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용병단, 장부 하나로 전장을 지배함

3화: 말발굽 아래의 장부
주방의 솥이 다시 끓는 동안 마구간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배식 줄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살아 있었다. 고기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그릇을 고쳐 잡는 소리였다. 반면 마구간 쪽에서는 말 한 필도 코를 울리지 않았다.
한스는 문에 걸린 봉인 끈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붉은 밀랍에는 로웬의 개인 인장이 선명했다. 주방 지하에서 나온 이중 장부의 승인 표식과 닮은 문양이었다.
"열겠습니다."
가르크가 문 앞을 가로막았다.
"말은 사람보다 예민해. 한밤중에 낯선 놈들이 들쑤시면 발광한다고."
"그래서 문을 부수지 않고 정식으로 엽니다."
한스는 품에서 마구간 출납부를 꺼냈다.
"장부에는 전투마 서른두 필. 짐말 열한 필. 모두 마흔세 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깥 말똥 더미의 양과 물통 교체 기록은 그 수를 못 따라갑니다."
가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똥까지 세겠다는 거냐?"
"사료는 말이 먹고 돈은 장부가 먹습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합니다."
이사벨라는 봉인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잭에게 배신당한 뒤에도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가 비쳤다. 로웬은 선대 단장이 남긴 부단장이었다. 그녀가 검을 익히던 시절부터 전장에 나갈 말을 골라 준 사람이기도 했다.
"로웬은 전방 초소에 있다고 했다."
"확인해 보셨습니까?"
이사벨라의 입술이 굳었다.
확인하지 않았다. 믿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오늘 밤 안에 급여 부족분을 메우지 못하면 내일 아침에는 누가 우리 편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어집니다."
이사벨라가 고개를 들었다.
"열어라."
밀랍이 갈라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문이 열리자 젖은 짚과 귀리 냄새가 밀려 나왔다. 벽을 따라 마구 칸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말들은 낯선 빛에 고개를 들고 콧김을 뿜었다.
한스는 문턱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흔세 필이라면 발굽과 숨소리만으로도 마구간이 비좁아야 했다. 그런데 눈앞의 말은 스물여섯 필이었다. 짐말까지 합쳐도 서른일곱을 넘지 않았다.
여섯 칸이 비어 있었다.
그 빈 칸들은 너무 깨끗했다.
"브람."
이사벨라가 낮게 불렀다.
마구간지기 브람은 안쪽에서 기어 나오듯 걸어왔다. 마른 얼굴에 짚 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는 단장을 보자 허리를 숙였지만 눈은 한스의 장부에 붙어 있었다.
"예, 단장님. 말들이 놀랄까 봐 문을 닫아 둔 것뿐입니다."
"여섯 필은 어디 있지?"
브람의 시선이 한 번 흔들렸다.
"부상마입니다. 뒤편 치료 우리로 옮겼습니다. 보존 마법사에게 보일 예정이라서..."
"치료 우리는 비어 있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아까 지나올 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부상마가 있다면 약초와 붕대 출납도 있어야 합니다. 마구간 장부에는 없습니다."
브람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가르크가 한스 쪽으로 다가왔다.
"말을 모르는 놈이 떠드는 소리일 수도 있지. 전투마는 돌려 쓰고 다른 곳에 묶어 둘 때도 있어."
"맞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칸부터 봐야 합니다."
한스는 가장 왼쪽 빈 칸으로 들어갔다. 물통을 들어 보니 바닥에 말라붙은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귀리통의 안쪽에는 벌레가 기어간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마구 걸이를 쓸었다. 손끝에 묻은 먼지가 가루처럼 흩어졌다.
[분석 대상: 빈 마구 칸]
[최근 사용 추정: 19일 이전]
[사료 지급 기록: 매일 전투마 1필분]
[물 교체 기록: 금일 새벽]
한스는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칸은 열아흐레 동안 비었습니다. 그런데 장부에는 오늘 새벽에도 귀리 두 되와 물 한 통이 나간 것으로 적혀 있군요."
"기록이 조금 늦었을 수도..."
"여섯 칸 모두 열아흐레씩 늦었습니까?"
브람이 대답하지 못했다.
한스는 마구간 뒤쪽의 거름 더미를 가리켰다. 새 짚은 위쪽에 얇게 덮여 있었지만 아래쪽은 생각보다 낮았다. 그는 나무 삽을 들어 한 번 뒤집었다.
"마흔세 필이면 이 크기의 더미가 사흘에 한 번은 비워져야 합니다. 지금 양은 서른일곱 필 기준으로 닷새치입니다. 물과 사료가 아니라 배설물이 장부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회색 갈기 암말."
