 영상."

서하의 말에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18:43.

문틈으로 사람 하나가 지나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복도 쪽 창에서 들어온 역광과 안개가 몸을 지웠다. 남은 것은 젖은 소매와 봉투를 쥔 손뿐이었다.

봉투 앞면에는 검은 펜으로 적힌 글자가 있었다.

B-17

김세영이 숨을 삼켰다.

"상담 기록 번호예요."

"제목은?"

서하가 물었다.

김세영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번호는... 보건실 카드에 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대상 이름은 확인하지 마세요."

"안 봅니다."

인물은 봉투를 겨드랑이에 끼고 행정실 방향 복도로 사라졌다. 그때 영상 바깥에서 손전등 빛이 두 번 짧게 깜빡였다.

깜빡.

깜빡.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는지, 단지 복도를 지나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화면이 갑자기 검어졌다.

UPS의 파란 불도 꺼졌다.

서버실에는 팬이 멎는 소리만 남았다.

도윤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끝났습니까?"

"아직 하나요."

민재는 꺼진 모니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는 작은 보조 배터리를 단말기에 연결했다. 손끝은 떨렸지만 움직임은 빨랐다.

"출입 기록은 별도 칩에 남아요. 전원 꺼져도 마지막 몇 개는 보여요."

작은 화면에 번호가 떴다.

18:41 / 교직원 카드 / 07-184

하린이 목에 걸린 출입 카드들을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번호... 행정실 지급 대장에 있어요."

"누구 카드인지 확인할 수 있어?"

"원본은 행정실에요. 하지만 앞자리와 끝자리는 기억해요. 문 실장님 카드가 07-184예요. 출입증 재발급할 때 제가 명단을 정리했어요."

민재가 화면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카드가 문을 열었다는 거지 사람이 문을 열었다는 건 아니죠."

서하는 그를 보았다.

"맞아. 그 차이까지 적어."

하린은 종이에 천천히 적었다.

확인: 18:41, 07-184 교직원 카드로 서버실 출입.

확인: 18:43, B-17 표기 봉투가 행정실 방향으로 이동.

미확인: 카드 사용자, 봉투 운반자, 반출 목적.

복도에서 금속이 울렸다. 서버실 철문 바깥에서 문고리가 아주 천천히 돌아갔다.

민재가 보조 배터리를 끊었다.

"나가요. 이거 더 켜면 방송도 못 살려요."

서하는 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은 뒤 단말기를 끄지 않았다. 상태 그대로 두는 편이 나았다. 하린의 기록지와 사진 파일을 확인한 뒤 그녀는 보건실 봉인 테이프를 꺼냈다.

"민재야. 이 단말기 덮개에 테이프 붙일게. 네가 열쇠를 보관하고 하린이 봉인 번호를 적어. 다음 확인도 너와 같이 한다."

"저를 믿는다는 뜻이에요?"

"기록을 남긴다는 뜻이야. 믿음은 그다음에 쌓아."

민재는 잠깐 웃을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혼탁자는 복도 반대편 벽을 향해 서 있었다. 손에는 금속 막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벽에 두 번 두드린 뒤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딱. 딱.

일행은 소리가 멀어진 뒤에야 서버실을 나왔다.

체육관 문을 열자 죽 냄새와 사람들의 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누군가 민재의 얼굴을 보고 먼저 물었다.

"봤어? 누가 했는데?"

서하는 민재보다 먼저 게시판 앞으로 갔다.

그녀는 아까 쓴 두 줄 아래에 새 기록을 옮겨 적었다.

확인: 18:41, 07-184 교직원 카드로 서버실 출입.

확인: 18:43, B-17 표기 봉투가 행정실 방향으로 이동.

미확인: 카드 사용자, 봉투 운반자, 반출 목적.

문재익이 그 글을 읽고 카드 목걸이를 만졌다. 그의 눈이 처음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07-184는 제게 지급된 카드가 맞습니다."

체육관 뒤쪽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문재익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사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카드가 제 손에 계속 있었는지 지금 여기서 누가 증명합니까?"

"아무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서하가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적었습니다."

"그럼 그 로그 사본을 주십시오. 행정실에서 관리해야 합니다."

"원본은 서버실에 봉인했습니다. 열쇠는 민재가 보관하고 봉인 번호는 하린이 적었습니다. 사본은 행정실 반출 대장과 함께 봅니다."

문재익의 얼굴이 굳었다.

"학생에게 증거 보관을 맡기겠다는 겁니까?"

민재가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제 장비라서 제가 전원 상태는 볼 수 있어요. 근데 혼자 안 볼 겁니다. 아까 적었잖아요. 누가 켜고 껐는지 다 남기자고."

그 말은 크지 않았지만 체육관 끝까지 갔다.

하린이 기록지를 들었다.

"행정실 반출 대장은 김세영 선생님, 보건실, 학생회가 같이 확인합니다. 이름은 가리고 카드 번호와 반출 시간만 적겠습니다."

은별이 말했다.

"확인 끝날 때까지 밥 먹을 사람은 줄 서. 사람 하나 잡아먹는다고 냄비가 차는 건 아니니까."

민재는 그 모습을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서하에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영상 파일 하나 더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까 끝난 부분 말고 앞쪽에요."

"무리하지 마. 전원 계산부터 해."

"계산하고 말할게요."

그 대답에 서하는 잠깐 멈췄다. 민재가 아침부터 몇 번이나 들은 말을 자기 방식으로 돌려준 것이었다.

체육관 스피커가 완전히 조용해졌다.

그 고요 속에서 서하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검은 글자가 피부 아래에서 천천히 번졌다. 아침의 빛은 창문 틈으로 기울고 있었다. 새벽 4시 44분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상: 백민재.

서하는 손목을 소매로 덮었다.

아직 과제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명을 벗길 사람의 열쇠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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