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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4화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4화: 은전 백 냥의 값

설가장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백위량의 손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다.

묶인 손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손목을 스치는 무사들의 시선이 더 따가웠다.

흑풍채의 가죽옷을 걸친 사내가 설가장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채주가 목에 은전 백 냥까지 걸었다. 누가 봐도 포박한 뒤 베어야 할 놈이었다.

백위량은 먼저 두 손을 내밀었다.

"조금 더 단단히 묶으십시오."

밧줄 끝을 쥔 무사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장원에 들어가서 제가 풀려 있으면 다들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소인도 눈치가 있습니다."

설소운이 걸음을 멈췄다.

"네가 원하면 풀어 줄 수 있소."

백위량은 설소운의 맑은 눈을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풀어 준다는 말은 고마웠다. 문제는 장원 밖에서 자신을 풀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장주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해도 다른 분들까지 그리 생각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는 최대한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묶여 있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

설소운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백위량은 그가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사파에 숨어 지낸 의사가 가문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스스로 포박을 청한다.

사실은 은전 백 냥짜리 목을 내놓고 장원 문턱을 넘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설소운이 무사에게 말했다.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조이지 마라."

"예."

백위량은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오해는 아주 쓸 만했다.

앞서 걷던 설무경이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장원 안에서는 네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을 것이다."

"소인이 숨길 만한 처지입니까."

이번에는 억지로 꾸민 말이 아니었다.

단 하나만 빼고.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만 빼면 백위량은 얼마든지 입을 열 수 있었다.

설가장의 심문당은 전장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

설무경이 상석에 앉았다. 설소운은 백위량의 오른쪽 뒤에 섰고 무사 둘은 문가를 지켰다.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여인이 붓과 장부를 가지런히 놓고 앉아 있었다.

차가운 눈매가 백위량의 얼굴과 손목의 밧줄을 천천히 훑었다.

"설수연입니다."

여인이 먼저 이름을 밝혔다.

"장부를 맡고 장원 안팎의 일을 살핍니다."

백위량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설수연.

원작에서는 설가장이 불탄 뒤 설소운을 따라 강호로 나와 책략을 보태던 인물이었다. 의심이 많고 사람을 끝까지 파헤쳤다.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껄끄러운 종류였다.

"백위량." 설수연이 물었다. "흑풍채의 말단이 채주의 무공 약점과 장원의 수로 장치와 내통자의 증거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심문당 안이 고요해졌다.

백위량은 고개를 숙였다. 대답을 고르는 척 시간을 벌었다.

"흑풍채에서는 입이 가벼운 놈이 오래 삽니다."

설수연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그게 답입니까?"

"장흑산은 술에 취하면 오른쪽 어깨를 만졌습니다. 마봉칠은 수로로 들어갈 때마다 곽노삼의 이름을 입에 올렸습니다. 소인은 말단이라 일을 떠맡았고 그만큼 귀가 열려 있었습니다."

"수로문의 두 번째 걸쇠도 귀로 들었습니까?"

정확한 찌르기였다.

백위량은 손목의 밧줄을 만지작거렸다.

"소인은 도망칠 준비를 했습니다."

설무경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무엇에게서?"

"흑풍채에게서요."

백위량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장흑산이 설가장을 삼켜도 제 같은 말단에게 떨어질 것은 없습니다. 일이 끝나면 입을 아는 놈부터 버릴 겁니다. 그래서 길을 외우고 곽노삼이 드나드는 곳을 살폈습니다."

거짓은 아니었다. 원래 백위량도 흑풍채에서 버려질 운명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소설에서 읽었다는 부분은 말할 수 없었다.

설소운이 낮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온 것이오?"

"살고 싶어서 왔습니다."

백위량은 더 꾸미지 않았다.

"하지만 설가장이 무너지면 소인도 살 수 없었습니다."

설무경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백위량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곽노삼에게서 더 알아낼 것이 있느냐."

백위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가 하나 더 있을 겁니다."

설수연의 손끝이 멎었다.

"어디에?"

"북문 밖 버려진 마구간입니다. 비둘기장 아래 벽돌 하나가 헐거울 겁니다. 곽노삼은 거기에 은전 출납을 따로 적어 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성이라는 말로 물러섰지만 백위량은 위치를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그 장부는 설가장이 무너진 뒤 한참 지나 발견됐다. 지금 찾아내면 흑풍채의 다른 줄도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설무경이 설수연을 보았다.

"네가 가서 확인해라. 무사 넷을 붙인다."

설수연은 장부를 덮고 일어났다. 나가기 전 그녀가 백위량을 한 번 더 보았다.

"없으면 거짓말 하나가 늘어납니다."

"있을 겁니다."

백위량은 웃지 못했다.

잠시 뒤 마구간 쪽으로 보낸 무사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심문당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기름때가 밴 얇은 장부가 들려 있었다.

"찾았습니다. 비둘기장 밑 벽돌 속입니다."

설수연은 뒤따라 들어와 장부를 펼쳤다.

"쌀과 약재를 빼돌린 날짜가 있습니다. 흑풍채에 건넨 은전도 적혀 있군요."

그녀의 손가락이 마지막 장에서 멎었다.

