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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오컬트 요괴 탐정3화

심야의 오컬트 요괴 탐정

심야의 오컬트 요괴 탐정

3화: 0.03%의 마력 독

무진 사무소 지하 감식실은 지상보다 먼저 새벽을 잃는 곳이었다.

환풍기 소리만 낮게 돌았다. 한도진은 납판으로 된 소형 봉인 상자 안에 보랏빛 앰풀을 세웠다. 라벨 하나 없는 유리관 속에서 은빛 침전물이 아주 느리게 가라앉고 있었다.

서아린은 감식대 반대편에 서서 손을 장갑 안으로 말아 넣었다.

“이걸 열면 시료가 증발할 거예요.”

“그래서 열지 않는다.”

도진은 빈 독침 케이스 조각과 백설하의 명함을 상자 양옆에 놓았다. 마지막으로 차문규의 손목시계를 가운데에 올렸다. 유리 가장자리의 검은 핏자국은 닦이지 않은 증언처럼 남아 있었다.

그가 손목시계에 손끝을 대자 푸른 격자선이 감식실 바닥을 덮었다.

[오컬트 루미놀 반응 A 가동.]

[금속성 마력 촉매 3종 검출.]

[독성 분석률 0.03%.]

아린이 떠오른 수치를 읽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일반 감식 결과로는 미량 오염이에요. 변호사 하나만 붙어도 현장 먼지라고 밀어붙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일반 감식 결과로 끝내지 않을 거야.”

도진은 시계의 혈흔 위로 엄지를 눌렀다. 감식실 중앙에 차문규의 마지막 순간이 흐린 홀로그램으로 솟았다. 옥상 난간과 차가운 바람이 허공에 겹쳐졌다.

백설하의 손가락에서 은침이 빠져나왔다. 바늘이 갈비뼈 사이로 들어가기 직전 보랏빛 막이 차문규의 심장 표면을 한 겹 감쌌다. 뒤이어 심장 코어가 뽑혀 나갔지만 홀로그램 속 가슴은 잠시 정상 장기처럼 보였다.

도진이 영상을 멈췄다.

“독은 심장을 멈추게 하는 약이 아니야. 코어가 없어진 자리를 인간 장기처럼 속이는 촉매다. 부검 때 보인 급성 마력성 심장마비는 이 막 때문에 만들어진 결론이고.”

아린의 표정이 굳었다.

“차 이사의 시신에서 같은 파장을 찾으면 사인을 다시 열 수 있어요.”

“앰풀과 케이스와 시신의 파장이 하나라는 것까지 묶어야 한다. 누가 봉인했는지 누가 옮겼는지도 남기고.”

아린은 특수본 감식실의 이름을 입술 끝까지 올렸다가 삼켰다. 그곳에 공식 의뢰를 넣으면 내부 시스템에 사건 번호가 남는다. 백설하의 신분 기록을 지운 손이 아직 특수본 안에 있다면 그 번호 하나로도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었다.

도진은 그녀의 망설임을 보고도 재촉하지 않았다.

“관리청 감식관 중에 입 무거운 사람 있나?”

“한 명 있어요. 류해진 감식관. 제게 빚이 있죠.”

“빚은 쓰라고 있는 거야.”

얼마 뒤 감식대 위에 작은 원형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 속 류해진은 잠옷 위에 감식용 조끼만 걸친 모습이었다. 그는 불만을 말하면서도 손은 이미 봉인 번호 생성기에 올려두고 있었다.

“제가 현장에 가기 전에는 시료를 열지 마십시오. 대신 원격으로 잔류 파장과 봉인 상태를 기록하겠습니다. 이 기록은 이승 법정용 전자서명과 관리청 사법 법정용 혼령 인장을 동시에 남깁니다.”

아린이 물었다.

“양쪽이 서로 기록을 인정할까요?”

“인정하게 만들죠. 한쪽은 유리관의 무게 변화를 보게 하고 다른 쪽은 마기의 결을 보게 하면 됩니다. 둘 다 같은 시간에 같은 물건을 가리키면 변명할 틈이 없습니다.”

도진은 상자에 손을 얹었다.

“시작해.”

푸른 격자와 화면의 은빛 인장이 맞물렸다. 앰풀을 열지 않았는데도 내부 침전물이 바늘처럼 곧게 솟았다. 케이스 조각의 홈과 명함 가장자리의 가루가 같은 방향으로 떨었다.

[희토류 촉매 파장 일치율 99.8%.]

[차문규 체내 잔류 마기와 동조 확인.]

[호족 신분각 매개 흔적 검출.]

0.03퍼센트에 불과한 가루가 감식실 한가운데에서 차문규를 죽인 방식으로 변했다. 도진은 떠오른 결과를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증거 사슬에 입력했다.

그때 앰풀 바닥의 침전물이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파장이 아니라 숫자가 격자선 위에 찍혔다.

강변 물류창고 4동. 05:00.

아린이 화면을 노려봤다.

“좌표를 남겨 뒀다고요?”

“여우는 쫓기는 걸 즐겨. 하지만 저건 자랑이 아니라 시간표다.”

