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삼키는 보급관이 기사단을 키우는 법

1화: 심장에 박히는 가시
대성당의 천장은 아득할 정도로 높았다. 눈부신 금박으로 장식된 돔 위로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은 자비로운 신의 손길처럼 보였다. 수천 명의 신도가 뿜어내는 열기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대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엘리나에게 이 화려함은 그저 피부를 태우는 뜨거운 조명일 뿐이었다.
"엘리나, 준비되었느냐?"
교황 이노센트 5세의 목소리가 대성당의 대리석 벽을 타고 엄숙하게 울려 퍼졌다. 인자한 미소와 자애로움이 뚝뚝 묻어나는 그 목소리는 신도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이었으나, 엘리나에게는 날카로운 바늘의 서곡이었다.
엘리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의 발치에는 제국의 유력한 후작이었던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황궁에서 권세를 누리던 자였지만, 지금은 반역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기적의 성녀 앞에 끌려온 가련한 죄인에 불과했다.
"후작,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대는 정말로 북부 반란군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반역을 획책한 적이 없는가?"
교황의 질문이 떨어지자 장내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성상을 장식한 촛불의 불꽃마저 멈춘 듯한 긴장감 속에서, 후작이 절박하게 고개를 들어 외쳤다.
"결코... 결코 없습니다! 성하, 제 영혼을 걸고 맹세합니다. 저는 오직 제국과 폐하께 충성했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저를 시기하는 무리가 꾸며낸 모함입니다!"
후작의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공포,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귀로 듣기에는 그 어떤 진실보다도 처절했다. 주변의 귀족들도 동요하는 듯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나의 가슴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윽...!"
심장 한가운데에 시뻘겋게 달궈진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가슴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쥐고 빨래를 짜듯 비트는 전율. 어긋난 인과율이 엘리나의 신경계를 타고 들불처럼 번졌다.
단순한 허언이 아니었다. 국가의 존립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배신이 섞인 거대한 악의. 후작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유독한 가시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커헉!"
엘리나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시게 하얀 성녀의 예복 위로 붉은 꽃이 잔인하게 피어났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향해 신도들의 경탄과 경외가 섞인 비명이 쏟아졌다.
"오오, 성녀님께서 또다시 세상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다!"
"보아라! 성녀님의 피가 저 죄인의 거짓을 증명하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찬양 소리가 엘리나의 귓전을 때렸다. 그녀는 바닥을 짚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맴돌았다. 눈앞이 가물거리는 고통 속에서도 교황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선명했다.
"진실이 드러났도다. 후작, 그대의 말은 독이며 그대의 영혼은 이미 구원받을 수 없을 만큼 썩었도다. 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단죄한다."
"아니야! 이건 조작이다! 성녀의 피가 어떻게 증거가 된단 말이냐! 으아아악!"
절규하는 후작을 기사들이 짐승처럼 끌고 나갔다. 엘리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심장의 통증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그 자리엔 시커먼 멍이 든 것 같은 불쾌하고 눅눅한 여운이 남았다.
'거짓말쟁이들.'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피를 토하며 부정하던 후작도, 자애로운 가면을 쓴 교황도, 그리고 기적이라 찬양하며 이 고통스러운 쇼를 즐기는 저 신도들도. 모두가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녀의 고통을 화폐처럼 소비할 뿐이었다.
의식이 끝난 후, 엘리나는 개인 기도실로 옮겨졌다. 기도실이라 불리는 그곳은 화려한 벽지 대신 차가운 대리석 벽과 쇠창살이 없는 창문이 달린, 완벽한 감옥이었다.
"엘리나, 오늘 고생이 많았구나. 네 덕분에 제국의 정세가 한결 맑아졌어."
방 안으로 들어온 교황 이노센트 5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는 엘리나의 창백한 뺨을 자애로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엘리나는 온몸에 돋는 소름을 참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북부의 비옥한 영지를 교단의 직할지로 편입하는 데 아주 큰 공을 세웠다. 신께서도 너의 헌신을 기뻐하실 게다."
'거짓말.'
심장이 쿡, 하고 쑤셨다. 낮에 느꼈던 거대한 통증은 아니었지만, 바늘로 찌르는 듯한 불쾌감이 그녀를 괴롭혔다. 교황은 정적을 제거하고 교단의 배를 불린 것을 '신성한 의무'라고 포장하고 있었다.
