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3화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

3화: 목검 끝의 주인

곽준의 목검 끝이 청랑의 가슴 앞에서 멈췄다.

검끝과 도포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 두 마디였다.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청랑은 그 안에서 곽준의 숨이 바뀌는 소리까지 들었다.

"무릎 꿇어라."

곽준의 목소리는 낮았다.

"지금 사죄하면 잡역방으로 돌려보내 주지."

청랑은 검끝을 보지 않았다.

곽준의 발뒤꿈치는 아주 조금 떠 있었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면 왼발이 바로 따라붙는다. 허리는 목검에 매달리지 않았고 어깨도 검보다 늦지 않았다.

조원과는 달랐다.

저놈은 검을 휘두르는 놈이 아니라 검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놈이었다.

"안 꿇으면?"

"네 다리부터 꺾는다."

청랑은 헛웃음을 삼켰다.

갈비뼈 안쪽은 이미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조원을 흙바닥에 꽂을 때 버틴 힘이 아직 몸속에 남아 있었다. 허벅지는 떨렸고 길게 숨을 들이키면 배 속의 매듭이 꿈틀거렸다.

십단공을 억지로 돌리면 그 매듭은 목까지 타고 올라올 것이다.

이 몸은 긴 싸움을 못 한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으면 더 못 일어난다.

수련장 가장자리로 물러난 제자들이 숨을 죽였다. 조원은 흙바닥에 누운 채 부은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통증보다 수치가 더 짙었다.

청랑은 조원의 발목과 곽준의 목검을 한 번에 보았다.

곽준이 먼저 움직였다.

목검이 비스듬히 뻗었다. 위에서 내려찍는 검이 아니었다. 청랑이 물러날 자리부터 막는 검이었다. 검끝이 오른쪽 어깨를 향하자 청랑은 왼쪽으로 흘렀다.

그쪽에도 발이 있었다.

곽준의 왼발이 조용히 길을 막았다. 청랑이 낮게 파고들 자리를 미리 밟아 둔 발이었다.

목검 끝이 도포 자락을 스치며 흙을 갈랐다.

청랑은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곽준은 급하게 쫓지 않았다. 한 걸음씩 거리를 먹었다. 청랑이 벽에 몰린 들개처럼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그 눈이 거슬렸다.

개장에서도 그런 눈을 본 적이 있다. 줄을 짧게 쥔 놈은 개가 이빨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린다. 덤비면 몽둥이를 내리고 물러서면 밥을 끊는다.

청랑은 이를 악물었다.

"왜 안 오지?"

곽준이 목검을 한 치 낮췄다.

"조원처럼 발목부터 기어들어 올 자신이 없느냐?"

"자신 있는 놈한테만 가는 거야."

청랑이 대답했다.

"너는 손부터 봐야겠네."

곽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번에는 목검이 짧게 흔들렸다. 허리로 들어오는 척하다가 곧장 손목을 친다. 청랑은 팔을 거두며 몸을 낮췄다.

낮아지는 순간 곽준의 무릎이 먼저 접혔다.

퍽.

목검 자루가 청랑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갈비뼈가 안쪽으로 찌그러지는 것 같았다. 숨이 목에서 끊겼다. 청랑은 한쪽 무릎을 흙에 박은 채 두 걸음 밀려났다.

수련장 바깥에서 누군가 짧게 탄식했다.

곽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목검 끝이 다시 내려와 청랑의 목을 겨눴다.

"흙이나 뿌리던 버릇이 여기서도 통할 줄 알았느냐?"

청랑은 옆구리를 감싸지 않았다.

아픈 자리를 손으로 누르면 상대 눈이 그곳에 박힌다. 청랑은 통증이 올라오는 쪽을 버리고 왼손 소매만 아래로 흘렸다.

찢어진 도포 자락이 흙을 끌었다.

곽준의 시선이 그 자락을 쫓았다.

청랑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짧게 잘랐다. 들이쉬고 멈췄다. 뱉고 멈췄다. 배 속의 매듭을 풀려 하지 않았다.

통증 사이로 튀는 힘 하나만 발바닥까지 내렸다.

