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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정원에서 요양하고 가세요!4화

이세계 정원에서 요양하고 가세요!

이세계 정원에서 요양하고 가세요!

4화: 숨을 고르는 길

한지환은 해가 뜨기 전부터 동쪽 화단 앞에 밧줄을 펼쳤다.

은빛 가람 장미에서 시작한 바람은 곧장 안쪽으로 보내면 안 됐다. 로즈마리 군락 앞에는 아직 검은 덩굴이 남아 있었다. 마른 잎 아래에는 먼지이끼의 포자가 눌어붙어 있었다. 향기만 밀어 넣으면 포자까지 함께 흔들릴 터였다.

지환은 장미 화단의 끝과 로즈마리 군락의 바깥쪽을 눈으로 잇고 밧줄을 사선으로 당겼다. 길은 한 번 부드럽게 꺾인 뒤 낮은 돌계단 앞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걷는 길이면서 식물이 숨 쉴 길이어야 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그가 밧줄 옆 흙을 모종삽 끝으로 눌렀다.

“사람 발은 이 선 안으로만 다니게 할 거야.”

셔츠 가슴주머니에서 리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연분홍 꽃잎 옷은 전보다 조금 펴졌지만 날개 끝의 잿빛은 아직 남아 있었다.

“풀 사이로 가?”

“풀을 밟는 길이 아니야. 풀 사이에 바람길을 만드는 거지.”

리리는 밧줄을 따라 눈을 굴렸다. 로즈마리 군락은 낮은 관목처럼 엎드려 있었다. 잎은 대부분 회색으로 말라 있었고 줄기는 서로 엉켜 햇빛 한 줄기도 바닥까지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환은 줄기 하나를 들어 올려 손톱으로 껍질을 살짝 긁었다. 겉은 바싹 말랐지만 안쪽에는 희미한 푸른빛이 남았다.

“이건 살 수 있어.”

그는 푸른 기운이 남은 줄기에 가는 끈을 묶어 표시했다. 반대로 검은 수액이 배어 나온 줄기는 손가락으로 살짝만 흔들어도 가루가 떨어졌다.

“이건 걷어내고.”

싹둑.

전지가위가 낮게 울렸다. 지환은 위쪽을 한꺼번에 베지 않고 무릎 아래의 죽은 마디부터 끊었다. 무게를 잃은 덩굴은 옆으로 천천히 눕혔다. 그 사이로 좁은 틈이 생겼다.

리리가 그 틈을 들여다보다가 작게 물었다.

“장미 냄새가 여기까지 와?”

“와야 해. 로즈마리는 향을 받으면 잎맥이 먼저 풀릴 거야. 대신 너무 가까우면 서로 숨이 막히니까 거리를 남겨야 하고.”

지환은 장미 화단 쪽에서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 첫 로즈마리를 남겼다. 그다음 군락은 한 걸음 반씩 비워 두었다. 곧은 길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었다. 바람은 모서리에 부딪히지 않고 잎 사이에서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한때 그는 공원 산책로를 설계할 때도 나무의 그늘과 보행자의 걸음을 함께 계산했다. 그 기억이 낯선 마력 식물 앞에서도 손끝을 이끌었다.

“리리. 푸른 줄기만 알려 줘.”

“응.”

리리는 주머니 가장자리에 앉아 손가락만 한 팔을 뻗었다. 아주 미약한 연분홍 빛이 잎 끝을 스쳤다. 빛이 닿은 줄기 중 몇 개는 초록빛을 남겼다. 몇 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거. 저거는 아파.”

지환은 리리가 가리킨 뿌리 쪽을 살폈다. 검은 줄기 아래로 주먹만 한 뿌리혹이 단단하게 부풀어 있었다. 물기를 잃은 흙을 밀어 올리며 길 한가운데까지 뻗어 있었다.

[오염 뿌리혹]

지환은 삽을 든 손을 멈췄다.

“이건 급하게 파면 안 되겠네.”

“까만 숨 나와?”

“나올 수 있어. 그러니까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

리리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도와.”

지환은 잠시 리리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할 때만 손 내밀어.”

“응.”

그는 나무 수레에서 마력 분무기를 가져왔다. 노즐을 가장 약하게 돌리고 뿌리혹 바깥의 흙부터 적셨다. 물줄기가 아니라 이슬 같은 안개가 흙 위에 내려앉았다.

검은 가루가 일어날 듯 움찔하다가 물기를 머금고 낮게 가라앉았다.

지환은 뿌리혹을 정면에서 파지 않았다. 길 반대쪽에 얕은 배수 틈을 먼저 냈다. 흙 아래에서 탁한 물이 실처럼 빠져나오자, 그는 삽날을 뿌리혹의 가장자리로 밀어 넣었다.

툭.

