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91화: 대통합의 도장
창밖으로 보이는 라피아 제국의 수도, 엘란은 이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 사이로 마력 전도가 용이한 특수 합강 유리가 번뜩이는 초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 솟아올랐고, 그 사이를 흐르는 마도 수송선들은 마치 서울의 강남대로를 연상시키는 질서 정연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법과 공학이 결합된 이 환상적인 신도시의 풍경은, 강민우가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전근대적인 낙후함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완성'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
민우는 마왕성 최고의 집무실에서 크로노스와 마주 앉았다.
한때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왕은 이제 잘 재단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민우가 내민 수천 장의 합병 계약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 조항은 마족들의 노동권을 지나치게 보장하는 것 아닌가? 제국의 재정에 무리가 갈 텐데."
크로노스의 지적에 민우는 은빛 만년필을 가볍게 돌리며 미소 지었다.
"단기적인 지출보다는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마족의 신체적 강인함을 물류 산업에 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ROI(투자 자본 수익률)는 제국의 복지 예산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경영입니다, 부회장님."
'부회장'이라는 호칭에 크로노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약서 마지막 장에 마력 인장을 찍었다.
그 순간, 민우의 뇌리에는 과거 서울에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대형 M&A 프로젝트가 끝난 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 속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PMI(인수 후 통합) 전략을 짜던 그 치열했던 밤들.
그때는 그저 회사의 부속품으로서 소모된다는 느낌뿐이었지만, 지금 그는 이세계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새로운 역사를 직접 써 내려가는 '영원한 설계자'가 되어 있었다.
"PMI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행정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작업은, 마왕군을 토벌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민우의 선언에 크로노스는 전율했다.
기획실장의 펜 끝에서 시작된 이 대통합의 물결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필연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