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나쁜 요리사가 성찬을 고친다

시놉시스
쓸데없이 까다롭다 욕먹던 요리사 한도윤은 신제품 시연 사고를 막으려다 낯선 세계의 폐여관 주방에서 깨어난다. 맛과 마력의 결이 몸을 살리고 망치는 루멘티아에서, 그의 과한 세척과 계량, 기록 습관은 누구도 원인을 찾지 못한 식독을 추적하는 단서가 된다.
1화: 냄새가 틀렸다
한도윤은 세 번째로 같은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단맛이 먼저 올라왔다. 졸인 과일처럼 진한 향이었다. 그다음은 익은 양파가 아니라 오래 둔 즙에서 나는 시큼함.
마지막에 아주 얇게 쇠를 핥은 듯한 냄새가 따라붙었다.
도윤은 타이머를 멈추고 방수 노트를 펼쳤다.
시연용 소스 B-17. 보관 4도 표기. 실제 수령 시 표면 11도. 점도 묽음. 산미 과함. 금속취. 재가열 금지 권고.
"도윤 씨."
팀장 목소리가 뒤에서 잘렸다.
"지금 또 적어요?"
도윤은 대답 대신 작은 스푼으로 소스를 떠서 흰 접시에 떨어뜨렸다. 퍼지는 속도가 어제보다 빨랐다. 접시 가장자리에 남는 색도 살짝 탁했다.
"이거 쓰면 안 됩니다."
"오늘 본사 시연이에요."
"그래서 더 쓰면 안 됩니다. 냉장 기록하고 실제 상태가 안 맞습니다. 산도도 다시 봐야 하고요."
팀장은 웃지 않았다. 웃을 시간도 아깝다는 얼굴이었다.
"우린 실험실이 아니라 테스트 키친입니다. 손님이 먹고 맛있다고 하면 되는 곳이라고요."
"손님이 먹으니까 확인해야죠."
그 말에 주변 손이 느려졌다. 누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도윤은 그 한숨의 뜻을 알았다.
또 시작.
양파 산지, 고기 해동 온도, 남은 육수의 무게, 버린 껍질의 양. 도윤은 그런 것을 적었다. 동료들은 그를 꼼꼼하다고 부르지 않았다. 느리고, 피곤하고, 발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팀장은 소스 냄비를 다른 조리대 쪽으로 밀었다.
"민재 씨, 이어서 해요. 도윤 씨는 뒤쪽 정리."
"팀장님."
"시연 끝나고 얘기합시다."
그 말은 현장에서 빠지라는 뜻이었다.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을 씻었다. 비누 거품을 두 번 냈는데도 손끝에 쇠비린내가 남았다.
민재가 소스를 강한 불에 올렸다. 냄비 가장자리에 거품이 빠르게 붙었다. 앞쪽 유리문 너머로 본사 직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 유니폼, 태블릿, 웃는 얼굴들.
도윤은 버린 채소 껍질 통 옆에 섰다. 뒤쪽 정리라는 말에 맞게 양파 껍질과 파 뿌리를 따로 나눴다. 그래도 눈은 냄비를 떠나지 못했다.
열이 오르자 단내가 더 짙어졌다. 시큼함은 눌어붙는 향 뒤로 숨었다.
하지만 쇠비린내는 사라지지 않았다.
뜨거워질수록 얇고 넓게 퍼졌다.
도윤은 다시 타이머를 눌렀다.
삼십 초.
소스 표면이 이상하게 꺼졌다. 끓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누가 숨을 삼키는 것처럼 한 박자 내려앉았다.
"불 꺼요."
민재가 못 들은 척했다. 발표용 그릇이 이미 줄지어 있었다.
"민재야, 불 끄라고!"
팀장이 도윤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해요."
"터집니다."
"도윤 씨!"
도윤은 손목을 비틀었다. 막 씻은 손이라 미끄러졌다. 그는 조리대 사이를 파고들어 민재의 어깨를 밀쳤다.
민재가 뒤로 넘어지며 욕을 했다.
도윤은 젖은 행주를 집어 냄비 손잡이에 걸었다. 불을 낮추려는 순간, 푸른빛 같은 증기가 냄비 틈에서 솟았다.
