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싶어서 범인 잡았더니 수사 국장이 되어버렸다

시놉시스
제국 최고의 수사관이었던 아버지가 의문의 사건으로 실종된 후, 가문을 이어받으라는 압박을 피해 백수로 지내던 리안.
밀린 월세를 해결하기 위해 수사국에서 한 달짜리 임시 수사관(대타) 자리를 맡는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아무 일도 안 하고 월급만 받아가는 것.
하지만 첫날부터 제국을 뒤흔드는 연쇄 실종 사건에 휘말린다.
"귀찮게 수사가 길어지면 퇴근을 못 하잖아."
리안은 빨리 집에 가기 위해, 남들은 몇 달을 걸려도 못 찾을 단서들을 자신의 이능력 '인과율의 잔상'으로 단 몇 시간 만에 찾아내 범인을 검거한다.
그 결과는? "자네 같은 인재를 임시직으로 썩힐 순 없지!"
퇴근은커녕 특별 수사팀장으로 발령받고, 해결하는 사건마다 제국의 핵심부와 연결되면서 리안은 의도치 않게 제국 수사국의 실세, '국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데...
1화: 퇴근을 위한 첫걸음은 출근부터
천장에는 거미줄이 한 점 없었다.
리안이 지난 세 달 동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관찰한 결과였다.
거미들은 보통 습기가 많은 구석이나 바람이 잘 통하는 창틀에 집을 짓기 마련이다. 이 방처럼 건조하고 먼지만 날리는 곳은 거미들에게도 효율적인 서식지가 아니었다.
리안은 그 사실을 발견했을 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 역시 이 비효율적인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안식처를 찾고 있었으니까.
'거미들도 참 현명하단 말이지. 먹이도 없는 곳에 집을 지어봤자 거미줄 낭비일 뿐이니까.'
리안은 낡은 침대보를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침대보에서는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났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얕게 쉬는 법을 이미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생존을 위한 에너지 절약'이었다.
오전 11시 45분.
그는 이제 막 깊은 잠의 바다로 다시 잠수하려던 참이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즉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 찰나를 방해하는 불길한 진동이 발바닥 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쿵, 쿵, 쿵!
단순한 노크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겠다는 선전포고이자, 리안의 평화로운 백수 생활을 종결시키겠다는 파멸의 리듬이었다. 나무문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천장에서 미세한 먼지가 리안의 코끝으로 떨어졌다.
"리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문 안 열어? 죽은 척해도 소용없어!"
집주인 마르타 부인의 목소리가 복도를 찢고 들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제국 수사국의 사이렌 소리보다도 날카로웠다. 리안은 베개를 머리에 눌러썼다. 소리의 파동이 베개의 깃털 사이사이로 스며들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안 들린다. 나는 지금 바닷속에 있다. 거대한 고래의 뱃속이다. 고래는 말이 없지. 고래는 그저 헤엄칠 뿐이다.'
"열쇠 꾸러미 들고 왔어! 셋 셀 동안 안 열면 그냥 따고 들어간다! 하나, 둘……!"
찰그랑.
수십 개의 열쇠가 부딪히는 쇳소리가 리안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저 소리는 진짜다. 마르타 부인은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번 옆방의 도박꾼도 저 소리를 무시했다가 문짝이 뜯겨 나간 채 거리로 쫓겨났었다. 심지어 그 도박꾼은 팬티 바람이었다.
리안은 자신이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시나리오였다.
"……엽니다, 열어요. 제발 그 쇳소리 좀 멈춰주세요."
리안은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것 같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친 것은 눈부신 햇살과 마르타 부인의 굵직한 팔뚝이었다. 그녀는 구겨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리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뒤로는 복도의 어두컴컴한 공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너, 이번 달이 벌써 세 달째인 건 알지? 내가 이 집을 자선단체로 바꿨다고 소문이라도 난 거야? 아니면 내가 무슨 성모 마리아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아뇨, 그럴 리가요. 부인처럼 철저하고 현실적인 분이……."
"철저? 철저한 사람이 월세를 세 달이나 밀려? 네 아버지가 수사국에서 날릴 때는 안 그랬는데, 어째 아들이라는 놈은 이 모양이야? 앨런 가문이 어쩌다 이런 골칫덩이를 낳았는지 원."
리안은 아버지가 언급되자 미세하게 미간을 짓눌렀다.
전설적인 수사관 앨런. 그 이름은 제국 수사국에서는 영광의 상징이었고, 벨리온 제국의 범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리안에게는 그저 매일 밤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거나, 혹은 며칠씩 들어오지도 않던 귀찮은 보호자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일에 미쳐 가족을 돌보지 않다가,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다.