검은 껍질이 갈라졌다.

그 틈에서 회색 먼지가 한 번에 부풀었다.

“지환!”

리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환은 숨을 짧게 들이쉬고 분무기를 낮게 눌렀다. 은빛 안개가 떠오른 먼지 아래를 훑었다. 포자가 바람을 타기 전에 무게를 얻어 흙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손목을 돌려 삽을 빼고 전지가위로 검은 뿌리만 잘랐다. 살빛이 도는 가는 뿌리는 건드리지 않았다. 썩은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자 배수 틈으로 탁한 물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지금.”

리리가 주머니에서 몸을 반쯤 내밀었다. 작은 손에서 떨어진 요정 가루가 잘린 뿌리 주변을 덮었다. 연분홍 가루는 흙에 닿자 금세 옅어졌다. 움츠러들던 로즈마리 잎 몇 장이 바람도 없는데 가볍게 떨렸다.

리리는 숨을 몰아쉬며 지환의 주머니 안으로 돌아갔다.

“리리 잘했어?”

“잘했지. 이제 쉬어.”

지환은 뿌리혹이 있던 자리를 마른 자갈과 정화된 흙으로 메웠다. 발을 디뎌도 꺼지지 않을 만큼만 눌렀다. 지나치게 단단하게 다지면 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밧줄을 걷어 내자, 장미 화단에서 온 바람이 새 길을 따라 흘렀다.

은은한 장미 향이 로즈마리 잎에 닿았다. 회색이던 잎맥 사이로 맑은 초록빛이 아주 가늘게 번졌다. 로즈마리 특유의 서늘하고 씁쓸한 향이 뒤늦게 섞이며 공기를 한 번 더 가볍게 만들었다.

[정화 구역 연결 조건 충족]

지환은 새 길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장미가 있는 쪽에서는 향이 부드럽게 등을 밀었다. 로즈마리 사이에서는 가슴 안쪽까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길 끝의 낮은 돌의자에 앉아 보니, 정원 바깥의 탁한 냄새가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다.

“길 됐어?”

리리가 주머니 안에서 물었다.

지환은 돌의자를 손바닥으로 한번 쓸었다.

“아직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길이지.”

“그 할아버지?”

“응. 오늘은 그분만.”


정오가 조금 지나자 녹슨 철문 밖에 마차 한 대가 멈췄다.

유스티아는 전날과 같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선 셀렌은 전보다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손목에는 보호 주문진이 여러 겹 감겨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뒤에도 학장의 팔을 놓지 않았다.

“학장님. 오늘은 문 앞까지만 보시죠.”

“어제도 그 말을 들었네.”

“어제는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있지 않나.”

지환은 철문 앞까지 나가 두 사람을 맞았다. 셀렌은 그를 보자마자 새 길을 훑어보았다. 회색 이끼가 없는 흙, 일정하게 비워 둔 관목, 장미 쪽으로 열린 틈. 그의 눈빛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지만 함부로 흠잡을 수 없다는 기색도 있었다.

“방어막은 문 밖에서만 쓰세요.”

지환이 말했다.

셀렌의 눈썹이 올라갔다.

“학장님을 보호하지 말라는 겁니까?”

“길 안에서 막을 세우면 공기가 갇힙니다. 막는 대신 제가 옆에서 보겠습니다.”

“만약 포자가 다시 올라오면요?”

지환은 길 옆의 분무기와 수레를 가리켰다.

“즉시 멈추고 되돌아옵니다. 오늘은 저 돌의자까지만 갑니다. 왕복도 하지 않고요.”

유스티아가 마른 손으로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내 몸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네. 숨을 어떻게 쉬는지 확인하러 왔지.”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침이 오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약속하지.”

유스티아의 첫발이 새 흙길 위에 닿았다.

한 걸음.

그는 장미 쪽을 보지 않았다. 발밑을 확인하며 천천히 다음 발을 옮겼다. 로즈마리 잎이 그의 외투 자락에 살짝 스쳤다.

두 걸음.

유스티아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안에서 나던 쇳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 걸음.

셀렌이 무심코 학장의 팔을 붙잡으려다 멈췄다.

“학장님?”

유스티아는 대답 대신 한 번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장미 향이 먼저 들어왔다. 뒤이어 로즈마리의 맑은 향이 목을 지나갔다. 그가 숨을 내쉴 때에는 거칠게 걸리던 기침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향이 다르군.”

“장미만 있으면 향이 위로 뜹니다.”

지환은 길가의 낮은 관목을 가리켰다.

“로즈마리가 아래에서 공기를 한 번 잡아 줍니다. 잎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길을 굽혔나.”

“곧게 보내면 너무 빨라집니다. 사람도 식물도 급하게 숨 쉬면 힘들어지고요.”

