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성좌들의 스폰서가 되었다1화

성좌들의 스폰서가 되었다

성좌들의 스폰서가 되었다

시놉시스

성좌의 은총이 헌터의 계급을 결정하는 시대. E급 윤성우는 하청 공략 현장에서 목숨값보다 싼 몫을 받는다. 죽은 마수의 마나스톤을 손에 쥔 순간, 그에게만 보이는 낯선 통장이 열린다.

1화: 통장에 들어온 신성

윤성우는 전리품 배분표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

종이 맨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빼곡했다. 운반 수수료, 장비 감가, 게이트 안전 관리비.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오늘 목숨 걸고 얻을 돈의 절반이 사라지는 방식이었다.

"이 공제 항목은 계약서에 없었습니다."

성우가 펜을 내려놓자 맞은편의 오태곤이 헛웃음을 흘렸다. 철혈 길드 조끼 위로 반장 완장이 번들거렸다.

"계약서는 입장료만 적어 둔 거고. 현장 비용은 현장에서 정산하는 거야."

"현장 비용이 제 몫에서만 빠지네요."

"그럼 나가든가. 지금 이 시간에 E급짜리 받아 줄 데가 어디 있는데?"

주차장 입구 바깥으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푸른 게이트의 빛은 그 물 위에 차갑게 번졌다.

성우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오전에 온 문자에는 병원 이름과 치료비 납부 기한이 적혀 있었다. 모레까지였다. 통장 잔액은 그 문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서명은 합니다. 대신 정산 내역 원본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오태곤의 눈썹이 꿈틀했다.

"말은 많아. E급 감각 하나 가진 놈이."

성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서명한 배분표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오태곤이 종이를 낚아채며 혀를 찼다.

"앞에서 길 보고 짐도 들어. 쓸모 있는 걸 보여 줘야 몫도 챙기지."

성우는 낡은 대여 검을 쥐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폐쇄된 지하 주차장의 냄새는 비에 젖은 콘크리트와 오래된 기름 냄새가 섞인 것 같았다. 천장 조명은 절반쯤 깨져 있었다. 비상등만 붉게 깜빡이는 통로 끝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성우의 각성 능력은 E급 감각 강화였다. 멀리 있는 적을 보는 능력도 아니고 힘을 키워 주는 능력도 아니었다. 발밑 진동과 공기의 흔들림을 남보다 조금 먼저 느끼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는 그 작은 차이가 목숨을 갈랐다.

"왼쪽 램프 뒤에 셋."

성우가 낮게 말하자 오태곤이 코웃음을 쳤다.

"또 그 감각 타령이냐?"

대답 대신 어둠이 움직였다.

사람 팔뚝만 한 꼬리에 짧은 뿔이 달린 쥐 세 마리가 주차선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왔다. 뿔쥐였다. E급 게이트에서 흔한 마수였지만 한 마리에게 발목을 물리면 움직임이 끝났다.

"온다!"

이도윤이 비명을 지르며 전리품 가방을 끌어안았다. 막 각성한 신입답게 검보다 가방을 먼저 챙긴 탓이었다. 뒤로 물러난 발이 물기 어린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쿵.

도윤의 등이 주차 기둥에 부딪혔다. 뿔쥐 한 마리가 그의 종아리로 달려들었다.

"가방 놓고 피해요!"

성우가 외쳤다.

"가방 안에 돌 있잖아!"

오태곤은 검을 뽑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도윤은 더 세게 끈을 움켜쥐었다.

성우는 이를 악물었다. 돌 몇 조각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이 현장에서는 이상한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기둥 옆에 세워진 소화기를 잡아 뽑았다. 안전핀을 뽑고 뿔쥐 무리를 향해 분말을 뿌렸다.

하얀 가루가 통로를 덮었다. 뿔쥐들이 날카롭게 울며 방향을 잃었다.

성우는 그 사이 도윤의 조끼를 잡아당겼다. 기둥 뒤로 넘어지듯 몸을 피한 순간 뿔쥐의 뿔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었다.

"검 잡아요. 가방은 뒤로 던지고."

도윤이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들었다.

성우는 가장 가까운 놈의 움직임을 읽었다. 분말 속에서 바닥을 차는 진동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오른쪽. 그는 반걸음 비켜서며 대여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퍽.

검날이 뿔쥐의 턱 밑에 박혔다. 놈이 몸을 비틀자 성우는 검을 놓고 한 발 물러났다. 욕심내다 함께 넘어지는 것보다 낫다.

두 번째 놈은 오태곤의 방패에 튕겨 나갔다. 마지막 놈은 정신을 차린 도윤이 떨리는 손으로 내려친 검에 등을 맞고 달아났다.

짧은 전투가 끝났다.

