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길들이기는 생계형입니다

2화: 첫 번째 일꾼
도현의 손바닥 위에서 간식 조각이 미세하게 떨렸다.
땅두더지 마수의 축축한 코끝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노란 눈은 여전히 사납게 빛났지만 아까처럼 금방이라도 덮칠 자세는 아니었다.
배고프다. 아프다. 낯선 인간은 무섭다.
그 감정들이 말이 아니라 냄새처럼 밀려왔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머릿속에 떠오른 감각이 자신의 착각인지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손을 거두면 저 앞발이 먼저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 배고픈 건 알겠어. 그런데 내 손까지 먹으면 곤란하다. 이건 내일 먹을 것도 없는 간식이거든."
마수의 코가 움찔했다.
도현은 최대한 천천히 손을 낮췄다. 손바닥을 바닥 가까이 붙이면 적어도 목을 노출하지 않아도 됐다.
"먹어. 대신 천천히."
시야에 푸른 글자가 겹쳤다.
[몬스터 언어 번역이 활성화됩니다.]
[대상: 땅두더지 마수(F급)]
[상태: 허기, 앞발톱 손상, 강한 경계]
[교화 가능성: 7%]
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7퍼센트. 높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래도 0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힘이 됐다.
땅두더지 마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길고 거친 혀가 간식 조각을 핥았다. 한 번. 두 번. 그러다 간식을 입안으로 물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우적우적.
사람 허리만 한 마수가 볼을 씰룩이며 씹는 모습은 위험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우스웠다.
도현은 그 틈에 삽을 발끝으로 멀리 밀었다. 무기를 들고 있으면 상대가 다시 긴장할 것 같았다.
마수는 간식을 삼키고 앞발을 바닥에 세게 찍었다.
쿵.
도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지만 마수는 달려들지 않았다. 깨진 발톱을 핥으며 낮게 낑낑거릴 뿐이었다. 발톱 끝은 돌에 부딪혀 반쯤 갈라져 있었고 피가 흙과 굳어 검은 딱지가 되어 있었다.
"그거 때문에 예민했던 거구나."
도현은 허리 주머니를 뒤졌다. 간식 봉지는 두 봉지 남았다. 물은 반도 안 되는 작은 병 하나뿐이었다.
그는 물병을 들고 한참 망설였다.
이 안에서 얼마나 더 갇힐지 몰랐다. 물을 아끼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때 마수가 발을 들었다 놓았다. 상처 난 발톱이 흙에 닿을 때마다 몸이 짧게 경직됐다.
도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아끼다가 네가 날 물면 더 손해야."
그는 작업복 소매를 뜯어 천 조각을 만들었다. 물병 뚜껑에 물을 조금씩 받아 적신 뒤 손바닥을 보였다.
"씻어 줄게. 아프면 바로 뒤로 물러나. 물지는 말고."
땅두더지 마수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도현은 자기 손등에 먼저 젖은 천을 문질렀다. 차가운 물이 묻는 것을 보여 준 뒤 천천히 마수의 발 가까이 갔다.
앞발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도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퍽.
날카로운 발톱은 도현의 어깨가 아니라 바닥을 찍었다. 흙덩이가 얼굴에 튀었다.
"놀랐잖아."
도현은 흙을 뱉으며 웃었다. 마수는 그 웃음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발을 내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현은 숨을 죽이고 깨진 발톱 주위를 닦았다. 굳은 피가 물에 불어 조금씩 떨어졌다. 마수의 등 근육이 단단하게 굳을 때마다 그는 손을 멈췄다.
"괜찮아. 여기까지만."
낡은 빗을 꺼내자 마수의 코가 다시 움직였다. 빗에는 오래된 비누 냄새와 간식 가루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거 원래 이런 데 쓰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흙은 좀 털릴 거야."
도현은 등 쪽의 젖은 흙부터 아주 짧게 빗었다.
스스슥.
마수의 몸이 굳었다.
도현도 움직임을 멈췄다.
잠시 뒤 땅두더지 마수가 코를 길게 내뿜었다. 공격 신호가 아니었다. 낮고 묵직한 숨이 통로를 울렸다.
도현은 한 번 더 빗을 내렸다. 흙이 떨어지자 짧고 윤기 없는 갈색 털이 드러났다.
[교화 가능성: 19%]
"오르네. 진짜로."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수는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지만 곧 빗 쪽으로 등을 조금 더 내밀었다.
그 모습에 도현의 입가가 풀렸다.
"미안. 조용히 할게. 너 이거 싫지는 않지?"
좋다. 덜 아프다. 배가 더 고프다.
감정이 짧은 낱말처럼 들어왔다.
도현은 남은 간식 봉지 하나를 뜯었다. 작은 알갱이를 손바닥에 덜어 주자 마수는 이번에는 손까지 핥지 않고 조심스럽게 받아 먹었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 사이로 먼 곳에서 돌이 갈리는 진동이 울렸다.
콰직.
천장 가루가 도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시간이 별로 없네."
그는 무너진 통로 쪽을 바라봤다. 흙더미는 사람 키보다 높았다. 삽 하나로 파기에는 너무 두꺼웠고 바깥에서 누군가 봉쇄석까지 쌓아 올렸다면 더 어려웠다.
무전기를 켰다.
"최 팀장님. 들리십니까?"
치직거리는 잡음만 흘렀다.
"저 지금 안쪽에 있습니다. 마수도 진정됐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구조대 연락하셨습니까?"
잠시 뒤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 아직도 거기냐?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조대는요?"
