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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2화

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

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

2화: 한 대에 하나

칼끝이 두꺼운 가죽에 닿았다.

평소라면 미끄러졌을 터였다.

짐꾼용 단검은 몬스터의 가죽을 벨 물건이 아니었다. 마석을 꺼낼 때나 쓰라고 지급된 싸구려 철 조각이었다.

그런데 칼날은 발등의 비늘 사이로 한 마디만큼 파고들었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9/100]

강현은 상태창과 칼날을 번갈아 봤다.

오우거가 발을 빼며 포효했다. 상처에서는 피가 손톱만큼 흘렀다. 눈으로 보면 긁힌 자국에 가까웠다.

하지만 숫자는 하나 줄었다.

"진짜 들어가네."

백 번.

그 숫자가 떠오르자 목이 바짝 말랐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놈은 손가락 하나를 잃은 사람처럼 아파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놈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강현의 팔은 단검을 백 번 휘두를 만큼 강하지 않았다.

칼날보다 먼저 닳는 쪽은 자기 숨과 다리일지도 몰랐다.

오우거의 주먹이 내려왔다. 강현은 피하려다 어깨를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7/10]

몸이 돌바닥에 부딪힌 충격은 그대로였다. 갈비뼈가 삐걱거리고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그래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다.

"짐꾼! 계속 붙어!"

도윤의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왔다.

강현은 대답 대신 깨진 배낭을 더듬었다. 유리 조각 사이에 빨간 포션이 두 병 남아 있었다.

오우거가 다시 팔을 들었다.

강현은 포션을 마시지 않았다. 병을 주머니에 밀어 넣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주먹이 떨어진 자리에 돌가루가 튀었다. 열이 꺼진 오우거의 주먹은 여전히 무거웠다.

몸이 느리다고 해서 생각까지 느린 건 아니었다.

강현은 오우거의 다리 뒤로 기어들어 갔다. 놈이 몸을 돌리는 순간 무릎 뒤쪽의 접히는 살을 향해 단검을 밀어 넣었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8/100]

"크오오!"

오우거의 다리가 휘청했다.

강현은 칼을 빼려다 발끝에 걷어차였다. 벽에 부딪혀 숨이 턱 막혔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6/10]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두 번 찔러서 둘.

두 번 맞아서 둘.

이 싸움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포션 두 병으로는 고작 두 번을 더 버틸 수 있었다. 오우거가 열 번만 제대로 때려도 끝이었다.

그런데도 도윤의 목소리는 다급하지 않았다.

"좋아. 그렇게만 해! 놈 시선 끌어!"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박도윤은 무너진 출구 근처에 서 있었다. 검을 든 헌터 하나가 돌무더기 틈을 헤집고 있었고 민재는 팔의 화상을 붙잡은 채 벽에 기대 있었다.

도윤의 발밑에는 강현이 버린 배낭이 놓여 있었다.

그는 배낭에서 포션 상자를 꺼내고 있었다.

강현의 몫까지.

"팀장님."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포션 주세요."

"지금 이쪽도 바쁘다. 네가 저놈만 조금 더 잡아 둬. 출구 틈이 생기면 바로 뺄 거니까."

말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도윤은 상자를 품에 안았다. 강현에게 던질 생각이 없는 손이었다.

오우거가 강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강현은 낮게 욕했다.

"제가 저놈 붙잡고 있으면 다 같이 나가는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팀장인데 사람 버리겠냐?"

도윤은 대답하면서도 출구 쪽을 봤다.

그 짧은 시선이 대답이었다.

강현은 그 눈을 알고 있었다.

쓸모없는 짐은 먼저 버린다. 던전에서 짐을 메고 산 다섯 해 동안 너무 많이 본 눈이었다.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강현은 뒤로 물러났다. 발이 엉켜 넘어질 뻔했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출구 반대편으로 뛰었다.

아니었다. 뛰었다기보다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이쪽이다."

오우거의 손등이 천장을 스쳤다. 돌조각이 비처럼 쏟아졌다.

강현은 무너진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놈의 주먹이 기둥을 부수며 지나갔다. 돌기둥이 오우거의 팔 위로 기울었다.

완전히 깔아뭉개지는 않았다.

그래도 놈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강현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낮아진 오우거의 옆구리로 달려들어 단검을 찔렀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7/100]

다시.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6/100]

칼끝이 살을 찌르는 감각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한 번에 하나. 검술도 기술도 아니었다.

그냥 하나씩 갚는 일이었다.

오우거가 팔을 휘둘렀다. 강현은 칼을 놓치지 못해 옆구리를 맞았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5/10]

시야가 흔들렸다.

