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귀환 무신의 백수 생활

4화: 스티커 붙은 마수 사체
"현장 확인은 간단해요."
박민지가 주민센터 뒤편 골목을 가리켰다.
"대형 폐기물 스티커 붙었는지 보고 배출 번호 확인하고 사진만 찍으면 돼요. 냄새 난다고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진 말고요."
강한얼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도 민원의 일부 아닙니까?"
"일부여도 코로 처리할 필요는 없죠."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먹자골목에는 기름 냄새와 국물 냄새가 엉켜 있었다. 골목 끝으로 갈수록 그 위에 쇠 비린내가 얹혔다.
한얼은 발걸음을 늦췄다.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차가운 기운이 얇은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다. 주민센터 앞 게이트가 무너지기 직전 핵 안쪽에서 느꼈던 잔향과 같았다.
골목 막다른 곳에는 녹슨 대형 냉동고가 놓여 있었다. 문 한가운데에는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그 아래로 검은 액체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거네요."
박민지는 휴대전화를 꺼내 스티커부터 찍었다. 손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입술은 조금 굳어 있었다.
"형식은 맞는데 접수 번호가 비었어요. 발급 일자도 이상하고요. 누가 양식만 베낀 것 같은데."
한얼은 냉동고 문을 보았다.
안쪽에서 금속을 긁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박민지가 숨을 삼켰다.
"고양이인가?"
"뒤로 물러나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냉동고 문이 안쪽에서 부풀었다. 오래된 잠금장치가 튀어 나가 바닥을 굴렀다.
쾅!
문틈으로 검은 발톱이 비집고 나왔다.
썩은 살점과 철 냄새를 뒤집어쓴 짐승이 바닥으로 기어 나왔다. 들개보다 한참 컸고 앞다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목덜미에는 검은 실이 살을 파고든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박민지의 눈이 커졌다.
"저게 뭐예요?"
"위험한 들개입니다."
"들개가 냉동고에서 나와요?"
"요즘 들개가 좀 복잡합니다."
마수의 탁한 눈동자가 박민지에게 향했다.
한얼은 폐기물 확인용 장갑을 끼며 냉동고 옆 철제 뚜껑을 발로 찼다.
쾅!
소리가 골목 벽을 울렸다. 짐승의 고개가 한얼 쪽으로 꺾였다.
"박 서기는 입구로 가십시오. 사람 못 들어오게 하고 가스가 샌다고 말하면 됩니다."
"가스요?"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박민지는 한얼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평소 민원 창구에서 비밀번호 앞에 쩔쩔매던 신입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골목 입구로 달려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냉동고에서 가스가 새는 것 같아요. 다들 뒤로 가세요!"
한얼은 그 틈에 축대 반대편으로 물러났다. 마수는 그를 쫓아 낡은 배관과 폐상자가 쌓인 막다른 곳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에서는 박민지의 목소리와 셔터를 내리는 소리만 들렸다. 축대 뒤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았다.
마수가 몸을 낮췄다.
한얼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거기까지다."
짐승이 튀어 올랐다.
그는 반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발톱이 벽돌을 파고들었다. 장갑 낀 손이 목덜미를 눌렀고 손가락 두 개가 검은 실이 박힌 자리 위를 짚었다.
퍽.
마수의 몸이 허공에서 굳었다.
한얼은 반대 손날로 턱 아래를 가볍게 쳤다. 짐승은 비명도 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목덜미의 검은 실이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한얼은 실 끝을 집어 조심스럽게 뽑았다. 살점 사이에서 손톱만 한 검은 파편이 함께 따라 나왔다. 게이트핵 조각이었다.
"마수 몸에 핵을 박아 넣었군."
파편은 싸늘했다.
검은 실은 한얼의 손가락 위에서 잠깐 떨더니 골목 북쪽을 향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가 파편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안에 있는 거 맞아?"
골목 바깥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가져가. 검은 실만 회수하면 된댔어."
한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냉동고를 버린 놈들이었다.
그는 장갑을 벗지 않은 채 축대 밖으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 둘이 폐기물 카트를 끌고 골목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쓰러진 마수와 한얼을 번갈아 본 뒤 그대로 굳었다.
"뭐야. 공무원이 왜 여기 있어?"
"민원 때문에요."
한얼은 냉동고 문에 붙은 스티커를 가리켰다.
"접수 번호가 없습니다. 불법 배출로 처리하겠습니다."
"그걸 지금 따질 때냐?"
"민원은 순서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작업복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카트를 밀었다. 좁은 골목에서 철제 카트가 한얼의 무릎을 향해 달려왔다.
한얼은 피하지 않았다.
