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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먹겠습니다3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3화: 골목길 팝업 '온기'

지리산 자락의 아침 공기는 혀끝에 서늘한 단맛을 남겼다.

성운은 마당 우물가에서 세수를 한 뒤 이슬이 맺힌 감나무 아래 섰다. 불을 끄고 남은 아궁이에는 온기가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어제 복만이 비우고 간 밥그릇과 솥의 잔열이 가슴속 한 구석을 여전히 따뜻하게 흔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것.

그것은 호텔 주방에서 매일 반복하던 기계적인 노동과는 완전히 다른 무게였다. 접시 위에 간을 맞추고 고기를 올리는 일이 타인의 굳은 표정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성운은 어제 처음 알았다.

대문 밖에서 가벼운 흙밟는 소리가 들렸다.

“성운아, 자냐?”

복만의 목소리였다. 성운이 대문을 열자 복만은 한 손에 누런 종이에 싸인 뭉치를 들고 서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죄송해요, 아저씨.”

“죄송하긴 무슨. 읍내 정육점 다니는 순복이 아범한테서 방금 받아온 거다. 오늘 마을회관 할멈들 점심 찬거리가 마땅찮다길래 내가 한 덩이 샀어.”

복만이 들고 온 종이 묶음을 펼치자 선홍빛 지리산 생삼겹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코기와 지방이 세 겹으로 정갈하게 층을 이루고 있었다. 인공적인 냉동을 거치지 않은 생고기 특유의 탄력과 촉촉한 수분감이 겉면에 얇게 피어 있었다.

성운의 손끝이 삼겹살 표면 위를 스쳤다.

손가락에 전해지는 촉감과 후각을 통해 고기의 상태가 미세한 입자처럼 읽혔다. 지방층은 단단하고 고소한 향을 품고 있었으며 살코기의 수분 비율은 과하지 않았다. 두께는 족히 3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팬의 온도를 단숨에 떨어뜨리지 않을 두께야.’

성운은 자신도 모르게 구이의 온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160도에서 180도 사이. 그 온도대에서 지방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살코기의 단백질과 결합할 때 최고의 감칠맛이 폭발한다.

“이걸로 뭘 하게요, 아저씨?”

“뭐하긴. 내가 요리는 못해도 불은 쬘 줄 알지. 할머니가 쓰던 묵직한 주물 팬 마당에 걸어놓고 굽기라도 할까 해서 왔다. 순덕 씨 다리 나을 때까지 며칠이라도 마을 사람들 배는 채워야지.”

복만은 무심하게 말하며 마당 한구석의 낡은 평상을 쓸어내렸다.

성운은 종이에 싸인 삼겹살과 복만의 굳은 손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당에 걸린 주물 팬은 외할머니가 손님이 올 때마다 고기를 볶거나 부침을 만들던 묵직한 철판이었다.

서울을 떠나올 때 성운은 다시는 남을 위해 불을 켜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타인의 평가가 무서웠고 실패한 요리사라는 낙인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그의 손은 이미 주물 팬의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제가 구울게요.”

복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너 서울서 큰 식당 다녔다더니 고기 굽는 것도 할 줄 알아?”

“네. 조금은요.”

성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부엌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낡은 참나무 판자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아궁이의 숯조각을 들어 판자 위에 천천히 글자를 적었다.

溫氣. 온기.

성운은 그 나무 판자를 대문 옆 돌담 사이에 가만히 걸어두었다. 거창한 간판도 아니었고 영업시간이 적힌 표지판도 아니었다. 그저 지친 누군가가 찾아와 온기를 나누고 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한도현은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채 지리산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구독자 150만을 보유한 맛집 전문 스트리머.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지만 도현의 속은 이미 까맣게 타들어간 상태였다.

‘전부 가짜야.’

최근 몇 달 동안 그가 방문했던 맛집들은 하나같이 돈을 주고 사서 만든 협찬업소였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자극적인 캡사이신, 인공 조미료로 범벅이 된 음식들. 카메라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정말 맛있습니다!”를 외칠 때마다 입안이 썩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진정성을 잃어버린 방송에 자괴감이 들었던 도현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무작정 지리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카메라와 최소한의 장비만 배낭에 넣은 채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침도 스킵한 터라 속이 쓰렸다.

‘시골 골목에 뭐 먹을 만한 데가 있겠어.’

도현이 한숨을 내쉬며 돌담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기분 좋은 바람을 타고 미세한 향이 코끝을 때렸다.

그것은 흔한 돼지고기 구이 냄새가 아니었다. 맑은 장작 연기 냄새 속에서 고소하게 녹아내리는 돼지 지방의 풍미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자극적인 조미료 향은 단 한 조각도 섞이지 않은 pure한 고기 본연의 향이었다.

“어?”

도현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방금 전까지 음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더부룩했던 속이 거짓말처럼 요동쳤다.