가르크가 중얼거렸다.
"내 조의 정찰마였다. 사흘 전에 절뚝이다 죽었다고 들었지."
한스가 장부를 넘겼다.
"이름은 백야. 오늘도 귀리 두 되와 소금 한 줌을 먹었습니다. 열아흐레 전부터요."
가르크의 손등에서 핏줄이 불거졌다.
"죽은 말 먹이까지 빼돌렸다고?"
브람이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이 허리춤 열쇠 꾸러미를 감쌌다.
한스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 열쇠는 어디 창고 열쇠입니까?"
"사료 창고입니다. 하지만 부단장님 허락 없이는..."
이사벨라의 검이 반쯤 뽑혔다.
"내 용병단의 창고에 내 허락이 필요하다고?"
브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열쇠를 쥔 손을 등 뒤로 숨겼다.
한스는 이사벨라의 팔을 막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단장님. 손목을 자르면 열쇠는 얻어도 장부의 순서는 사라집니다. 열게 하겠습니다."
그는 브람을 향해 손을 폈다.
"열쇠를 주십시오. 지금 주면 강요받았다는 변명은 장부에 적어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숨기면 로웬과 같은 줄로 적겠습니다."
브람의 손가락이 떨렸다.
마침내 열쇠 꾸러미가 한스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사료 창고 안에는 귀리 포대가 벽처럼 쌓여 있었다. 한스는 포대 사이의 바닥을 먼저 살폈다.
먼지가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수레 바퀴가 나간 자리도 두 줄 남아 있었다. 안쪽 포대는 오래된 것이고 입구 쪽 포대만 새것이었다.
"들어온 순서대로 쌓지 않았군요."
브람이 침을 삼켰다.
"말들이 좋은 귀리를 먼저 먹으니까..."
"말은 포대의 납품 표식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이 읽죠."
한스는 포대 하나의 끈을 풀었다. 귀리 사이에서 가느다란 회색 끈이 나왔다. 회색 여우 상단이 짐을 묶을 때 쓰는 끈이었다. 주방 지하에서 본 것과 같은 색이었다.
그는 포대의 무게를 재지 않았다. 포대 아래에 남은 네모난 눌림 자국을 세었다. 열두 포대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실제로는 여섯 포대뿐이었다.
"여섯 필이 먹었다고 적힌 사료가 여섯 포대씩 빠졌군요. 말은 없고 사료만 밖으로 나갔습니다."
가르크가 이를 갈았다.
"로웬이 전부 가져갔다는 거냐?"
"전부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창고는 그렇게 말합니다."
한스의 시선은 창고 옆 편자 작업장으로 옮겨 갔다. 장부에는 지난달 새 편자 백여 개를 갈았다고 적혀 있었다. 전투마는 거친 산길을 뛰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숫자였다.
문제는 말발굽이었다.
한스는 가까운 군마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편자는 닳아 있었고 못 머리는 검게 녹슬어 있었다. 새것이라면 남아 있을 금속 광택이 전혀 없었다.
"가르크 조장님. 백야 말고 최근에 편자를 간 말이 있습니까?"
가르크는 자신의 말을 끌어당겨 발굽을 봤다. 잠시 뒤 욕설이 낮게 새어 나왔다.
"없어. 내 말도 두 달 전 그대로야. 로웬이 대장간 놈들이 일을 미룬다고 했지."
작업장 안에는 못 상자와 새 편자 상자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한스가 상자 위의 납품 표식을 닦아 냈다. 회색 여우 상단의 표식 아래에 로웬의 인장이 있었다.
[분석 대상: 편자 납품 상자]
[납품 수량: 112개]
[실제 사용 추정: 8개 이하]
[장부 기재 수량: 104개 교체 완료]
"백네 개를 갈았다고 적고 실제로는 여덟 개도 쓰지 않았습니다."
브람이 주저앉았다.
"저는 못을 건넸을 뿐입니다. 부단장님이 새 편자는 전방 비축분이라고 했습니다. 곧 나갈 말들에 쓸 거라고..."
"전방 비축분을 왜 회색 여우 상단 표식 상자에 넣습니까?"
한스는 작업대 아래를 살폈다. 발굽을 받치는 철판은 무겁고 바닥에 박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한쪽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작업대 뒤의 낡은 화로로 다가가 벽돌을 두드렸다.
텅.
속이 빈 소리가 났다.
"가르크 조장님. 벽돌을 빼 주십시오."
