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시놉시스
5년째 C급 이하 게이트만 전전하던 F급 짐꾼 진태성은 레이드팀이 버린 마수 부산물까지 주워 팔며 버티는 생계형 헌터다.
게이트 브레이크 사고로 보스 방에 홀로 갇힌 날, 그는 주머니 속 천 원짜리 효자손과 끈적한 슬라임 점액을 움켜쥔 채 죽음 직전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 순간 오류처럼 열린 권능 [신화의 연금술: 개념 합성]이 하찮은 생필품을 첫 번째 아티팩트로 바꾼다.
1화: 천 원짜리 효자손
“진태성! 뒤쪽 점액낭까지 챙겨. 그거 버리면 정산에서 뺀다.”
태성은 대답 대신 목장갑 낀 손을 흔들었다.
서울 외곽 C급 게이트 내부는 비린내와 흙먼지로 가득했다. 방금 전까지 슬라임 무리가 꿈틀대던 통로에는 찢어진 점액낭과 새끼손톱만 한 마석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C급 헌터들에게는 발에 밟히는 쓰레기였지만 태성에게는 하루 밥값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점액낭을 집었다.
“상태 좋은 건 한 개에 이천 원. 터진 건 천오백 원. 열 개면 김치찌개 특식.”
앞서가던 한민규 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F급은 좋겠다. 그런 걸 보고도 눈이 반짝이네.”
“반짝이는 게 아니라 원가 계산입니다.”
“말대답할 힘 있으면 빨리 와. 보스 방 앞이다.”
태성은 낡은 배낭을 고쳐 멨다. 방수 코팅은 벗겨졌고 어깨끈은 세 번이나 꿰맨 흔적이 있었다. 배낭 옆 주머니에는 아침에 시장에서 산 천 원짜리 효자손이 꽂혀 있었다.
게이트 대기 시간이 길 때 어깨를 긁으려고 산 물건이었다. 플라스틱 손바닥이 달린 싸구려 막대. 무기는커녕 장난감에 가까웠다.
그래도 태성은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천 원도 돈이었다.
헌터 일을 시작한 지 5년. 태성은 아직 F급이었다. 공격 스킬은 없고 신체 강화도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 던전 안에서 그가 맡는 일은 짐 운반과 부산물 분류와 부상자 후송이었다.
남들은 그런 일을 잡일이라 불렀다.
태성은 생존이라고 불렀다.
“보스 방 열면 다들 정신 차려. 쇠갑 늑대왕은 C급 중에서도 장갑이 두꺼운 놈이다.”
한민규가 칼을 뽑았다. 레이드팀원들이 각자 무기를 들었다. 검날과 창끝에는 푸른 마력이 얇게 감겼다.
태성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F급 짐꾼이 보스 방 중앙에 서는 순간 보험 약관이 아니라 장례식장 견적서를 봐야 했다.
거대한 석문이 열렸다.
공기가 바뀌었다.
비린내 위로 뜨거운 쇠 냄새가 덮였다. 바닥에는 검은 발톱 자국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늑대가 몸을 일으켰다. 늑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컸다. 버스만 한 몸뚱이에 금속성 비늘이 갑옷처럼 겹겹이 돋아 있었다.
쇠갑 늑대왕.
놈의 목 안쪽에서 붉은 코어가 맥박처럼 뛰었다.
한민규가 손을 들었다.
“전열 유지. 짐꾼은 입구 밖 대기.”
태성은 바로 물러났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저 안에 들어가 봐야 방해만 된다.
그때 천장이 울렸다.
쿵.
처음에는 보스가 움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울림은 위가 아니라 게이트 전체에서 왔다. 벽면을 타고 흐르던 푸른 균열이 붉게 번졌다.
[경고. 게이트 외벽 불안정.]
누군가 먼저 욕을 뱉었다.
“브레이크 전조다!”