곽준의 다음 검은 소매를 노리고 왔다.

그는 청랑이 검날 없는 목검을 붙잡으려 들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소매가 걸리면 팔을 끌어당기고 무릎으로 눌러 끝낼 수 있다.

청랑도 그 계산을 기다렸다.

한 발을 일부러 늦게 뺐다.

툭.

목검 끝이 소매를 꿰었다. 도포가 팽팽해지며 청랑의 몸이 검에 묶였다.

"잡았다."

곽준이 팔을 당겼다.

청랑은 목검을 잡지 않았다.

소매가 찢어지는 쪽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발등으로 흙을 세게 차 올렸다.

붉은 흙먼지가 곽준의 눈가를 스쳤다.

아주 작은 틈이었다.

청랑의 오른손이 곽준의 손목 아래를 밀었다. 왼손은 팔꿈치 안쪽을 눌렀다. 뺏는 힘이 아니었다. 곽준의 팔을 꺾을 힘도 남지 않았다.

검끝이 향하는 곳만 한 치 옮겼다.

목검 끝이 조원의 발목 위에서 멈췄다.

조원이 숨을 들이켰다.

곽준의 팔도 굳었다.

청랑은 어깨로 곽준의 팔을 밀어 올린 채 낮게 말했다.

"당겨 봐."

목검은 조원의 부은 발목에서 손가락 한 마디 위에 떠 있었다. 곽준이 힘을 주면 검끝은 청랑이 아니라 조원의 발등으로 떨어진다.

"네 검이 먼저 저놈 발을 쪼갤 거다."

수련장이 조용해졌다.

청랑의 손바닥은 땀으로 미끄러웠다. 조금만 더 누르면 곽준의 손목은 꺾일 수 있었다. 곽준이 손을 비틀어 빠져나가면 청랑의 옆구리에는 다시 목검이 꽂힐 것이다.

둘 중 누구 하나가 무리하면 조원의 발목이 망가진다.

전생의 강구였다면 더 밀었을지도 모른다. 개장에서는 상대 개의 다리가 꺾이는 소리에 판돈이 움직였다. 먹쇠가 피를 흘리며 상대 목덜미를 물었을 때도 놓으라고 말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청랑은 손가락에 힘을 더 주지 않았다.

조원은 적이었다. 그래도 불붙은 우리에 남겨 둘 개는 아니었다.

"검부터 거둬."

곽준의 눈매가 흔들렸다.

청랑은 그 흔들림을 읽었다. 곽준은 조원을 괴롭혔어도 자기 검으로 제자의 발을 베어 버릴 놈은 아니었다. 믿는 게 아니라 계산한 것이다.

"비켜라."

"거두면 비킨다."

긴 숨이 수련장 위로 지나갔다.

곽준이 먼저 손가락 힘을 풀었다. 목검 끝이 조원의 발목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청랑도 팔꿈치에서 손을 뗐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걸음 비틀렸지만 곧바로 발바닥으로 흙을 눌렀다.

넘어지지 않았다.

곽준은 두 걸음 물러났다. 그의 도포 소매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짐승처럼 싸우면서 화산의 제자 행세를 하겠다는 것이냐?"

청랑은 찢어진 소매를 내려다봤다.

"짐승도 자기 발은 본다."

그때 수련장 입구에서 나무 지팡이가 흙을 짚는 소리가 났다.

제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숙여졌다.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들어왔다. 깨끗한 회색 도포 자락은 바람에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는 손등에는 오래된 검흔이 여러 줄 남아 있었다.

"백운자 장로님."

곽준의 표정이 굳었다.

백운자는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조원의 발목 곁에 쪼그려 앉았다. 부은 자리와 흙 묻은 신발을 만져 본 뒤 천천히 일어났다.

그다음에는 수련장 한가운데 남은 발자국을 살폈다.

조원의 뒤꿈치가 밀린 자국.

청랑의 발끝이 깊게 파인 자국.

곽준의 검이 소매를 걸었다가 비스듬히 멈춘 자국.

백운자는 오래된 글자를 더듬듯 흙을 바라보았다.