압력이 터졌다.
소리는 길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 금속 냄새. 깨지는 유리. 누군가 부르는 자기 이름.
도윤은 민재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살았는지, 다쳤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손안에는 방수 노트와 볼펜 두 자루가 구겨져 있었다. 손목의 디지털 타이머가 삐, 삐, 하고 늦은 경고음을 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가 늦었다.
그리고 바닥이 사라졌다.
눈을 뜬 곳은 주방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돌로 쌓은 화덕, 금 간 솥, 벽에 걸린 칼, 젖은 장작.
주방은 주방이었다.
하지만 조명이 없었다. 환풍기도 없었다. 바닥은 타일이 아니라 다져진 흙과 돌이었고, 천장에서는 검은 그을음이 비처럼 매달려 있었다.
도윤은 몸을 일으키다 기침했다. 목 안에 재가 들러붙은 것 같았다. 조리복은 그을음과 소스로 얼룩졌고, 손등에는 붉은 선이 몇 줄 생겨 있었다.
손목의 타이머가 멈춘 숫자를 보여 주었다.
00:31
"여긴..."
말이 끝나기 전, 문이 벌컥 열렸다.
짧은 갈색 머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한 손에는 물통, 다른 손에는 국자가 들려 있었다. 허리에는 낡은 열쇠 꾸러미가 매달려 걸을 때마다 작은 금속음을 냈다.
그녀는 도윤을 보자 물통을 떨어뜨렸다.
"누구야!"
첫마디는 또렷했다.
뒤이어 쏟아진 말은 물에 젖은 종이처럼 흐릿했다. 빠르고 낯선 발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단어는 귀에 박혔다.
주방. 도둑. 나가. 화덕.
도윤은 양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만요.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전까지 테스트 키친에 있었다. 냄비가 터졌다. 바닥이 사라졌다.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다.
여자는 국자를 더 높이 들었다.
"손에 든 거 내려놔."
도윤은 노트와 볼펜을 천천히 바닥에 놓았다. 타이머가 손목에서 다시 삐, 하고 울렸다. 여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무기 아닙니다. 시간 재는 겁니다."
그 말이 제대로 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의 눈은 도윤보다 그의 뒤쪽 화덕을 더 자주 보았다.
도윤도 돌아보았다.
낡은 화덕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꺼져 있지 않았다. 재 사이에 붉은 점이 몇 개 살아 있었다. 그 사이로 방수 노트 표지와 비슷한 푸른빛이 아주 잠깐 번졌다가 사라졌다.
도윤은 무심코 한 걸음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
여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그걸 내가 묻고 싶거든? 새벽솥 주방에 어떻게 들어왔어? 빚쟁이가 보냈어?"
이번에는 절반쯤 알아들었다.
새벽솥. 주방. 빚.
나머지는 흐릿했다. 회사 회의실에서 모르는 외국어 발표를 들을 때처럼 의미가 뭉개졌다. 그런데 칼, 솥, 물, 불 같은 말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도윤은 대답 대신 코를 찡그렸다.
물통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닥의 오래된 기름때를 적셨다. 젖은 장작 냄새, 쉰 밀가루 냄새, 오래 씻지 않은 도마의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벽 쪽 선반에는 빈 술병이 거꾸로 꽂혀 있었고, 포대 자루는 반쯤 비어 있었다. 문 옆에는 붉은 도장이 찍힌 종이가 접혀 있었다. 빚이라는 단어와 같이 떠오르는 종이였다.
"손 씻을 곳부터..."
"뭐?"
"아니, 이 주방으로 음식을 내면 안 됩니다. 도마가 젖었고, 칼집 안쪽에 찌꺼기가 남아 있어요. 저 솥도 안쪽부터 다시 닦아야 하고요."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내 주방 평가해?"
"평가가 아니라 위험해서요."
"당신이 더 위험해."
맞는 말이었다.
도윤은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주방 오염을 지적한 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 홀 쪽에서 비명이 났다.
"미라! 애가 이상해!"
여자의 표정이 바뀌었다. 국자를 든 손에서 힘이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여기 있어. 움직이면..."