도진은 시계를 확인했다. 다섯 시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장부를 태우러 가는 거겠지.”

그는 봉인 상자를 검은 증거 가방에 넣었다. 아린은 관리청에 위치만 전송했다. 지원 인력의 출발 기록은 남기되 목표물 이름은 넣지 않았다.

“특수본에는요?”

“아직 아니다.”

아린의 대답은 짧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명우그룹 지하 주차장은 새벽 청소차 냄새가 진하게 밴 콘크리트 동굴 같았다. 박태석은 기둥 옆에서 USB 하나를 쥔 채 기다리고 있었다. 눈 밑은 검게 꺼져 있었고 넥타이는 풀려 있었다.

“차량 운행 기록입니다. 백 이사님 차가 새벽 네 시에 나갔어요.”

그는 USB를 건네지 못하고 손에 쥔 채 말했다.

“이걸 드리면 저는 회사에서 끝입니다. 보안팀장이 출입 기록을 빼돌렸다고 하면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을 겁니다.”

도진은 그의 손에 들린 USB를 보지 않았다.

“차 이사가 죽은 날에도 당신은 절차대로 했지.”

박태석의 얼굴이 경직됐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알아. 그래서 지금 선택하라는 거야. 회사가 당신에게 준 매뉴얼을 지킬 건지 아니면 누가 사람을 지웠는지 볼 건지.”

박태석은 한참 동안 주차장 출구 쪽만 바라봤다. 그러다 USB를 내밀었다.

“차 이사님이 사고 나기 전날 저한테 물었어요. 보안 로그는 몇 년까지 남느냐고. 저는 규정대로 답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제는 규정대로만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진은 USB를 받아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당신 이름은 기록에서 빼겠다. 대신 오늘 본 건 잊지 마.”

아린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금빛이 실처럼 퍼져 타이어 자국 사이를 훑었다. 검은 고무 가루 위로 붉은 여우 마기가 가늘게 엉겨 있었다.

“경비원 둘이 서로 다른 차량을 봤다고 진술했어요. 하나는 흰 세단이고 하나는 검은 밴. 둘 다 백 이사님 차였을 거예요.”

“환술로 기억을 갈라 놨군.”

도진이 USB의 운행 기록을 열었다. 차량은 물류창고 4동으로 들어갔고 돌아오는 기록이 없었다. 출구 카메라에는 검은 밴 한 대가 지나갔지만 번호판은 빗물처럼 번져 있었다.

그는 타이어 자국의 폭과 간격을 화면에 겹쳤다.

“밴도 세단도 아니다. 같은 차가 두 번 보인 것처럼 만든 거야. 실제로는 이 차 한 대만 나갔다.”

아린이 고개를 들었다.

“장부 원본까지 싣고 간 걸까요?”

“원본은 이미 다른 데 숨겼겠지. 오늘 태우려는 건 사람 이름이 적힌 페이지야. 차문규가 그걸 들고 버티다가 죽었고.”

도진은 박태석에게 돌아섰다.

“여기서 나가. 그리고 누가 차량 기록을 찾으면 새벽 내내 서버 점검했다고만 해.”

박태석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강변 물류창고는 강 안개에 반쯤 잠겨 있었다. 4동의 철문 틈으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도진과 아린은 서로를 한 번 보고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종이 타는 냄새와 젖은 철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바닥 한가운데에는 사슬에 묶인 사람 셋이 웅크리고 있었다. 머리를 숙인 그림자들이 희미하게 몸부림쳤다.

아린의 손이 검집으로 내려갔다.

“인질이 있어요.”

“멈춰.”

도진은 한 걸음 앞에 섰다. 그림자 쪽으로 푸른 격자가 지나가자 몸부림은 바람에 젖은 종이처럼 납작해졌다. 사슬도 사람도 모두 재를 바른 종이 인형이었다.

“숨도 열도 없어. 우리를 멈추게 하려고 만든 거야.”

종이 인형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입들이 같은 목소리로 웃었다.

“탐정님은 사람을 믿는 쪽이군요.”

창고 벽면에 붙은 깨진 거울 조각마다 백설하의 얼굴이 비쳤다. 하얀 정장 차림의 여자는 드럼통 앞에 서 있었다. 불길 위에는 두꺼운 장부가 반쯤 걸쳐 있었다.

“늦었어요. 종이는 불에 약하니까.”

아린의 눈동자에 금빛이 번졌다.

“그 종이에 실종된 사람들 이름이 있지.”

백설하가 장부를 한 장 넘겼다. 종이 가장자리가 말려 올라가며 검게 타들어 갔다.

“이름이요? 인간들은 이름을 적어 두면 살아 있다고 믿죠. 명단에서 지우면 없던 사람이 되는 줄 알고.”

“차문규는 그걸 밖으로 내보내려 했어.”

도진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래서 네가 죽였군.”

“제가요?”

백설하의 입술이 붉게 휘었다.

“전 시킨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이사님은 너무 늦게 겁을 냈고요.”

아린이 한 발 내디뎠다.

“누가 시켰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저는 오늘보다 훨씬 빨리 죽겠죠.”

