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3화

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

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

3화: 수리비보다 싼 화물은 없다

페른은 공방 앞까지 따라온 아린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검수 제외 업체가 왜 여기 있습니까?”

“검수 제외가 아니라 반려됐습니다.”

아린이 손에 묻은 쇳가루를 털었다.

“서류를 읽을 줄 알면 차이를 알 텐데.”

페른의 눈길이 한결에게 옮겨 갔다. 한결은 가방에서 원본 의뢰서와 빈 검수 기록지를 꺼냈다. 제7방파제 쪽에서 밀려온 안개가 종이 끝을 눅눅하게 적셨다.

“현장 장비 확인 뒤 작업을 시작한다고 바뀐 조항이 있습니다. 확인자는 조합 서기 페른. 맞습니까?”

“그 조항은 단순한 절차입니다. 하급 의뢰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쓸 이유는 없지요.”

“그럼 서기님 이름으로 단순 절차를 남기면 됩니다.”

한결은 기록지 첫 줄을 가리켰다. 확인자 칸은 비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지급 장비 수량과 침수 깊이, 작업 시작 시각을 적는 칸이 이어졌다.

페른이 펜을 받지 않았다.

“당신들이 지연시키는 동안 수위가 오르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기록 없이 들어가서 사고가 나면 책임은 더 간단해지겠죠. 조수갈매기에게 전부 넘어갈 테니까.”

세아가 조용히 기록지를 들어 올렸다.

“이의 제기란에는 제가 서명할게요. 장비 규격과 수위 확인을 마치기 전에는 작업 시작을 승인하지 않는다고요.”

페른의 시선이 세아의 빈 약병 주머니에 잠깐 닿았다. 약한 쪽을 골라 압박하려던 눈이었다. 그러나 세아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면 해체 도장을 찍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 전까지 저희가 의뢰를 포기했다는 기록도 없을 겁니다.”

페른은 이를 악물었다. 결국 펜을 받아 확인자 칸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먹빛이 번지기 전에 한결이 기록지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이제 현장으로 가죠.”

제7방파제 아래는 부두의 다른 곳보다 바람이 거셌다. 방파제 돌틈마다 검은 해초가 붙어 있었고 파도가 물러날 때마다 녹슨 쇠사슬이 돌을 긁었다.

침수 창고 앞에는 녹색 천막 하나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 밑에 여과통 세 기와 잠수 갈고리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물에 젖은 나무 상자는 이미 바닥이 불어 터졌고 여과통의 황동 띠에는 소금이 흰 껍질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페른이 턱으로 장비를 가리켰다.

“지급품은 전부 있습니다. 확인도 끝났으니 들어가십시오.”

미르카가 새 팔 보호구의 관절을 한 번 굽혔다. 황동이 부드럽게 접히자 그녀의 표정이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이걸 물에 넣기 전에 확인해야 할 건 없어?”

“있습니다.”

한결은 가장 큰 여과통의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자 시야 가장자리에 붉은 글자가 떠올랐다.

[미반영 여과막 교체비: 31골드]
[미반영 황동 격자 보강비: 17골드]
[검수 회피 손실: 86골드]

관자놀이가 쑤셨다. 한결은 손을 떼지 않았다. 여과통 옆면을 따라가자 갈라진 납땜 자국이 손끝에 걸렸다. 겉면은 멀쩡해 보였지만 안쪽 격자는 염수에 오래 먹혀 있었다.

아린이 렌즈를 내리고 균열을 들여다봤다.

“통째로 고치려면 격자를 전부 갈아야 해. 여과막도 새로 넣고. 이건 창고에 밀어 넣을 물건이 아니다.”

페른이 팔을 휘저었다.

“침수 창고에서 쓰는 소모품입니다. 닳으면 교체하면 되지요.”

“교체할 물건이 없으니까 이걸 내민 거지.”

