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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1화

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

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

시놉시스

"거, 깨끗하게 좀 잡으시지. 정수가 다 터졌잖아요."

각성자 관리청의 최하위 F급 헌터이자 던전 부산물 및 시체 처리 전담 청소부 강도현.
귀족 대우를 받는 고등급 헌터들이 지나간 던전 뒤꽁무니를 쫓아 피비린내 나는 마수 시체와 오물을 치우는 게 그의 일이었다.

어느 날, S급 공격대가 휩쓸고 간 정체불명의 네임드 마수 시체 속에서 빛나는 '변종 정수'를 건드렸다가 괴상한 특성이 각성한다.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버리는 몬스터 시체, 뼈, 피, 그리고 부서진 마석.
그 모든 부산물이 도현에게는 능력치와 특성을 무한히 올려주는 절대적인 양식이었다.

"저기요, 헌터님들. 시체 안 치우고 그냥 가시게요? 그럼 이건 다 제 겁니다?"

던전 구석구석을 싹 쓸어버리며 만렙을 향해 나아가는 F급 청소부의 기상천외한 먼치킨 신화가 시작된다.

1화: 정수가 다 터졌잖아요

강도현은 보스방 입구에서 잠깐 멈춰 섰다.

피 냄새가 먼저 목구멍을 긁었다. 그다음은 탄 마석 가루 냄새였다. 그 냄새가 동시에 올라오면 일이 꼬였다는 뜻이었다.

"아이고."

도현은 방독 마스크 위로 한숨을 뱉었다.

"이거 또 추가 오염 처리네."

붉은 균열 굴의 보스방은 이름값을 했다. 바닥은 갈라진 점막처럼 꿈틀거렸고 벽에는 아직 식지 않은 마수의 피가 기름처럼 흘렀다.

중앙에는 뿔 달린 거대 마수의 상반신이 엎어져 있었다.

문제는 상반신만 있다는 점이었다.

나머지는 없었다. 정확히는 너무 잘게 흩어져 있었다. 갑옷 조각, 뼛가루, 타버린 내장, 부서진 마석 파편이 보스방 곳곳에 박혀 있었다.

S급 공격대가 지나간 자리였다.

"청소부 왔네."

태성 길드의 공격대원 하나가 칼을 어깨에 걸친 채 웃었다.

"야, 빨리빨리 치워요. 우리 대장님 성격 급한 거 알죠?"

도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현장 인수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확인은 무슨. 다 죽었고 다 끝났어. 남은 건 쓰레기뿐인데."

대원의 말에 뒤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춤의 휴대용 마력계를 꺼내 바닥 가까이 댔다.

삐삐삐.

수치가 튀었다.

잔여 오염도 42%

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C급 던전 보스 처치 직후라 해도 높은 수치였다. 그것도 S급 공격대가 화력으로 쓸어버린 현장이라면 더 이상했다.

"오염도 높습니다. 시체 절단면이 너무 많아서 잔류 마력이 새고 있어요. 이 상태면 기본 청소가 아니라 방폭 처리 들어가야 합니다."

"방폭?"

대원이 코웃음을 쳤다.

"말 어렵게 하네. 그냥 태우면 되잖아."

"마수 혈액 잘못 건드리면 마력 거품 올라옵니다. 지난달 남양주 D급 던전에서 청소부 둘 실려 갔습니다."

"그건 니들끼리 못해서 그런 거고."

도현은 웃었다. 마스크 안에서 입꼬리만 올렸다.

"네. 그래서 제가 잘해 보겠습니다. 대신 추가 수당 항목은 기록하겠습니다."

대원의 얼굴이 구겨졌다.

"돈 얘기는 관리청이랑 해. 우리는 던전 공략 끝났으니까."

그때 보스방 안쪽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태성 길드 공격대장 차진혁이 피 묻은 검을 허공에 털며 걸어 나왔다. 번쩍이는 갑옷 위로도 근육의 압력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그의 뒤로 대원들이 알아서 길을 비켰다.

차진혁은 도현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철수한다."

"대장님, 청소부가 방폭 처리 어쩌고 하는데요."

"맡겨."

그 한마디로 끝이었다.

대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들었죠? 맡긴답니다. 영광인 줄 알아요. 태성 뒤처리 하는 것도 아무나 못 해."