백설하의 손목이 살짝 움직였다. 도진은 그 작은 동작을 보자마자 증거 가방을 아린에게 던졌다.

“받아.”

은침이 어둠을 찢고 날아왔다. 바늘 끝에는 보랏빛 막이 맺혀 있었다. 증거 가방에 닿는 순간 봉인 번호와 장부를 함께 녹일 독이었다.

도진은 몸을 낮추며 권총을 뽑았다. 손목시계가 보여 준 장면과 똑같은 공격 각도였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믿고 쏜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만든 반 박자만큼 먼저 움직였다.

은제 탄환이 바늘 중간을 꿰뚫었다. 독침은 공중에서 두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에 박혔다. 바늘이 닿은 콘크리트가 보랏빛으로 잠시 부풀었다가 검게 식었다.

[프로파일링 시뮬레이션 P 동기화.]

[위험 궤적 차단.]

백설하의 미소가 지워졌다.

그녀의 등 뒤에서 여우 꼬리 다섯 개가 불꽃처럼 펼쳐졌다. 창고 안의 거울 조각들이 일제히 빛나며 같은 모습의 백설하를 수십 명으로 늘렸다. 환영들이 드럼통을 걷어차자 불길이 장부를 향해 퍼졌다.

“증거만 들고 나가면 이긴 줄 아세요?”

도진은 불길 대신 바닥을 봤다. 루미놀 격자 안에서 환영들의 발밑은 텅 비어 있었다. 단 한 줄의 붉은 발자국만이 왼쪽 철제 계단을 향해 이어졌다.

“진짜는 왼쪽이다.”

아린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금빛 환술을 칼날처럼 좁게 세워 거울 벽을 베었다. 깨진 반사면이 무너지자 가짜 백설하들이 물결처럼 꺼졌다.

진짜 백설하는 계단 난간을 넘으려다 멈췄다. 아린의 검끝이 목덜미 바로 뒤에 닿아 있었다.

“한 발만 더 움직이면 신분각부터 벗겨 낼 거예요.”

백설하가 비웃었다.

“혼혈 주제에 호족을 심판해?”

“심판은 법정에서 해. 나는 도망 못 가게만 하지.”

백설하의 목덜미 아래로 붉은 발톱 무늬가 떠올랐다. 그녀는 인간의 피부를 밀어내며 여우 본체로 빠져나가려 했다. 다섯 꼬리가 한꺼번에 아린의 검을 감쌌다.

도진은 계단 아래에서 권총을 겨눴다.

“인간 신분을 버리면 네가 숨긴 흔적도 같이 드러나.”

“감히.”

“차문규도 그렇게 말했겠지.”

백설하의 움직임이 한순간 굳었다. 그 틈에 아린이 검집 끝을 신분각에 눌렀다. 금빛 봉인문이 피부 위로 번지며 발톱 무늬를 감쌌다.

백설하의 비명이 창고를 울렸다. 꼬리들이 검은 연기로 부서졌고 그녀는 계단 위에 무릎을 꿇었다.

도진은 곧장 드럼통으로 달려갔다. 장부의 대부분은 불길에 먹혀 있었지만 아린이 비틀어 올린 환술 덕에 마지막 한 장이 불꽃 가장자리에서 살아남아 있었다. 그는 집게로 종이를 끌어내 증거 봉투에 넣었다.

잠시 뒤 류해진과 관리청 집행관들이 창고에 들어왔다. 류해진은 타다 남은 장부와 끊어진 독침 조각과 앰풀 봉인 상자를 차례로 확인했다.

“전자서명 이상 없습니다. 혼령 인장도 유지됐고요. 독침 조각은 현장 봉인으로 추가하겠습니다.”

그는 백설하의 목덜미를 보더니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호족 신분각과 촉매 파장이 같습니다. 이제 어느 법정에서도 심장마비라고 말할 수는 없겠군요.”

백설하는 수갑을 찬 채 고개를 들었다. 붉은 눈동자에는 아직 독기가 남아 있었다.

“장부 한 장으로 뭘 할 수 있죠? 이미 사라진 애들은 돌아오지 않아요.”

도진은 대답하지 않고 타지 않은 종이를 펼쳤다.

실종자 이름 아래에는 날짜와 운송 코드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클럽 헤븐. 새벽 배송. 그리고 번진 먹물처럼 찍힌 익명 결재 인장이 있었다.

아린이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 인장은 특수본 기록에는 없어요.”

“없어진 기록이 하나 더 늘었군.”

도진은 장부를 이중 봉인 상자에 넣었다. 백설하를 실은 관리청 차량이 창고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그는 강 쪽을 보지 않았다.

동이 트고 있었지만 강남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멀리 빌딩 숲 너머에서 클럽 헤븐의 보랏빛 간판이 꺼지지 않고 빛났다.

아린이 코트 깃을 여몄다.

“공조는 계속할 거예요. 공식 보고는 제가 막아 볼게요.”

도진은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막지는 마. 누가 막으려 하는지 보게 열어 둬.”

그는 봉인 상자를 들고 창고를 나섰다. 0.03퍼센트의 독은 끝났다. 그러나 그 독이 가리던 사람들의 이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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