그녀는 말을 끝내지 않고 뛰어나갔다.
도윤은 멈춰 서려 했다. 낯선 곳이었다. 함부로 나서면 안 됐다.
하지만 비명 사이로 아이의 숨이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얕고 빠른 숨. 목에 무언가 걸린 듯 긁히는 소리.
그 소리는 어느 세계의 언어로도 같았다.
도윤은 노트와 볼펜을 집어 들고 홀로 나갔다.
새벽솥의 홀은 주방보다 더 낡았다. 기울어진 탁자 세 개, 금 간 창문, 꺼져 가는 등불. 벽에는 오래된 메뉴판이 걸려 있었지만 글자의 절반은 번져 있었다.
한쪽 바닥에 어린아이가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여덟 살쯤 되어 보였다. 입술은 푸르렀고, 손가락 끝이 갈고리처럼 굳어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울면서 등을 두드렸다.
"또 식독이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새벽솥에서 또 나왔어."
도윤은 식독이라는 단어만 선명하게 들었다. 뜻은 몰랐다. 하지만 모두가 아이 앞의 그릇을 피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미라가 도윤을 보고 소리쳤다.
"나오지 말랬지!"
"뭘 먹었습니까?"
"당신이 알 게 아니야."
"먹은 걸 봐야 합니다."
도윤은 아이에게 바로 손대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고 몸을 흔들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먼저 그릇을 봤다.
묽은 국물. 반쯤 으깨진 뿌리채소. 검은 점이 붙은 잎. 숟가락 끝에 남은 찌꺼기는 식은 뒤에도 끈적하게 늘어졌다.
냄새는 쉰내와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주 얇게, 테스트 키친에서 맡았던 것과 닮은 쇠비린내가 있었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아니, 같은 냄새가 아니다.
비슷하지만 더 차갑고, 더 날카로웠다. 쇠 냄새라기보다 젖은 돌 틈에서 피어나는 냉기 같았다.
"이 재료 어디 있습니까?"
"뭐?"
"이 국에 넣은 뿌리. 남은 거요."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홀 구석의 바구니를 보았다. 그 짧은 시선만으로 충분했다.
도윤은 바구니로 갔다. 미라가 그의 팔을 잡았다.
"건드리지 마. 썩은 건 다 골랐어. 먹을 게 이것뿐이었다고."
목소리는 화가 아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방어였다.
도윤은 천천히 말했다.
"썩은 걸 찾는 게 아닙니다."
그가 알아들은 말인지 미라의 눈썹이 흔들렸다.
도윤은 뿌리채소 하나를 집어 코끝에 댔다. 흙비린내가 났다. 오래됐고 수분이 빠졌지만, 안쪽은 아직 버틸 수 있는 냄새였다.
다른 하나를 들었다.
껍질은 비슷했다. 색도 비슷했다. 그러나 껍질 밑에서 차가운 쇠비린내가 났다.
그는 두 개를 양손에 올려 무게를 비교했다.
쇠비린내가 나는 쪽이 아주 조금 무거웠다. 수분이 빠졌다면 가벼워져야 했다.
도윤은 노트를 펼쳤다. 손이 떨려 글자가 비뚤어졌다.
새벽솥. 아이 발작. 묽은 국. 뿌리채소 외관 동일. A: 흙냄새, 가벼움. B: 쇠비린내, 미세하게 무거움. 썩은 냄새 아님. 원인 미확정.
"물."
도윤이 말했다.
미라가 굳은 채 그를 보았다.
"깨끗한 물. 칼. 빈 그릇 두 개. 그리고 저 국은 아무도 먹지 마세요."
"당신 말대로 했다가 애가 죽으면?"
미라가 물었다.
도윤은 아이의 숨소리를 들었다. 빠르고 얕았다.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모르는 세계, 모르는 병, 모르는 재료.
그래도 하나는 분명했다.
냄새가 틀렸다.
무게도 틀렸다.
도윤은 손목의 타이머를 다시 눌렀다.
"일단 씻고, 맡고, 재자."
미라는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도윤은 바구니 속 뿌리채소를 두 무더기로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