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맹주가 훈수를 너무 잘 둠

2화: 숨부터 고쳐라
단우진은 숨을 들이마시려다 멈췄다.
갈비뼈 아래가 찢어질 듯 아팠다. 피 냄새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석굴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은 빗물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들이마시지 말랬지. 먼저 내보내라.〕
"내보낼 숨도 아깝습니다."
〔그 말을 할 힘으로 세 번 뱉어라.〕
우진은 석벽을 짚고 몸을 웅크렸다. 왼쪽 옆구리를 누른 손바닥이 미끄러웠다.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입술을 가늘게 열고 묵은 숨을 길게 뱉었다.
첫 번째는 기침으로 끝났다.
두 번째는 갈비뼈가 덜컥거렸다.
세 번째에야 아랫배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거기다. 배를 부풀리지 말고 아래를 조여라. 상처 쪽으로 기운을 몰지 마. 지금 네 기맥은 물 새는 항아리다. 붓는 족족 바닥으로 빠진다.〕
"항아리도 금이 가면 값을 깎아 주던데요."
〔네놈은 항아리가 아니라 체다.〕
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욕은 들을수록 정확했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숨을 비웠다. 정운휘의 목소리는 그가 미처 느끼지 못한 몸속의 감각을 하나씩 집어 냈다.
왼쪽 어깨 힘을 빼라.
턱을 다물지 마라.
발가락을 오므리지 마라.
쓸데없이 전신에 힘을 주던 습관이 하나씩 들켰다. 우진은 억울했지만 반박할 틈도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단전 아래에 차가운 기운이 한 점 맺혔다. 평소라면 곧장 흩어졌을 감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그 점이 손톱만큼씩 단단해졌다.
우진의 눈이 커졌다.
"안 도망가네요."
〔도망갈 길을 네가 열어 주지 않았으니 그렇지. 기운이 약한 게 아니다. 네 몸이 기운을 붙들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럼 저는 둔재가 아닙니까?"
〔그 말은 아직 이르다. 호흡 세 번 맞춘 걸로 천재 행세부터 하지 마라.〕
우진은 피식 웃었다. 웃음이 나자 옆구리가 다시 쑤셨지만 조금 전처럼 숨이 끊기지는 않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떼자 옆구리에서 새던 피가 다시 손가락 사이로 배어 나왔다. 붙잡은 기운 하나로 상처가 낫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작은 감각을 흩뜨릴 수도 없었다.
우진은 본능적으로 진기를 상처 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멈춰라.〕
정운휘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 기운을 거기로 몰면 갈비 아래에서 다시 터진다. 네 몸은 막힌 데를 뚫을 때도 순서가 있다. 지금은 새지 않게 입구만 닫아 두는 거다.〕
"기운도 피처럼 새는 겁니까?"
〔피보다 성가시게 샌다. 네가 검을 쥐면 손목으로 빠지고 겁먹으면 어깨로 빠지고 허세 부리면 입으로도 빠진다.〕
"입으로 빠지는 건 너무한 비유 아닙니까."
〔입은 네가 가장 많이 쓰는 기맥이다.〕
우진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손끝에 모였던 힘이 팔꿈치를 지나기도 전에 흐트러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형들은 그를 보고 기운도 못 붙드는 놈이라 비웃었다.
그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운휘는 달랐다. 붙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붙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차이는 고작 몇 마디였는데 가슴속에 쌓인 것이 조금 다른 모양으로 흔들렸다.
"그럼 고칠 수는 있습니까?"
잠시 뒤 정운휘가 대답했다.
〔고쳐야지. 내가 왜 네 머릿속에서 숨 쉬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겠느냐. 다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욕심내면 너는 내일 아침에 시체가 된다.〕
정운휘가 처음으로 확답을 했다. 우진은 그 짧은 말을 오래 곱씹었다.
고칠 수 있다.
그 말 하나면 지금은 충분했다.
그는 옷자락을 찢어 상처 위에 댔다. 정운휘가 석굴 오른쪽 벽을 보라 했다. 젖은 바위틈에 붉은 잎이 붙어 있었다.
〔지혈초다. 손가락 두 마디 길이만 뜯어 씹어라. 뿌리는 남겨 둬.〕
"눈도 없으면서 어떻게 보십니까?"
〔네 눈으로 보는 것이다. 네가 눈꺼풀을 내리면 나도 답답해진다. 쓸데없이 감지 마라.〕
우진은 기어가 지혈초를 뜯었다. 쓴 즙이 혀를 마비시켰다. 짓이긴 잎을 상처에 붙이자 화끈거림이 올라왔다. 피가 멎은 것은 아니었지만 옷자락을 적시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사람을 살리는 법보다 괴롭히는 법을 먼저 배우신 것 같은데요."
〔아픈 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은 놈은 아프다는 말도 못 한다.〕
그 말은 이상하게 단호했다. 우진은 다시 비급을 바라봤다. 먼지 속 표지에 남은 천류 두 글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정운휘. 정말 그 전대 맹주 맞습니까?"