"이건 무엇이지?"

짧은 문장이었다.

장원 안의 불빛을 기다린다.

백위량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곽노삼 하나로 끝난 일이 아닐 수 있었다.

"가주님."

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바깥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서문에 약재상들이 왔습니다!"

설무경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 시각에?"

백위량은 창밖을 보았다.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성문을 닫을 때에 낯선 상인이 약재를 들고 온다는 것은 이상했다.

"가 보겠습니다."

설소운이 검을 잡았다.

"너는 여기 있어라."

"저들이 저를 찾으러 왔을 수도 있습니다."

설소운의 얼굴이 굳었다.

"더더욱 안 된다."

백위량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창가에서만 보겠습니다. 얼굴을 가리고요."

설무경은 허락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대신 무사 하나가 밧줄을 잡고 백위량을 서문 위 망루로 이끌었다.

문밖에는 짐마차 한 대와 사내 셋이 서 있었다. 약재 꾸러미를 든 상인이 문지기에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전쟁통이라 약재가 귀합니다. 다친 분이 많다 들었기에 급히 왔지요."

백위량은 천 조각 사이로 그들의 발을 보았다.

발목까지 묻은 검은 진흙.

북문 밖 버려진 마구간 뒤편의 웅덩이에서만 나오는 진흙이었다.

게다가 상인의 손바닥에는 약초를 다루는 굳은살이 없었다. 칼자루를 오래 쥔 손이었다.

상인이 문지기에게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백위량이라는 사내를 보셨소? 채주님이 찾으십니다."

백위량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흑풍채에서는 전령끼리 신분을 가릴 때 저 말을 썼다. 진짜 동료라면 어느 채주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길을 열어 준다.

"문을 열지 마십시오!"

그가 외쳤다.

"약재상이 아닙니다. 마구간에서 온 놈들입니다!"

상인의 웃음이 지워졌다.

"들켰다."

서문이 반쯤 열리는 순간 사내 셋의 소매에서 쇠뇌가 튀어나왔다.

퉁!

짧은 화살이 문기둥에 박혔다. 끝에는 푸른빛 독이 묻어 있었다.

"백위량을 내놔라! 은전 백 냥이다!"

사냥꾼 둘이 문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설가장 무사들이 장봉을 세웠지만 맨 앞의 사내는 칼을 비틀어 봉 끝을 흘려 냈다.

설소운이 그 앞에 내려섰다.

"여기는 설가장이다."

검광이 한 번 번뜩였다.

사내의 칼이 반 토막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뒤따르던 사냥꾼은 물러나려다 담장 위에 대기하던 무사들에게 눌렸다.

마지막 한 명은 싸움에 끼지 않았다. 그는 짐마차 뒤로 물러나 작은 기름등을 꺼냈다.

백위량의 눈이 커졌다.

"소장주님! 등불입니다!"

설소운이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불씨를 붙이려는 찰나 검집 하나가 날아가 그의 손목을 정확히 때렸다.

등불이 돌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 했지만 설수연의 짧은 비도가 그의 소매를 문기둥에 박아 버렸다.

"움직이면 다음은 손등입니다."

차가운 목소리에 사내가 멎었다.

포박된 사냥꾼의 품에서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장흑산의 인장이 찍힌 현상문이었다.

백위량의 이름 아래로 은전 백 냥이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더 짧은 지시가 있었다.

장원 안에서 불빛이 보이면 마구간으로 유인하라.

설무경의 얼굴이 굳었다.

"마봉칠이 퇴각하며 전령을 풀었군."

사냥꾼 하나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

"장터마다 종이를 뿌렸다. 백 냥이면 사흘 안에 강호의 들개들이 다 모인다."

설소운의 검끝이 사내의 목 앞에서 멈췄다.

"누가 장원 안에서 신호를 보내지?"

"우린 모른다. 불빛만 보면 마구간으로 오라 했을 뿐이다."

거짓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백위량은 깨진 등불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장원 안에 남은 내통자가 있다면 자신을 넘기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다음에는 더 조용하고 날카로운 칼이 올 수 있었다.

심문당으로 돌아온 설무경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백위량은 동쪽 빈채에 둔다. 객으로 대하지도 죄인으로 가두지도 않는다."

백위량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처우입니까?"

"감시 아래 협력자로 둔다는 뜻이다. 장원 밖 출입은 금한다. 네 정보가 맞는 동안 네 목숨은 설가장이 지킨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지금의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좋은 조건이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설수연이 곧장 말했다.

"제가 감시하겠습니다."

백위량은 그녀를 보았다. 설수연의 시선에는 감사도 호의도 없었다. 다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앞에 둔 사람의 집요함이 있었다.

"마음껏 하십시오."

그는 진심으로 답했다.

감시자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혼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설소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백위량은 내 은인이다. 장원 안에 있는 동안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겠소."

백위량은 그 말을 듣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은인이라는 말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방패가 스스로 앞으로 나서는 마당에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동쪽 빈채로 향하던 중 백위량은 안마당 지붕 위에서 미약한 빛이 한 번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너무 짧아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깨진 기름등을 본 백위량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장원 안의 불빛.

누군가가 아직도 바깥을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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