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34화: 인재 경영의 서막
발두르 영주 성문 앞은 이제 제국의 그 어떤 대도시보다도 활기찬 '미라클 시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은 마도 공학 타워와 정갈하게 포장된 대리석 도로는, 퀴퀴한 먼지가 쌓인 구제국의 낡은 성벽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세계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겉모습 뒤에 숨겨진 전근대적 혈통 중심의 인사 시스템은 강민우의 기획자적 본능을 자극했다.
"아무리 좋은 엔진이 있어도, 운전수가 무능하면 고철일 뿐이지."
민우는 성문 밖까지 길게 늘어선 응시자들의 행렬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민우는 집무실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과거 서울에서 겪었던 치열한 하반기 공채 시즌을 떠올렸다. 삼성의 GSAT이나 LG의 인성 검사처럼, 사람의 '쓰임'을 정량화하고 시스템화하던 그 냉혹하면서도 효율적인 과정들.
"혈통이 아니라 실력으로, 가문이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하라."
이것이 그가 발두르에 도입하려는 새로운 인사 원칙이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리드미컬하게 회전하는 은빛 만년필은 이제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정밀한 스캐너이자, 숨겨진 원석을 발굴하는 탐지봉이었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국정 재정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
- 관리 대상: 발두르 신규 인력 채용 및 인사 시스템(HRM) 구축
- 현재 조직 효율성: 42% (전월 대비 7% 상승)
- 가용 유동 자본금: 413.0백만 골드
- 실무진 지지율: B -> B+
- 오피스 워커의 분석: '구 귀족 세력의 청탁 서신 124건 발견. 전량 반려 처리 및 블라인드 채용 시스템 도입으로 공정성 확보 요망.'
"강 실장!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네! 우리 가문의 방계 혈족이 평민들과 섞여 시험을 치르라니!"
기획실장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보수파의 거두, 연금술사 협회의 고문 로빈이었다. 그의 얼굴은 모욕감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민우는 차분하게 만년필을 내려놓고, 그에게 엑셀로 정리된 역량 평가 시트를 들이밀었다.
"고문님, 저는 귀하의 가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조카가 제출한 연금술 배합 기안서의 오류율이 15%를 상회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입니다. 시장의 인과율은 혈통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대로 그를 채용하면 국영 연금술 공방의 수율은 분기당 200만 골드씩 하락할 것입니다. 그 손실을 고문님의 사재로 보전하시겠습니까?"
로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숫자로 증명된 무능 앞에 그 어떤 명분도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민우가 설계한 '발두르 표준 인성 및 역량 검사'가 통과되었다.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민 기술자들이 귀족의 자제들을 제치고 수석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영웅의 칼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치된 인재들의 합리적인 노동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미라클 시티 발두르의 불빛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은, 낡은 족보를 덮고 새로운 근로 계약서를 펼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