오태곤은 쓰러진 뿔쥐부터 발로 뒤집었다. 그는 성우가 놓친 검을 가리켰다.

"대여 검 깨지면 네 몫에서 깐다. 사체는 빨리 정리해."

성우는 대답하지 않고 바닥을 살폈다. 피 묻은 주차선 옆에 손톱만 한 푸른 돌이 떨어져 있었다. 뿔쥐의 마나스톤이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돌을 집었다.

띵.

맑은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환산 가능한 자원이 감지되었습니다.]

성우의 손이 굳었다.

허공에 은빛 테두리를 두른 창이 떠 있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지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사체와 가방만 보고 있었다.

[대상: 하급 마나스톤 파편]

[예상 환산량: 신성 3]

[환산하시겠습니까?]

성우는 숨을 삼켰다. 각성자 등록소에서 받은 능력표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다. 환산이라는 단어도 낯설었다.

그런데 창 아래에는 낯익은 모양의 버튼이 있었다. 은행 앱에서 보던 확인 버튼처럼 반듯한 사각형이었다.

무심코 손가락이 닿았다.

푸른 돌이 손바닥 위에서 가느다란 빛으로 풀렸다. 빛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듯 사라졌다.

[환산 완료.]

[신성 3이 적립되었습니다.]

성우는 빈 손을 내려다봤다.

"마나스톤은?"

오태곤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성우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금이 심했습니다. 집다가 부서진 것 같습니다."

"마나스톤이 유리구슬이냐?"

오태곤이 다가오는 순간 통로 끝에서 철판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콰앙!

주차 차단기가 옆으로 튕겨 나왔다. 그 뒤에서 검은 덩치가 낮게 고개를 숙였다.

등에는 녹슨 철판처럼 두꺼운 비늘이 겹쳐 있었다. 굵은 뿔 두 개가 바닥을 긁을 때마다 콘크리트가 갈렸다.

철갑 멧돼지.

E급 게이트의 변종 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놈이었다. 정면의 비늘은 대여 검으로는 흠집도 내기 어렵다. 돌진에 한번 깔리면 E급 몸으로는 일어나기 힘들었다.

"왜 저게 여기서 나와?"

도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오태곤은 성우 쪽을 흘끗 봤다.

"네가 앞에서 유인해. 감각 좋다며."

"위험 수당은요?"

"지금 그걸 따져?"

성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멧돼지는 이미 가장 약해 보이는 쪽을 골랐다. 피 냄새가 묻은 그의 장갑을 향해 누런 눈이 멈췄다.

도망만 치면 뒤에 있는 도윤에게 방향이 바뀔 수 있었다. 오태곤은 방패를 들고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성우는 주변을 훑었다.

왼쪽에는 위층으로 이어지는 경사로가 있었다. 난간 중간은 오래된 충돌 자국 때문에 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배수로 덮개가 들떠 있었다. 멧돼지의 무게라면 뿔이 빠지지 않을 만한 틈이었다.

"도윤 씨, 기둥 뒤로 가요. 태곤 씨는 놈이 멈추면 오른쪽만 막아 주세요."

"명령하지 마."

"그럼 알아서 하세요."

성우는 검을 주워 경사로로 달렸다.

철갑 멧돼지가 바닥을 박찼다. 진동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성우는 등 뒤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놈이 얼마나 가까운지 셌다.

셋.

둘.

하나.

성우는 난간 바로 앞에서 몸을 옆으로 던졌다.

콰아앙!

멧돼지의 뿔이 휘어진 난간 아래로 깊게 파고들었다. 놈이 고개를 빼려 하자 배수로 덮개가 들리며 뿔 한쪽을 단단히 물었다.

"지금!"

오태곤의 창이 멧돼지 옆구리를 노렸다. 그러나 비늘을 긁는 소리만 나고 창끝이 튕겨 나왔다.

멧돼지가 미친 듯 몸을 비틀었다. 난간이 휘청거렸다. 뿔이 빠지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성우는 멧돼지의 턱 아래를 보았다.

고개를 들 때마다 비늘이 갈라지는 좁은 틈. 아까 뿔쥐를 죽였던 자리와 비슷했다. 단단한 곳을 치는 대신 숨 쉬는 곳을 노리면 됐다.

그는 미끄러운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윤성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우는 멈추지 않았다.

멧돼지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검을 양손으로 밀어 넣었다. 검날이 살을 뚫고 뜨거운 피를 쏟아 냈다.

푹.

손끝까지 전해지는 감촉이 분명했다.

철갑 멧돼지가 짧고 굵은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몸이 두 번 경련한 뒤 경사로 바닥에 쓰러졌다.

성우는 검자루를 놓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귀 안의 소리까지 삼켜 버리는 듯했다.