- 통로가 불안정해. 함부로 파면 다 죽어.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럼 공기 순환 장치라도 넣어 주십시오. 물도 없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누군가 작게 웃었다.
- F급 하나 때문에 장비 다시 넣으라고?
최창수의 목소리가 곧 이어졌다.
- 구조 요청은 올렸어. 기다려.
말은 그럴듯했다. 그런데 뒤에서 들린 소리가 문제였다.
철컹.
무거운 셔터를 내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도현은 던전 입구에서 비상 봉쇄문이 닫힐 때 나는 소리를 알고 있었다.
최창수가 무전기를 끊었다.
도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땅두더지 마수가 그의 무릎에 코를 들이밀었다. 흙 묻은 코가 바지에 닿자 간지러운 감촉이 났다.
"그래. 너도 들었지."
도현은 마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기다리라는 건 죽으라는 말이야."
마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화난 감정이 전달됐다. 하지만 그 화는 도현을 향하지 않았다.
시야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대상이 보호 의지를 보입니다.]
[사회성 수치가 개방됩니다.]
[현재 사회성: 34%]
[사회성 100% 달성 시 완전 교화 및 특성 전환이 가능합니다.]
도현은 마수의 깨진 발톱을 다시 살폈다. 막 빗질한 털 사이에 먼지가 남아 있었다.
"아직 멀었네."
그는 마지막 간식 봉지까지 뜯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영양바 조금과 물 몇 모금이었다. 계산하면 미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마수가 자신을 믿는다면 통로 하나쯤은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 먹어. 대신 나랑 약속 하나 하자."
마수는 간식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여기서 같이 나간다. 나는 네 발 다치게 안 하고 밥도 찾아 줄게. 넌 나를 안 물고 길을 찾아 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도현은 끝까지 말했다.
마수는 간식을 먹지 않았다. 대신 앞발을 들어 도현의 무릎 위에 얹었다.
무겁고 따뜻한 발이었다.
도현은 그 발을 양손으로 감쌌다. 깨진 발톱 주변을 마지막으로 닦아 낸 뒤 남은 간식 전부를 바닥에 놓았다.
"그래. 먹자."
땅두더지 마수가 간식을 먹는 동안 도현은 등을 빗었다. 이번에는 마수가 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턱을 바닥에 대고 눈을 가늘게 떴다.
스스슥.
빗살이 털을 지나갈 때마다 작은 흙가루가 떨어졌다.
[사회성: 51%]
[사회성: 68%]
[사회성: 82%]
도현은 숫자를 보며 빗질을 멈추지 않았다. 간식이 끝난 뒤에도 마수의 등과 목덜미를 천천히 쓸었다.
"내가 이름 하나 붙여도 되냐?"
마수가 눈을 떴다.
"흙이 콩알처럼 묻어 있어서 콩이. 어때? 별로면 다른 걸로 할게."
땅두더지 마수는 잠시 도현을 보더니 짧은 뒷부분을 바닥에 탁탁 쳤다.
그 순간 푸른 빛이 도현의 손등에서 피어났다.
[교화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몬스터 ‘땅두더지 마수(F급)’의 교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름: 콩이]
[사회성: 100%]
[등록 대기 상태입니다.]
도현은 입을 벌린 채 상태창을 바라봤다.
콩이가 도현의 팔에 머리를 비볐다. 묵직한 몸이 밀려오자 도현은 뒤로 넘어질 뻔했다.
"잠깐. 이거 성공한 거 맞지?"
좋다. 같이 간다.
이번에는 감정이 아니라 또렷한 뜻으로 들렸다.
도현은 웃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다만 무너진 던전 안이라 그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살기 위해 내민 손 하나가 동료 하나가 되어 돌아왔다. 기뻐할 틈이 짧아도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쿵!
통로 어딘가가 다시 무너졌다. 램프 빛이 흔들리고 산소가 든 가방 끈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도현은 정신을 차리고 콩이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콩이야. 저쪽 막힌 길은 팔 수 있어?"
콩이는 흙더미 앞까지 달려가 코를 대 봤다. 앞발로 한 번 긁던 녀석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 눌렀다. 돌이 많다. 파면 무너진다.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콩이는 다시 돌아와 통로 반대편을 향했다. 그곳은 원래 채굴조가 들어온 방향과 더 멀어지는 어둠이었다.
콩이는 바닥에 배를 붙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벽 한쪽을 앞발로 두드렸다.
툭. 툭.
차가운 통로 안에서 아주 미세한 바람이 도현의 뺨을 스쳤다.
"바람?"
콩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흙벽을 한 번 파고 도현을 돌아봤다.
저기 넓다. 따뜻하다. 좋은 흙 냄새 난다.
도현은 벽 너머를 바라봤다. 미등록 구역의 더 깊은 곳이었다. 바람이 난다는 건 어딘가로 이어진 공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 공간이 출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진 길만 파다가 매몰되는 것보다 확실한 선택이었다.
그는 떨어뜨렸던 삽을 주워 들었다. 이번에는 무기가 아니라 길을 표시할 도구로 쥐었다.
"좋아. 앞장서."
콩이가 앞발을 세웠다. 깨진 발톱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눈빛에는 처음의 굶주린 사나움 대신 이상한 의욕이 담겨 있었다.
도현은 녀석의 등을 한 번 두드렸다.
"우리 둘 다 여기서 살아 나가자."
콩이가 흙벽을 파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흙벽 너머에서 푸른 빛이 아주 가늘게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