유스티아는 작게 웃었다. 그는 돌의자까지 닿은 뒤 지환이 손짓한 대로 천천히 앉았다. 셀렌이 즉시 손등에 손가락을 댔다가 눈을 크게 떴다.

“마력 맥박이 안정됐습니다.”

“완전히 낫는 건 아닙니다.”

지환이 먼저 선을 그었다.

“정원 밖으로 나가면 다시 기침이 올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여기는 오래 버티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습니다.”

유스티아는 말없이 손을 가슴에 얹었다. 한참 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십 년 동안 내 폐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먼저 겁을 냈네.”

그의 시선이 잎 사이를 흐르는 바람을 따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군.”

셀렌은 눈가를 찡그렸다. 전날부터 계속 준비했던 주문진을 손에 쥔 채였다. 결국 그녀는 주문진을 접어 소매 안으로 넣었다.

“정원사님.”

처음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제가 학장님을 너무 붙잡으려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옆에서 규칙을 지키게 하겠습니다.”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습니다. 다음에도 한 번에 한 사람만 받겠습니다.”

리리가 주머니 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사람 많이 오면 안 돼.”

지환은 주머니 입구를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알아.”


유스티아는 잠시 더 앉아 있다가 외투 안쪽에서 얇은 은빛 패를 꺼냈다.

패에는 세이렌 아카데미의 탑 문양과 복잡한 마력식이 새겨져 있었다. 셀렌이 그 패를 보자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지환 정원사.”

노학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이번에는 또렷했다.

“나는 세이렌 마법 아카데미 마법식물학부 학장 유스티아다. 어제는 이름만 말했지.”

지환은 은빛 패와 유스티아를 번갈아 보았다. 평범한 방문객이 아니라는 짐작은 했다. 학장이라는 직함은 정원의 무게를 단번에 바꾸는 이름이었다.

그는 놀란 기색을 오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자네가 만든 이 길은 향기 마법이 아니네. 식물이 서로 제 힘을 잃지 않도록 자리를 정해 주지. 사람이 그 힘을 해치지 않는 속도로 걷게 만드는 배치야.”

유스티아는 산책로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이 정원을 전용 요양 협력 단지로 지정하고 싶네. 급한 연구실처럼 들이닥치지는 않겠네. 복구에 필요한 정화 토양과 자갈, 수로 자재를 먼저 보내지. 운영 지원금으로 금화 삼백 닢도 내놓겠네.”

셀렌이 덧붙였다.

“기록과 방문은 학장님 명의로 관리하겠습니다. 외부에 위치가 퍼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금화 삼백 닢이면 지금의 정원을 붙잡고 있는 낡은 도구를 전부 바꾸고도 남았다. 오래된 수로를 파낼 인부를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환은 바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조건이 있습니다.”

셀렌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유스티아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들었다.

“말해 보게.”

“방문 인원과 시간은 제가 정합니다. 정화가 덜 된 곳에는 누구도 못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정원 식물은 연구 재료로 채취하지 않습니다.”

지환은 길가의 로즈마리 한 포기를 바라보았다.

“살릴 식물은 아직 많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자라기 전까지는 여기서 뿌리 내리게 해야 합니다.”

리리가 주머니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기척이 났다.

“또 하나 있습니다. 정원은 치료소가 아닙니다. 아픈 사람이 쉬어 갈 수는 있어도 무리해서 결과를 얻으려 하면 안 됩니다.”

잠시 바람만 잎 사이를 지나갔다.

유스티아는 은빛 패를 다시 외투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당연한 조건이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네가 이 정원의 정원사니까.”

셀렌도 고개를 숙였다.

“아카데미는 그 기준을 따르겠습니다.”

지환은 그제야 손을 내밀었다.

“그 조건이면 하겠습니다.”

유스티아의 마른 손이 그의 손을 단단하게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산책로 끝의 흙 아래에서 졸졸,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지환은 손을 놓고 정원 깊숙한 곳을 바라보았다. 로즈마리 군락 너머에는 무너진 석조 난간과 검게 굳은 분수대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제보다 분명해진 물소리였다.

“수로가 있군요.”

유스티아도 그 방향으로 귀를 기울였다.

“하늘가람 가문의 중앙 분수대는 오래전에 말랐다고 들었네.”

“완전히 마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환은 수레에 기대 둔 모종삽을 바라봤다. 자갈과 토양, 인부가 생기면 다음에는 길 아래의 물길을 살필 수 있었다.

리리가 주머니에서 속삭였다.

“물도 깨워?”

지환은 새로 열린 산책로를 한번 돌아보았다.

누군가 숨을 고를 길이 생겼다. 이제 그 길을 지나 더 깊은 곳까지 물을 데려올 차례였다.

“응. 다음엔 물길을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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