"아버지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이미 돌아가신 분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가 알아! 아무튼, 당장 오늘 저녁까지 돈 안 가져오면 네 그 낡은 도구 상자랑 침대, 그리고 저 구석에 쌓인 쓰레기 같은 책들 다 길바닥에 내놓을 줄 알아! 내 인내심도 이제 한계야!"
마르타 부인은 리안의 발치에 신문 뭉치 하나를 툭 던졌다. 신문은 바닥의 먼지를 일으키며 펼쳐졌다.
"이거라도 봐. 수사국에서 사람 구한다더라. 네가 아무리 게을러도 네 성(姓)이 있는데, 설마 청소부라도 못 하겠어? 아니면 서류 분류라도 하든가. 네 아버지 인맥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잖아."
쾅!
문이 닫혔다. 리안은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침대로 기어 들어가려 했으나, 발등에 닿는 신문의 감촉이 차가웠다. 돈이 없으면 잠도 잘 수 없다. 길거리에서 자는 것은 체온 조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이 무슨 비효율적인 인과의 고리인가. 인간은 왜 잠을 자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리안은 구부정한 자세로 신문을 펼쳤다.
[제국 수사국 '검은 눈' 임시 보조 요원 긴급 채용. 한 달 계약. 고소득 보장. 수사관 자격 소지자 우대. 학력 무관.]
보통의 수사관 채용 공고와는 달랐다. '임시', '긴급'이라는 단어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벨리온 제국은 지금 연쇄 사건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적힌 보수는 리안의 잠자던 뇌세포를 강제로 깨우기에 충분했다. 한 달만 일하면 넉 달 치 월세를 내고도 따뜻한 수프를 매일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리안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울 앞에 섰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잠이 부족해 틔한 눈동자.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 너머로, 방 안에 남은 인과율의 선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안만이 가진 '낙인(Stigma)'의 힘이었다. [인과율의 잔상].
마르타 부인이 딛고 서 있던 자리에 남은 붉은색 잔상. 그녀가 문을 두드릴 때 발생한 분노의 에너지가 공중에 실처럼 엉켜 있었다. 그 선들은 서로 꼬이고 비틀리며 그녀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잔상이 이 정도로 남는 걸 보니 부인의 혈압이 위험 수준이군. 오늘 저녁에 돈을 안 가져가면 정말로 뇌졸중으로 쓰러지실지도 몰라. 그건 그거대로 귀찮은 일이 되겠지.'
리안은 한숨을 쉬며 아버지가 남긴 낡은 수사관 제복을 꺼냈다. 옷장 깊숙이 박혀 있던 제복에서는 나프탈렌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났다. 먼지가 자욱했지만, 그것을 일일이 털어낼 기운조차 아까웠다. 대충 몸을 욱여넣은 리안은 방을 나섰다.
벨리온 제국 수사국 청사는 거대한 증기기관처럼 쉴 새 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스팀펑크 풍의 거대한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웅웅거리는 진동을 내뱉었다.
로비는 아수라장이었다.
증기 자동차의 경적 소리, 서류 뭉치를 들고 뛰어다니는 수사관들의 구두 소리,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시민들의 목소리. 모든 소리와 움직임이 리안의 감각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리안은 그 무리 속에서 홀로 느릿하게 걸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인과의 선'으로 보였다.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의 행동이 현재에 남긴 궤적이었다.
저기 뛰어가는 수사관의 발뒤꿈치에는 3분 전 서류 창고에서 묻혀온 노란 먼지가 실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선은 창고에서부터 로비까지 이어져, 그가 어떤 경로로 달려왔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3, 2, 1.'
피쉿!
정확히 3초 뒤, 리안의 옆을 지나가던 수사관의 머리 위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파이프의 이음새가 헐거워지며 압력이 솟구치는 인과의 흐름을 리안은 이미 읽고 있었다. 수사관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지만, 리안은 이미 그 구역을 한 뼘 차이로 벗어난 뒤였다. 불필요한 사고에 휘말리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에너지 낭비다.
그는 효율적인 동선을 따라 사람들을 절묘하게 피하며 인사과로 향했다. 마치 미리 짜인 안무를 추는 것처럼, 리안은 단 한 번의 어깨 부딪침도 없이 혼잡한 로비를 관통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운 좋게 비어있는 공간으로만 걷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것은 리안의 뇌가 수백 개의 인과율을 실시간으로 계산해낸 결과였다.
