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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1화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

화산파의 견랑(犬狼)이 되었다

시놉시스

조선 저잣거리 지하 투견판에서 개를 키우고 싸움을 붙이며 살아남았던 투견꾼 강구.

빚쟁이들의 기습으로 투견장의 개들과 함께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순간, 눈을 떠보니 무림 천하삼대검문 중 하나라는 화산파의 하급 잡역 제자 청랑의 몸에 빙의해 있었다.

기혈이 꼬여 화산의 정통 심법도 검법도 터럭만큼 익힐 수 없는 쓰레기 몸.

하지만 강구에게는 전생에 개들을 훈련시키고 싸움을 붙이며 터득한 야생의 감각과 상대의 급소를 짐승처럼 물어뜯는 투견술이 남아 있었다.

족보도 없고 검법도 모른다.

오직 이빨과 주먹 그리고 미친 깡다구로 무림의 고수들을 물어뜯는 화산파 변종 천재의 천하제일 행보가 시작된다.

1화: 개장에 눈뜬 놈

강구는 피 냄새가 돈 냄새보다 정직하다고 믿었다.

돈은 주머니를 바꿔 달면 주인을 배신했다. 피는 달랐다. 흘린 놈과 흘리게 한 놈을 절대 속이지 않았다.

저잣거리 지하 투견장은 그 믿음을 시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무너진 객잔 뒤채 아래로 파고든 흙굴. 기름등 네 개가 천장에 매달렸고 가운데에는 둥근 흙판이 있었다. 그 안에서 늙은 투견 먹쇠가 상대 목덜미를 물고 버텼다.

"물어. 놓는 순간 네 밥그릇도 나간다."

강구가 낮게 중얼거리자 먹쇠의 앞발이 흙을 긁었다. 상대 개가 몸을 틀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목가죽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판돈을 건 놈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강구는 웃지 않았다.

이긴 판에서 웃는 놈은 다음 판에 속았다. 그는 사슬을 감아쥔 손으로 먹쇠의 호흡을 보고 다른 손으로 판돈 궤짝을 자기 발치에 끌어당겼다.

그때 출구 쪽 그림자가 이상하게 흔들렸다.

빚쟁이들이었다.

평소 같으면 술 냄새를 풍기며 욕부터 했을 놈들이 조용했다. 몽둥이 대신 짧은 칼을 들고 있었다. 뒤에는 낯선 사내 둘이 더 섞여 있었다. 저잣거리 건달치고 발소리가 너무 죽어 있었다.

"구 형님."

앞장선 놈이 이를 드러냈다.

"오늘은 계산 좀 합시다."

"계산은 판 끝나고 하는 거다."

강구는 궤짝 뚜껑을 발로 밀어 닫았다.

"칼부터 꺼낸 놈이 장부를 아냐?"

대답 대신 석궁살이 날아왔다.

강구는 상체를 비틀었다. 살촉이 어깨를 긁고 지나갔다. 살갗이 찢긴 통증보다 먼저 뜨거운 마비가 번졌다.

독.

그걸 알아차리는 데 한 호흡이면 충분했다.

"개장에 독을 들고 와?"

강구는 먹쇠의 사슬 고리를 풀었다.

"먹쇠야."

늙은 개의 귀가 섰다.

"밥값 해라."

먹쇠가 울부짖으며 뛰쳐나갔다. 가장 앞에 있던 빚쟁이가 팔을 들어 막았지만 먹쇠의 이빨은 팔목을 지나 얼굴로 올라갔다.

강구도 움직였다.

그는 판돈 궤짝 뚜껑을 방패처럼 들어 첫 칼을 막았다. 나무판이 갈라지는 순간 발뒤꿈치로 상대 무릎 안쪽을 찍었다. 무릎이 접히고 사내의 몸이 낮아졌다.

강구는 그 머리채를 잡아 흙판 모서리에 찍었다.

딱.

호두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숫자가 많았다.

옆구리에 칼이 박혔다. 등 뒤에서 몽둥이가 정수리를 때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한 놈의 발목을 밟고 몸을 틀었다. 발목뼈가 바깥으로 밀리며 비명이 터졌다.

