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시놉시스
천천마교의 1대 천마로서 강호를 평정하고 생사의 경지를 넘어 지구로 귀환한 독고현.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과, 홀로 남겨진 일곱 살짜리 조카 독고하은뿐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조카를 평범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한 독고현은, 동네 상점 겸 생활 민원 매칭 서비스인 '천마 플랫폼' 앱을 출시한다. 하지만 조카의 초등학교 학부모 상담을 준비하던 중, 지역 학교 자치회와 골목 상권의 던전 부산물 유통을 독점하며 횡포를 부리는 대형 길드 '골드 크레센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내 조카의 가정통신문에 흙탕물을 묻히는 놈들은 마교의 적으로 간주한다." 학부모 상담 가던 천마의 매서운 영수증 정산과 함께, 조카를 위한 눈물겨운 육아기 겸 현대 플랫폼 유통 정복기가 시작된다!
1화: 귀환 천마와 일곱 살 조카
회색빛 콘크리트 빌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서울의 변두리, 낙도구의 어느 골목길.
독고현은 낡은 다세대 빌라의 녹슨 계단을 밟고 올라서며 주머니 속의 종이를 매만졌다.
백 년. 이세계라 불리는 중원 강호에서 피를 흘리며 살아남은 세월이었다. 마교를 평정하고 절대자의 반열에 올라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그를 맞이한 것은 차가운 바람뿐이었다.
계단을 올라 302호 앞에 서자,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철제 현관문은 원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였고, 그 위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경고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최후통고: 무단 점유 및 채무 불이행에 따른 압류 예고]
[송달문: 채권 추심 최고서]
그 수많은 경고장 사이에서 독고현의 시선을 멈추게 한 것은, 구청에서 보낸 한 장의 통지서였다.
[사망자 독고민에 대한 상속인 통지]
"……민이 네놈이 정녕 죽었단 말이냐."
현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강호에서 수천, 수만의 적을 베어 넘길 때도 흔들리지 않던 심장이 잘게 떨려 왔다. 돌아오면 따뜻하게 밥 한 끼 먹이며 미안했다 말하려 했던 유일한 동생이었다. 그 동생이 차가운 던전의 구석에서 목숨을 잃고, 빚더미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종이 한 장에 적혀 있었다.
부스럭.
현관문 너머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
비록 차원을 넘어오며 내공의 태반이 흩어졌으나, 귀를 기울인 현의 감각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문안에 누군가 있었다. 아주 작고, 불안하게 떨리는 숨결.
현은 손을 뻗어 현관문을 잡았다. 도어락은 이미 부서져 수동 열쇠로 잠겨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현이 손가락에 진기를 미세하게 실어 실린더를 툭 건드리자, 찰칵 하는 가벼운 파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끼이익-.
어둡고 가라앉은 공기가 현관 밖으로 밀려 나왔다.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가구들은 대부분 압류 딱지가 붙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거실 구석에는 하얀 국화 몇 송이와 동생의 낡은 사진이 놓인 조촐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민아……."
현이 방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싱크대 밑의 좁은 틈새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서걱.
"더, 오지 마세요! 경찰 부를 거예요!"
자그마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계심은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현이 고개를 돌려 싱크대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겨우 일곱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몸을 웅크린 채 서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부엌에서 쓰는 작은 과도가 들려 있었고, 얇은 팔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땋아 내린 머리칼, 커다란 눈망울. 동생의 어린 시절을 빼다 박은 얼굴이었다.
"네가…… 하은이더냐?"
현의 입에서 고풍스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
강호에서 백 년 동안 길들여진 말투는 지독하게도 낯설게 부서졌다. 현은 급히 살기를 거두고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누구세요? 아빠 친구예요? 아니면 돈 받으러 온 나쁜 아저씨들이에요?"
하은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아이는 결코 과도를 내려놓지 않았다.
일곱 살짜리 아이가 세상에 홀로 남겨져 겪었을 두려움이 그 작은 어깨에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현의 가슴 한구석이 칼로 저미듯 아파 왔다.
"본좌는…… 아니, 이 사람은 독고현이라 한다. 네 아비인 독고민의 형님이지. 즉, 네 삼촌이다."
"삼촌……?"
하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거짓말. 아빠는 삼촌 같은 거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말투가 왜 그래요? 꼭 텔레비전에 나오는 할아버지 같아요."