레이드팀의 대형이 무너졌다. 한민규가 후퇴를 외쳤고 헌터들이 입구 쪽으로 몰렸다. 태성도 뛰었다. 배낭 속 점액낭이 흔들려 등 뒤를 축축하게 적셨다.
한 발 늦었다.
입구 쪽 돌기둥이 비명을 내며 갈라졌다. 태성은 본능적으로 배낭을 앞으로 끌어안았다.
콰아앙!
충격이 등을 밀었다. 발이 허공을 밟았다. 태성의 몸이 보스 방 안쪽으로 굴러떨어졌다. 배낭이 터지고 점액낭과 마석 조각과 빈 물통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태성 씨!”
누군가 부른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돌무더기가 입구를 막았다. 바깥의 소리가 뚝 끊겼다.
태성은 피가 고인 입안을 삼켰다. 왼쪽 팔꿈치가 저렸다. 갈비뼈 쪽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정산에서 빼기는 무슨.”
그는 돌무더기를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부터 빼야지.”
농담은 입 밖으로 나왔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어둠 속에서 쇳소리가 났다. 쇠갑 늑대왕이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붕괴의 충격으로 놈도 상처를 입었다. 어깨 비늘 몇 장이 깨져 나갔고 눈가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렀다.
그래도 보스는 보스였다.
태성은 바닥의 부러진 단검을 주워 들었다. F급 보급품이었다. 날은 반쯤 나갔고 손잡이는 땀에 미끄러웠다.
“이걸로 저걸 잡으라고?”
쇠갑 늑대왕이 이빨을 드러냈다.
태성은 뒷걸음질 치며 주변을 훑었다. 빈 물통. 찢어진 장갑. 깨진 마석 조각. 슬라임 점액낭. 효자손.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선명해서 웃음이 났다.
5년 동안 짐을 날랐다. 남들이 놓친 부산물을 주웠다. 위험 수당은 깎였고 장비 지원은 늘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살아남으면 다음 달 월세는 냈다.
그런데 죽는 이유가 천 원짜리 효자손을 들고 보스 방에 갇혀서라니.
“내 인생 가성비 진짜 끝내준다.”
쇠갑 늑대왕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태성은 점액낭 하나를 움켜쥐었다. 끈적한 액체가 장갑 사이로 새어 나왔다. 슬라임 점액은 낮은 등급 부산물이지만 접착성과 마력 보존력이 있었다. 그래서 훈련용 마력 접착제의 원료로 팔렸다.
한 개 이천 원.
평소라면 아까워서 던지지 않았을 물건이었다.
늑대왕이 달려들었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점액낭을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점액이 놈의 앞발에 튀었다. 쇠갑 늑대왕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늦어졌다. 발톱이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며 끈적한 실을 만들었다.
그 찰나, 태성의 눈앞에 푸른 글자가 켜졌다.
[비정상 조건 충족.]
[생존 임계치 3% 이하.]
[마력 적합성 재검사.]
태성은 숨을 멈췄다.
“뭐야.”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숨겨진 특성 개방.]
[신화의 연금술: 개념 합성]
태성은 눈을 깜박였다. 머리가 깨진 건가 싶었다. 하지만 쇠갑 늑대왕의 포효도 피 냄새도 팔꿈치의 통증도 너무 생생했다.
시스템 창은 냉정하게 다음 문장을 띄웠다.
[베이스 물품: 시장표 효자손]
[촉매: 슬라임 점액]
[개념 일치율: 긁기 / 끌어내기 / 포획]
[합성 가능]
“지금 나보고 이걸 합치라고?”
태성은 바닥의 효자손을 내려다봤다.
연분홍색 플라스틱 손바닥. 손잡이에는 ‘시원하게 긁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삐뚤게 인쇄되어 있었다.
싸구려였다.
한없이 하찮았다.
그래서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된다면 해. 안 되면 같이 죽고.”
태성은 효자손과 점액낭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마력 부족.]
“야!”
[가성비의 영주 보정 적용.]
[베이스 물품 구매가: 1,000원]
[저가 개념 보너스 극대화.]
