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율을 그리는 작곡가

4화: 첫 데모의 기적
오후 네 시가 되기 십 분 전, 임하윤은 별관 녹음 부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방음문 위의 작은 빨간 등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하윤의 시선은 그 불빛을 오래 피했다. 유리창 너머 조정실은 비어 있었고 부스 안에는 전자피아노와 마이크 하나만 조용히 놓여 있었다.
강우진은 카드키를 리더기에 댔다.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아직 녹음 안 해요.”
하윤이 그를 돌아봤다.
“들어가서 반주만 맞춰 봅시다. 문도 열어 둘게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하윤 씨가 나가고 싶어지면 바로 나갈 수 있죠.”
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끝은 가방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는 빈 연습실이었다. 낡은 업라이트의 건반과 먼지 쌓인 창문뿐인 공간에서는 누가 듣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마이크와 헤드폰은 목소리를 붙잡아 두는 물건처럼 보였다.
“녹음은 남잖아요.”
“남기고 싶지 않으면 안 남깁니다.”
우진은 부스 안의 카메라를 가리켰다.
“영상도 끌 수 있어요. 파일도 하윤 씨가 지우자고 하면 바로 지울 거고요.”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백도겸 교수가 걸어왔다. 그는 둘을 한 번 보고 조정실 문을 열었다.
“장비는 점검해 뒀다. 녹음 파일은 둘의 허락 없이는 건드리지 않겠다.”
하윤의 어깨가 굳었다.
“교수님도 듣는 건가요?”
“아니다. 나는 케이블만 확인하고 나간다.”
백도겸은 정말로 마이크 선과 헤드폰 단자를 살핀 뒤 조정실 불을 껐다. 문가에서 잠깐 멈춘 그는 우진에게만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
“네가 약속한 범위 안에서만 해라.”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도겸이 떠난 뒤 복도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윤은 열린 문턱을 내려다봤다. 안으로 들어가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발을 무겁게 만들었다. 우진은 재촉하지 않고 전자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들어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왜 왔어요?”
“하윤 씨가 해 보겠다고 했으니까요.”
그 말에 하윤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기억하고 있었네요.”
“약속이었으니까요.”
한참 뒤 하윤이 부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우진은 방음문을 닫지 않았다.
둥.
그가 ‘안도’의 첫 음을 눌렀다.
낮은 음은 길게 울리지 않았다. 곧바로 중음부의 부드러운 화음이 얹혔고 그 뒤를 얇은 아르페지오가 따라갔다. 소리는 하윤을 앞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호흡을 기다렸다.
우진의 시야에 금빛 선율이 부스 천장으로 번졌다. 아직은 목 언저리의 검은 매듭이 단단했다.
[공포 반응성 뇌파 간섭률: 58%.]
[현재 환경 자극 분석 중.]
“카메라는 끌까요?”
하윤이 물었다.
“원하면요.”
“꺼 주세요.”
우진은 망설임 없이 카메라 전원을 내렸다. 작은 표시등이 사라지자 하윤은 그제야 마이크 앞에 섰다.
“한 소절만 해 볼게요.”
“좋아요. 멈추고 싶으면 손만 들어요.”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드폰을 쓴 하윤의 숨이 마이크에 닿았다.
우진은 네 박을 세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들이키는 길이를 먼저 들었다. 전날보다 조금 길었다. 그는 그만큼 늦춘 박자 위에 첫 화음을 올렸다.
“괜찮아도 돼.”
하윤의 목소리가 낮게 시작됐다.
첫 음은 가늘게 떨렸다. 금빛 파형이 마이크 앞에서 흔들리며 피었다. 우진은 왼손으로 낮은 음을 짧게 붙잡고 오른손을 가볍게 옮겼다.
“아직은 멀어 보여도…….”
세 번째 마디가 끝날 무렵 헤드폰 한쪽에서 치직 하는 잡음이 났다.
하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손이 올라갔다.