"말투가 이상한 것은…… 오랫동안 먼 곳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거짓이 아니다. 내 비록 네 아비가 살아 있을 때 곁을 지키지 못했으나, 이제라도 너를 지키기 위해 돌을 깨고 돌아왔느니라."
현의 진지한 눈빛과 따뜻한 기운이 방 안에 퍼져 나가자, 하은의 손에 힘이 조금씩 풀렸다.
아이의 뛰어난 본능이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듯했다. 과도를 들고 있던 하은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진짜…… 삼촌 맞아요? 나 고아원에 안 보내요?"
"고아원이라니. 그런 곳에는 결코 보내지 않는다. 이 독고현이 살아 있는 한, 하늘이 무너져도 네 깃털 하나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현이 부드러운 진기를 뻗어 하은의 몸을 감싸 안았다. 차가웠던 하은의 손끝에 따스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은이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현의 품에 안겼다. 일곱 살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가 어두운 거실을 채웠다. 현은 아이의 땋은 머리를 살며시 쓸어내리며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다시는 혈육을 잃지 않겠다. 이 아이의 평화로운 일상을 반드시 지켜내겠노라고.
쿵! 쿵! 쿵!
그 순간, 얇은 현관문이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야! 안에 있는 꼬맹이 년아! 문 열어! 숨어 있어 봐야 소용없어!"
거칠고 상스러운 고함이 정적을 깨뜨렸다.
하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아이의 전신이 눈에 띄게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삼촌…… 나쁜 아저씨들이에요. 맨날 문 두드리고 아빠 빚 갚으라고……."
"걱정 말아라."
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가운 묵빛으로 물들었다.
조카를 품에 안은 온화한 삼촌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호를 지배하던 절대자, 천마의 서늘한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현은 하은을 거실 소파에 앉히고 귀를 살포시 막아주었다.
"방에 들어가 귀를 막고 있거라. 금방 귀찮은 벌레들을 치우고 오마."
"삼촌, 현대 사회에서는 폭력을 쓰면 경찰에 잡혀가요……."
하은이 걱정스러운 듯 삼촌의 소매를 붙잡고 속삭였다. 일곱 살짜리 아이답지 않게 조숙한 조언이었다. 현은 헛웃음을 삼키며 조카의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상도(商道)를 어긴 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영수증을 청구할 뿐이다.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거라."
현이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바깥에서는 문손잡이를 강제로 부수려는 듯 철컥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현이 도어락의 잠금을 풀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억!"
문을 힘껏 밀치려던 덩치 큰 사내 하나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들의 뒤에는 문신을 잔뜩 새긴 사채업자 세 명이 서 있었다. 낙도구 일대의 영세 상인들과 던전 헌터들을 등쳐먹기로 유명한 불법 사채업 단체인 '광풍 상사'의 해결사들이었다.
"뭐야, 이 허우대만 멀쩡한 놈은? 꼬맹이 친척이냐?"
앞장선 대머리 사내가 이빨을 드러내며 껌을 씹었다.
"잘 만났다. 독고민이가 던전에서 뒈지기 전에 우리한테 빌려 간 원금이 삼천만 원이다. 연체이자까지 합쳐서 지금 당장 오천만 원 내놔. 없으면 저 기집애 신체 포기 각서라도 쓰든가, 아니면 이 집 당장 비워라."
현은 사내들이 내미는 낡은 계약서 서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법적 최고 이자율을 아득히 초과한 사채 장부였다.
"상거래의 기본은 신용이거늘. 네놈들은 터무니없는 이율로 사람을 핍박하니, 이는 상도를 어긴 짓이다."
"상도? 하하! 이 새끼가 어디 아침부터 사극을 찍고 자빠졌어? 야, 줘패서 정신 차리게 해라."
대머리의 명령에 덩치 큰 부하 하나가 주먹을 쥐고 현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하지만 주먹이 현의 코앞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딱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툭.
현이 부하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챈 것이었다. 사내는 주먹을 빼내려 했으나, 현의 손은 마치 강철로 만든 집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 컥! 으아아악!"
현이 손가락에 아주 미세한 진기를 흘려보내자, 사내의 손목 관절이 기괴한 각도로 굳어지며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사내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가 각성자였나?! 다 같이 쳐!"
남은 두 명이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며 달려들었다.