인사과 사무실의 문을 열자,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 뒤에서 초췌한 안색의 직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직원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훈장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성함이?"
"리안입니다."
"리안? 성은요? 여기는 장난치는 곳이 아닙니다."
"……리안 앨런입니다."
직원의 깃펜이 멈췄다.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리안을 훑어보았다. 리안의 낡은 제복과 그 어깨에 새겨진 앨런 가문의 문장을 확인한 직원의 얼굴에 경악과 반가움이 동시에 서렸다.
"앨런? 그…… 전설의 앨런 수사관님의 아드님? 세상에, 3년 동안 어디 계셨던 겁니까? 수사국 전체가 당신을 찾으려다가 포기했는데! 아버님의 실종 이후 가문이 몰락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집에서 잤습니다. 찾지 마세요."
"네? 3년 동안 잠만 잤다고요?"
"계속 잤다고요. 그리고 돈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채용 공고 봤는데요. 임시직이라도 앨런이라는 이름값이 통한다면 바로 시작하고 싶군요."
리안은 직원의 반응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직원은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더니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앨런의 아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사국의 분위기가 반전될 것임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지금 수사국 상황이 아시다시피 말이 아닙니다. 서쪽 구역에서 발생하는 연쇄 실종 사건 때문에 가용 인원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황실에서 직접 내려온 특별 의뢰까지 겹쳐서요. 정식 수사관들은 모두 현장에서 사흘 밤낮을 새우고 있습니다. 수사 국장님께서는 지금 과로사 직전이시고요."
"저는 현장직은 절대 안 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서류 정리나 하고 싶군요. 아니면 창고에서 증거물 분류나 하든가요. 사람들이랑 엮이는 건 딱 질색입니다."
"아, 물론이죠! 앨런 수사관님의 아드님께 위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죠. 주 업무는 단순 분류와 보고서 초안 작성입니다. 어차피 지금은 그것조차 할 사람이 없어서 증거물실이 포화 상태거든요. 당신의 그…… 천재적인 관찰력이 도움이 된다면 업무가 훨씬 빨라지겠죠."
리안은 계약서의 조항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마치 사냥감을 포착한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다.
"여기 '탄력 근무'라고 되어 있는데,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면 퇴근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그리고 그 할당량이라는 건 누가 정하죠?"
"어……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보통 할당량이란 게 끝이 없어서요. 분류해야 할 증거물이 산더미거든요."
"제가 다 분류하면 퇴근하는 걸로 확답 주시죠. 그리고 여기 '추가 근무 수당' 조항은 빼주세요. 저는 추가 근무를 안 할 거니까요. 1분이라도 더 남아 있는 건 제 인생의 모독입니다."
직원은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지만, 당장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앨런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신뢰는 대단했다. 비록 눈앞의 청년이 세상에서 가장 의욕 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지라도.
"알겠습니다. 계약서 수정하죠. 한 달간 '검은 눈' 4분과 소속 임시 보조 요원으로 임명합니다."
리안은 깃펜을 들어 계약서 하단에 휘갈겨 썼다.
[리안 앨런]
"내일부터 오전 9시까지 출근하십시오. 여기 수사관 배지입니다. 임시직이라 은색이지만, 권한은 정식 수사관과 동일하게 부여됩니다. 그리고 이건 아버님이 쓰시던 것과 같은 모델의 증거물 채취 가방입니다."
차가운 금속 배지와 낡은 가죽 가방이 리안의 손에 놓였다. 은색으로 빛나는 배지에는 제국의 상징인 사자와 저울이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그 증표. 리안은 그것을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었다.
'내일부터 9시 출근이라니. 인생 최대의 실수일지도 모르겠군. 차라리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는 게 나았을까.'
수사국 건물을 나서는 리안의 뒤로, 거대한 시계탑이 정오를 알리는 무거운 종소리를 내뿜었다.
증기와 연기가 뒤섞인 제국의 하늘 아래서, 리안은 벌써부터 내일의 퇴근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서명한 계약서가 단순히 월세를 벌기 위한 종이 조각이 아니라, 제국 전체의 운명을 뒤바꿀 거대한 인과율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가 마주하게 될 '증거물'은 단순한 서류 뭉치가 아니라, 제국을 뒤흔들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의 단서가 될 것임을.
'일단 오늘은 12시간 이상 자둬야겠어. 내일의 고통을 미리 대비해야지. 퇴근하는 순간까지 내 에너지는 단 1%도 낭비하지 않겠다.'
리안은 가장 효율적인 귀가 경로를 계산하며, 어스름해지는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낡은 제복 자락이 저녁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