〔맞다.〕
"왜 여기 계십니까?"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밖에서 불어난 물이 바위를 때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우진은 그 이름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기억은 칼날과 피다. 그 뒤는 끊겼다. 눈을 뜨니 돌 속이었고 네놈이 함을 열었다.〕
"맹주님도 모르는 게 있군요."
〔나를 놀릴 여유가 생겼다면 일어나라.〕
정운휘가 벽의 검흔을 가리켰다. 우진은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장식처럼 보였던 선들이 이번에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낮게 휘어 내려간 검흔 끝마다 물기가 맺혀 있었다.
〔검흔을 따라가면 바람이 든다. 이 굴은 막다른 곳이 아니다.〕
우진은 손을 벽에 댔다. 차가운 바람이 손등을 훑었다. 좁은 틈 너머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석굴 안에 더 머물면 물은 결국 발목까지 차오를 터였다. 비급을 품고 죽느니 차라리 이 낯선 노인의 잔소리를 믿고 미끄러운 길을 건너는 편이 나았다.
그 선택에는 망설일 틈도 없었다.
"저기로 나가자고요? 다리가 이 모양인데?"
〔네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멍들고 접질렸을 뿐이다. 네가 겁먹어서 반쯤 죽여 놓고 있는 거지.〕
"환자에게 너무한 진단 아닙니까."
〔환자라면 더 정확히 말해야 한다. 오른발부터. 발바닥 전체를 붙이지 말고 바깥쪽으로 얹어라.〕
바위틈은 사람 하나가 옆으로 빠져나갈 너비였다. 우진이 몸을 밀어 넣자 젖은 돌이 옷을 잡아당겼다. 아래에서는 검은 물이 낮게 소용돌이쳤다.
첫 발을 잘못 디디자 발목이 꺾였다.
〔멈춰! 왼손을 위쪽 돌기에 걸어라. 아니 거기는 썩었다. 손가락 두 개 오른쪽.〕
우진은 욕설을 삼켰다.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손을 대신 움직여 주지는 않았다. 결국 돌기를 찾아 잡는 것도 몸을 비트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손끝이 거친 틈에 닿았다.
몸을 옮겼다.
발아래 돌 하나가 계곡으로 굴러떨어졌다. 우진은 심장이 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배 아래의 작은 기운을 붙들고 무게를 천천히 옮겼다.
〔잘했다. 다음은 두 걸음이다. 욕심내지 마라. 살아서 나가면 네가 이긴 거다.〕
"그 말은 좀 처음부터 해 주시지요."
〔처음부터 말했으면 네놈이 안 들었을 테니.〕
밤이 옅어질 무렵 우진은 물가의 평평한 바위 위로 굴러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하늘 끝에는 희미한 새벽빛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참을 누워 숨을 골랐다. 정운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진은 손등으로 이마의 물기를 닦다가 바위 틈에 걸린 것을 보았다.
밧줄이었다.
청운절벽에서 자신과 함께 끊어졌을 밧줄 조각.
우진은 기어서 그것을 끌어당겼다. 젖은 섬유 끝은 닳아 헤진 모양이 아니었다. 속심까지 한 방향으로 매끈하게 끊겨 있었다.
손톱으로 만지자 얇은 실밥이 곧게 갈라졌다.
〔칼날이다.〕
정운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낡아서 끊어진 밧줄이 아니다. 누군가 위에서 잘랐다.〕
우진은 밧줄을 주먹 안에 감았다. 손바닥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지만 놓지 않았다.
조형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으며 내 손해는 적다고 말하던 얼굴.
하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절벽 위에 있던 그림자는 체격이 더 컸다. 조형기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돌아가서 바로 들이받을까요?"
〔증거 하나 들고 피 묻은 꼴로? 네가 먼저 매를 맞는다.〕
"그럼 참으라고요?"
〔참는 것과 모으는 것은 다르다. 네가 할 일은 살아 돌아가서 누가 네가 죽었다고 믿었는지 보는 것이다.〕
우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계곡 위쪽 산길에서 젖은 천 조각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였다.
화청문의 회색 제자복이었다.
그는 천 조각을 떼어 냈다. 끝에는 검은 실로 작은 삼각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하급 제자복에는 없는 장식이었다. 그 문양이 누구의 것인지는 우진도 알지 못했다.
우진의 시선이 산길 위로 향했다.
누군가 자신이 떨어진 뒤에도 이곳을 내려다봤다.
정운휘가 조용히 말했다.
〔우진아. 그 자는 네가 죽지 않은 것을 모른다. 지금은 그 차이가 네 목숨이다.〕
우진은 밧줄과 천 조각을 품에 넣었다. 피가 마르기 전에 문파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자신을 잃었다고 여긴 얼굴들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모르게 해 드려야죠."
그는 절뚝이며 산길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머릿속에서 정운휘가 혀를 찼다.
〔또 걸음이 틀어졌다. 오른발을 끌지 마라.〕
"죽은 사람도 걸음걸이는 고쳐야 합니까?"
〔죽은 척할 놈일수록 더 멀쩡하게 걸어야 한다.〕
우진은 입꼬리를 올렸다.
처음으로 붙잡은 진기는 아직 바늘귀만 했다.
그래도 그 바늘귀를 통과할 길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