도현은 또 고개를 숙였다.

말끝의 가시를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다.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도현은 F급 각성자였다. 공격대 뒤를 따라 들어와 피를 닦고 시체를 포대에 담는 청소부.

도현은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더 꼼꼼히 기록했다.

마석 파편 회수 불가 처리.

보스급 잔재 절단 다수.

태성 길드 현장 훼손 심각.

남들이 보기엔 잔소리였다. 도현에게는 돈이었다. 추가 작업비, 위험 수당, 폐기물 처리비가 월세와 밥값으로 바뀌었다.

"강도현!"

무전기에서 박계장의 목소리가 터졌다.

"너 아직 시작도 안 했냐? 관리청 쪽 폐쇄 예정 시간 한 시간 남았어."

"오염도 42%입니다. 혼자 들어가기엔 위험합니다."

"태성이 죽여 놨다며. 뭐가 위험해?"

"죽은 뒤에 더 위험한 것들이 있습니다."

"말대꾸 말고 처리해. 오늘 네가 마무리 못 하면 우리 위탁 계약 날아가."

도현은 무전기를 내려다봤다. 낡은 플라스틱 틈에 마수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엄지로 그 얼룩을 문질러 떼어냈다.

"알겠습니다."

짧게 답한 뒤 도현은 장갑을 조였다.

특수 고무장갑이라고 해 봐야 관리청 지급품 중 가장 싼 모델이었다. 마력 차단율은 61%.

도현은 산소 밸브를 열고 보스방 안으로 들어갔다.

첫 삽은 언제나 조용해야 했다.

그는 바닥에 널린 내장 조각을 바로 건드리지 않았다. 먼저 마석 가루의 방향을 봤다. 폭발이 어느 쪽으로 튀었는지, 혈액이 어느 홈으로 흘렀는지, 벽면의 검흔이 어디에서 멈췄는지.

던전은 죽은 뒤에도 말을 했다.

헌터들은 살아 움직이는 마수를 베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도현은 죽은 것들이 남긴 흔적을 읽었다.

"머리 쪽은 태웠고 심장부는 비었고... 이상한데."

그는 보스 마수의 갈라진 흉곽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마석은 없었다. 대형 길드답게 비싼 건 챙겨 갔다. 하지만 마석을 뽑아낸 자리가 너무 깨끗했다. 보통은 혈관처럼 이어진 마력선이 찢겨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 시체는 속이 비어 있었다.

누가 안쪽에서 빨아먹은 것처럼.

도현은 손전등을 더 깊이 비췄다.

검붉은 빛이 아주 짧게 깜빡였다.

"뭐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태성 대원들은 이미 통로 밖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보스방 입구에는 버려진 탄피와 밟힌 담배꽁초만 남았다.

도현은 다시 빛이 난 쪽을 살폈다.

흉곽 뒤쪽 벽에 균열이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틈이 아니었다. 보스 마수가 마지막으로 몸을 비틀며 벽을 들이받은 흔적 같았다.

도현은 갈고리 막대를 집어넣고 굳은 혈액 덩어리를 끌어냈다.

쿵.

축축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시체였다.

보스보다 작았지만 결코 하급 마수는 아니었다. 사슴처럼 길고 뒤틀린 뿔 하나가 머리 중앙에서 솟아 있었고 등에는 검은 가시가 빽빽했다. 공식 보고서에 없던 마수였다.

도현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명단 누락."

그는 현장 기록기를 켜려다 멈췄다.

보고하면 어떻게 될까.

태성 길드가 다시 돌아온다. 관리청이 봉인한다. 박계장은 위험 수당 대신 입막음부터 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도현에게 남는 건 야근 수당 몇 만 원과 오염된 장갑뿐이다.

시체는 아직 따뜻했다.

아니, 따뜻한 정도가 아니었다. 뿔 아래쪽에서 미세한 마력이 뛰고 있었다. 죽은 마수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박동이었다.

도현은 마력계를 가까이 가져갔다.

삐이이익.

수치가 깨졌다.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숫자가 밀려났다.

잔여 오염도 측정 불가

"미쳤네."

무서워해야 정상일 텐데 도현의 입가에는 웃음이 먼저 걸렸다.

청소부는 쓰레기를 본다. 좋은 청소부는 쓰레기와 자원을 구분한다.