현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손을 뻗어 현관문 옆의 쇠로 된 튼튼한 방화문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
콰득-.
두꺼운 철제 손잡이가 현의 손안에서 찰흙처럼 찌그러지더니, 이내 고운 쇳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후수수 떨어졌다.
"……?!"
단검을 쥐고 돌진하던 사내들의 발걸음이 돌처럼 굳어졌다.
맨손으로 철을 으깨어 가루로 만드는 악력. 그것은 단순한 각성자의 힘을 넘어선 괴물 같은 무력이었다.
현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현의 전신에서 백 년 동안 강호를 지배했던 천마의 살기가 아주 미세하게 뿜어져 나왔다.
스산한 기운이 거실 복도를 감싸 안았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복도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 차가워졌고, 사내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포식자 앞에 선 쥐새끼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숨이 막혀 턱턱 막히는 호흡 곤란 속에서, 그들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본좌는 빚을 떼먹는 파렴치한이 아니다."
현이 사내들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허나 사리(私利)를 위해 법을 어기고 혈육을 겁박한 죄는 가볍지 않다. 네놈들이 들고 있는 그 허저한 계약서의 권리는 이 자리에서 소멸한다."
현이 사내의 손에서 빚 문서를 빼앗아 손바닥에 올렸다. 손을 살짝 쥐었다 펴자, 종이 계약서는 순식간에 불꽃도 없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히, 히익……!"
"돌아가 네놈들의 수장에게 전하거라. 독고민의 채무는 이 독고현이 인수했다. 합법적인 법적 최고 이율에 맞춘 원리금 계산서를 들고 다시 찾아오너라. 만약 한 푼이라도 억지를 부리거나, 내 조카의 눈에 다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면……."
현이 찌그러진 철제 문틀을 손끝으로 가볍게 튕겼다.
댕-.
맑은 파동이 빌라 전체를 흔들며 사내들의 귓전을 때렸다. 사내들은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는 너희 상단(商團)의 삼족을 멸할 것이다. 썩 꺼지거라."
"끄응…… 살려주세요!"
사채업자들은 부하를 부축할 겨를도 없이 네 발로 기어 복도 계단을 굴러 떨어지듯 달아났다. 비명 소리가 멀어지자, 빌라 복도에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현은 차갑게 식어 있던 눈빛을 풀고 한숨을 쉬었다.
"현대 사회라…… 법이라는 테두리가 참으로 번거롭구나."
그가 거실로 돌아오자, 하은이 소파에서 내려와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 방금 그 사람들 다 도망갔어요?"
"그래. 다행히 말이 통하는 자들이더구나. 신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더니 스스로 물러갔단다."
하은이 찌그러진 현관문 문틀과 가루가 된 손잡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삼촌, 저거 마술이에요? 아니면 삼촌 S급 헌터예요?"
"헌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공을 부리는 사소한 수법일 뿐이다."
현이 하은의 머리를 쓰다듬자, 하은은 신기한 듯 삼촌의 손을 만져보았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멸망시킬 듯한 살기를 뿜어내던 강철 같은 손이었지만, 조카의 뺨등에 닿은 손길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꼬르륵-.
하은의 배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울렸다. 아이는 얼굴이 빨개져 배를 움켜쥐었다.
"배가 고프더냐?"
"네…… 실은 어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먹은 게 전부예요."
현의 가슴이 다시 쓰려 왔다. 이 어린것을 굶기다니, 강호의 천마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 당장 진수성찬을 마련해 오마. 이 근처에 주막이 어디 있느냐?"
"요즘은 주막 같은 거 없어요. 주방에 라면 있는데…… 삼촌 밥할 줄 알아요?"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밥이라 함은,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는 것 아니더냐?"
"에이, 장작이라니요. 요즘은 가스레인지 켜서 냄비에 끓여요. 삼촌, 설마 가스레인지 켤 줄 몰라요?"
하은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천하의 천마 독고현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혔다.
"가스…… 레인지라? 불을 다루는 영물(靈물)인가?"
"휴, 삼촌이랑 살려면 내가 고생 좀 하겠네."
일곱 살짜리 조카가 어른스러운 한숨을 푹 쉬며 주방으로 향하자, 현은 어색하게 그 뒤를 따랐다.
피비린내 나는 무림에서 돌아온 천마의 첫 현대 생활은, 차가운 주방의 가스레인지 조절 밸브 앞에서 큰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