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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 현장직은 결재를 안 기다린다1화

퇴마 현장직은 결재를 안 기다린다

퇴마 현장직은 결재를 안 기다린다

시놉시스

퇴마청 하청 현장조사원 윤서하는 본청 결재가 도착하기 전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다. 귀신을 베는 힘은 약하지만, 냄새와 영수증, CCTV 사각과 귀신의 반복 행동을 읽는다. 어느 비 오는 밤, 편의점 냉장고 뒤편에서 반복 자해를 재현하는 지박령 사건에 출동한 그는 본청의 소각 분류와 현장 기록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1화: 냉장고 뒤의 사건 번호

윤서하는 야간 대기실 형광등 밑에서 컵라면 뚜껑을 접었다.

라면은 불었고, 전화는 늦었다. 퇴마청 하청업체 "현장안전 24"의 야간 대기는 늘 그랬다. 본청은 결재를 내리고, 하청은 먼저 맞았다.

귀신에게 맞든, 민원인에게 맞든, 계약서에는 둘 다 "현장 위험 수당 포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노트북 화면을 줄였다. 최근 석 달 동안 소각 처리된 사건 번호가 줄지어 있었다. 사고 장소, 접수 시각, 본청 정산 코드, 현장조사원 서명.

겉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현장 사진의 냄새가 달랐다.

냄새는 파일에 남지 않는다. 성에 낀 냉장고 뒤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 오래 닫힌 고시원 방문의 싸구려 방향제 냄새, 물에 젖은 부적에서 나는 풀 냄새. 그런 것은 본청 서버에 올라가면 "현장 특이사항 없음"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서하는 개인 메모를 만들었다.

하청 규정상 금지였다. 정확히는 "본청 정산 결과에 반하는 독자적 사건 색인 작성 금지"였다.

오대리가 맞은편 소파에서 목을 꺾었다.

"또 봐요?"

"불법은 아니고요. 아직은."

"그 말 하는 사람 중에 불법 아닌 사람 못 봤는데."

그때 배정 알림이 울렸다.

[은평구 신월로 43-7, 무인 결제 편의점 냉장고 후면. 반복 자해 현상.]

[분류: 하급 악령]

[처리: 소각 대기]

접수 시각 02:17. 본청 소각팀 도착 예정 37분 후. 현장보존 담당: 윤서하.

서하는 컵라면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방을 들었다. 부적, 봉인 테이프, 휴대용 염수, 현장 기록 패드, 싸구려 손전등. 마지막으로 개인 메모가 든 USB를 점퍼 안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오대리가 눈을 비볐다.

"하급 악령이면 본청이 알아서 하지 왜 우리를 불러요?"

"소각팀 도착 전까지 사람이 죽으면 하청 과실이니까요."

"계약서 만든 사람 꼭 귀신 됐으면 좋겠다."

"그럼 본청이 우리한테 처리 맡깁니다."

서하는 우산도 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비는 얇고 끈질겼다. 새벽 도로의 택시는 물을 튀기며 지나갔고, 현장안전 24의 낡은 승합차는 와이퍼가 한 박자씩 늦었다. 서하는 운전석 옆 단말기에 본청 배정 코드를 띄웠다.

AG-0217-78.

숫자가 너무 깨끗했다. 접수 시각이 그대로 들어간 코드. 현장 확인 전 자동 분류 사건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었다.

편의점 앞은 경찰 테이프와 우비 냄새로 젖어 있었다. 간판은 반쯤 꺼져 있었고, 자동문은 사람 없는 안쪽을 향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점주는 담배를 물지 못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안에 아무도 없죠?"

"알바가 도망갔고 손님은 없어요. 근데 냉장고 뒤에서 자꾸 사람이..."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자동문 너머로 진열대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떨었다. 경찰관 하나가 서하의 팔을 잡으려 했다.

"본청에서 접근 제한하라던데요."

"접근 제한하려면 기준선부터 잡아야 합니다."

"소각팀 올 때까지 그냥 닫으면 안 됩니까?"

"닫으면 안에서 뭘 태웠는지도 같이 모릅니다."

