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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2화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2화: 치킨보다 중요한 냉각수

개찰구 택배함이 열리는 소리는 15층까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강현우는 알았다. 수중 정원을 뛰어다니던 송곳니토끼 세 마리가 동시에 현관 쪽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웠기 때문이다.

현우는 소파에서 고개만 들었다. 발전실 벽면의 수정 패널에는 변환기 2호기의 출력이 여전히 71퍼센트라고 떠 있었다.

"왔네."

그는 후드티 위에 얇은 작업 조끼를 걸쳤다. 외출이라기에는 거실과 현관 사이를 걷는 것뿐이었다. 오늘은 배관을 만질 예정이라 주머니에 렌치까지 넣었다.

청소 골렘이 뒤따라왔다. 돌덩이 몸에는 작은 공구 벨트가 둘러져 있었다.

"주인님. 배송 도착 확인. 물품 세 건. 외부 인원 두 명이 개찰구 앞에 대기 중입니다."

"물건 말고 사람도 왔어?"

"한 명은 배송 기사. 다른 한 명은 헌터 관리국 소속으로 확인됩니다."

현우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

치킨과 콜라와 절연 코어를 받는 데 관리국 직원이 필요한 이유는 세상에 없었다. 그는 수중 정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송곳니토끼들이 자꾸만 현관문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애들 앞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공간문이 조용히 열렸다.

미궁의 정원 1층 입구. 개찰구 택배함 안에는 보온 상자 하나와 콜라 상자 하나, 충격 방지 케이스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케이스 겉면에는 굵은 글씨로 ‘정밀 전력 부품’이라는 경고가 붙어 있었다.

서연희의 목소리가 택배함 스피커에서 흘렀다.

"절연 코어 도착했어요. 원래는 연구소가 갖고 가려던 물건인데 정제 마석 두 상자가 더 설득력 있더라고요."

"연구소도 치킨보다 우선순위가 밀리네요."

"헌터님이 거래품을 과하게 내놓으시니까요. 그리고 코어에 붙은 설명서는 꼭 읽어 보세요. 현실 전력 기준이라 마력 전류에 물리면 과열 차단이 걸릴 수 있대요."

"차단기가 걸리면 안 걸리게 고치면 되죠."

"그 말이 제일 무섭습니다."

택배함 밖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곧 조심스러운 남자 목소리가 뒤따랐다.

"강현우 헌터님. 관리국 시설안전과입니다. 고가 전력 부품 반입 확인 때문에 서명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손바닥을 폈다. 택배함 안의 세 상자가 차례로 떠올라 공간문 너머로 미끄러졌다.

보온 상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서류 한 장만 남았다. 바깥의 남자가 급히 개찰구 쪽으로 다가왔다.

"헌터님, 잠깐만요. 직접 뵙는 게 아니라 확인만…"

공간문 가장자리가 얇게 접혔다. 문 너머 풍경이 택배함 안쪽만 비추도록 바뀌었다.

"연희 씨가 받았잖아요."

"물품만으로는 절차가…"

"절차가 제 집에 들어오진 않죠."

현우는 통신을 끊었다. 공간문도 닫혔다.

잠깐의 정적 뒤에 보온 상자에서 따뜻한 튀김 냄새가 퍼졌다. 송곳니토끼들이 어느새 현우 발치에 줄을 서 있었다. 청소 골렘은 콜라 상자를 들고도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 외부 인원이 아직 서 있습니다."

"서 있으면 다리 아프겠네."

그 말로 현우의 관심은 끝났다.

발전실은 집의 가장 아래쪽에 있었다. 넓은 방 한가운데에는 검은 수정 기둥 세 개가 원형으로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은빛 배관과 굵은 케이블이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었다.

마력 전력 변환기 2호기는 그중 가장 새것이었다. 오래된 1호기는 거실 조명과 온돌, 냉장고 정도를 돌리는 데는 충분했다. 하지만 고성능 게이밍 PC가 켜지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현우는 먹고 싶은 게임을 끊기지 않고 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그건 집주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결함이었다.

"코어 올려."

청소 골렘이 은색 케이스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뚜껑 안에는 손바닥만 한 육각형 결정이 들어 있었다. 투명한 결정 속에서 가느다란 은실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현우는 설명서를 한 장 넘겼다.

[정격 전류 초과 시 자동 차단]

[발열 시 냉각팬이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

"팬이 아니라 수냉으로 돌리면 되겠네."

