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사가 수술실을 너무 씹어먹음

4화 기적이 아니라 실력
수술실 모니터가 길게 늘어지던 경고음을 멈췄다.
강현은 숫자를 믿지 않았다. 수축기 혈압이 구십을 넘었다 해도 그건 수혈된 피와 승압제가 버티고 있다는 뜻일 수 있었다. 환자의 몸이 스스로 버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흡인통 수치 다시 확인해 주세요.”
최민석이 고개를 숙여 눈금을 읽었다. “추가 출혈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 십 분 동안 오십 밀리리터 미만입니다.”
“체온은 서른다섯 점 이도. 산증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낮게 말했다.
“수혈은 멈추지 마세요. 따뜻한 수액으로 바꾸고 칼슘도 확인해 주세요.”
대량 출혈을 겪은 몸은 피를 채운다고 곧장 돌아오지 않았다. 차가워진 혈액이 응고를 방해하고 산증이 깊어지면 막아 둔 상처도 다시 열린다. 강현은 수술대 위 환자의 손끝이 조금씩 붉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마취과 의사가 강현을 힐끗 봤다. “전공의 선생이 그걸 어떻게….”
“지금은 질문보다 수치가 먼저입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는 더 묻지 않았다. 혈액가스 결과를 다시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대답 대신 수술 부위를 바라봤다. 열린 흉강 가장자리와 갈비뼈 사이에는 아직 검붉은 습기가 남아 있었다. 육안으로는 단순한 삼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는 다른 풍경이 겹쳤다.
핏줄과 장기가 층층이 분리된 그래프 위로 가느다란 붉은 선 하나가 맥박을 타고 떨렸다. 횡격막 가까이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혈관이었다.
[미세 출혈 지속]
[재출혈 위험도 38%]
강현이 손을 내밀었다.
“조명 각도 바꿔 주세요. 석션은 약하게.”
“거긴 이미 확인했는데요.” 최민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번 더 봅니다.”
말은 짧았지만 손끝은 느렸다. 피를 닦아 낸 자리에 메스 끝으로 건드리기조차 어려운 가는 혈관이 숨어 있었다. 강현은 그 아래 조직을 조금 들어 올린 뒤 봉합사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매듭이 조여지는 순간 붉은 선이 그래프에서 사라졌다.
[재출혈 위험도 11%]
“출혈 통제.”
강현은 곧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아직 닫지 마세요. 양쪽 폐 팽창 확인하고 흉관 배액이 막히지 않는지 봅니다. 봉합은 마지막입니다.”
최민석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은 아까보다 안정돼 있었다. 강현의 지시가 무엇을 막으려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순서마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된 듯했다.
수술실 안의 공기가 뒤늦게 빠져나갔다. 간호사는 거즈를 세던 손을 멈췄고 마취과 의사는 긴 숨을 내쉬며 약물 주입 속도를 낮췄다.
“혈압 구십팔에 육십이. 맥박 백오.”
“소변량도 다시 나옵니다.”
최민석은 모니터와 강현을 번갈아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도 환자가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는 얼굴이었다.
강현은 봉합을 끝내기 전에 다시 흉강을 훑었다. 그래프가 알려 준 길은 메스가 대신 움직여 주는 길이 아니었다. 마지막 한 땀의 깊이와 각도는 손끝으로 골라야 했다.
“흉관 넣고 닫겠습니다. 수아 선생님은 회복실에 수혈 여유분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네.”
수아는 대답과 함께 수술실 간호사에게 말을 이었다. “사용한 거즈와 수혈 단위는 지금 수치대로 남겨 주세요. 이송 전에 다시 대조할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누가 집도했습니까?”
최성현 과장이 들어왔다. 가운 끈은 한쪽이 풀려 있었고 이마에는 막 뛰어온 사람처럼 땀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환자의 창백한 얼굴이 아니라 모니터의 숫자에 먼저 닿았다.
“응급 개흉이 필요했습니다.” 강현이 말했다.
“그래서 전공의가 환자 가슴을 열었단 말인가?”
“당직 외과가 오기 전까지 기다리면 안 됐습니다.”
최성현의 시선이 수술기록지로 미끄러졌다. 활력징후가 안정됐다는 보고를 듣자 그의 굳은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잘했네. 이제부터 내가 마무리하지.”
그는 봉합이 끝난 수술대를 한 번 보고는 기록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집도는 공동으로 적어. 응급수술은 책임자가 있어야 하니까.”
“책임자가 필요해서 제 이름을 빼자는 겁니까?”
“네가 책임질 수 있겠어? 환자가 죽었으면 누가 감당했을 것 같나.”