"다음 의식은 사흘 뒤다. 그때까지 몸을 잘 추스르도록 해라. 성찬도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시키마."
"......예, 교황 성하."
엘리나의 메마른 대답에 교황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간 뒤, 엘리나는 움켜쥐고 있던 가슴팍을 세게 눌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저주받은 체질이 시작된 것이. 9살 무렵, 교단에 거두어졌을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특별한 축복을 받은 줄 알았다. 교단은 그녀를 '정화자'라고 불렀다. 타인의 거짓말을 자신의 몸으로 정화하여 진실을 드러내는 고귀한 존재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엘리나는 자라면서 깨달았다. 이것은 정화가 아니었다. 그저 타인이 내뱉은 업보와 인과율의 뒤틀림을 대신 짊어지는, 신의 총애가 아닌 인간 제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일 밤, 그녀는 심장이 찢어지는 감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에 들었던 수많은 위선과 기만들이 가시가 되어 폐부를 찔러댔다.
그날 밤도 그랬다. 엘리나는 열병에 들뜬 몸을 이끌고 물을 마시기 위해 방을 나섰다. 복도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걷던 그녀의 발걸음이 굳게 닫힌 교황의 집무실 앞에서 멈췄다.
"......엘리나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각혈하는 빈도가 늘고, 회복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어요."
교단의 사제장, 베네딕트의 목소리였다.
"상관없다. 어차피 그 그릇도 이제 수명을 다했어. 10년 넘게 인과율의 쓰레기통 역할을 했으니 많이 버틴 셈이지."
교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에 들었던 성스러운 음성은 온데간데없는, 메마르고 잔혹한 어조였다. 엘리나는 숨을 죽인 채 벽에 몸을 붙였다.
"그럼 다음 후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아이들'을 선별해두지 않았나. 엘리나보다 훨씬 더 순수한 혈통들이지. 그중 하나가 각성하기만 하면 엘리나는 더 이상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그 말이 엘리나의 심장을 찔렀다. 이번에는 통증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거짓이 섞이지 않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잔인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각성이 확인되는 대로 엘리나는 '성지'로 보내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신께 제물로 바쳐진다면 그녀도 영광으로 알겠지."
성지. 말이 좋아 성지지, 그곳은 교단에 방해가 되거나 수명을 다한 성녀들이 조용히 매장되는 무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엘리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슬픔이나 공포보다 먼저 치밀어 오른 것은 차가운 분노였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었다. 거짓말에 찢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교단의 권력을 공고히 해주었다. 그 대가가 토사구팽이라니.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해.'
그녀는 소리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 밑 깊숙한 곳에서 낡은 자루를 꺼냈다. 성녀의 화려한 예복 아래 숨겨두었던, 언젠가 탈출을 꿈꾸며 몰래 구해둔 낡은 수도복이었다. 교단의 인장이 찍힌 위조 통행증과 그동안 모아둔 비상식량, 그리고 약간의 은전도 챙겼다.
창밖에는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도 교단의 위선을 비웃는 듯 천둥이 울려 퍼졌다.
엘리나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은빛 머리카락 아래 자리 잡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평소의 생기 없는 눈이 아니었다.
"이제 더는 당신들의 거짓말을 삼키지 않겠어."
그녀는 머리 위에 얹혀 있던 성녀의 관을 바닥에 내던졌다.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천둥소리에 묻혔다.
엘리나는 기도실의 숨겨진 환기창을 통해 몸을 뺐다. 빗물 섞인 차가운 바람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성벽을 타 넘고,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어둠 속을 달렸다.
빗방울이 뺨을 때리고 옷을 적셨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등 뒤의 거대한 대성당이 어둠 속에서 괴물의 아가리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었다. 살아남겠다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뛰고 있는 생존을 향한 거친 고동이었다.
"하아, 하아......!"
진흙탕에 넘어지고 손톱이 깨지면서도 그녀는 국경을 향해 달렸다. 거짓말이 들리지 않는 곳, 자신의 심장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성녀 엘리나는 그날 밤 죽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혐오하는 한 여자의 처절한 도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