"누가 설명할 텐가."

곽준이 곧장 앞으로 나섰다.

"잡역 청랑이 사형제에게 흙을 뿌리고 급소를 노렸습니다. 규율을 어긴 폭행입니다. 제가 가르침을 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목검을 들었나."

"예."

"조원의 발은 왜 저리 되었지?"

곽준의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

"청랑이 비겁하게 복사뼈를 걷어찼습니다."

백운자는 청랑을 보았다.

"네가 이 아이의 발을 보았느냐?"

"봤습니다."

"왜 검을 잡지 않았지?"

청랑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장로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부드럽다고 믿을 이유는 없었다. 강구는 우리 문을 열기 전에 늘 개의 눈부터 봤다. 물지 못할 놈인지 끝까지 버틸 놈인지 가르는 눈이었다.

백운자도 지금 청랑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검은 손에 있습니다."

청랑이 말했다.

"사람은 발로 도망가고 발로 덤빕니다. 살려면 손보다 먼저 발을 봐야 합니다."

백운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곽준이 끼어들었다.

"그건 잡다한 난투일 뿐입니다. 화산 검법과는 관계없습니다."

"난투라."

백운자가 곽준의 목검을 가리켰다.

"네 검이 그 아이의 소매에 걸린 뒤 멈춘 자리도 난투인가?"

곽준은 말하지 못했다.

백운자는 청랑의 발자국을 따라 두 걸음 옮겼다. 낮게 파고든 흔적과 옆으로 쓸린 흙을 보며 가느다랗게 숨을 뱉었다.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곽준이 고개를 들었다.

"장로님?"

"아니다. 닮은 자국을 본 적이 있을 뿐이다."

백운자의 시선이 청랑에게 돌아왔다.

"정통 검로는 아니구나. 하지만 검로를 죽이는 법은 안다."

청랑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는 검로를 죽인 적이 없다. 맞기 싫어서 발을 봤고 살아남으려고 손목을 밀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장로의 눈에는 다른 이름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사흘 뒤 낙엽 시험이 있다."

백운자가 말했다.

"목검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베는 외문 선발이다. 십단공으로 기운을 검끝까지 고르게 보내지 못하면 낙엽 하나도 베지 못하지."

청랑의 배 속 매듭이 다시 꿈틀거렸다.

남들은 숨을 길게 모아 검끝에 실을 것이다. 청랑은 그 숨을 따라가면 갈비뼈부터 타 버린다. 목검을 든다고 해서 몸이 갑자기 다른 그릇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백운자가 말을 이었다.

"청랑도 나와라."

곽준이 고개를 들었다.

"장로님. 십단공조차 돌리지 못하는 잡역입니다. 시험 규정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보겠다."

백운자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 몸이 정말 빈 것인지. 아니면 화산이 잊은 어떤 길의 흔적을 물고 있는지."

청랑은 그 뜻을 몰랐다.

다만 사흘이라는 시간이 생겼다는 건 알았다.

사흘이면 아픈 갈비뼈가 조금은 가라앉는다. 사흘이면 수련장 흙이 비가 오면 어떻게 뭉치는지도 볼 수 있다. 사흘이면 곽준의 발이 어느 쪽으로 먼저 나가는지도 더 읽을 수 있다.

"시험 전까지 수련장 가장자리를 써라."

백운자가 말했다.

"누구도 막지 마라."

제자들의 눈이 흔들렸다.

곽준은 목검을 쥔 손을 조용히 조였다. 청랑을 보는 눈이 더 차가워졌다. 낙엽 시험은 외문 제자들이 가장 반듯한 검로를 겨루는 자리다. 거기서 청랑이 흙이나 차며 버틴다면 망신은 더 커질 것이다.

청랑은 그 손을 보며 생각했다.

사흘이면 발 하나는 더 볼 수 있다.

바람이 수련장 위를 훑었다. 누런 낙엽 하나가 날아와 청랑의 발등에 붙었다.

그는 발을 내리지 않았다.

낙엽이 바닥에 닿는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발끝으로 눌러 멈췄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