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헌터는 요리로 각성한다

시놉시스
최악의 던전 ‘굶주림의 심연’에서 10년을 버틴 E급 헌터 강성훈. 오직 살기 위해 몬스터를 요리하던 그가 마침내 지구로 귀환한다. 독성이 가득해 폐기물 취급받던 몬스터 고기로 상상을 초월하는 버프 요리를 만들어내는 성훈. 그의 작은 식당은 전 세계 헌터들이 줄을 서는 성지가 되고, 요리 하나로 세상을 뒤흔드는 유쾌한 미식 탐험이 시작된다.
1화: 10년 만의 귀환, 그리고 개사료보다 못한 보급식
“...정말 돌아온 건가.”
강성훈은 멍한 눈으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박이고 흉터가 가득한, 요리사의 손이자 전사의 손. 그 손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10년 동안 꿈에서조차 그리워했던 서울의 전경이었다.
회색빛 빌딩 숲,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들,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콧속을 파고드는 매캐한 매연 냄새조차 지금의 성훈에게는 그 어떤 향수보다 달콤했다.
[알림: ‘굶주림의 심연’ 탈출에 성공하셨습니다.]
[알림: 귀환자 등록 절차를 위해 가장 가까운 헌터 관리국으로 이동하십시오.]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이것이 현실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10년 전,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성훈은 고작 스무 살의 어리숙한 E급 헌터였다. 가진 스킬이라고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확인하는 ‘식재 감별’과 칼질을 조금 더 정교하게 해주는 ‘정밀 절단’뿐.
전투 능력이라고는 전무했던 그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먹어야 산다.’
먹을 것이 없으면 몬스터를 잡아서라도 먹어야 했다. 독성이 있든, 외형이 징그럽든 상관없었다. 살기 위해 고기를 썰고, 피를 빼고, 불을 피워 익혔다. 그렇게 10년. 어느덧 성훈의 스킬창에는 [몬스터 미식가(SSS)]라는 괴상한 명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성훈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거리는 예전보다 훨씬 화려해졌지만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길거리 전광판에는 연일 던전 브레이크 소식과 랭커 헌터들의 광고가 흘러나왔다.
“우선 배부터 좀 채워야겠어.”
꼬르륵. 배꼽시계는 정직했다. 10년 동안 몬스터 고기만 씹어댔으니, 이제는 제대로 된 ‘사람 음식’이 먹고 싶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아니면 그냥 하얀 쌀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도 좋았다.
성훈은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이게 다 뭐야?”
매대에는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대신 이상한 은색 파우치들이 가득했다. [헌터용 고농축 에너지 팩], [마력 회복용 프로틴 바], [포션 대용 젤리]. 일반적인 식품들은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고, 가격 또한 10년 전보다 몇 배는 뛰어 있었다.
성훈은 그중 가장 저렴해 보이는 ‘헌터 보급용 비빔밥 팩’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격은 15,000원. 미친 물가에 혀를 내두르며 계산을 마친 그는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파우치를 뜯었다.
“...이게 비빔밥이라고?”
파우치 안에서 나온 것은 걸쭉한 갈색 진흙 같은 물체였다. 냄새는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와 비릿한 단백질 향이 섞여 역겨움을 유발했다. 성훈은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우욱!”
입안에 퍼지는 맛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고무를 씹는 듯한 식감에, 뒤끝은 쓴 약을 가루째 털어 넣은 듯 텁텁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이것이 ‘요리’라는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림: 질 낮은 식재료를 섭취했습니다.]
[상태 이상: ‘미각의 모독’이 발생합니다. 10분간 기분이 매우 불쾌해집니다.]
심지어 시스템조차 이것을 요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훈은 그대로 파우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10년 동안 지옥에서 버틴 결과가 이거라니.”
지구에 오면 만찬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굶주림의 심연’에서 직접 잡아 요리했던 고블린 뒷다리살 구이가 백배는 더 맛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낡은 인벤토리를 열어보았다. 귀환하면서 대부분의 장비는 파괴되었지만, 오직 요리 도구들과 약간의 ‘비상식량’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벤토리 구석에서 빛나고 있는 붉은 덩어리 하나.
[식재료: 화염 멧돼지의 안심 (Grade: A)]
- 설명: 굶주림의 심연 4층에서 서식하는 화염 멧돼지의 가장 부드러운 부위입니다. 강력한 화기를 머금고 있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조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남이 해주는 거 못 믿겠으면 내가 직접 만들어 먹어야지.”
성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살던 달동네 자취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있어 건물은 그대로였다. 먼지가 쌓인 좁은 방 안으로 들어선 그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중식도를 꺼내 들었다.
스으윽.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성훈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화염 멧돼지의 안심을 얇게 저미고, 미리 준비해온 미궁산 소금과 허브로 밑간을 한다.
지구의 가스레인지는 화력이 형편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성훈은 자신의 마력을 손끝으로 흘려보내 프라이팬의 온도를 강제로 끌어올렸다.
치이이익-!
고기가 팬에 닿는 순간,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진한 육향이 피어올랐다. 단순히 고기가 익는 냄새가 아니었다. 마력이 응축된 식재료가 열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향기였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 위로 성훈이 비장의 소스를 뿌렸다. 슬라임 점액을 정제해 만든 달콤 짭짤한 특제 소스였다.
잠시 후, 좁은 자취방 안에는 지구상의 그 어떤 식당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환상적인 냄새가 가득 찼다.
[알림: 요리 ‘화염 안심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요리 등급: 완성도 98% (Excellence)]
성훈은 떨리는 손으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아.”
입안에 넣자마자 고기는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화염 멧돼지 특유의 매콤한 육즙이 혀끝을 자극했고, 뒤이어 소스의 감칠맛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10년 동안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용하던 시스템 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알림: ‘화염 안심 스테이크’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근력 스탯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마력 회복 속도가 24시간 동안 500% 증가합니다.]
[특수 효과: ‘불의 가호’를 획득합니다. 하급 화염 속성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성훈은 젓가락을 멈추고 멍하니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이게 된다고?”
지구에서는 몬스터 고기가 독성 때문에 폐기물 취급받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요리한 몬스터 고기는 스탯을 올려주고 특수 능력까지 부여하고 있었다.
성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저 멀리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서 조잡한 에너지 팩을 씹고 있을 헌터들이 보였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이거... 장사 되겠는데?”
SSS급 헌터, 아니 SSS급 요리사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