"현재 냉각 배관은 변환기 1호기와 공유 중입니다."

"그러니까 분리해야지."

현우가 변환기 옆 덮개를 열자 안쪽에서 짙은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마석에서 뽑아낸 전류는 일반 전기보다 훨씬 변덕스러웠다. 기분 좋게 흐르다가도 부하가 걸리면 갑자기 열을 뿜었다.

그는 기존 절연판을 빼고 새 코어를 끼웠다. 은실이 마력선과 맞닿는 순간 결정 내부에 작은 번개가 번졌다.

수정 패널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력 안정률 74퍼센트]

[76퍼센트]

[79퍼센트]

현우는 소파에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진지한 얼굴로 숫자를 바라봤다. 80만 넘기면 PC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숫자는 79에서 멈췄다.

웅.

변환기 아래 배관이 낮게 울렸다. 뜨거워져야 할 열교환판 표면에 하얀 성에가 번졌다. 다음 순간 케이블 하나가 파란 불꽃을 튀기며 꺼졌다.

거실 쪽에서 대기 화면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가 미리 켜 둔 PC가 전원 테스트도 못 하고 침묵했다.

"이건 게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청소 골렘이 배관에 손가락을 대고 잠시 멈췄다.

"2호기 열교환부에 저온 마력 역류. 원점은 16층 방향입니다. 심층부 미확인 수맥 반응과 동일한 파장입니다."

현우는 배관도를 화면에 띄웠다. 15층 아래쪽으로 내려간 굵은 선 하나가 붉게 깜박였다. 어젯밤 시스템이 알려 준 수맥 반응은 바로 그 선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마력은 뜨겁고 수맥은 차가웠다. 둘이 자연스럽게 만나면 냉각에 쓸 만했다. 그런데 현재 배관은 수맥의 냉기를 전력선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만들고 있었다.

"냉각수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길이 잘못됐네."

현우는 보온 상자를 바라봤다.

막 튀긴 치킨은 가장 맛있는 시간이 짧다. 그것을 알고 있는 현우는 무언가를 미루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화면 속 79퍼센트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오늘 고쳐 두지 않으면 내일도 게임을 켜다 꺼질 게 분명했다.

그는 렌치를 집어 들었다.

"식기 전에 끝내자. 배관 점검 간다."

"16층은 위험 구역입니다."

"배관이 고장 났는데 위험 구역이 어딨어."

공간문 너머로 이어진 16층은 15층의 집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천장은 낮았고 바닥에는 얕은 물이 고여 있었다. 벽을 타고 흐르던 푸른 물줄기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을 냈다. 멀리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단단한 것이 바위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슬리퍼 대신 안전화를 신었다. 그 정도 준비는 집수리에도 필요했다.

통로 첫 모퉁이에서 원인을 찾았다.

손가락만 한 얼음벌레 수십 마리가 수맥이 새는 틈에 달라붙어 있었다. 반투명한 몸통은 냉기를 머금고 푸르게 빛났다. 벌레들은 물을 마시는 대신 주변 바위를 계속 갉아 먹고 있었다.

그 탓에 배관이 지나가야 할 벽면에는 가느다란 균열이 거미줄처럼 번져 있었다.

"남의 벽을 왜 뜯어."

얼음벌레들이 현우의 목소리에 몸을 웅크렸다. 가장 큰 놈 하나가 입을 벌리며 성에 섞인 숨을 뿜었다.

현우는 한숨을 쉬고 손을 들었다.

통로 양쪽 벽이 조용히 안쪽으로 접혔다. 공간 자체가 벌레들을 향해 좁아졌다. 얼음벌레들은 도망칠 틈을 잃고 길게 파인 배수 홈으로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청소 골렘이 뒤에서 철망 뚜껑을 덮었다.

"처리 완료."

"수중 정원엔 보내지 마. 거긴 난방 배관 있어."

"그럼 어디에 보관합니까?"

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냉장 창고 옆 빈 상자에. 얼음팩으로 쓸 수 있나 나중에 보자."

벌레가 사라지자 수맥의 모습이 드러났다. 벽 틈에서 솟은 물은 너무 맑아서 바닥의 검은 돌무늬까지 보였다. 손을 가까이 대자 피부가 얼얼할 만큼 차가운 마력이 맥박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물길은 일정한 박자로 미세하게 들썩였다.