우진은 즉시 페달을 뗐다. 그러나 마지막 화음은 끊어지지 않게 아주 짧은 잔향만 남겼다.
“죄송해요.”
하윤이 헤드폰을 벗으며 말했다. 얼굴이 빠르게 하얘졌다.
“또 이러네요. 잡음 하나인데.”
우진은 피아노 위에 손을 둔 채 그녀를 봤다.
“멈춘 건 하윤 씨가 정한 겁니다.”
“그게 잘한 건 아니잖아요.”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나중에 정해도 돼요. 지금은 멈추고 싶다는 걸 멈춘 거죠.”
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을 감싼 검은 매듭이 한순간 조여 들었다.
[공포 반응성 뇌파 간섭률: 67%.]
[호흡 회복 시간 예측: 41초.]
우진은 시스템 창을 닫았다. 숫자를 읽는다고 해서 하윤의 숨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잡음은 지울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때 멈춘 숨까지 지우면 안 됩니다.”
하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에요?”
“지금은 잡음이 나면 반주도 같이 멈추니까 공백이 더 크게 들려요. 다음에는 그 자리에 짧은 소리를 둘게요.”
“내가 멈췄는데도요?”
“하윤 씨가 다음 음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소리요.”
우진은 건반을 눌렀다. 세 번째 마디가 끝나는 자리에 두 음짜리 리프가 들어갔다. 앞서 가는 멜로디도 아니고 빈 곳을 억지로 덮는 소리도 아니었다. 다시 숨을 들이킬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짧은 문장이었다.
하윤은 눈을 감고 그 리프를 들었다.
“그럼 내가 멈춰도 곡은 끝난 것처럼 안 들리겠네요.”
“끝낼지 이어 갈지는 하윤 씨가 정하는 거니까요.”
그녀가 마이크 쪽을 바라봤다. 한 걸음 옮겼다가 다시 멈췄다.
“다시 할래요?”
우진은 묻기만 했다.
하윤은 두 손으로 헤드폰을 받았다. 이번에는 손끝의 떨림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쳐요.”
“알겠어요.”
두 번째 테이크가 시작됐다.
우진은 하윤의 첫 들숨이 내려앉는 순간에 맞춰 반주를 열었다. 왼손은 단단한 박자를 지켰다. 오른손은 그녀의 목소리 뒤를 따라가며 작은 음을 하나씩 얹었다.
“괜찮아도 돼.”
이번에는 첫 음이 끝나기 전에 다음 음이 이어졌다.
“아직은 멀어 보여도.”
하윤의 시선은 유리창이 아니라 마이크 아래의 바닥에 머물렀다. 짧은 잡음이 다시 스쳤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우진이 약속한 리프가 바로 뒤를 받았다.
딴.
공백은 오지 않았다.
하윤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내가 갈 길을 잊어도.”
금빛 파형이 검은 매듭을 밀어냈다. 그녀가 숨을 들이킬 때마다 우진의 화음이 한 칸씩 올라갔다. 억지로 고음을 끌어내지 않는 진행이었다. 하윤이 스스로 발을 디디는 자리에만 다음 계단을 놓았다.
“네 곁의 소리는…….”
마지막 음이 올라갔다.
투명한 고음이 부스 안에 길게 머물렀다. 유리창 너머 텅 빈 조정실에도 그 소리가 닿았다. 하윤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보컬 공명 가능성: 97.2%.]
[감정 공명 패턴 기록 완료.]
[신의 선율 블렌딩 잠금 해제 조건: 83%.]
우진은 마지막 화음을 짧게 마무리했다. 하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만큼의 잔향만 남겼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하윤은 마이크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방금 들었어요?”
“들었어요.”
“내가 끝까지 불렀네요.”
우진은 조정실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하윤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잡음도 아주 작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무너지는 소리와 달랐다. 다음 음을 향해 버티고 움직인 흔적이었다.
하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내내 눈을 감았다. 재생이 끝나자 그녀는 헤드폰을 가슴에 안았다.
