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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35화

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35화: 종이가 지나간 자리

클립보드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앤서 핌스는 그 점을 먼저 말했다.

"사라진 종이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서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는 사라져도 됩니다."

조 코치가 보관실 벽에서 클립보드를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투명 덮개가 달린 낡은 클립보드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는 물건.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는 물건.

시우는 조 코치에게 손전등을 달라고 했다.

빛이 비스듬히 들어가자 투명 덮개 안쪽에 얕은 선이 떠올랐다.

종이 모서리처럼 네모난 선.

오른쪽 아래에는 아주 흐린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조 코치가 면봉을 대지 않고 눈으로만 확인했다.

"토너입니다."

앤서가 몸을 숙였다.

"프린터 출력물이라는 뜻입니까?"

"가능성입니다."

시우는 바로 고치지 않았다.

가능성.

아직은 그 말이 맞았다.

직원의 기억 속 작업표.

카트 우측 후방.

균형추.

모니터 흔들림 방지.

공식 목록 외 노출 금지.

그리고 15:15 전 회수.

그 문구들이 모두 정확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클립보드에는 한때 얇은 종이가 눌려 있었을 수 있었다.

조 코치가 덮개 안쪽을 다시 비췄다.

색은 없었다.

검은 가루만 아주 적게 남았다.

시우가 말했다.

"공식 양식이면 컬러 머리글 자국이 남았을 겁니다."

앤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 내부 양식은 컬러 머리글입니다."

"네."

"그럼 구단 문서처럼 보이게 만든 흑백 출력물일 수 있겠군요."

"문서처럼 보이게 만든 겁니다."

시우는 빈 클립보드를 봤다.

"명령처럼 보이게 만든 게 아니라."

앤서는 잠깐 말이 없었다.

명령은 사람이 한다.

문서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움직인다.

그 차이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꿨다.

조 코치가 클립보드를 봉투에 넣었다.

손끝이 덮개 가장자리에 닿지 않도록, 두꺼운 장갑을 낀 채였다.

앤서가 말했다.

"이 정도로는 징계도, 신고도 어렵습니다."

"압니다."

"그래도 추적합니까?"

시우는 보관실 안쪽 벽을 봤다.

빈 자리는 처음보다 더 잘 보였다.

"징계하려고 보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다음 사람이 같은 종이를 보지 않게 하려고 보는 겁니다."


훈련장에서는 벤 올리베리가 이번에도 기다렸다.

기다림과 늦음은 비슷해 보였다.

결과는 달랐다.

조나 그랜트는 선 밖에 서 있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수비수는 조나를 한 번 봤다.

그리고 버렸다.

벤은 그 버림을 기다렸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수비수의 발이 중앙으로 돌아왔다.

공은 그 발에 걸렸다.

마르코 리드가 벤치에서 말했다.

"보이면 늦어."

벤이 숨을 뱉었다.

"그러면 뭘 봅니까?"

"사라질 자리."

마르코의 말은 짧았다.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벤은 이제 그 짧은 말 안에서 기다릴 줄 알았다.

다음 공이 왔다.

조나는 선 밖에서 그대로 있었다.

수비수는 조나를 봤다.

이번에도 버렸다.

벤은 생긴 틈을 보지 않았다.

그 틈을 되찾으려고 돌아가는 발을 봤다.

몸이 중앙으로 닫히는 순간.

닫히는 발 뒤쪽이 비었다.

벤의 패스는 그 발 앞이 아니라, 발이 떠난 뒤쪽으로 들어갔다.

공은 길지 않았다.

짧고 낮았다.

중앙 미드필더가 한 박자 늦게 달려들었다.

수비수는 이미 조나를 버린 뒤였다.

다시 주워 가기에는 반 박자 늦었다.

공이 맞았다.

마르코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그거."

벤은 고개만 끄덕였다.

조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발끝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상대가 자신의 자리를 회수하러 움직였다.

없는 자리도 방향을 남겼다.

리암 애스크가 복도 의자에서 낮게 말했다.

"움직임이 아니라 방향을 남긴 겁니다."

조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선 밖의 자신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벤은 공을 가지러 걸어가다 한 번 멈췄다.

조나를 보려는 습관이 목 뒤를 당겼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수비수의 어깨가 어느 쪽으로 먼저 닫히는지 봤다.

조나가 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벤이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분석실의 화면은 공용 프린터 로그로 바뀌었다.

조 코치는 출력 목록을 시간순으로 정렬했다.

정상 보고서.

의무실 서명지.

아카데미 출석표.

그 사이에 제목 없는 흑백 출력 하나가 끼어 있었다.

출력 계정은 사람 이름이 아니었다.

temp_process_04

앤서가 말했다.

"임시 처리 계정입니다."

"누가 씁니까."

"원래는 문서 접수용입니다. 업무 대체 때만 열고, 출력 권한은 제한돼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출력됐습니다."

"네."

앤서의 대답이 짧아졌다.

"출력 권한을 연 기록은 있습니까?"

조 코치가 다른 창을 띄웠다.

권한 변경 로그는 깨끗했다.

너무 깨끗했다.

계정 정책이 바뀐 흔적은 없는데, 프린터는 출력물을 뱉었다.

