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45화: 종이의 역습, 계약 파기의 마법
전시 사령부의 탁자 위에는 마계의 문양이 찍힌 기괴한 가죽 문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마계 군단이 일부 부패한 인간 상인들과 맺은 비밀 보급 계약서들.
이세계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전장 뒤에서 벌어지는 이 추악한 배신은, 창칼보다 무서운 독처럼 제국의 혈관을 좀먹고 있었다.
"칼로 맺은 동맹은 꺾을 수 있어도, 종이로 맺은 계약은 법률로 파괴해야 한다."
민우는 서늘한 눈으로 계약서의 조항들을 훑어내렸다.
민우는 과거 서울에서 겪었던 적대적 M&A와 복잡한 국제 상거래 소송전을 떠올렸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계약이라도, 예기치 못한 시장의 변동이나 조항의 맹점(Loophole)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법무의 본질은 규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이용해 적의 손발을 묶는 것이다."
민우는 이제 마계 군단의 보급줄을 합법적으로 끊어버릴 '금융적 암살'을 기획하고 있었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국정 재정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
- 관리 대상: 적대적 보급 계약 무효화 및 배신 상단에 대한 경제적 제재
- 현재 적 보급 안정도: 85% -> 42% (급락 중)
- 가용 유동 자본금: 574.0백만 골드
- 실무진 지지율: A
- 오피스 워커의 분석: '마계-인간 상인 간의 계약서 4조 2항 '천재지변 시 공급 유예' 조항 포착. 발두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변경을 통한 '인위적 인플레이션' 발생 시 계약 단가 부적합으로 인한 자동 파기 유도 가능.'
"실장님, 마계와 거래하는 상인들은 이미 제국의 법망을 피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강제로 압류하면 민간 상권의 반발이 클 것입니다."
법무 담당관의 우려 섞인 보고에 민우는 은빛 만년필을 가볍게 튕겼다.
"강제로 뺏을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돈'으로 그들을 파멸시키면 됩니다. 오늘부로 마계와의 거래에 사용되는 모든 화폐에 대해 발두르 중앙은행의 환전 수수료를 500% 인상하십시오. 그리고 마계가 상인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골드의 가치를 폭락시킬 '특별 통화 발행'을 단행하겠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은 그대로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빵은 10분의 1로 줄어들 겁니다. 상인들이 먼저 계약 파기를 선언하게 만드세요."
민우가 설계한 정밀한 금융 타격은 마계의 보급망을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돈이 되지 않는 전쟁에 상인들은 등을 돌렸고, 마계 군단은 식량과 장비 부족으로 진격을 멈춰야 했다.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건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손익 계산서 끝에 적힌 단 한 줄의 이익이지."
민우는 계약서 더미를 덮으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의 진군을 멈춘, 기획실장의 가장 치명적인 '계약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