미르카가 여과통을 발끝으로 건드렸다. 통 안에서 탁한 물이 철썩거렸다.

“수리비는?”

아린은 잠깐 계산하더니 손가락 두 개를 폈다.

“통 하나에 오십 골드 가까이 든다. 격자와 막만 바꿔도 그래. 그런데 안쪽 공명핵은 살아 있어.”

한결은 의뢰서 뒷면의 화물값을 확인했다. 여과통 한 기의 회수값은 스무 골드였다. 수리비가 두 배가 넘었다.

“고치지 않겠습니다.”

페른이 비웃었다.

“그럼 맨손으로 물을 퍼내겠다는 겁니까?”

“분해합니다.”

바람 소리만 방파제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한결은 여과통 뚜껑의 볼트를 가리켰다.

“공명핵 하나는 배수 갈고리에 연결합니다. 물을 여과하는 대신 바닥의 찌꺼기를 끌어낼 수 있게요. 황동 격자는 미르카 씨 팔 보호구에 덧대서 갈고리 줄을 당길 때 손목이 꺾이지 않게 합니다. 남은 여과망과 띠는 회수품으로 분리합니다.”

“그걸 누가 삽니까?”

세아가 물었다.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고개는 이미 장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아린 씨 공방이요. 다음에 같은 부품을 구하려면 새로 제련하는 것보다 이게 낫습니다.”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헐값이면 안 산다.”

“헐값에 넘기지 않습니다. 검수 기록에 부품 회수와 상태를 적습니다. 가격은 의뢰가 끝난 뒤 공방과 정산합니다. 이 기록은 조합이 수리비를 받아 내려고 장비를 멀쩡했다고 바꾸지 못하게 하는 증거입니다.”

페른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급품을 멋대로 해체하면 파티가 변상해야 합니다.”

“수리 불가 장비를 작업에 투입해서 사고가 나면 조합이 변상합니까?”

한결은 기록지를 다시 펼쳤다.

“지금 여기서 수리 가능 여부를 적으십시오. 아린 바크가 기술 의견을 내고 서기님이 확인자로 남으면 됩니다. 분해가 책임을 없애는 건 아닙니다. 누가 어떤 상태에서 이 판단을 했는지 남기는 겁니다.”

“나는 그자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서기님이 직접 격자를 살피시죠.”

페른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젖은 바닥 가까이 몸을 숙이지 않았다. 바닷바람에 옷자락이 닿는 것조차 싫어 보였다.

아린은 말없이 송곳을 꺼냈다. 황동 띠를 두드리자 얇은 소리 대신 물 먹은 나무 같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는 송곳 끝을 균열에 밀어 넣었다. 손목을 비틀자 격자 조각 하나가 검은 가루를 흘리며 떨어졌다.

세아가 숨을 들이켰다.

“저 상태로 물속에 넣으면요?”

“압력이 걸리면 막이 안쪽으로 말린다. 사람 손이나 팔이 끼면 빼기 어렵지.”

미르카의 물갈퀴가 잠깐 굳었다. 그녀는 곧 손을 폈다.

“분해하는 쪽으로 써.”

페른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수행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내 팔이 끼는 장비가 어떤 건지 내가 말하는 거야.”

한결은 빈칸 위에 펜을 올렸다.

“수리 불가. 부품 회수 후 현장 대체 조립. 확인자 서명.”

페른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는 아직 멀었지만 바람이 그쪽에서 불어왔다. 그가 서명하지 않으면 작업 시작도 늦어진다. 서명하면 지급품 결함을 인정한 기록이 남는다.

결국 페른은 펜을 낚아채 이름을 갈겨썼다.

아린이 곧장 여과통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자 안쪽에서 푸른빛 공명핵이 드러났다. 표면은 흐렸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아린은 얇은 선을 연결해 잠수 갈고리 손잡이에 감았다.

