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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1화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괴물 대공과의 이혼은 거절합니다

시놉시스

밤마다 이성을 잃고 괴수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북부의 대공 카시안 발레리우스. 백작가의 사생아 세리아나 베르딘은 친가의 도구로 팔려가듯 그와 3년짜리 계약결혼을 맺는다. 모두가 그녀가 첫날밤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믿지만 세리아나에게는 식물의 생명력을 다루고 정화하는 특별한 힘, '녹색의 손길'이 있다. 그녀의 손길은 카시안의 저주를 조금씩 잠재우고 카시안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리아나에게 점점 집착한다.

1화: 괴물의 신부

창밖에는 지독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집어삼키려는 듯 거센 빗줄기가 베르딘 백작가의 고색창연한 유리창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세리아나, 네가 가야겠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세리아나 베르딘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손끝에는 희미한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정원 구석에서 시들어 가는 꽃들을 돌보던 참이었다.

"제가 어디를 가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버지."

아버지.

입 안에서 굴러 나온 호칭이 낯설었다. 베르딘 백작은 세리아나에게 단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부끄러운 실수처럼 숨겼고 필요할 때만 하녀도 귀족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세워 두었다.

그런 그가 오늘은 세리아나를 정식 응접실로 불렀다.

벽난로 앞에는 백작 부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세리아나를 훑어보았다. 시선에는 불쾌감과 안도감이 함께 섞여 있었다.

"발레리우스 대공가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세리아나의 손가락이 멈췄다.

발레리우스 대공.

북부의 지배자이자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사내.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더 끔찍한 별명이 붙었다.

괴물 대공.

밤이 되면 이성을 잃고 피에 굶주린 괴수로 변한다는 남자. 그의 성에 들어간 약혼녀들이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미쳐 나왔거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사교계에서도 오래된 괴담처럼 떠돌았다.

"대공가에서 저를 원했습니까?"

세리아나가 조용히 묻자 백작 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겠니? 발레리우스 쪽에서 조건을 걸었다. 베르딘 가문의 피를 이은 미혼 여성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누구든.

그 말은 정확했다.

백작 부인의 딸 루시엘은 지금쯤 황도의 재단사에게 둘러싸여 다음 계절 드레스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세리아나는 정원 뒤편의 낡은 별채에서 젖은 장갑을 말리던 중이었다. 같은 피를 이었다고 해도, 두 사람에게 허락된 삶은 애초에 달랐다.

"대공가에서는 상당한 혼수와 지원금을 약속했다."

백작이 문서 한 장을 책상 위로 밀었다.

"그리고 네게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사생아 주제에 대공비 자리에 앉을 기회가 어디 흔하겠느냐."

백작 부인이 웃었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그 말에 응접실 한쪽에 서 있던 하녀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세리아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말에 상처받기에는 오래전부터 닳아 있었다.

대신 그녀는 책상 위의 문서를 바라보았다.

혼인 승인서.

그 아래에는 이미 백작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세리아나의 의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거부권은 없겠군요."

"네가 거절할 수 있는 신분이라고 생각하느냐?"

백작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일 새벽 바로 떠날 준비를 해라. 대공가에서 보낸 마차가 올 것이다."

세리아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젖은 흙 냄새, 오래된 목재 냄새, 백작 부인의 독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폐부로 들어왔다. 이 집에서 맡아 온 냄새들이었다. 한 번도 편안했던 적 없는 집의 냄새.

기묘하게도 두려움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안도감이었다.

이 집을 나갈 수 있다.

그 생각은 너무 선명해서, 세리아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베르딘 백작가의 사생아로 남는 것과 괴물 대공의 신부가 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곳에 남으면 그녀는 천천히 말라 죽을 것이다.

마치 물을 빼앗긴 화분 속 꽃처럼.

"알겠습니다."

세리아나는 고개를 숙였다.

백작 부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울거나 매달릴 거라 기대했던 얼굴이었다.

"얌전하게 굴어라. 대공가에 가서도 베르딘의 이름에 흠을 내지 말고."

"네."

"쓸데없는 꿈을 꾸지도 말아라. 네가 대공비가 된다 한들, 네 근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명심하겠습니다."

세리아나는 끝까지 공손했다. 백작은 만족한 듯 문서를 정리했고 백작 부인은 더 볼 일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 문이 닫히는 순간, 세리아나는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복도는 어두웠다. 빗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와 발밑까지 고여 있는 듯했다.

그녀는 곧장 별채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정원으로 향했다.

하녀들이 보면 미쳤다고 수군거릴 만한 밤이었다. 비는 차가웠고 치맛자락은 금세 진흙을 머금었다. 그러나 세리아나는 정원의 가장 구석,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작은 화단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이름 모를 흰 꽃 몇 송이가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뿌리가 썩어 죽어 가던 꽃이었다. 세리아나가 몰래 흙을 갈고 물을 조절하고 손끝으로 조금씩 생명력을 나누어 겨우 살려 낸 꽃.