"내 개들 건드린 놈은 숨 쉬고 못 나간다."

입에서는 피가 나왔다.

낯선 사내 하나가 강구의 가슴을 걷어찼다. 움직임이 건달이 아니었다. 발끝이 갈비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강구는 뒤로 넘어지며 상대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놓치지 않았다.

손톱이 찢어져도 잡았다. 입으로라도 물 생각이었다.

그 순간 먹쇠가 마지막으로 짖었다.

울음이라기보다 경고였다. 누군가 투견장 안쪽 우리에 불을 질렀다. 갇힌 개들이 철창을 물어뜯으며 날뛰었다.

강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그는 일어나려 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독이 심장까지 기어올랐다.

천장이 멀어졌다. 기름등 불빛이 물속에 잠긴 달처럼 흔들렸다. 먹쇠의 울음소리도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강구는 그 소리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흙이 아니었다.

젖은 장작 냄새.

묵은 약초 냄새.

그리고 곰팡이 핀 이불의 냄새.

강구는 눈을 떴다.

천장은 낮지 않았다. 굴 천장이 아니라 검게 그을린 서까래였다. 기름등 대신 창호지 너머로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단도가 없었다.

사슬도 없었다.

대신 거친 삼베 허리띠와 너덜너덜한 도포 자락만 잡혔다. 손도 달랐다. 굵은 굳은살은 남아 있었지만 손가락이 길고 가벼웠다. 투견장 바닥을 구르며 굳어진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일어났냐?"

누군가 옆구리를 발끝으로 찼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강구는 그 발목을 잡고 안쪽으로 비틀었다. 힘은 생각보다 약했다. 그래도 각도는 정확했다. 상대의 발목이 꺾이며 비명이 터졌다.

"악! 청랑 이 미친 놈아!"

청랑.

그 이름이 머릿속 어딘가를 긁었다.

강구는 몸을 일으키려다 숨을 삼켰다. 갈비뼈가 아팠다. 등과 어깨에는 맞은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칼에 찔린 상처는 없는데 온몸이 남의 매를 대신 맞은 것처럼 쑤셨다.

흐린 기억이 흙탕물처럼 올라왔다.

화산파.

뒤채.

물동이.

청랑이라는 잡역 제자.

십단공을 익히지 못해 외문에서도 밀려난 폐품.

어제는 장작을 늦게 날랐다는 이유로 사형들에게 맞고 계단 아래로 굴렀다.

강구는 입술 안쪽을 씹었다.

통증이 진짜였다. 꿈은 아니었다.

"여긴 어디냐."

발목을 붙잡힌 잡역 제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머리까지 갔냐? 화산이다! 네놈 무덤 될 화산!"

화산.

강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붉은 절벽과 소나무가 보였다. 멀리서는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도포 입은 제자들이 줄지어 수련장 쪽으로 움직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같은 폭으로 걷는 꼴이 우스웠다.

목줄을 찬 개들이 줄 맞춰 밥그릇 앞으로 가는 것 같았다.

강구는 발목을 놓았다.

잡역 제자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났다. 겁먹은 눈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밟는 데 거리낌 없던 놈의 눈이 금세 저렇게 변했다.

강구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물릴 줄 몰랐던 놈의 눈.

"청랑!"

문이 거칠게 열렸다.

키 큰 외문 사형이 들어왔다. 허리에는 목검이 걸려 있었고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아침 수련에 또 빠질 셈이냐? 십단공 구결도 못 외우는 놈이 잠까지 퍼질러 자?"

강구는 대답 대신 자기 배를 눌렀다.

단전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몸의 주인이 수없이 들었을 말이었다. 기를 모으는 그릇. 무공의 시작. 화산 제자라면 누구나 밟는 첫 계단.

그릇은 비어 있었다.

비었다기보다 깨져 있었다.

"밥은 주고 굴리냐?"

외문 사형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라?"

"굶긴 개는 훈련 안 된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외문 사형은 한 박자 늦게 멱살을 잡았다.

"말버릇부터 고쳐야겠구나."