효자손 끝에서 빛이 터졌다. 밝고 고귀한 빛은 아니었다. 시장 조명처럼 번쩍이고 형광등처럼 깜박이는 애매한 빛이었다.
하지만 마력의 흐름은 분명했다.
슬라임 점액이 플라스틱 손바닥을 감쌌다. 손가락 마디마다 투명한 갈고리가 돋아났다. 손잡이 안쪽에는 가느다란 붉은 선이 생겨 맥박처럼 뛰었다.
겉모습은 여전히 효자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쥔 순간 태성의 손끝에 다른 감각이 열렸다. 공기 중에 흩어진 마력이 끈처럼 보였다. 쇠갑 늑대왕의 목 안쪽 코어에서 뻗어 나온 붉은 선들이 특히 선명했다.
[연성 성공.]
[E급 아티팩트: 마력 포획의 손]
태성은 멍하니 효자손을 내려다봤다.
“E급?”
그는 곧 입꼬리를 올렸다.
“천 원짜리로 E급이면 남는 장사잖아.”
쇠갑 늑대왕이 포효했다. 태성은 벽 쪽으로 몸을 던졌다. 놈의 앞발이 방금 전 그가 서 있던 바닥을 찍었다. 돌가루가 터지고 깨진 마석 조각이 얼굴을 스쳤다.
순수 스탯으로는 상대가 안 됐다. 한 대만 맞아도 몸이 찢긴다. 도망칠 입구도 없고 지원도 없다.
남은 것은 방금 손에 들어온 이상한 효자손뿐이었다.
태성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좋아. 정리하자.”
그는 숨을 고르며 늑대왕을 노려봤다.
“저놈 몸은 못 뚫어. 비늘은 C급 헌터 칼도 튕겨 낸다. 그런데 목 안쪽 코어는 포효할 때 열린다.”
태성은 효자손 끝을 까딱였다. 투명한 갈고리들이 살아 있는 손가락처럼 움찔거렸다.
긁어 끌어내는 물건.
마력을 붙잡는 점액.
그 둘이 합쳐진 결과가 마력 포획의 손이라면 노릴 곳은 하나뿐이었다.
“가려운 데 긁어 주는 건 자신 있지.”
쇠갑 늑대왕이 다시 달려왔다. 이번에는 더 빨랐다. 점액이 붙은 앞발을 억지로 뜯어낸 탓에 놈의 움직임은 거칠었고 분노는 더 커졌다.
태성은 정면으로 피하지 않았다. 옆으로 빠지면 꼬리에 맞는다. 뒤로 물러서면 벽에 몰린다.
그는 마지막 순간 몸을 낮췄다.
늑대왕의 턱이 머리 위를 스쳤다. 뜨거운 침이 목덜미에 튀었다. 태성은 비틀거리면서도 놈의 아래턱 밑으로 파고들었다.
보였다.
목구멍 깊은 곳의 붉은 코어.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태성은 양손으로 효자손을 밀어 넣었다.
투명한 갈고리가 길게 늘어나 코어 주변의 마력 선을 움켜쥐었다. 손목이 꺾일 듯한 반동이 왔다. 쇠갑 늑대왕이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천 원이다!”
태성은 이를 악물고 당겼다.
보스 방 전체가 붉게 뒤집혔다. 늑대왕의 비명이 천장을 때렸고 태성의 팔에서 뼈가 삐걱거렸다. 효자손 손잡이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코어가 반쯤 뽑혀 나왔다.
그 순간 시스템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강제 추출 진행률 47%]
[실패 시 사용자 사망]
태성은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쇠갑 늑대왕이 마지막 발악으로 몸을 틀었다. 태성의 등이 바닥에 처박혔다. 폐에서 숨이 빠져나갔다.
그래도 그는 효자손을 놓지 않았다.
천 원짜리 플라스틱 손이 보스의 심장을 긁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태성은 그 순간 확신했다.
살아만 나가면 이건 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