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11화: 겨울의 첫 사냥
1월 1일 새벽.
이스트베리 클럽하우스의 낡은 창문 밖으로 젖은 눈발이 비스듬히 흩날렸다. 새해 첫날이라 거리의 술집들은 아직도 밤의 열기를 품고 있었지만, 감독실 안쪽은 축제와 거리가 멀었다.
한시우의 책상 위에는 전반기 경기 데이터와 선수단 피로도 리포트, 그리고 존 코치가 밤새 정리한 스카우팅 후보 명단이 빈틈없이 펼쳐져 있었다. 모니터 한쪽에는 리그 순위표가 떠 있었다.
1위, 이스트베리 FC.
17승 4무 2패.
시즌 시작 전 강등 후보로 분류되던 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시우의 눈동자는 순위표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스윽.
[선수단 누적 피로도 분석]
- 벤 해리스 (MF): 68% / 창의성 의존도 과다
- 마커스 리드 (DF): 61% / 관리 가능
- 토미 밀러 (FW): 57% / 고속 스프린트 부하 누적
- 중원 2선 대체 자원 평균 회수 성공률: 리그 평균 대비 -14%
"결국 중원이다."
시우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스톤 빌라전 이후 벤 해리스는 이스트베리의 확실한 심장이 되었다. 문제는 그 심장을 보호할 근육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벤이 공을 받기 전 세컨드 볼을 주워 오고, 상대 압박의 첫 파도를 끊어낼 선수가 없으면 후반기 승격 레이스는 언젠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벤이 매 경기 천재처럼 공을 뿌려도, 그 천재성을 떠받치는 더러운 노동이 없다면 창의성은 체력과 함께 말라붙는다.
그때 감독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한! 드디어 열렸네. 겨울 이적 시장이야!"
아서 웰스 구단주가 두툼한 코트를 입은 채 들이닥쳤다. 그의 손에는 은행 승인 서류와 새 스폰서십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빌라전 이후 티켓 수익, 중계 보조금, 유니폼 판매가 모두 터졌네. 자네가 원한다면 이번 겨울에는 우리가 평소 꿈도 꾸지 못한 수준의 이적료를 쓸 수 있어."
존 코치가 뒤따라 들어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보스, 4부 리그에서 현실적으로 데려올 수 있는 선수는 한정적입니다. 주급 체계가 깨지면 라커룸이 먼저 흔들릴 수 있고요."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합니다."
시우는 존이 건넨 후보 명단을 천천히 넘겼다. 이름이 익숙한 선수들은 나이가 많았고, 즉시 전력감처럼 보이는 선수들은 몸값이 지나치게 높았다. 이스트베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이름값이 아니었다.
미래의 리그 원, 챔피언십까지 함께 뚫고 올라갈 수 있는 원석.
시우는 아무도 보지 않는 각도로 손끝을 움직였다.
스윽.
[스카우트의 눈 (C) 심화 검색]
- 조건: 23세 이하 / 방출 또는 임대 가능 / 수비형 미드필더 / 세컨드 볼 회수 능력 상위 5%
- 검색 범위: 잉글랜드 하부 리그, 아카데미 방출 명단, 비계약 선수
푸른 리스트가 허공에 빠르게 솟아올랐다가 하나둘 사라졌다.
마지막에 이름 하나가 붉게 깜빡였다.
[리암 오코너 (21세 / DM)]
- 소속: 노스브리지 유나이티드 U23 방출 예정
- 장점: 압박 반응 속도 88 / 세컨드 볼 예측 91 / 대인 경합 집착 86
- 약점: 태클 타이밍 제어 42 / 감정 통제 39
- 잠재 등급: A-
- 추천 역할: 벤 해리스 보호형 회수 엔진
- 스킬 카드 호환성: '캉테의 그림자 (B)' 82%
시우의 눈빛이 얇게 빛났다.
"존."
"예, 보스."
"리암 오코너. 지금 어디 있습니까?"