강현은 물러나지 못했다. 칼을 빼는 순간 오우거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는 칼자루를 비틀어 상처를 넓혔다.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강현은 그 반동에 튕겨 나와 바닥을 굴렀다. 이번에는 포션을 꺼냈다.

병마개가 잘 열리지 않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를 악물고 마개를 뜯어 한 모금 삼켰다.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현재 체력: 6/10]

고작 하나였다.

그 하나가 지금은 천금보다 비쌌다.

포션의 붉은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통증도 남아 있었다. 다만 상태창 속 숫자가 하나 올라갔고 강현은 그 하나를 다음 움직임에 쓸 수 있었다.

"포션 남았어?"

도윤이 소리쳤다.

강현은 포션 병을 주머니에 넣었다.

"없습니다."

거짓말은 쉽게 나왔다.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이걸 받아."

그가 포션 한 병을 던졌다.

병은 강현보다 한참 뒤에 떨어졌다. 오우거와 출구 사이였다.

도윤은 손을 뻗었다.

"가져와. 빨리."

강현은 병을 보지 않았다.

저걸 주우러 가면 오우거의 등을 보게 된다. 오우거가 쫓아오면 도윤은 출구 틈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이제는 계산이 너무 선명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이 쓰세요."

"뭐?"

"저는 아직 안 죽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말장난할 때야?"

"그러니까요."

강현은 오우거를 똑바로 봤다.

"죽을 사람한테나 좋은 물건 챙겨 두세요."

그 말이 끝나자 오우거가 고개를 숙였다.

붉은 눈이 강현에게 박혔다.

마력이 꺼진 놈은 더는 불을 뿜지 못했다. 대신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짐승처럼 몸을 낮췄다.

강현은 숨을 들이켰다.

정면에서 오면 피할 수 없다.

그는 옆의 부러진 기둥을 봤다. 기둥 아래에는 조금 전 오우거가 부순 돌무더기가 있었다. 발을 헛디디면 무릎이 다시 꺾일 자리였다.

강현은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와 봐."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돌바닥이 흔들릴 만큼 무거운 돌진이었다. 강현은 마지막까지 서 있다가 몸을 옆으로 던졌다.

민첩 1짜리 몸은 명령을 늦게 들었다.

놈의 어깨가 강현의 허리를 스쳤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5/10]

숨이 막혔다.

그래도 오우거의 발은 돌무더기 위에 올라갔다. 균형을 잃은 거대한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강현은 땅을 짚고 일어났다. 다리가 풀려 몇 번이나 휘청거렸다.

도망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윤 쪽으로 달리면 포션 하나를 빼앗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이놈은 다시 일어난다. 마력이 하나여도 주먹은 그대로다. 출구의 헌터들이 길을 비워 줄 리도 없었다.

강현은 넘어진 오우거의 무릎 위로 올라탔다.

놈이 팔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 했다. 강현은 손등을 피해 허벅지 안쪽에 단검을 박았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5/100]

한 번.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4/100]

두 번.

오우거의 손가락이 강현의 발목을 스쳤다. 그는 발을 빼며 팔꿈치로 놈의 눈가를 찍었다. 근력 1짜리 타격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래도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그 틈에 단검이 세 번째로 내려갔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3/100]

"미쳤어."

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흔세 번을 더 찔러야 한다. 체력은 다섯이고 포션은 한 병뿐이다. 손에 든 칼은 언제 부러질지도 몰랐다.

그런데 무서움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죽음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지금은 아흔세라는 숫자 뒤에 숨어 있었다.

강현은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카운트해."

민재가 멍하니 그를 봤다.

"뭘요?"

"저놈 체력. 내가 몇 번 찔렀는지."

"그걸 왜 제가..."

"틀리면 내가 죽으니까요."

민재의 입이 다물렸다.

잠시 뒤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십삼."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출구 쪽 벽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금이 무너진 통로의 벽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처음 오우거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굵고 더 빠른 빛이었다.

돌무더기 너머에서 낮은 포효가 울렸다.

오우거의 포효와는 달랐다.

훨씬 깊고 무거운 소리였다.

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전원 출구로 와! 지금 당장!"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발밑의 오우거가 몸을 비틀었다. 마력이 하나가 된 괴물의 팔이 다시 바닥을 짚었다.

아직 체력은 아흔셋.

강현은 단검을 더 깊이 쥐었다.

"전 못 갑니다."

"뭐?"

"이놈이 살아 있잖아요."

도윤이 욕설을 내뱉었다.

강현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무너진 통로 너머에서 두 번째 포효가 터졌다.

붉은 금이 천장까지 번졌다.

그리고 오우거가 강현을 향해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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