경찰관은 싫은 얼굴로 물러섰다. 서하는 장갑을 끼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이상했다. 새벽 편의점 바닥에는 보통 컵라면 국물, 우산 물, 카드 영수증, 급하게 떨어뜨린 동전이 남는다.

여기는 닦인 흔적만 남아 있었다.

계산대 아래에는 젖은 걸레가 구겨져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영수증이 많지 않았다. 냉장고 뒤쪽 좁은 통로에는 젖은 운동화 자국이 반복되어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시작해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서하는 손전등을 낮췄다.

운동화 자국은 계산대에서 냉장고까지 여섯 걸음. 냉장고에서 다시 계산대까지 다섯 걸음. 마지막 한 걸음이 매번 빠져 있었다.

드르르르.

모터 소리가 커졌다.

냉장고 유리문 안쪽에 여자의 얼굴이 비쳤다.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머리카락 끝은 젖어 있었고, 입술에는 성에가 끼어 있었다. 손목에서는 피가 아니라 검은 물이 흘렀다.

여자는 손을 들었다.

같은 각도, 같은 속도, 같은 표정으로 손목을 그었다.

밖에서 점주가 비명을 질렀다. 경찰관이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서하는 손전등을 내리지 않았다.

"현장조사원 윤서하입니다. 없애러 온 거 아닙니다. 먼저 기록만 확인하겠습니다."

여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사인했는데."

"뭘요?"

"두 번 찍혔는데."

여자는 대답 대신 다시 손목을 그었다. 동작이 끝날 때마다 냉장고 문틈에서 성에가 떨어졌다. 성에 조각은 바닥에 닿자마자 영수증처럼 얇게 펴졌다가 녹았다.

서하는 그중 하나를 집었다.

흰 종이였다. 실제 영수증이 아니었다. 잔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간은 읽혔다.

02:05.

시스템 접수보다 12분 빨랐다.

서하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젖은 종이컵과 폐기 도시락 사이에서 진짜 영수증 한 장이 나왔다. 물품 인수 확인 영수증이었다. 수령자 이름은 번졌고 마지막 글자만 남아 있었다.

채.

무전이 울렸다.

강도윤의 목소리였다. 본청 현장대응 3팀장. 짧고 거칠었다.

"반복 자해 재현 확인. 피해 확산은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현장 물증이 자해 분류와 안 맞습니다."

"영수증 시간이 접수보다 빠릅니다."

"현장보존 담당입니다. 보존할 현장이 뭔지는 확인해야죠."

무전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업체 대표님은 이 시간에 자요."

서하는 무전을 끊지 않고 볼륨만 낮췄다. 그리고 잔혼 상태창을 열었다. 하청 조사원에게 허용된 것은 열람뿐이었다. 수정, 이의 제기, 분류 변경은 본청 권한이었다.

[대상: 미등록 잔혼]

[분류: 하급 악령]

[위험: 자해 반복, 냉기 확산]

[처리 권고: 소각]

[정산 코드: AG-0217-73]

서하는 본청 배정 문자를 다시 봤다.

AG-0217-78.

끝자리가 달랐다.

고작 한 자리처럼 보이지만 정산 코드에서 한 자리는 책임 방향을 바꾼다. 악령이냐, 지박령이냐. 자해냐, 사고냐. 개인 원한이냐, 장소 부채냐. 소각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까지.

여자가 냉장고 문에 손을 댔다.

"안 닫혔어요."

"뭐가요?"

"문이. 안 닫혔어요. 사인했는데. 두 번 찍혔는데."

귀신은 자기 죽음의 핵심을 직접 말하지 못한다. 오래 현장을 본 사람은 그걸 안다. 입이 막히는 곳에 진짜 기록이 있다.

서하는 냉장고 뒤 틈으로 손을 넣었다. 차가운 먼지와 끈적한 물이 손등에 묻었다. 손끝에 종이 조각이 걸렸다. 찢어진 인수증이었다.

품목명은 검게 지워져 있었다. 바코드 일부와 빨간 도장만 남았다.

[야간 수령 확인]

도장은 두 번 찍혀 있었다. 하나는 반듯했고, 하나는 어긋나 있었다.