“예전에는 녹음된 제 목소리가 싫었어요.”
“왜요?”
“무대에서 망친 부분만 다시 들리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건…… 내가 도망가지 않은 부분도 들려요.”
우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다음 말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이걸 남기면 또 무서워질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우진은 쉽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름도 얼굴도 없이 아주 짧게만 남길 수는 있습니다. 싫어지면 내리고요. 오늘 녹음은 공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윤은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마이크 앞에 서 있던 그림자는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사람들이 나를 모르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니. 괜찮아야 해요. 내가 부른 걸 내가 듣고 괜찮았으니까.”
우진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그 조건이면 올리죠.”
하윤은 처음으로 조금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는 우진의 연락을 받고 저녁 무렵 조정실로 들어왔다.
“얼굴은 안 나오게 해 줘. 손하고 유리창 너머 그림자만.”
우진의 부탁을 들은 윤태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거뒀다.
“알겠어. 왜 그런지는 안 물을게.”
하윤이 카메라를 바라봤다. 윤태는 먼저 삼각대를 낮췄다. 화면에는 우진의 건반 위 손과 마이크 앞에 선 하윤의 어깨선만 들어왔다.
“여기까지만 찍힙니다.”
윤태가 작은 모니터를 돌려 보여 줬다.
하윤은 화면을 한참 확인한 뒤 말했다.
“좋아요. 이 정도면 할 수 있어요.”
카메라의 빨간 불이 켜졌다.
하윤은 움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 쪽을 보지 않았다. 우진이 첫 화음을 누르자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세 번째 테이크는 두 번째보다 완벽하지 않았다. 첫 줄 끝이 조금 갈라졌고 고음 직전에는 짧은 침묵도 있었다. 그 침묵 뒤에 우진의 리프가 닿았고 하윤은 스스로 다음 음을 선택했다.
사십여 초가 끝났을 때 윤태는 말없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건 괜찮다.”
하윤은 웃지 못했지만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우진은 간단한 편집 프로그램을 열었다. 영상은 피아노의 손과 부스 유리에 비친 흐릿한 실루엣만 남겼다. 음원은 잡음만 정리하고 호흡과 떨림은 그대로 뒀다.
“제 이름은 넣지 말아요.”
하윤이 말했다.
“알겠어요.”
“우진 씨 이름은요?”
“작곡자 칸에는 넣을게요. 나중에 문제 생기면 내가 설명해야 하니까.”
하윤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파일명 칸에 직접 글자를 입력했다.
안도_demo.
우진은 개인 음원 공유 페이지의 업로드 창을 열었다. 저작권은 공동 작업으로 표시했고 초상권과 공개 범위는 하윤이 직접 확인했다. 외부 공유는 익명 보컬 데모라는 설명 한 줄로 제한했다.
“정말 올릴 거예요?”
윤태가 물었다.
하윤은 화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제가 정한 거니까요.”
우진은 업로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지금도 바꿀 수 있어요.”
“아니요.”
하윤이 그를 봤다.
“올려요.”
버튼이 눌렸다.
처음 재생 수는 열둘이었다.
윤태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우리 과 애들이 눌렀나 보다.”
하윤은 화면을 뒤집어 놓았다.
“오늘은 더 안 볼래요.”
“그래요.”
우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우진은 침대 옆에서 울린 휴대폰 진동에 눈을 떴다.
안도_demo의 재생 수는 이미 백만을 넘고 있었다.
새로고침을 한 번 누르자 숫자가 다시 바뀌었다. 댓글도 빠르게 늘어났다.
― 피아노가 노래를 끌고 가지 않는다. 숨 쉴 곳을 만들어 준다.
― 이 목소리 누구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 짧은데 계속 다시 듣게 된다.
우진은 마지막 댓글 아래에 뜬 비공개 메시지 알림을 바라봤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비어 있었다.
대신 한 줄만 적혀 있었다.
― 이 데모, 누가 만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