카트 앞바퀴가 바닥의 검은 액체를 밟는 순간 살짝 꺾였다. 보이지 않는 힘이 바퀴축을 한 번 건드린 정도였다.
카트는 옆으로 미끄러져 두 남자의 다리 사이에 끼었다.
"어이쿠."
한얼이 무심하게 말했다.
"바닥이 미끄럽습니다."
둘은 카트를 빼려다 서로의 어깨를 밀쳤다. 한 명은 냉동고 뒤에 숨겨 둔 서류 봉투를 밟고 넘어졌다.
봉투가 찢어지며 미사용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바닥에 흩어졌다.
"야, 그거 챙겨!"
"네가 챙겨!"
두 사람은 마수도 스티커도 버린 채 골목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그때 박민지가 입구에서 뛰어왔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했지만 휴대전화는 단단히 쥐고 있었다.
"한얼 씨, 괜찮아요? 저 사람들 뭐예요?"
"불법 배출자 같습니다. 차량 번호는 봤습니까?"
"앞자리 두 개와 끝 숫자는 봤어요. 사진도 찍었고요."
박민지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흐릿했지만 골목 밖에 세워 둔 화물차의 번호 일부와 남자들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한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관리국과 경찰에 넘길 자료가 됩니다."
"저건 진짜 들개예요?"
박민지는 쓰러진 마수를 힐끗 보았다.
"일단은 정체불명 생물입니다."
"그 말이 더 무서운데요."
골목 입구에 검은 차량이 조용히 멈췄다.
이설아가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냉동고와 마수 사체 그리고 바닥의 검은 액체를 빠르게 훑었다. 시선은 마지막으로 한얼의 장갑에 닿았다.
"민간인은 뒤로 물러나십시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박민지와 상인들을 골목 밖으로 밀어냈다. 한얼이 미처 막지 못했을 위험까지 먼저 계산하는 움직임이었다.
박민지가 관리국에 전화하는 동안 이설아는 마수의 목덜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검은 실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상처 가장자리에는 냉동고의 철사에 쓸린 듯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설아는 장갑 끝으로 상처 주변의 피를 살짝 문질렀다. 마력 잔류는 희미했다. 이 정도 크기의 하급 마수가 골목에서 날뛰었다면 벽과 바닥에 더 선명한 흔적이 남아야 했다.
그런데 사체의 목은 지나치게 정확하게 꺾여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한얼은 냉동고 스티커를 훑어보며 휴대전화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평범한 신입 공무원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판단하기 어려웠다.
"관리국에 연락은 했습니까?"
"박 서기가 하고 있습니다."
"이 생물은 어떻게 멈췄죠?"
"카트가 넘어졌습니다."
한얼은 바닥을 가리켰다.
이설아는 카트의 찌그러진 손잡이와 사체의 위치를 번갈아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아무 말 없이 거리를 쟀다.
믿지 않는 눈이었다.
하지만 박민지가 찍은 영상에는 미끄러진 카트와 혼란스러운 골목만 남았을 것이다. 한얼이 축대 뒤에서 한 일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운이 계속 좋으시네요."
"오늘은 불운 쪽에 가깝습니다. 현장 보고서를 써야 하니까요."
이설아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보고서는 정확하게 쓰십시오."
"그건 자신 없습니다."
"왜요?"
"컴퓨터가 저를 싫어합니다."
이설아는 한얼을 잠시 바라보다가 단말기를 꺼냈다. 직접 본 것은 없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에서는 너무 많은 우연이 사람을 다치지 않고 끝났다.
그녀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관찰의 이유가 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관리국 차량이 사체와 냉동고를 싣고 간 뒤 주민센터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박석두는 현장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대형 폐기물에서 짐승이 나왔는데 내가 이걸 보고서에 뭐라고 쓰냐."
"정체불명 생물 사체입니다."
한얼이 답했다.
"그걸 누가 모르는 척하냐고!"
박민지가 조심스럽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과장님, 스티커 위조랑 불법 투기 정황도 있어요. 차량 번호 일부하고 사진도 확보했고요."
박 과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경찰하고 관리국에 넘기자. 한얼 씨는 현장 보고서 입력해. 박 서기는 스티커 발급 이력부터 찾아보고."
한얼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요?"
"현장에 있었잖아."
모니터에는 빈 보고서 양식이 떠 있었다.
[발견 물품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입력하십시오.]
한얼은 주머니 속 게이트핵 파편을 만졌다. 차가운 감각은 여전히 북쪽을 향해 가늘게 당기고 있었다.
누군가 생활 폐기물 스티커 뒤에 마수를 숨겼다.
그렇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얼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검은 실을 뽑아 낸 손보다 자판 위의 손가락이 더 무거웠다.
조용한 공무원 생활은 오늘도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