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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물 장부로 문파 재건함4화

분실물 장부로 문파 재건함

분실물 장부로 문파 재건함

4화: 물길 아래의 원장

수로로 내려가는 돌계단은 젖어 있었다.

정오의 빛은 담장 위에만 남아 있었다. 계단 아래로 갈수록 물비린내와 젖은 흙 냄새가 짙어졌다. 그 사이에 목을 마르게 하는 매운 냄새가 가늘게 섞여 있었다.

청각초 가루와 비슷했다.

건하는 목갑을 든 서문린과 자기 품의 기름종이를 차례로 확인했다. 젖은 이관 쪽지는 종이 두 장 사이에 끼워 두었다. 목갑과 쪽지를 같은 손에 쥐지 않은 것은 하나를 빼앗겨도 다른 하나로 이관 사실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천명패가 차갑게 빛났다.

[하급 송출 진행 중]

[왕실 신표 반환 절차 분쟁]

[청연문이 원장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건하는 글줄을 더 읽지 않았다. 송출은 원장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결론부터 건네고 있었다.

"공개를 거부한 적은 없습니다. 원장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무엇을 공개할 수도 없을 뿐입니다."

서문린은 수위 둘을 돌아봤다.

"창을 넘은 사자의 옷차림과 도주 방향을 따로 적어라. 추격하지는 마. 수로에서 마주친 자가 있으면 얼굴과 시각만 남겨."

젊은 수위가 망설였다.

"지금 갈림길을 막으면 잡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잡으러 들어갔다가 물건이 사라지면 누가 책임지지?"

서문린의 시선이 건하에게 옮겨 왔다.

"네가 책임지겠다고 했지. 사자를 놓친 대가를 원장으로 치를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생각 없습니다."

건하는 바로 답했다.

"사자는 물길을 압니다. 지금 뒤를 밟으면 그가 든 종이를 먼저 버릴 겁니다. 원장을 확보한 뒤 도주 기록으로 다시 좁히겠습니다."

"원장이 없으면?"

"그때는 사자를 놓친 책임까지 장부에 남기겠습니다. 하지만 이관 쪽지가 남았고 사자는 그걸 없애려 했습니다. 원장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서문린은 목갑의 봉인끈을 손가락으로 감아 쥐었다.

"좋다. 수로 서고까지만 간다. 네 판단이 틀렸다면 거기서부터는 내 방식대로 한다."

한소탁은 계단 끝 배수로 덮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장부판 가장자리로 틈의 가루를 밀자 회색 밀랍과 붉은 가루가 함께 드러났다.

"사형. 냄새가 두 갈래로 납니다."

왼쪽은 서고로 가는 짧은 물길이었다. 오른쪽은 외문 아래로 이어지는 넓은 배수로였다. 두 길 모두 벽돌 위에 붉은 가루가 점점이 남아 있었다.

건하는 오른쪽 벽을 살폈다. 가루는 발자국 높이가 아니라 손 닿는 높이에 묻어 있었다.

"냄새만 따라가지 마. 갈라지게 만든 흔적이야."

"그럼 어느 쪽으로 갑니까?"

"물이 빠진 쪽. 장부를 들고 달아난 사람은 물에 젖은 종이를 오래 품지 못해. 가까운 서고로 들어갔거나 버렸을 거야."

소탁은 오른쪽 벽의 가루와 왼쪽 바닥의 발자국을 따로 그렸다. 직접 본 흔적과 건하의 판단을 섞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지금 적은 건 네가 본 것만 맞지?"

"예. 오른쪽 벽에는 손 닿는 높이의 가루가 있습니다. 왼쪽 바닥에는 발자국 옆 가루가 있고요."

"그대로 남겨."

수로 서고는 물길이 굽는 곳에 붙어 있었다. 검은 나무문 아래 수면에는 찢긴 종이 조각 하나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서문린이 검집 끝으로 종이를 끌어당겼지만 먹이 번진 장부 칸선만 보였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수로 서고지기. 문을 열어라."

작은 창이 열리고 마른 얼굴의 서고지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왕실 기록청에서 봉인하라 했습니다. 누구도 들일 수 없습니다."

