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14화: 벽 뒤의 세 번
톡.
톡.
톡.
유리 안쪽에서 울린 둔탁한 소리에 사람들이 동시에 캡슐 앞으로 쏠렸다.
"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옆구리를 다친 여자가 투명한 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후가 움직이기 전에 정민이 그 팔을 막았다.
"손대지 마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팔을 막은 손은 단단했다.
도윤이 들어가기 직전 정한 신호였다. 한 번은 사람 목소리. 두 번은 기계 소리. 세 번은 벽 뒤 소리.
캡슐 안의 도윤은 눈을 감고 있었다. 푸른 물은 가슴 아래까지 차 있었다. 입과 코 앞에 남은 얇은 공기막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작게 오그라들었다.
지후는 유리보다 그 옆의 검은 관을 봤다.
관 표면이 안쪽에서부터 조여 들었다. 한 번.
잠깐 멎었다가 다시 두 번.
도윤이 유리를 두드린 박자와 같은 간격이었다.
실제로 본 것.
검은 관은 캡슐 안의 진동을 벽 반대편으로 보낸다.
추론한 것.
벽 뒤의 소리도 이 관을 타고 도윤에게 들어간다.
위험으로 반응한 것.
뚜껑을 억지로 열면 회복 중단이 아니라 이탈로 판정될 수 있다.
"열지 마십시오."
지후가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손바닥 홈 가장자리에 붉은 빛이 번졌다.
지후는 그 빛을 보고 말을 이었다.
"세 번은 도윤 씨가 정한 신호입니다. 아직 듣고 있고 의식도 있습니다. 우리가 겁먹고 꺼내면 그 선택까지 이 방에 넘기는 겁니다."
박상철이 유리를 노려봤다.
"벽 뒤에 뭐가 있다는 거지. 그걸 듣고 누워 있으라고?"
"모르니까 더 열면 안 됩니다."
지후는 캡슐 아래 바닥을 가리켰다.
도윤의 검은 홈 하나가 푸른 빛을 먹은 것처럼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다른 홈과 달리 그 빛은 벽 쪽으로 가느다란 선을 만들었다.
설아가 물통 뚜껑을 바닥에 댔다. 뚜껑 안에 남은 물이 가볍게 떨렸다.
"여기도 와요."
그녀가 속삭였다.
물결이 한 번 밀렸다. 잠시 뒤 두 번. 그리고 세 번.
"도윤 씨가 두드린 게 아니라 벽에서 돌아오는 소리 같아요."
정민이 사람들을 더 뒤로 물렸다.
"캡슐 앞 비워요. 보고만 있지 말고 벽 쪽으로 붙어요."
이번에는 아무도 지후에게 허락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민의 손짓을 따라 두 걸음 물러났다.
그 작은 움직임 뒤에 공중 문자가 떠올랐다.
[회복 대상 청취 권한 활성화]
[회복 외부 자극 기록 중]
청취 권한.
회복은 단지 상처를 낫게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안에 들어간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도윤의 손이 유리 안쪽에서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 번이었다.
톡.
사람 목소리.
캡슐 안의 도윤이 눈을 떴다. 초점이 흔들리는 눈동자가 검은 관 쪽으로 향했다. 그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공기막 밖까지 소리는 닿지 않았다.
지후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도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유리에 댄 손가락을 힘겹게 접었다 폈다.
톡.
그 뒤 공중의 글자가 바뀌었다.
[다음 회복 우선 대상: 강지후]
[사유: 누적 기믹 부담 및 판단 역할 과부하]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끝나기도 전에 박상철이 말했다.
"지후가 먼저 들어가야지. 방도 그렇게 말하잖아."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빛이 검은 홈 몇 개를 동시에 훑었다. 아까보다 진했다. 홈 바닥에서 올라온 진동이 지후 발밑으로만 모였다.
지후는 손목을 감추지 않았다. 손가락을 쥐자 관절 안쪽이 타는 듯했다. 손전등을 오래 들면 손바닥 감각이 먼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는 회복이 필요 없다고 거짓말할 수 없었다.
"제 손목은 좋지 않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다음 방에서 기믹 파괴를 쓰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박상철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그러나 지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방이 붙인 순위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합의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제 상태인지, 방이 제 이름을 띄웠기 때문인지 먼저 나눠야 합니다."
시스템 문구가 한 번 깜빡였다.
[권고 순위 추종 감지]
[동일 근거 반복 시 회복 효율이 저하됩니다]
"효율이 저하된다는 게 뭔데요?"
발목을 다친 남자가 물었다.
지후는 답을 알지 못했다.
설아가 먼저 검은 홈을 살폈다. 아까처럼 물방울을 하나 떨어뜨렸다. 물방울은 붉게 빛난 홈 앞에서 더디게 떨다가 멈췄다.
"물이 안 가요."
그녀가 말했다.
"도윤 씨 때는 홈마다 따로 흔들렸어요. 지금은 다 지후 오빠 쪽만 보고 막힌 것 같아요."
정민이 물통 상자를 뒤집었다. 평평한 밑면에 손가락으로 세 줄을 그었다.
"상태. 회복하면 할 일. 그 사람이 들어가도 남는 사람이 할 일. 이 세 개로 말해요."
그녀는 지후를 보지 않았다.
"누구 이름부터 부르지 말고 각자 본 걸 먼저 말해요."
지후는 정민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을 봤다. 그녀도 쉬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팔꿈치와 무릎에 남은 멍을 숨긴 채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민은 자기 이름을 첫 줄에 쓰지 않았다.
도윤 - 청각
그 아래 빈칸 두 줄.
설아가 그 빈칸을 오래 봤다.