그때였다.

띵.

[환산 가능한 자원이 감지되었습니다.]

눈앞의 창이 아까보다 넓게 열렸다.

[대상: 철갑 멧돼지 사체, 마나스톤 4개, 잔류 환경 에너지]

[예상 환산량: 신성 140]

[환산하시겠습니까?]

성우는 쓰러진 멧돼지와 오태곤을 번갈아 봤다. 이 사체는 최소한 오늘치 치료비보다 비쌌다. 철혈 길드가 어떻게 공제해도 남을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넘기면 오태곤이 장부에서 빼돌릴 게 뻔했다. 배분표의 작은 글씨가 다시 떠올랐다.

성우는 창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사체에서 은빛 선이 피어올랐다. 피와 비늘, 부러진 난간 조각 옆에 굴러 있던 푸른 돌까지 빛에 녹아들었다. 빛은 한 점으로 접히더니 성우의 가슴 안으로 스며들었다.

[환산 완료.]

[신성 140이 적립되었습니다.]

[보유 신성: 143]

경사로에는 검붉은 피와 깊게 패인 자국만 남았다.

"뭐야?"

도윤이 입을 벌렸다.

오태곤의 얼굴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에서 곧 분노로 바뀌었다.

"사체가 어디 갔어? 마나스톤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네가 마지막으로 찔렀잖아. 무슨 스킬 쓴 거야?"

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E급 감각 강화가 사체를 없앱니까? 반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오태곤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은 성우의 멱살을 잡으려다 멈췄다. 주변에는 도윤과 다른 하청 헌터들이 있었다. 대놓고 폭력을 쓰기에는 시선이 많았다.

"게이트 오류면 협회에 신고해야지. 오늘 전리품 손실은 전부 네 몫에서 제한다."

성우는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

"정산표 원본부터 보여 주세요. 제가 파손한 장비나 놓친 사체가 아니라면 제 몫에서 뺄 근거는 없으니까."

"너 지금 나랑 해 보자는 거냐?"

"아뇨. 계산하자는 겁니다."

오태곤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는 성우를 노려봤지만 더 말하지 못했다. 사체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신고는 반장님이 하세요. 저는 제 진술서에 본 대로 쓰겠습니다."

그는 대여 검을 반납 상자에 넣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성우는 역으로 가는 골목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변에는 편의점 불빛과 지나가는 차 소리뿐이었다. 그는 사람 없는 벽 쪽에 기대어 손바닥을 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아까의 숫자를 떠올리는 순간 은빛 창이 조용히 열렸다.

[신성 통장]

[계좌 소유자: 윤성우]

[보유 신성: 143]

[거래 권한: 성좌 후원]

통장이라는 이름이 우스웠다. 현금 잔고가 바닥인 사람 앞에 돈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계좌가 나타난 셈이었다.

성우는 거래 권한을 눌렀다.

검은 밤하늘처럼 깊은 화면이 펼쳐졌다. 그 안으로 수없이 많은 별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별 하나마다 이름 대신 알 수 없는 문양과 숫자가 붙어 있었다.

[성좌 후원은 최소 100 신성부터 가능합니다.]

[누적 후원 100 신성 달성 시 스폰서 마켓이 개방됩니다.]

성우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멈췄다.

스폰서.

헌터가 성좌의 눈에 들기 위해 제물과 목숨을 바치는 세상에서 그 단어는 늘 반대편에 있었다. 성좌가 헌터의 스폰서였다. 성우 같은 E급은 후원을 받는 쪽이 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이 통장은 자신에게 성좌 후원 권한이 있다고 적고 있었다.

성우는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소멸 예정 성좌 목록]

[무신의 황혼 / 신앙 잔량 0.02%]

[최소 후원 가능 금액: 100 신성]

붉은 갑주를 걸친 거인의 희미한 실루엣이 별빛 너머로 떠올랐다. 이름 아래에는 마치 은행의 경고 문구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

[후원이 지연되면 성좌 소멸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우는 보유 신성 143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잃었다고 생각했던 마나스톤과 사체가 숫자로 남아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성좌가 돈이 필요하다고?"

손가락이 후원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누가 누구에게 고개를 숙일 차례인지 확인해 볼 만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표지소설
연재중 12%
#현대판타지#연예계물#매니저물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배우들의 숨은 재능과 한계, 작품의 흥행 가능성을 스탯으로 볼 수 있게 된 전직 로드 매니저 강시우가 1인 기획사 루미너스를 세운다. 편의점 알바 유나린, 무너진 연기파 최지환, 이미지에 갇힌 신우진을 발굴하고, 신성 엔터의 방해와 금융·제작 전쟁을 뚫고 연예계의 판을 다시 짜는 현대판타지 매니저물.

23화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