강구는 끌려가며 저항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길이었다. 이곳이 어떤 개장인지 알아야 했다. 누가 주인 행세를 하는지, 물그릇이 어디 있는지, 어느 철창이 허술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수련장은 넓었다.

붉은 흙이 고르게 다져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목검이 꽂혀 있었다. 제자들은 줄을 맞춰 앉아 같은 호흡을 반복했다.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아래로 누른 뒤 위로 끌어올렸다.

외문 사형이 강구의 등을 밀었다.

"앉아라. 오늘도 기혈이 막혔다느니 어지럽다느니 헛소리하면 곤장이다."

강구는 책상다리를 했다.

구결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이 몸이 외우고 또 외웠던 말이었다.

십단공.

단전에서 시작한 기운을 열 단계로 나누어 쌓고 펼치는 화산의 기본 심법.

강구는 시키는 대로 숨을 들이쉬었다.

곧장 배 속이 뒤틀렸다.

마치 철사 뭉치를 삼킨 채 누군가 안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기운이 쌓이기는커녕 사방으로 긁혔다. 갈비뼈 아래가 뜨거워지고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투견장에서도 다친 개에게 무리한 훈련을 시키면 이렇게 됐다. 뼈가 틀어진 놈에게 똑같은 자세를 강요하면 근육이 찢어지고 숨이 막혔다.

이 몸은 그런 몸이었다.

정해진 길로 기운을 보내면 몸이 스스로 물어뜯었다.

"역시 폐품이군."

누군가 작게 웃었다.

"십 년을 앉혀 놔도 모기만 한 내공도 못 만들 놈이 왜 아직 화산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강구는 눈을 떴다.

분노보다 먼저 계산이 올라왔다.

이 몸은 약하다. 오래 버티는 힘도 없다. 정통 심법은 독이다. 검을 잡아도 남들처럼 휘두를 수 없다.

그렇다면 버릴 건 버리면 됐다.

그는 자세를 풀었다.

무릎을 세우고 발목을 천천히 돌렸다. 오른쪽 발목이 뻑뻑했다. 어제 계단에서 구른 탓이었다. 그는 발끝을 바깥으로 열고 종아리 근육을 눌렀다.

어깨를 낮췄다.

목을 좌우로 꺾었다.

허리를 세우지 않고 낮게 접었다.

투견장 바닥에 던져진 개가 다시 일어날 때 쓰던 움직임이었다. 멋은 없었다. 대신 급소를 감추고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었다.

숨도 바꿨다.

길게 모으지 않았다. 짧게 끊고 짧게 뱉었다. 배 속의 꼬인 기혈을 억지로 길에 넣지 않고 통증 사이로 튀는 힘만 잡았다.

한순간 손끝에 열이 모였다.

내공이라 부를 만한 건 아니었다. 검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발바닥이 흙을 움켜쥐는 느낌이 살아났다. 몸이 앞으로 튀려는 순간을 알 수 있었다.

강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네."

그는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꽃놀이 검은 못 춰도 물 수는 있겠어."

주변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앞줄에 앉아 있던 외문 제자 하나가 돌아보았다. 턱이 뾰족하고 눈빛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목검을 옆에 둔 자세가 제법 반듯했다.

"저 야만적인 꼴은 뭐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의 수련장을 개판으로 만들 셈이냐, 청랑?"

강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먼저 발을 봤다.

오른발이 반 치 앞에 있었다. 발끝이 바깥으로 열려 있고 왼쪽 무릎은 안쪽으로 조금 무너져 있었다. 목검을 뽑으면 첫 동작은 위에서 아래로 긋는 허세 섞인 정면 초식일 것이다.

그런 놈은 발목부터 죽이면 됐다.

강구는 손바닥으로 흙을 쓸어 쥐었다.

흙알이 손금 사이에 박혔다.

개장은 바뀌었다. 냄새도 주인도 목줄도 전부 낯설었다. 그래도 원 안에 들어온 놈이 먼저 물리는 법은 어디서든 같았다.

외문 제자가 목검을 잡았다.

강구는 낮게 웃었다.

"그래."

그는 턱으로 흙판을 가리켰다.

"들어와 봐라. 네가 검객인지 그냥 털 많은 밥그릇인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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