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길들이기는 생계형입니다

시놉시스
F급 테이머 판정을 받은 한도현은 거대 길드의 최하급 짐꾼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던전 채굴 현장에서 동료들에게 버려진 순간 그는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대신 달래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세상이 소탕 대상으로만 보던 마수들을 귀여운 일꾼으로 바꾸는 생계형 기적의 시작이 된다.
1화: 버려진 짐꾼
한도현은 게이트 안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이었다.
헌터 명단에는 분명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해성 길드 채굴조에서 그를 헌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도현아. 산소통 두 개 더 들어."
최창수 팀장이 턱짓했다.
도현은 이미 마석 보관통 여섯 개를 등에 멘 상태였다. 어깨끈이 작업복 조끼를 파고들어 살갗이 따끔거렸다.
"예. 바로 들겠습니다."
"대답은 참 S급이야. 몸은 F급인데."
뒤쪽 헌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도현은 고개를 숙이고 산소통을 들어 올렸다.
허리 주머니가 허벅지에 부딪혔다. 그 안에는 싸구려 몬스터 간식 샘플 세 봉지와 손잡이가 닳은 빗 하나가 들어 있었다. 길드 보급품은 아니었다. 던전 앞 납품 업체가 홍보용으로 뿌린 물건을 아무도 안 가져가기에 도현이 챙겨 둔 것이었다.
"그건 또 뭐냐?"
최창수가 주머니를 보고 물었다.
"몬스터용 진정 간식입니다. 테이머 보조용으로 나온 제품이라고 해서요."
"네가 테이머였냐?"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최창수는 웃었다.
"아. 맞다. 서류상으로는 그렇지. F급 테이머."
F급.
그 두 글자는 도현에게 등급이 아니라 가격표였다. 위험 수당은 최저치. 장비 배정은 후순위. 다치면 개인 부주의. 실종되면 하급 헌터의 안타까운 사고.
그래도 그는 버텼다. 월세는 매달 왔고 어머니 병원비는 미뤄지지 않았고 통신사는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현은 산소통을 등에 고정하고 채굴조 뒤를 따랐다.
던전 내부는 축축했다. 벽은 회색 점토처럼 젖어 있었고 곳곳에 파란 마석 조각이 박혀 있었다. 채굴기 소음이 멀리서 웅웅 울렸다.
도현은 통로 모서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흙벽 아래에 검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그냥 물기가 아니었다. 털과 흙이 뭉친 덩어리 사이로 깊은 발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보관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쭈그려 앉았다.
"팀장님. 여기 새 흔적입니다."
"또 뭐."
"땅 파는 계열 마수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발톱 간격이 넓고 진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최창수는 헬멧 램프를 대충 비췄다.
"F급 땅두더지겠지. 채굴 구역에서 흔해."
"깊이가 이상합니다. 통로가 안쪽에서 깎였을 수 있습니다. 절단기 넣으면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최창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네가 감정사냐?"
"아닙니다."
"구조 기술자야?"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짐꾼답게 짐이나 들어."
도현은 더 말하지 못했다.
앞쪽에는 관리국 안전 표식이 꽂혀 있었다. 노란 말뚝에 검은 글씨가 선명했다.
허가 구역 종료.
채굴조는 그 말뚝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팀장님. 여기부터는 미등록 통로입니다."
도현이 낮게 말했다.
최창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오늘 목표량 못 맞추면 우리 팀 전부 손가락 빨게 생겼어. 네가 책임질래?"
"관리국에 보고된 광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돈이 되지."
그 한마디에 뒤따르던 헌터들이 키득거렸다.
도현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불법 채굴. 변이 구역 은폐. 그가 알아서는 안 되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최창수가 빈 보관통 하나를 도현의 품에 던졌다.
"너는 후방에서 장비 정리해. 폐마석이랑 잡석 따로 담고 산소통 체크해라. 괜히 앞으로 와서 발목 잡지 말고."