툭. 툭. 툭.

세 번.

잠시 고요해졌다가 다시 세 번.

현우는 벽에 붙은 수정 측정기를 켰다. 수치가 아래쪽을 가리켰다. 지도상으로는 막힌 암벽이 있어야 할 방향이었다.

"아래에서 물을 밀어 올리나?"

청소 골렘이 측정기 화면을 들여다봤다.

"압력 방향은 아래에서 위입니다. 다만 자연 수압과 다릅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건 나중에. 우선 물길부터 빼자."

현우는 벽면을 손끝으로 짚었다. 공간 능력이 넓게 퍼지며 바위 안쪽의 빈틈을 더듬었다. 균열 사이로 쓸 수 있는 통로가 보이자 그는 가장 얇고 안정적인 길만 골라 접어 냈다.

바위가 잘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벽 한쪽이 종이처럼 접히며 손바닥 너비의 빈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에 은빛 배관이 들어갔다.

현우는 배관 바깥을 넝쿨로 감쌌다. 15층 정원에서 옮겨 온 검은 넝쿨은 수맥의 찬물을 먹더니 단단한 껍질을 만들었다. 흔들림을 흡수하는 완충재가 된 것이다.

"취수구 높이 유지. 역류 방지 밸브 설치."

청소 골렘이 짧게 대답했다.

"설치합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움직였다. 현우는 배관 기울기를 확인하고 골렘은 벽면을 메웠다. 수맥에서 흘러든 차가운 물이 새 관을 타고 15층 방향으로 빨려 올라갔다.

작업이 끝날 무렵 통로의 냉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얼음벌레가 갉아 먹던 균열도 넝쿨 껍질 아래에서 더는 벌어지지 않았다.

현우는 배관 표면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이 정도면 됐지."

15층 발전실로 돌아오자 새 배관은 이미 열교환기 옆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우는 기존 냉각선과 수맥선을 직접 맞닿게 하지 않았다. 두 선 사이에 얇은 수정 격벽을 세우고 그 위로 절연 코어가 전류를 나눠 갖도록 방향을 바꿨다.

"가동."

검은 수정 기둥이 낮게 울렸다.

[출력 안정률 83퍼센트]

[89퍼센트]

[94퍼센트]

차가운 물이 순환하기 시작하자 열교환판의 성에는 사라지고 은은한 김만 피어올랐다.

[출력 안정률 96퍼센트]

현우는 그제야 어깨 힘을 풀었다.

"됐네."

거실의 PC 전원이 들어왔다. 검은 화면 중앙에 익숙한 부팅 로고가 떠올랐다. 팬 소리는 조용했고 조명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쿵.

발전실 바닥이 낮게 울렸다.

쿵. 쿵.

연달아 두 번 더.

수맥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박자였다. 새 배관의 압력계 바늘이 잠깐 흔들렸지만 안전 범위는 벗어나지 않았다.

청소 골렘이 고개를 들었다.

"16층 취수구 압력 변화. 아래쪽에서 비정상 마력 진동 감지."

현우는 즉시 밸브 손잡이를 잡았다. 아무리 잘 돌아가는 냉각선이라도 집 바닥을 흔드는 원인과 연결해 둘 수는 없었다.

그는 취수량을 절반으로 낮추고 비상 차단선을 걸었다. 수정 패널에는 진동의 방향이 희미한 점으로 표시됐다. 17층으로 내려가는 길보다 더 안쪽, 기존 지도 바깥이었다.

[심층 수로 확장 가능]

[미확인 구역 반응 지속]

현우는 알림을 가만히 바라봤다.

모르는 구역은 대개 귀찮았다. 귀찮은 구역은 대개 외부 헌터들이 좋아하는 공략거리였다. 현우는 그런 종류의 일을 집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냉각수는 마음에 들었다. 96퍼센트 출력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오늘 밤 게임이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확장은 내일 생각하고."

그는 알림을 최소화했다.

거실로 돌아가자 송곳니토끼들이 보온 상자 앞에 다시 줄을 서 있었다. 현우는 치킨 상자를 열어 가장 큰 닭다리 하나를 꺼냈다.

바삭한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퍼졌다. 콜라 캔도 완벽하게 차가웠다.

현우는 안정적으로 켜진 PC 화면을 보고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집수리는 역시 제때 해야 돼."

발전실 아래쪽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누군가 세 번 두드리는 듯한 진동이 다시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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