가르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손도끼의 등으로 벽돌 틈을 내리쳤다. 세 번째 타격에 벽돌이 빠지고 차가운 금속 냄새가 흘러나왔다.
벽 안에는 기름칠한 천 꾸러미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 꾸러미에서는 은괴가 쏟아졌다. 두 번째에는 미사용 편자가 있었다. 세 번째에는 로웬의 인장이 찍힌 인수 메모와 접힌 운송 지시서가 나왔다.
한스가 은괴를 만지자 흐린 글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회수 가능 은괴: 96골드]
[미사용 편자 전매 가치: 65골드 80실버]
[총 회수 가치: 161골드 80실버]
한스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주방에서 회수한 뒤에도 남은 급여 부족분은 148골드 30실버였다. 이 물건을 제값에 넘기기만 하면 모자란 액수를 메우고도 13골드 50실버를 남길 수 있다.
이사벨라는 은괴를 내려다봤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검끝은 브람을 향하지 않았다.
"로웬은 어디 있지?"
브람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전방 초소에는 안 갔습니다. 해 질 무렵 수레 한 대를 끌고 나갔습니다. 북쪽 관문으로 간다고 했는데..."
한스가 운송 지시서를 펼쳤다. 수신처는 북쪽 관문이 아니었다.
회색 여우 상단 임시 적재장.
"거짓말까지 장부에 적어 두었군요."
가르크가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지금 따라가면 잡을 수 있다. 내 조를 데리고 가겠다."
"안 됩니다."
한스는 은괴 꾸러미를 다시 천으로 감쌌다.
"로웬은 수레와 상단을 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쫓으면 우리에게 남은 말과 사람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은괴는 아직 월급이 아닙니다. 팔기 전까지는 무거운 돌일 뿐입니다."
"놈을 놔두자고?"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바꾸자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급여를 지킬 돈을 확보하고 새벽에는 적재장으로 갑니다. 로웬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려면 우리가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사벨라가 한스를 바라봤다.
"은괴는 누가 바꾸지?"
"회색 여우 상단과 거래하지 않는 대장간에 편자를 넘기고 은괴는 둘로 나눠 바꾸겠습니다. 한 번에 큰돈을 움직이면 로웬의 눈에 띕니다."
"네가 정해라."
이사벨라는 자신의 인장을 꺼내 한스에게 건넸다.
"오늘부터 은괴와 사료와 편자는 네 장부를 거치기 전에는 한 조각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르크. 한스의 지시는 내 지시다."
가르크가 잠시 한스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꾸러미를 어깨에 올렸다.
"호위는 내가 한다. 대신 환전상 놈이 값을 깎으면 이 장부 말고 내 주먹을 쓰겠다."
"값을 깎게 두지 마십시오. 물건을 세 군데로 나눠 보이면 됩니다."
"그게 더 귀찮군."
"귀찮은 게 손해 보는 것보다는 쌉니다."
가르크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인지 욕설인지 알 수 없었다.
한스는 브람을 향해 새 장부 한 권을 내밀었다.
"당신은 감금됩니다. 그 전에 오늘 밤까지 이곳의 실제 말 수와 사료 수량을 직접 적으십시오. 틀리면 당신 손으로 쓴 거짓말이 됩니다. 맞으면 로웬이 시킨 일을 구분할 기회가 생깁니다."
브람은 장부를 받아 들고 떨리는 손으로 실제 말 수를 적었다. 마흔세 필이었던 장부의 말들은 서른일곱 필이 되었다. 죽은 여섯 필이 먹은 사료와 편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월급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스는 마지막 꾸러미를 정리하다가 접힌 종이 한 장을 더 발견했다. 운송 지시서 밑에 끼워져 있던 작은 편지였다. 붉은 밀랍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봉인에는 회색 여우의 문양이 없었다.
수신인 이름도 없었다.
다만 주소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제국 수도. 제3 병참청 앞, 검은 종탑 여관.
한스의 손끝이 멈췄다.
로웬이 빼돌린 물자는 북부의 장사꾼 한 명에게 팔려 나간 것이 아니었다.
이사벨라가 그의 표정을 읽었다.
"무슨 문제지?"
한스는 편지를 장부 안쪽에 넣고 봉인 끈을 다시 묶었다.
"문제가 아니라 목적지입니다."
그는 마구간 문 밖의 어둠을 바라봤다.
"새벽이 오면 회색 여우 적재장부터 엽니다. 로웬이 수도에 물자를 보낼 생각이었다면 그 수레에는 우리 용병단보다 큰 장부가 실려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