존이 명단을 뒤적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선수라면…… 챔피언십 아카데미에서 밀려난 뒤 노스브리지로 갔던 수비형 미드필더입니다. 재능은 있었지만 퇴장이 너무 많아서 방출 명단에 올랐습니다. 전 소속팀 코치들이 '태클밖에 모르는 문제아'라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오늘 불러오세요."
웰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퇴장 많은 문제아를?"
시우는 후보 명단을 덮었다.
"문제아가 아니라 방향을 못 배운 사냥개일 수도 있습니다."
오후 훈련장.
리암 오코너는 낡은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터치라인에 서 있었다. 짧게 깎은 갈색 머리, 잔뜩 굳은 턱, 상대를 먼저 노려보는 버릇이 몸에 밴 눈빛.
그 옆에는 회색 코트를 입은 에이전트 그레이엄 파이크가 지루하다는 듯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감독님, 먼저 말해두죠. 리암은 이미 리그 원 구단 테스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예의상 들른 겁니다. 4부 리그라도 1위 팀이라기에."
도발에 가까운 말투였다.
시우는 파이크를 보지 않았다. 대신 공 하나를 훈련장 중앙에 던졌다.
"리암. 벤 해리스 뒤에서 6분만 뛰어보죠. 규칙은 하나입니다. 태클하지 말고, 공이 흘러나올 자리만 선점하세요."
"태클하지 말라고요?"
리암이 헛웃음을 흘렸다.
"수비형 미드필더한테 숨 쉬지 말라는 소리랑 비슷한데요."
"그러면 오늘 여기서 끝입니다."
시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리암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잠시 시우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조끼를 받아 들었다.
훈련이 시작되자 벤 해리스가 중원에서 공을 잡았다. 훈련 상대조는 일부러 벤을 향해 거칠게 압박을 걸었다. 평소라면 뒤쪽 공간을 커버할 선수가 한 박자 늦어, 벤이 등을 진 채 몸싸움을 버텨야 하는 장면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처음 두 번, 리암은 실패했다.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가 발을 뻗었고, 시우의 짧은 호루라기가 즉시 훈련을 멈췄다. 리암은 입술을 깨물었다. 세 번째에도 그의 몸은 공을 향해 먼저 튀어나가려 했다.
"공을 보지 마라."
시우가 말했다.
"벤을 압박하는 선수의 골반을 봐. 공은 그다음에 죽는다."
리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번째 시도.
상대 미드필더가 벤의 오른쪽 어깨를 밀며 압박을 걸었다. 리암은 공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상대의 골반이 안쪽으로 꺾이는 순간, 반 발 먼저 패스 길목에 몸을 세웠다.
툭!
압박에 밀려 나온 세컨드 볼이 리암의 발등 앞에 떨어졌다.
[리암 오코너 - 세컨드 볼 예측 발동]
- 회수 위치 선점 성공
- 반칙 위험도: 17%로 감소
"다시."
시우가 짧게 말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리암은 공을 빼앗는 선수가 아니라 공이 죽는 자리에 먼저 서는 선수로 변해 갔다. 거칠게 튀어나가던 어깨가 한 박자 낮아졌고, 태클을 준비하던 발끝은 차단 각도를 막는 벽이 되었다.
벤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떠올랐다.
"편하네요, 보스."
벤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뒤에서 누가 한 발 먼저 치워주니까, 제가 굳이 몸싸움에 말려들 필요가 없습니다."
토미 밀러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저 녀석, 인상은 좀 무섭지만 공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데요?"
마커스 리드는 팔짱을 낀 채 리암을 바라보았다. 노장 주장의 눈에도 경계와 흥미가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훈련이 끝나자 리암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시우에게 다가왔다.
"방금…… 왜 되는 겁니까?"
"너는 공을 뺏는 데 재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시우가 말했다.
"공이 어디에서 죽을지 남들보다 먼저 느끼는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매번 태클로만 증명하려 했겠죠."
리암의 얼굴에서 거친 표정이 조금 벗겨졌다.
그레이엄 파이크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좋습니다. 감독님이 우리 선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알겠습니다. 조건을 이야기하죠. 선발 보장, 주급은 현재 최고액의 80%, 그리고 시즌 후 리그 원 이상 구단에서 제안이 오면 방출 조항을 넣겠습니다."