"저도 후보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 갔다.
설아는 이번에도 지후를 보지 않았다. 잘린 운동화 끈을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다리가 계속 아파요.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도 늦어요. 아까 물통 뚜껑 들 때도 손이 흔들렸고요."
그녀는 끈을 들어 보였다.
"지금은 이걸로 바닥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다음 방까지 이 상태면 끈을 던져도 제가 먼저 움직일 수 없어요."
"그래서 지후보다 먼저라고?"
박상철이 물었다.
목소리는 비꼬는 것 같았지만 아까처럼 사람들을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지후 오빠는 지금 남아야 해요."
설아가 대답했다.
"아직 순서표가 한 줄밖에 없어요. 지후 오빠가 안에 들어가면 다들 또 누구한테 물어볼지부터 정할 거예요. 그때 방이 다음 이름을 띄우면 그대로 따라갈 거고요."
지후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건 그가 회복을 미루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니었다. 설아는 방금 자기 앞에 있는 구조를 보고 말했다.
정민이 상자 위에 적었다.
설아 - 바닥 흔적 / 회복 중 끈 신호는 지후
"내 근거는 설아입니다."
정민이 말했다.
"다음 방 입구는 바닥부터 봐야 해요. 지후 손목은 아프지만 지금도 말하고 순서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설아 다리는 늦어지면 시작부터 역할을 잃어요."
옆구리를 다친 여자가 숨을 고르고 손을 들었다.
"저도 설아 씨요."
그녀는 급하게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한 번 자기 옆구리를 눌러 보고 말했다.
"저는 통증이 있어도 물통을 들 수 있어요. 설아 씨가 아까 물 움직이는 걸 봤어요. 나는 그걸 못 봤고요."
검은 홈 하나가 흰빛으로 바뀌었다.
지후는 그 빛이 켜지는 속도를 보았다. 도윤 때처럼 동시에 번지지 않았다. 여자의 말이 끝난 뒤 한 박자 늦게 밝아졌다.
박상철은 한동안 상자에 적힌 글자를 노려봤다.
"나는 지후가 먼저라고 생각했어."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런데 지후가 들어가면 남은 놈들이 바로 나한테 결정을 떠넘길 거다. 난 그 꼴 싫어. 설아가 다리 고치고 바닥 보는 게 낫다. 다음에 또 구멍 있으면 내가 밟기 싫으니까."
말은 거칠었다. 그래도 방의 문구를 되뇌는 말은 아니었다.
그의 앞 홈이 흔들린 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시간에 희게 켜졌다.
설아가 잠깐 상철을 봤다. 상철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더 말하지도 않았다.
다른 생존자들도 차례로 자신이 본 것을 꺼냈다. 회랑에서 설아가 먼지 끊긴 곳을 먼저 봤다고 말한 사람. 도서관에서 끈으로 자리를 표시한 걸 봤다는 사람. 방금 설아가 두려워하면서도 물방울을 놓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
이유들은 같지 않았다.
그래서 홈의 빛도 같은 순간 켜지지 않았다.
[독립 근거 확인]
[두 번째 회복 대상: 이설아]
[합의 편향도: 안정]
사람들이 내쉰 숨이 이번에는 지후 쪽으로 몰리지 않았다.
설아는 곧바로 캡슐로 가지 않았다. 상자 위 순서표에 자기 이름 아래 한 줄을 더 그었다.
바닥 흔적 - 정민
끈 신호 - 지후
"제가 안에 있는 동안은 이렇게요."
지후가 설아의 끈을 받았다. 잘린 끝은 손바닥에 닿자마자 축축한 감촉을 남겼다.
"세게 당기지 마십시오."
"알아요."
설아가 짧게 웃었다.
그녀는 투명한 관 안에 누웠다. 뚜껑이 닫히고 푸른 물이 발목부터 차올랐다. 설아는 마지막까지 끈의 반대쪽을 놓지 않았다.
도윤의 손이 유리 안쪽에서 움직였다.
톡.
한 번.
정민이 낮게 말했다.
"사람 목소리."
잠시 뒤 두 번.
톡. 톡.
"기계 소리."
그리고 세 번.
톡. 톡. 톡.
"벽 뒤 소리."
신호가 끝나자 캡슐 옆 검은 관 두 개가 같은 순간 수축했다. 도윤의 관과 설아의 관이 벽 아래에서 나란히 떨렸다.
설아가 물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손가락이 유리 안쪽을 한 번 두드렸다.
톡.
사람 목소리.
한 번 더.
톡.
이번에는 도윤 신호를 따라 한 것이 아니었다. 간격이 달랐다. 목소리가 둘이라는 뜻이었다.
지후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 낮은 소리가 검은 관 안에서 새어 나왔다. 물속에 잠긴 사람의 목소리처럼 뭉개져 있었지만 말끝만은 들렸다.
"...우선도 기록..."
그 뒤 다른 목소리가 겹쳤다.
"...다음 대상..."
정민의 눈이 좁아졌다.
"둘이에요."
지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벽 뒤의 누군가가 그들의 순서를 읽고 있었다. 회복이 누가 먼저 낫는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누가 지쳤고 누가 남으며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적어 두는 과정이라면.
그 기록을 읽는 쪽은 다음 선택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었다.
공중 문자가 다시 떠올랐다.
[세 번째 회복 대상 합의 제한 시간: 01:30]
[미합의 시 우선도 기록에 따라 자동 배정됩니다]
지후는 설아의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손목의 열이 더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그가 들어가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벽 뒤의 두 목소리가 기다리는 이름을 그대로 내줄 수는 없었다.
도윤이 유리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세 번이 아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호 사이의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