최성현의 말에는 환자를 걱정하는 기색보다 결재선과 보고서를 먼저 떠올린 사람의 조급함이 묻어났다. 강현은 그 조급함이 낯설지 않았다. 누군가의 공은 가볍게 가져가면서 문제가 생기면 아래 사람에게 미루는 얼굴이었다.
최민석의 손이 멈췄다. 수아도 이송용 침대의 브레이크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강현은 장갑을 벗었다. 손가락 끝에는 아직 봉합사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책임자는 기록에 적힌 처치를 책임져야 합니다.”
“뭐?”
“과장님이 들어오신 시각도 남겨야 합니다. 그게 환자에게 한 일입니다.”
최성현의 얼굴이 굳었다.
“말을 가려서 해. 네가 무슨 권한으로 수술실을 지휘했는지는 나중에 따질 문제야.”
“따지셔도 됩니다.”
강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수술기록을 바꾸지는 마십시오. 출혈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떤 혈관을 묶었는지 기록이 달라지면 회복실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수아가 조용히 차트 위에 손을 얹었다.
“간호기록은 전산에 전송했습니다. 수술실 출입 시각과 처치 지시는 모두 남아 있어요.”
“마취기록도 잠금 처리했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덧붙였다. “환자 상태가 바뀌면 인계할 때 그대로 봐야 하니까요.”
최성현은 수아를 노려봤다.
“누가 전송하랬나?”
“응급수술 기록은 지연하면 안 됩니다.”
수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손은 물러서지 않았다. 강현은 그녀를 보지 않고 고개만 아주 작게 끄덕였다.
복도 쪽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환자 보호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수술실 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최성현이 먼저 문을 열려 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강현이 한 발 앞을 막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환자 가족을 겁줄 셈인가?”
“살았다는 말만 듣고 안심할 권리는 없습니다. 지금 어떤 위험이 남았는지도 들어야 합니다.”
강현은 문 밖으로 나갔다. 보호자는 그의 피 묻은 가운을 보자마자 두 손을 모았다.
“선생님, 우리 남편은요?”
“수술은 마쳤습니다. 지금 심장은 뛰고 출혈도 잡았습니다.”
보호자의 무너진 어깨가 아주 조금 올라왔다.
“다만 몸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 밤은 재출혈과 혈압 저하를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제가 회복실과 중환자실에 인계할 겁니다.”
“살 수 있는 거죠?”
강현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래프의 숫자가 백 퍼센트가 된 뒤에도 사람의 몸은 수많은 변수를 품고 있었다.
“살리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도 곁을 지키겠습니다.”
보호자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떨리는 손으로 강현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뒤에서 최성현이 헛기침을 했다. 강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환자가 이송 침대에 옮겨진 뒤 수아가 옆으로 붙었다. 최민석은 흉관 배액통을 들고 침대 발치에 섰다.
“강현 선생님. 정말 과장님이 기록을 건드릴까요?”
“건드리려 하면 못 건드리게 하면 됩니다.”
“그럼 선생님은 더 찍힐 텐데요.”
최민석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표정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강현이 고개를 숙이면 오늘의 수술은 최성현의 결단이 된다. 다음에 같은 환자가 들어왔을 때도 늦게 온 사람이 이름을 올린다. 먼저 손을 움직인 사람은 침묵하게 될 것이다.
“환자가 살았는데도 기록을 숨겨야 하는 병원이면 이미 문제가 있는 겁니다.”
수아가 침대 옆의 수액 라인을 한 번 더 살폈다. “회복실에 연락해 뒀어요. 중환자실 자리도 비워 달라고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강현은 짧게 답했다. 수아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눈가에는 아직 수술실의 긴장이 남아 있었다.
강현은 이송 침대의 바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 소리가 끝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제는 아니었다.
회복실 문이 보일 무렵 모니터가 다시 날카롭게 울었다.
삐이이익.
수축기 혈압이 팔십칠, 팔십삼으로 떨어졌다. 맥박은 다시 빨라졌다.
“수액 올려요!” 수아가 외쳤다.
“흉관 배액은?”
최민석이 통을 확인했다. “거의 없습니다.”
흉강에서 피가 새는 게 아니었다.
강현의 눈앞에 그래프가 다시 펼쳐졌다. 방금 전 사라졌던 붉은 선과는 전혀 다른 위치였다. 우측 상복부 깊은 곳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번지고 있었다.
[경고: 우측 상복부 혈류 이상]
[복강 내 출혈 가능성]
강현이 침대 난간을 잡았다.
“회복실로 바로 들어갑니다. 초음파 준비하고 수혈 다시 연결해 주세요.”
최성현이 뒤에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수술은 끝났어. 또 뭘 하겠다는 거야?”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환자의 복부 아래로 번지는 붉은 그래프를 본 순간 이미 다음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