"누가 언제 명했지?"

"정오 종이 울린 뒤였습니다. 회색 허리패를 찬 사자가 표찰을 보였소."

건하는 젖은 이관 쪽지를 들어 보였다.

"이관은 정오 전에 이뤄졌습니다. 봉인 명령은 그 뒤에 왔고요. 먼저 들어온 장부가 무엇인지 이관대장을 대조하면 됩니다."

"대장은 서고 물건입니다. 왕실 표찰이 있으면 봉인하는 게 규정이오."

"그 표찰이 보관 봉인 표찰이었습니까? 아니면 접수 장부 대조 열람 표찰이었습니까?"

서고지기의 입술이 굳었다. 안쪽에서 물이 튀는 소리가 났다. 이어 종이가 찢기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

서문린이 앞으로 나섰다.

"대장은 네 손에 남는다. 우리는 청연문 귀물각 물품의 보존 입회만 하겠다. 대장을 숨기라고 명한 자가 있다면 그 명령도 함께 기록해."

"기록청에 거역했다가 제 목이 날아가면 누가 책임집니까?"

"대장을 열어 준 이유와 시각을 내가 서명해 남긴다. 네가 장부를 넘긴 게 아니라 보관물 훼손을 막기 위해 입회시킨 것이 된다."

건하가 창 아래를 가리켰다.

"안에 든 사자는 봉인하러 온 게 아닙니다. 장부가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을 지우러 온 겁니다."

서고지기는 한참 뒤 빗장을 풀었다.

서고 안은 낮고 어두웠다. 습기가 장부 냄새와 섞여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왼쪽 선반에는 이관대장이 쌓여 있었고 오른쪽 안쪽에는 물을 빼는 수문이 있었다.

회색 허리패의 사자는 수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젖은 장부 묶음이 흩어져 있었다. 한 손에는 얇은 등본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원장 한 장이 구겨져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성가시군요."

"원 접수 번호가 없는 반환증을 들고 온 쪽이 먼저 성가셨습니다."

건하가 말했다.

서고지기가 떨리는 손으로 이관대장을 펼쳤다.

계-341-초봄-003-3.

물품 이관이 아니라 접수 장부 대조.

이관 시각은 정오 한 각 전.

신청자란에는 성명이 없었다. 다만 아래에 짧은 서명이 있었다. 끝 획이 위로 길게 튄 글씨였다.

건하는 귀물각에서 받아 둔 등본을 꺼냈다. 확인 서명에도 같은 버릇이 남아 있었다.

"대조 열람으로 들어온 장부를 봉인 물품처럼 가져가려 했군요."

서문린의 검이 반쯤 빠졌다.

사자는 원장 한 장을 수문 위로 들었다.

"한 장부를 위해 왕실과 맞서겠습니까?"

"한 줄을 바꾸려고 이곳까지 온 건 당신 아닙니까?"

사자는 종이를 물길에 던졌다.

서문린이 앞으로 뛰었다. 건하는 사자를 향하지 않았다. 수문 옆 녹슨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잠겨 있던 배수판이 내려오며 급한 물살을 늦췄다.

"소탁아. 종이를 봐! 번호를 읽어!"

한소탁은 물가에 엎드렸다. 물이 발목을 적시자 몸이 굳었지만 장부판을 선반 위에 올리고 종이 가장자리를 눌렀다.

"계-341-초봄-003-2입니다! 무명 약낭 기록이에요. 003-3이 아닙니다!"

사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서문린의 검끝이 그의 소매를 갈랐다. 사자는 선반을 걷어차 등잔을 넘어뜨리고 뒤쪽 환기창으로 몸을 던졌다. 불은 붙지 않았으나 기름이 바닥에 번졌다.

"수로 남쪽입니다!"

밖의 수위가 외쳤다.

서문린의 시선이 창으로 향했다. 건하는 선반 밑에 끼인 젖은 원장을 먼저 집었다.

"소문주. 003-3 대조면이 남아 있습니다."

"사자를 놓치면 네가 책임진다."

"예."

"대신 지금부터는 네 멋대로 장부를 읽지 마. 내가 입회하고 서고지기가 원장을 넘긴다."