"혼자 남습니까?"
"무서우면 퇴사하든가."
퇴사.
도현은 그 말을 삼켰다. 지금 주머니에 든 돈으로는 퇴사도 사치였다.
채굴조의 램프가 앞으로 멀어졌다. 빛은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며 작아졌다. 도현은 혼자 남은 후방에서 장비를 정리했다.
벽 너머에서 둔탁한 진동이 울렸다.
쿵.
도현은 손바닥을 흙벽에 댔다. 벽이 살아 있는 짐승의 배처럼 떨렸다.
"이거 진짜 안 좋은데."
그 순간 앞쪽에서 마석 절단기가 굉음을 냈다.
파아아앙!
파랗게 빛나는 광맥이 쪼개지고 던전 전체가 뒤틀리듯 흔들렸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가루였다. 곧 주먹만 한 돌이 떨어졌다.
"멈춰야 합니다!"
도현이 외쳤다.
기계음이 대답을 삼켰다.
바닥이 갈라졌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보관통을 놓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바로 전까지 서 있던 자리 위로 흙더미가 무너졌다.
콰르르르!
통로가 닫혔다.
도현은 바닥을 굴렀다. 헬멧이 돌에 부딪혔고 눈앞이 번쩍했다. 입안으로 흙맛이 밀려왔다.
"윽."
그는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램프는 꺼지지 않았다. 좁은 빛줄기 안에서 먼지가 눈처럼 떠다녔다.
도현은 무전기를 눌렀다.
"팀장님! 후방 통로 붕괴입니다! 제 위치가 막혔습니다!"
치직.
잡음이 길게 이어졌다. 도현은 무전기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팀장님. 들리십니까? 저 살아 있습니다!"
- 살아 있냐?
최창수의 목소리였다.
도현은 안도감보다 먼저 이상한 냉기를 느꼈다. 그 목소리는 놀라지 않았다.
"예. 통로가 막혔습니다. 이쪽에서 마수 반응도 있습니다. 구조 요청 부탁드립니다."
무전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곧 다른 길드원의 목소리가 작게 끼어들었다.
팀장님. 후방 봉쇄하면 저쪽은 완전히 끊깁니다. 한도현 남아 있습니다.
알아.
도현의 손끝이 굳었다.
- 변이 구역 들어간 거 들키면 우리 채굴권 날아가. F급 하나 구조하자고 전부 망할래?
"팀장님?"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짧은 침묵 뒤 최창수가 다시 무전기를 잡았다.
- 도현아.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구조대 부를 테니까.
거짓말이었다.
도현은 그걸 바로 알았다. 최창수는 평소보다 더 부드럽게 말했다. 사람을 안심시키려는 목소리가 아니라 사고 기록에 남길 말을 고르는 목소리였다.
무너진 흙더미 너머에서 무거운 것을 끌어다 놓는 소리가 났다. 돌문을 밀어 봉쇄하는 소리였다.
"저기요! 사람 있습니다! 저 여기 살아 있습니다!"
도현은 흙더미를 두드렸다. 손등이 까졌고 손톱 밑에 피가 맺혔다.
대답은 없었다.
무전기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도현은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최창수의 비웃음. 길드원들의 웃음. F급이라는 가격표. 전부 한꺼번에 떠올랐다.
하지만 분노로는 숨을 살 수 없었다.
도현은 억지로 호흡을 세었다. 하나. 둘. 셋.
"살아야지."
그는 가방을 뒤졌다.
남은 물건은 작은 물병 하나와 딱딱하게 굳은 영양바 반 개였다. 그리고 몬스터 간식 샘플 세 봉지. 채굴 삽 하나. 낡은 빗 하나.
도현은 영양바를 반으로 또 쪼개 입에 넣었다. 목이 막힐 만큼 텁텁했다.
"죽기 직전에 먹는 게 이것도 반 개라니."