앤서가 낮게 말했다.

"권한을 바꾼 게 아니라, 이미 열려 있던 구멍을 쓴 겁니다."

시우는 그 말을 적지 않았다.

이미 열린 구멍.

선수들이 보지 않는 방향.

처음 온 사람이 먼저 믿는 표식.

모두 같은 종류였다.

조 코치가 오류 로그를 열었다.

시각이 겹쳤다.

training_note 표시명 변경 흔적이 나온 뒤.

흑백 1장 출력.

용지 걸림.

재출력.

작업 완료.

회수 지연 18초.

앤서가 눈을 좁혔다.

"회수 지연이 뭡니까?"

조 코치가 설명했다.

"프린터가 완료를 찍고 배출함 센서가 비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보통은 3초 안팎입니다. 누가 바로 집어 가면요."

시우는 화면의 18초를 봤다.

짧지만, 기다리기에는 충분한 시간.

누군가 프린터 앞에 바로 서 있지 않았다.

혹은 서 있다가, 남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 코치가 프린터 앞 카메라를 띄웠다.

얼굴은 잡히지 않았다.

카메라 각도는 프린터 상단과 복도 중간만 봤다.

배출함은 기계 몸체에 가려져 있었다.

흰 종이가 반쯤 나왔다.

잠깐 멈췄다.

화면 밖에서 손이 들어왔다.

종이는 사라졌다.

앤서가 낮게 욕을 삼켰다.

"또 사각이군요."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각을 찾은 겁니다."

앤서가 시우를 봤다.

"누가요?"

"아직 모릅니다."

시우는 프린터 로그 옆에 클립보드 덮개 사진을 띄웠다.

토너 흔적.

흑백 출력.

오른쪽 아래 눌림.

대체 직원의 기억 속 15:15 전 회수.

완성되지는 않았다.

내용도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각이 같은 방향으로 눕기 시작했다.

"만든 사람과 가져간 사람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까?"

앤서가 물었다.

"아직 아닙니다."

"가져간 사람과 꽂은 사람은요."

"그것도 아직 아닙니다."

시우는 세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다만 같은 방식입니다. 이름 대신 빈칸. 얼굴 대신 사각. 명령 대신 종이."


보관실 앞 카메라는 더 좁았다.

문은 보였지만, 안쪽 벽은 보이지 않았다.

조 코치가 대체 직원이 들어오기 전 20분을 빠르게 돌렸다.

장비 담당.

유스 골키퍼 장비 담당.

청소 카트.

정리 담당으로 표시된 임시 패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누구도 클립보드 앞에서 멈추는 장면은 없었다.

앤서가 말했다.

"그럼 들어가서 꽂은 사람은 없습니다."

"들어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조 코치가 영상을 다시 돌렸다.

문이 반쯤 열린 순간.

정리 담당 패스를 찍은 사람이 보관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문틀 옆에서 몸을 틀었다.

6초.

팔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흰 면이 있었다.

종이인지 장갑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손이 들어간 높이는 클립보드와 맞았다.

조 코치가 화면을 멈췄다.

방 안은 조용해졌다.

"이 사람이 꽂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우가 먼저 말했다.

앤서가 답했다.

"하지만 꽂을 수는 있었군요."

"네."

조 코치가 출입 로그를 열었다.

정리 담당.

임시 패스.

담당자명은 비어 있었다.

사유는 보관실 앞 통로 정리.

앤서가 이마를 눌렀다.

"임시 패스는 담당자명이 늦게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히 이상한 공란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좋다고요?"

"숨긴 게 아니라, 숨겨도 이상하지 않은 칸을 쓴 겁니다."

시우는 그 빈칸을 오래 봤다.

사람 이름이 빠진 자리.

문서 제목이 빠진 자리.

종이가 사라진 자리.

모두 비어 있었다.

그런데 비어 있는 자리들이 같은 시간대를 가리켰다.

조 코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임시 패스 발급자는 내일 오전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후 등록이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안에 확인해야 할 건요."

"프린터 스풀 캐시입니다. 제목은 지워졌지만 페이지 크기와 여백 정보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앤서가 바로 받았다.

"그리고 정리 담당 패스가 보관실 앞 통로를 지나간 이유."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섞지 마십시오. 종이를 만든 사람과 꽂은 사람은 아직 다릅니다."

조 코치가 짧게 답했다.

"분리해서 보겠습니다."

시우의 시야에 작은 창이 떠올랐다.

[관찰]
사라진 것은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다음 사람이 볼 방향만 남긴다.

시우는 창을 닫았다.

앤서가 말했다.

"대체 직원에게는 알리지 않겠습니다."

"선수들에게도요."

"물론입니다."

훈련장에서는 벤이 다음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벤은 조나가 만든 틈을 보지 않았다.

그 틈이 사라질 방향을 봤다.

분석실에서는 프린터 로그와 빈 클립보드와 임시 패스가 한 화면에 떠 있었다.

아직 범인은 없었다.

하지만 길은 있었다.

누군가 문서처럼 보이는 종이를 만들었다.

누군가 그 종이를 가져갔다.

누군가 처음 온 사람이 반드시 볼 자리에 꽂을 수 있었다.

세 문장은 아직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질문도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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