"그 절차가 필요합니다."

원 접수 장부의 대조면은 젖어 있었지만 글자는 남아 있었다.

계-341-초봄-003-3.

물품명. 청동 신표 조각 추정.

습득 장소. 미확인.

신고자. 미확인.

소유자. 공란.

반환 기한. 보류.

청연문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건하는 사자가 남기고 간 등본을 펼쳤다. 같은 번호 아래 습득 장소 칸에는 청연문 귀물각 습득이라는 글이 있었다. 앞뒤 칸의 먹은 오래 말라 거칠었으나 그 글자만 종이 섬유 안쪽으로 번져 있었다.

"원장에는 미확인이라고 남아 있습니다. 등본에는 귀물각 습득으로 바뀌어 있고요."

"바로 위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문린이 끊었다.

"그렇다고 원장의 공란을 등본이 마음대로 채울 수도 없습니다."

건하는 이관대장과 원 접수 대조면, 반환증을 나란히 놓았다.

"세 장을 함께 봉인해야 합니다. 한 장만 보면 누구든 해석으로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서문린은 세 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서고지기. 이관대장 원본은 네가 보관해라. 오늘 이 시각부터 열람한 자의 이름을 적어. 유건하는 대조 내용을 읽어. 한소탁은 물길과 폐기 종이의 번호를 확인자로 적는다. 나는 입회자로 서명한다."

소탁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네가 봤으니까."

건하가 말했다.

"사자가 버린 종이는 003-2였지?"

"예. 수문을 닫은 뒤 물살이 약해졌고 저는 종이 맨 아래 번호를 읽었습니다. 계-341-초봄-003-2. 무명 약낭 기록입니다."

"추측은?"

"적지 않겠습니다. 사자가 왜 003-2를 버렸는지는 모릅니다."

소탁은 물길의 방향과 배수판이 내려온 시각을 적었다. 버려진 종이의 번호를 두 번 확인한 뒤 자기 이름을 썼다.

천명패가 다시 빛났다.

[청연문, 왕실 원장 열람 거부 논란]

서문린이 자막을 보며 말했다.

"문을 열었는데 거부라고 쓰는군."

"원장을 보여 줬다는 사실보다 거부라는 말이 먼저 퍼지면 저쪽은 이긴 셈이 됩니다."

건하는 봉인 종이 위에 붓을 들었다.

"그러니 반박문부터 쓰지 않겠습니다. 열람한 시각과 입회자부터 남기겠습니다."

그는 첫 줄에 적었다.

원장 열람 시행.

입회자 서문린.

확인자 한소탁.

수로 서고지기 입회.

003-3 원 접수 대조면과 이관대장 및 반환증을 대조 봉인함.

봉인끈을 묶기 전 건하는 대조면 뒷면의 얼룩을 보았다. 물에 젖어 숨었던 선이 빛을 받아 아주 희미하게 떠올랐다.

반쪽짜리 왕실 문양이었다.

그 아래에는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궁외.

나머지는 번져 읽을 수 없었다. 003-3과 직접 이어지는 표식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읽히나?"

"반쪽 문양과 글자 둘뿐입니다. 뜻은 아직 모릅니다."

"그럼 모른다고 써."

건하는 적었다.

판독 불완전. 반쪽 왕실 문양 및 ‘궁외’ 추정 글자 확인. 003-3과의 관련성 미확정.

서문린은 봉인 꾸러미를 가져갔다. 대신 건하에게 열람 기록 사본을 내밀었다.

"003-2 약낭 장부는 네가 찾아. 모른다고 적은 자가 먼저 알아내 봐. 다만 혼자 판단하지는 마라."

조건은 여전했다. 신뢰라는 말도 없었다.

그래도 서문린은 다음 장부를 그의 손에 맡겼다.

건하는 수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003-2의 젖은 장부 조각은 물살이 잦아든 곳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청각초 냄새는 그 종이에서 났다.

그 냄새가 우연히 묻은 것인지 사자가 버리려 한 진짜 기록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누군가는 003-3의 원장을 지우려 하면서 굳이 003-2를 물에 던졌다.

그 이유까지 장부에 남기려면 다음에는 약낭의 주인부터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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