“핵을 오래 돌리진 마. 물을 밀어내는 힘도 약하고 과열되면 갈고리까지 버린다. 바닥에 가라앉은 걸 끌어오는 데만 써.”

미르카가 황동 격자를 덧댄 보호구를 살폈다.

“내가 들어가서 줄을 걸면?”

“무릎 아래까지만.”

한결이 말했다.

“갈고리가 걸리는지 확인하고 바로 나옵니다. 세아 씨는 여기서 시간과 수위를 기록해 주세요. 아린 씨는 줄 상태를 봐 주시고요.”

“당신은?”

미르카의 질문에 한결은 창고 입구를 바라봤다. 반쯤 열린 철문 안쪽은 검은 물로 차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등불은 꺼진 지 오래였고 물결이 문턱을 넘을 때마다 안에서 짧은 쇳소리가 났다.

“페른 씨와 기록을 남깁니다.”

“나를 감시하겠다는 겁니까?”

“서기님이 빠지면 확인자 칸이 비니까요.”

미르카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쾌한 기색이 오래 남지 않았다.

그녀가 물가로 내려갔다. 새 부력끈이 허리를 받쳤고 보호구의 황동 격자가 갈고리 줄을 단단히 잡았다. 검은 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르자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세아가 즉시 말했다.

“수위, 종아리 중간. 시작 시각 기록.”

페른은 기록지를 내려다보다가 마지못해 적었다.

미르카가 갈고리를 물속으로 밀었다. 공명핵이 희미한 푸른 빛을 냈다. 처음에는 진흙만 끌려 나왔다. 그 뒤로 끊어진 밧줄과 찢어진 장갑 하나가 따라왔다.

그리고 갈고리가 무언가에 걸렸다.

미르카의 팔이 앞으로 당겨졌다. 보호구가 버텨 주었지만 물속에서 묵직한 힘이 반대로 줄을 잡아당겼다.

“당기지 마십시오.”

한결이 외쳤다.

미르카는 이를 악문 채 줄을 조금 놓았다. 물살이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창고 안쪽에서 검은 물이 입구 쪽으로 밀려 나왔다가 곧 반대로 빨려 들어갔다.

아린이 숨을 삼켰다.

“배수구가 아니다. 안쪽에서 물을 잡고 있어.”

미르카가 허리를 낮췄다. 물 아래를 더듬던 손이 멈췄다.

“바닥에 고리가 있어. 창고 안쪽으로 쇠사슬이 이어져.”

페른의 펜 끝이 기록지 위에서 멎었다.

한결은 그 작은 멈춤을 놓치지 않았다.

“서기님. 수위 변화 시각도 적으십시오.”

“그런 건 작업 기록이 아닙니다.”

“현장 조건입니다.”

한결이 낮게 말했다.

“누군가 사고가 난 뒤에 기록을 고치려면 가장 먼저 지울 내용이기도 하고요.”

페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시각을 적었다.

그 순간 창고 안쪽에서 쇠사슬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텅. 텅. 텅.

미르카가 고개를 들었다. 물은 이제 종아리를 넘어 무릎 쪽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한결의 머릿속에서 현실의 어떤 회의실이 스쳤다. 누군가의 넥타이 색과 창밖 빗소리만 남고 회의 제목은 비어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 아니었다.

창고 안쪽에 누군가가 숨겨 둔 물길이었다.

“미르카 씨. 줄을 고정하고 나옵니다.”

“안쪽을 봐야 해.”

“장비와 퇴로를 먼저 만들고 들어갑니다. 당신이 나갈 길도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미르카는 한결을 잠깐 노려봤다. 그러다 줄을 방파제 고리에 묶었다.

“그 말. 기록에도 남겨.”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비보다 비싼 화물은 고쳐서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쓸 수 있는 부분을 남기고 위험한 부분은 기록으로 묶어야 했다.

하지만 창고 안쪽의 쇠사슬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검은 물이 다시 한 번 문턱을 넘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