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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36화

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36화: 종이 위에 담긴 신뢰

발두르의 중앙 광장, '미라클 스퀘어'에는 연일 거대한 마차가 금괴를 싣고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육중한 바퀴 자국이 남기는 비효율은 제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였다.

"금화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것 자체가 보안 리스크고 물류 비용이지."

민우는 집무실 창가에서 금화를 세느라 땀을 흘리는 상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세계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풍경 뒤에는, 금속 화폐의 무게에 짓눌린 전근대적 경제 구조가 버티고 있었다.

민우는 책상 서랍에서 한국은행권 5만 원권을 떠올리게 하는 빳빳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특수 마력지가 입혀진 발두르의 신권.

"화폐의 본질은 금속의 무게가 아니라, 그 종이 뒤에 있는 국가의 약속이다."

서울 기획실 시절, 거시 경제 지표를 분석하며 배웠던 법정 통화(Fiat Currency)의 위력. 민우는 이제 이 판타지 세계에 금 본위제를 넘어선 현대적 금융의 정수를 주입하려 하고 있었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국정 재정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

"실장님! 이 종이 쪼가리가 금화 100개의 가치가 있다니요? 이건 사기입니다!"

발두르 상업 연합의 의장 스티븐이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 그는 평생 금화의 묵직함만을 믿어온 사람이었다.

민우는 차분하게 만년필로 그가 가져온 종이 화폐의 중앙을 가리켰다.

"의장님, 이 종이에는 제 이름과 발두르 영주의 인장, 그리고 중앙은행의 금 태환 약속이 마법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위조는 불가능하죠. 무엇보다, 무거운 금화 1,000개를 옮기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고 도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이면 대륙 어디든 가볍게 여행하며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무게'입니다."

민우는 의장에게 금화와 종이 화폐의 교환 비율을 1:1로 고정하고, 언제든 중앙은행에서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강력한 선언을 했다. 국가가 보증하는 신뢰가 시장에 퍼지자, 사람들은 무거운 금화 대신 가벼운 종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자 발두르의 상권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결국 경제는 심리학이고, 정치는 그 심리를 시스템으로 만드는 기술이지."

민우는 갓 인쇄된 '발두르 노블' 신권의 향기를 맡으며 미소 지었다. 제국을 지배하는 것은 이제 기사의 검이 아니라, 발두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이 얇은 종이 한 장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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