세리아나는 장갑을 벗고 젖은 흙 위에 손을 얹었다.

손끝에서 아주 희미한 초록빛이 스며 나왔다. 비에 젖은 꽃잎이 가볍게 떨리더니, 축 처져 있던 줄기가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비 내리는 정원에서 세리아나가 녹색의 손길로 흰 꽃을 되살리는 장면

녹색의 손길.

세리아나 자신도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힘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병든 식물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디가 썩었는지, 어떤 뿌리가 살고 싶어 하는지, 어떤 가지를 잘라야 나머지가 버틸 수 있는지 알았다.

사람에게는 쓸 수 없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 힘이 들키면 베르딘 백작은 그녀를 대공가보다 더 끔찍한 곳에 팔아넘겼을 테니까.

"나도 살아남을게."

세리아나는 꽃잎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니 너도 살아."

새벽이 오기 전, 그녀가 챙긴 짐은 작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낡은 드레스 두 벌, 어머니가 남겼다는 빛바랜 리본, 씨앗을 담은 작은 주머니. 그리고 백작가 몰래 모아 둔 은화 몇 닢.

대공가에서 보낸 검은 마차는 동이 트기도 전에 도착했다.

베르딘 저택의 누구도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지 않았다. 백작은 서류를 핑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백작 부인은 몸이 좋지 않다는 전갈만 보냈다. 루시엘은 커튼 틈으로 세리아나를 내려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비웃듯 잔을 들어 보였다.

세리아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았다.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등을 곧게 폈다.

바퀴가 진흙탕을 가르며 움직였다. 베르딘 저택의 담장이 점점 멀어졌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두려움은 있었다. 발레리우스 대공이 어떤 사람인지, 괴물이라는 소문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그녀가 대공성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두려움과 함께 작은 기대도 있었다.

그곳이 지옥이라 해도, 적어도 이 지옥과는 다른 곳일 테니까.

며칠간의 여정 끝에 북부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마차 창문에 서리가 앉았고 숲은 검은 침엽수로 빽빽했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먼 산맥 위에는 한여름인데도 녹지 않은 눈이 걸려 있었다.

발레리우스 대공성은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검은 석재로 지어진 성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벽 위의 깃발은 비바람에 찢긴 채 펄럭였고 정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듯 황량했다.

하지만 세리아나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말라 죽은 줄기 아래,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생명력. 검게 변한 흙 밑에서 가늘게 떨리는 뿌리들.

이 성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오래 앓고 있을 뿐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대공비 전하."

마차 문을 연 이는 은발의 중년 남자였다. 단정한 검은 예복 차림의 그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저는 발레리우스 대공가의 집사장 아르덴입니다."

"세리아나 베르딘입니다."

"이제는 세리아나 발레리우스 전하이십니다."

아르덴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얼굴에는 기쁨도 환영도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억누르는 사람처럼 창백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더 차가워졌다. 복도 양옆의 하인들은 고개를 숙였으나, 누구도 세리아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두려움, 동정, 체념. 그런 감정들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르덴은 그녀를 신부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넓고 깨끗했지만 이상할 만큼 비어 있었다. 꽃도, 향초도, 축하의 흔적도 없었다. 침대 위에는 새하얀 잠옷 한 벌만 놓여 있었다.

"식사는 방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먼 길을 오셨으니 쉬십시오."

아르덴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도 방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세리아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 전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아르덴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께서는 밤에 누구도 만나지 않으십니다."

"신부도 예외입니까?"

"예외가 없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의 대답은 경고에 가까웠다.

아르덴이 나간 뒤, 방 안은 곧 고요해졌다.

세리아나는 침대에 앉지 않았다. 대신 창가로 다가가 어둠에 잠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아직 낮았고 성의 그림자는 정원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문득 손끝이 저릿했다.

화단에서 죽어 가는 꽃을 만졌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훨씬 짙고 훨씬 무거웠다.

성 전체가 앓고 있다.

그리고 그 병의 중심이, 어딘가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밤이 깊어졌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세리아나는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벽 너머로 무언가가 낮게 울부짖었다.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 무거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 그리고 사람의 것이 아닌 거친 숨소리.

하인들의 다급한 외침이 복도 끝에서 터졌다.

"문을 잠그십시오!"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곧이어 무언가가 벽을 들이받는 굉음이 울렸다.

방문이 떨렸다.

세리아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발목을 붙잡았지만 손끝의 초록빛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저건 단순한 광기가 아니었다.

고통이었다.

세리아나는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다시 한번 처절한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녀의 방 앞에 무거운 발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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