냉장고 전체가 흔들렸다.

여자가 유리문을 통과해 서하에게 돌진했다. 서하는 부적을 붙이는 대신 몸을 낮춰 계산대 쪽으로 굴렀다. 어깨가 진열대에 부딪혔고, 과자 봉지가 쏟아졌다.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피했다.

"때리면 소각팀 들어옵니다."

여자가 멈췄다.

검은 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방울은 흘러가지 않고 작은 글자처럼 뭉쳤다. 서하는 읽으려 했지만 곧 풀어졌다.

"당신 없어집니다. 사건도 닫힙니다. 그러니까 말 못 하는 건 말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합시다."

여자의 눈동자가 모터 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추워요."

"냉장고 때문입니까?"

"아니요. 밖에서... 밖에서 문이..."

말이 끊겼다. 여자는 자기 목을 움켜쥐었다. 금지된 문장에 걸린 귀신은 대개 그렇게 막힌다. 억지로 캐물으면 악령화가 빨라진다.

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현장 기록 패드에 사진 네 장을 붙였다. 02:05 영수증. 두 번 찍힌 인수 도장. 다섯 걸음으로 끝나는 운동화 자국. 본청 배정 코드와 현장 상태창의 다른 끝자리.

분류 보류 요청 버튼을 열었다.

[권한 없음]

예상한 메시지였다. 하청 현장조사원에게는 사건 번호를 바꿀 권한이 없다. 서하는 늘 그 아래에서 일했다. 책임은 져도 결재는 못 하는 자리.

그런데 이번에는 창이 꺼지지 않았다.

[현장 기록과 영혼 진술 충돌 감지]

[충돌 항목: 사망 시각 / 처리 분류 / 장소 부채]

무전에서 강도윤이 소리쳤다.

감찰.

서하는 혀끝으로 입안을 눌렀다. 하청 직원 이름이 감찰 로그에 올라가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계약 해지거나, 본보기였다.

여자가 냉장고 문에 비친 자기 명찰을 붙잡았다. 플라스틱 명찰은 반쯤 깨져 있었고, 번진 글자 하나만 남아 있었다.

채.

"제 번호..."

여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또렷해졌다.

"제 번호가 왜 달라요?"

서하는 대답을 쉽게 하지 않았다. 거짓 약속은 계약이 된다. 귀신 앞에서는 특히 그랬다.

"그걸 확인하려고 합니다."

"없애는 거 아니에요?"

"없애러 온 거였으면 말을 안 걸었습니다."

서하는 패드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빨간 점이 켜졌다.

"본청 배정 분류 AG-0217-78, 현장 상태창 AG-0217-73. 물품 인수증 접수 시각 02:05. 대상은 자해 행위보다 냉장고 문, 서명, 중복 인증에 집착합니다. 하급 악령 소각 전 분류 보류 요청합니다."

[권한 재확인]

창이 한 번 깜박였다.

[하청 현장조사원 윤서하: 분류 변경 권한 없음]

"압니다."

서하는 낮게 말했다.

"그래도 기록은 남깁니다."

그 아래, 처음 보는 문장이 떠올랐다.

[현장 조정자 임시 권한 검토: 대기]

서하는 잠깐 숨을 멈췄다.

냉장고 모터가 꺼졌다. 편의점 안에 처음으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자동문도 멈췄고, 빗소리만 유리 너머에서 잘게 흘렀다.

여자가 아주 작게 물었다.

"바뀔 수 있어요?"

서하는 패드를 내려다보았다. 대기 표시가 깜박였다. 본청 소각팀 도착까지 9분. 감찰 로그는 이미 올라갔다. 업체 대표는 곧 깨게 될 것이다.

그는 인수증 조각을 투명 봉투에 넣었다.

"바꿀 수 있는지부터 보겠습니다."

[현장 조정자 임시 권한 검토: 승인 대기]

창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대가 산정 중]

서하는 그 문장을 보고 웃지 않았다.

결재보다 빠른 것은 늘 있었다. 사고, 죽음, 책임 회피.

그리고 가끔은 현장직의 손도 그보다 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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