존 코치의 얼굴이 굳었다. 웰스 구단주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이스트베리는 예전보다 돈이 생겼지만, 한 명의 방출 예정 선수 때문에 주급 질서를 깨뜨릴 만큼 어리석어져서는 안 됐다.
시우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선발 보장은 없습니다."
파이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요."
"대신 역할은 보장합니다. 벤 해리스 뒤의 회수 엔진. 후반기 리그와 FA컵에서 가장 거친 30분을 맡길 겁니다. 증명하면 선발은 스스로 가져가면 됩니다."
시우는 리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리암. 너는 지금 선발 보장을 받을 선수가 아닙니다. 선발 보장을 요구하는 순간, 다시 남들이 붙인 문제아라는 이름 뒤에 숨는 겁니다."
"뭐라고요?"
"네가 정말 원하는 건 보장이 아니라, 네가 왜 쓸모 있는지 정확히 아는 감독입니다."
리암의 주먹이 천천히 쥐어졌다.
"제가 태클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했던 인간들보다 감독님이 절 더 잘 안다는 겁니까?"
"오늘 6분이면 충분했습니다."
시우가 담담하게 답했다.
"다만 내가 틀렸다면 너는 여기서도 못 뜁니다. 내가 맞다면, 반 시즌 뒤 너는 4부 리그의 문제아가 아니라 이스트베리 승격의 마지막 톱니바퀴로 불릴 겁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파이크가 낮게 속삭였다.
"리암, 리그 원 테스트를 버릴 필요는 없다. 저쪽은 이름값이 있어."
리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진흙 묻은 축구화 끝을 내려다보았다. 아카데미 훈련장에서 쫓겨나던 날, 코치가 던졌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태클밖에 모르는 놈.
그 말에 반박하고 싶어서 더 세게 달려들었다. 더 깊게 태클했다. 더 빨리 공을 향해 미끄러졌다. 그리고 매번 카드는 더 늘어났다.
그런데 이 젊은 한국인 감독은 6분 만에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너는 공이 죽는 자리를 안다.
리암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단기 계약. 6개월."
파이크의 얼굴이 굳었다.
"리암."
"승격 보너스는 넣어주십시오. 선발은 제가 뺏겠습니다."
시우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좋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리암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거칠게 맞잡았다.
그날 저녁, 이스트베리 FC는 공식 홈페이지에 짧은 영입 소식을 올렸다.
[이스트베리 FC, 수비형 미드필더 리암 오코너 단기 계약 영입.]
댓글란은 즉시 들끓었다.
- 또 무명?
- 한 감독이 찍었다면 뭔가 있겠지.
- 퇴장만 안 당하면 좋겠다.
시우는 감독실에서 그 반응을 확인하다가 가상 시스템을 불러냈다.
스윽.
[영입 완료: 리암 오코너]
- 팀 전술 적합도: 78% -> 전술 훈련 후 상승 가능
- 추천 성장 방향: 태클 억제 / 차단 위치 선점 / 벤 해리스 보호 루트 학습
- 스킬 카드 '캉테의 그림자 (B)' 구매 가능
- 가격: 28,000 SP
28,000 SP.
비싸다. 현재 보유 포인트 36,000 SP 중 대부분을 다시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리암이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이스트베리의 중원은 단숨에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시우가 구매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린 순간, 감독실 문이 다시 열렸다.
"보스."
존 코치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FA컵 3라운드 대진이 막 나왔습니다."
웰스 구단주가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반쯤 웃고, 반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 자네는 정말 신에게 사랑받는 건지 미움받는 건지 모르겠군."
시우가 모니터를 돌렸다.
화면 속 대진표의 한 줄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FA컵 3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vs 이스트베리 FC]
프리미어리그 원정.
이번에는 진흙투성이 이스트베리 파크가 아니었다. 잘 닦인 잔디와 수만 명의 적대적인 관중이 기다리는, 진짜 상위 리그의 무대였다.
시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시스템 상점 위에 멈췄다.
"좋습니다."
시우가 낮게 말했다.
"그럼 첫 사냥감을 제대로 길들여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