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간 천재 외과의사

시놉시스
현대 대한민국 최고의 서베일런스 외과의사 백강현. 비행기 사고 후 조선 세종 치세, 왕실의 병약한 서자 '이진'의 몸에서 눈을 뜬다. 불결한 위생과 미신이 지배하는 조선의 의료 체계를 현대 의학의 정수와 '의학 시스템'으로 혁명하는 천재 의사의 대서사시.
1화: 깨어난 죽은 자의 심장
"환자 혈압 떨어집니다! 80에 50, 더 내려갑니다!"
"에피네프린 1mg 투여. 바이탈 계속 체크해."
백강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눈앞의 환자는 흉부 외상으로 인한 심장 파열. 1초가 생사를 가르는 박빙의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메스가 전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수만 번의 수술로 다져진 그의 감각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상태였다.
"클램프."
그가 손을 내밀자 숙련된 간호사가 즉각 도구를 건넸다. 심장의 박동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불규칙하고 위태로운 박동. 하지만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구역의 지배자였으니까.
"봉합 들어간다. 4-0 프롤린."
한 땀 한 땀, 그는 죽어가는 생명을 다시 이어 붙였다. 마침내 멈춰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을 때, 수술실 안에는 안도의 한숨이 퍼져 나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백 교수님. 역시 신의 손이시네요."
강현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그는 수술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맡은 다음 일정은 학회 참석을 위한 해외 출국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현대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으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는 습하고 퀴퀴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아니었다. 흙먼지와 알 수 없는 한약재 타는 냄새.
강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기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은 타들어 갈 듯 건조했고, 전신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지다 겨우 초점을 잡았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낡은 천장이었다. 현대식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한옥의 천장.
"교수님? 정신이 드십니까?"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강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기괴한 복장을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탕건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노인. 마치 사극 세트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
"세상에, 맥이 끊겼던 분이 다시 숨을 쉬시다니! 이것은 천우신조입니다!"
노인이 호들갑을 떨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전하! 전하! 진성군(進城君) 대군께서 눈을 뜨셨사옵니다!"
대군? 진성군?
강현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고된 수술로 굳은살이 박여 있어야 할 손이 아니었다. 마치 한 번도 험한 일을 해보지 않은 귀공자의 손이었다.
그때였다.
[딩-]
머릿속에서 맑은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시스템 동기화 완료.>
<사용자: 백강현(이진)>
<상태: 심각한 영양실조 및 초기 패혈증>
<환경 분석: 조선 시대(15세기 전반)>
"……시스템?"
강현의 눈이 커졌다. 환청이 아니었다.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상태창이 떠 있었다.
<의학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기초 진단 스캔을 시작합니다.>
[스캔 중…… 15%…… 48%…… 100%]
<대상: 본인>
- 체온: 38.9도 (고열)
- 혈압: 90/60 (저혈압 위험)
- 진단: 장기간의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좌측 발목의 상처를 통한 세균 감염이 패혈증으로 전이 중.
"패혈증이라고?"
강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왼쪽 발목을 살폈다. 엉성하게 감긴 천 사이로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 부위는 검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열감이 대단했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항생제가 없는 이 시대라면 확실한 사명(死命)이었다.
"이봐요! 거기 누구 없소!"
강현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의 발소리였다.
"이진아! 내 아들아!"
방문이 거칠게 열리고, 용포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위엄 있는 눈매, 하지만 지금은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눈을 한 사내.
그를 본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낯선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종대왕, 이도.
그리고 그의 서자이자 병약하기로 소문난 아들, 이진.
"아바바…… 아바님?"
말이 헛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강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래, 내가 여기 있다. 의원들이 너를 포기했다 하여 내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어찌 다시 살아 돌아왔느냐!"
강현은 눈앞의 인물이 누구인지 깨닫고 전율했다.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 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하지만 감격할 틈이 없었다. 발목의 통증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경고: 패혈증 쇼크 위험 단계 진입.>
<긴급 처치가 필요합니다.>
'항생제…… 항생제가 필요해. 아니, 적어도 소독과 배농(排膿)이라도 해야 해.'
강현은 세종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바님, 살고 싶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해주마! 내의원의 명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아니요, 그들이 아니라……."
강현은 옆에 놓인 작은 다과상 위의 과도를 보았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독한 술병을 가리켰다.
"저 칼과 술을 제게 주십시오. 제가 직접…… 제 몸을 고쳐야겠습니다."
"진아,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어찌 칼을 든단 말이냐!"
세종과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하지만 강현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서늘했다. 그것은 수술실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했던, '외과 교수 백강현'의 눈이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저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합니다."
조선에 떨어진 천재 외과의. 그의 첫 번째 수술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