웃음이 나오다 말았다.
그때 통로 안쪽에서 흙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사각.
도현은 삽을 집었다. 손바닥에 땀이 차서 손잡이가 미끄러졌다.
램프 빛 가장자리에서 둥근 코가 먼저 나타났다. 젖은 흙을 뒤집어쓴 코가 킁킁거렸다. 이어서 사람 허리만 한 몸통과 낫처럼 굽은 앞발톱이 드러났다.
땅두더지 마수였다.
F급으로 분류되는 하급 마수.
하지만 좁은 통로에서 등급은 종이 위 숫자에 불과했다. 저 앞발이 한 번 휘둘리면 도현의 갈비뼈는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것이다.
"오지 마."
도현은 삽을 들어 올렸다.
땅두더지 마수는 낮게 울었다.
크르르르.
도현의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울렸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다. 앞발이 아프다. 낯선 냄새가 난다. 그런 감정이 엉킨 덩어리처럼 밀려왔다.
"너도 다쳤냐?"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마수가 앞발로 바닥을 긁었다. 발톱 한쪽이 깨져 있었다. 피와 흙이 엉겨 붙은 자국이 보였다.
도현은 삽을 더 세게 쥐었다.
때리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첫 타격이 빗나가면 끝이다. 맞아도 끝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전투계 헌터가 아니었다. 몸을 강화하는 스킬도 없었다. 평생 길드의 뒤에서 짐만 들었다.
그런데도 삽을 휘두르는 상상이 끝까지 가지 않았다.
노란 눈이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 익숙했다.
버려진 눈.
도현은 천천히 삽을 내렸다.
"나도 지금 버려졌거든."
그 말에 마수가 대답하듯 코를 울렸다. 경계심은 여전했다. 하지만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도현은 허리 주머니를 열었다. 손끝에 작은 봉지가 잡혔다.
특제 진정 간식.
포장지에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실제 던전 안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그림이었다.
"나 진짜 미친 건가."
그는 봉지를 찢었다.
고소한 닭가슴살 냄새와 희미한 마력 보충제 향이 퍼졌다. 땅두더지 마수의 코가 즉시 움찔했다.
도현은 간식 한 조각을 손바닥에 올렸다.
"먹을래?"
마수의 몸이 낮아졌다. 튀어 오르기 직전의 자세였다.
도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천천히 내밀었다. 삽은 발밑에 내려놓았다.
"괜찮아.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어. 너를 때릴 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도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배고프지? 발도 아프고. 그 발톱으로 계속 파면 더 찢어질 것 같은데."
마수가 멈칫했다.
도현은 허리에서 빗을 꺼냈다. 길드원들이 보면 또 비웃었을 낡은 빗이었다. 각성 판정을 받은 날 테이머는 교감 도구가 필요할 거라며 중고 장터에서 샀던 물건이었다.
"먹고 나면 여기 흙만 조금 털자. 아픈 데 건드리면 네가 나를 먹어도 할 말 없고."
말도 안 되는 협상이었다.
하지만 도현에게는 그것밖에 없었다.
땅두더지 마수의 코가 손바닥 가까이 왔다. 축축한 숨결이 손목에 닿았다. 도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그 순간 시야 한가운데 푸른 글자가 떠올랐다.
[조건 충족]
도현의 눈이 커졌다.
[몬스터의 욕구를 파악했습니다.]
[몬스터의 적의를 낮추는 비전투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뭐야."
마수의 코가 간식에 닿았다. 아주 작게 혀가 나와 손바닥 위 조각을 핥았다.
도현은 숨도 쉬지 못했다.
[고유 권능이 개방됩니다.]
[생계형 교화 테이밍]
푸른 빛이 어둠 속에서 작게 번졌다.
땅두더지 마수는 도현의 손바닥 앞에서 멈춘 채 노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꼬리처럼 짧은 뒷부분을 아주 조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