도현의 눈에는 이 시체가 쓰레기로 보이지 않았다.

태성 길드가 놓친 물건.

관리청 기록에도 없는 부산물.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던전 잔재.

그는 기록기의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작은 녹색 불빛이 꺼졌다.

그다음 무전기 녹음 모듈을 분리해 주머니에 넣었다. 절차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빼는 순서도 자연스러웠다.

"헌터님들."

도현은 아무도 없는 보스방을 향해 작게 말했다.

"시체 안 치우고 그냥 가셨죠?"

그는 갈고리로 시체의 흉부를 벌렸다.

"그럼 이건 제 겁니다."

갈라진 흉부 안쪽에 검붉은 결정이 박혀 있었다. 마석처럼 딱딱한 광물이 아니었다. 심장처럼 수축하고 팽창했다. 표면에는 금빛 선이 실핏줄처럼 얽혀 있었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정수 결정.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도현이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교육 영상에서만 봤다. 마수가 죽기 직전 극히 드물게 남긴다는 핵심 에너지. 대개는 공략자가 즉시 회수하거나 마석과 함께 붕괴한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정수라기엔 너무 탁했고 마석이라기엔 너무 살아 있었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강도현! 응답해. 왜 기록 신호가 끊겼어?"

도현은 장갑의 손목 부분을 눌러 통신 잡음을 만들었다.

"장비 간섭입니다. 보스방 잔류 마력 때문에 끊깁니다."

"빨리 처리하고 나와. 태성 쪽에서 폐쇄 승인 넣었어. 시간 넘기면 던전 문 닫힌다."

"십 분이면 됩니다."

"오 분."

무전이 끊겼다.

도현은 정수를 내려다봤다.

오 분.

보고하기엔 짧고 회수하기엔 충분했다.

훔친다는 표현은 부정확했다. 대형 길드가 버리고 갔다. 관리청도 기록하지 못했다. 도현은 현장 청소 책임자였다. 미신고 위험 부산물을 회수해 폐기하는 건 절차상 문제 될 게 없었다.

문제는 폐기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점뿐이었다.

그는 차단 집게를 꺼냈다. 집게 끝이 정수 표면에 닿는 순간 금속이 검게 녹았다.

치이익.

"아."

도현은 얼른 손을 뺐다.

차단 집게가 반쯤 사라져 있었다.

정수의 빛이 조금 더 강해졌다. 마치 집게를 먹은 것처럼.

도현은 장갑 낀 손을 바라봤다. 마력 차단율 61%. 조금 전 금속 집게도 녹였다. 직접 만지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 정수는 도현을 보고 있었다.

눈도 입도 없는데 그런 느낌이 들었다. 검붉은 표면의 금빛 선들이 일제히 도현의 손끝 방향으로 몰렸다.

도현은 시험 삼아 갈고리를 다시 움직였다.

정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빼자 빛도 흐려졌다. 손을 가까이 대자 금빛 선들이 다시 살아났다.

"나한테만?"

두려움보다 계산이 빨랐다.

F급 각성자 강도현에게만 반응하는 정체불명 부산물.

그 말은 다른 누군가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 현장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뜻이었다.

도현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장갑 표면이 뜨거워졌다. 손등을 따라 전기가 기어올랐다. 고통은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렇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작업화 밑에는 태성 길드원이 밟고 간 담배꽁초가 눌려 있었다. 옆에는 보스 마수의 뼛조각이 쓰레기처럼 굴렀다. 비싼 것만 챙긴 자들이 버린 찌꺼기였다.

공략 보상은 공격대가 가져갔다. 명예는 길드가 가져갔다. 위험 수당은 중간 관리자가 가져갔다. 도현에게 남은 건 찢어진 방호복과 시체 냄새뿐이었다.

이번엔 아니었다.

"버린 거면."

도현의 손끝이 정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주워 가도 되는 거잖아."

정수가 먼저 움직였다.

검붉은 빛이 실처럼 뻗어 장갑을 뚫었다. 도현의 손가락 안쪽으로 얼음장 같은 감각이 파고들었다. 동시에 뜨거운 무언가가 혈관을 타고 팔꿈치까지 치솟았다.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정수의 표면이 찢어지듯 열렸다.

그 안에서 목소리도 소리도 아닌 문장이 떠올랐다.

대상 접촉 확인.

도현의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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