향을 따라 몇 걸음 옮기자 낡은 기와집 대문이 나타났다. 대문 옆 돌담에는 숯으로 쓴 ‘온기’라는 글자가 소박하게 걸려 있었다.

도현은 대문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마당 한가운데에 작은 화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검고 두꺼운 주물 팬이 올려져 있었다. 청년 하나가 조용히 불길을 조율하며 묵직한 삼겹살 덩어리를 팬 위에 올리고 있었다.

치이익-!

맑고 경쾌한 마찰음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고기가 불판에 닿는 순간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구수한 향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도현은 홀린 듯 대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다.

“저기… 혹시 식사 되나요?”


성운은 고개를 들어 대문 곁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눈빛에는 극심한 피로와 허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성운의 절대 미식 감각은 사내의 표정과 호흡에서 정서적 결핍을 부드럽게 읽어냈다. 자극적인 외식에 지쳐 진짜 음식을 갈구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정식 식당은 아닙니다만, 고기와 밥이 조금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세요.”

성운의 다정한 목소리에 도현은 홀린 듯 평상 옆 의자에 앉았다.

성운은 다시 주물 팬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3센티미터 두께의 삼겹살 표면에서 고소한 지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성운은 팬을 살짝 기울여 삼겹살에서 자체적으로 렌더링된 돼지기름이 살코기 쪽으로 고르게 흐르도록 유도했다.

‘지방으로 살코기 겉면을 튀기듯 익힌다.’

불판의 온도는 정확히 170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기 표면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열을 받아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반응이 완벽하게 일어났다.

노릇노릇하다 못해 황금빛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고기 표면은 마치 얇은 유리막처럼 바삭한 질감을 예고하고 있었다. 성운은 고기를 뒤집은 뒤 측면의 두꺼운 지방층까지 세워 불판에 직접 닿게 했다. 지방의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지며 잡내가 날아가고 극상의 고소함만 남았다.

도현은 그 과정을 눈 한번 감지 않고 지켜보았다.

고기를 굽는 청년의 손끝에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불의 세기를 조율하는 집게질 하나, 팬의 각도를 바꾸는 몸짓 하나에 완벽한 계산과 식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다.

“우와….”

도현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수많은 유명 셰프들의 퍼포먼스를 보아왔던 도현이었지만 이렇게 정갈하고 과학적이면서도 따뜻한 구이는 본 적이 없었다.

성운은 잘 익은 삼겹살을 도마 위에 올렸다.

딱, 딱, 딱.

칼날이 고기를 썰 때마다 바삭한 겉면이 쪼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그 속에서는 촉촉한 육즙을 머금은 핑크빛 살코기 결이 드러났다.

성운은 갓 지은 솥밥 한 그릇과 방금 마당 옆 밭에서 딴 달래를 간장과 참기름에 가볍게 버무린 겉절이를 함께 소반에 차려냈다. 그리고 천일염을 굵게 빻아 작은 종지에 담아냈다.

“드셔보세요. 지리산 생삼겹살 구이입니다.”

도현은 침을 크게 삼키며 젓가락을 들었다.

첫 점은 아무런 양념 없이 천일염만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삭-!

이빨이 겉면을 뚫고 들어가는 순간 얇고 바삭한 피막이 터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따뜻하고 풍부한 육즙이 입안 전체로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방의 고소함은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고온에서 제대로 렌더링된 기름은 혀 위에서 깔끔하게 녹아내렸고 살코기의 부드러운 단맛이 천일염의 서늘한 짠맛과 어우러져 깊은 감칠맛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

도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는 씹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고기를 삼키자마자 성운이 내어준 갓 지은 솥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떠 넣었다. 쌀알의 단맛과 삼겹살의 풍미가 입안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여기에 달래 겉절이를 한 점 얹어 먹자 알싸한 달래의 향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고기의 뒷맛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풍미의 완벽한 결합(Flavor Pairing)이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삼겹살이죠?”

도현은 젓가락을 든 손을 떨었다.

“특별한 양념은 넣지 않았습니다. 고기가 가진 최적의 구이 온도를 맞추고 지방을 제대로 녹여냈을 뿐입니다.”

성운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도현은 두 번째, 세 번째 고기를 폭풍처럼 입으로 가져갔다. 씹을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최근 몇 달간 그를 괴롭히던 가짜 리뷰의 스트레스, 상업적 자본에 대한 환멸,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따뜻한 삼겹살 한 점과 밥 한 그릇에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음식이 사람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을 도현은 오늘 처음으로 몸으로 체감했다.

그는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깊은 숨을 내쉬었다.

“셰프님… 저는 사실 인터넷에서 맛집을 소개하는 스트리머입니다. 이름은 한도현이라고 합니다.”

도현은 모자를 벗고 성운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식당을 다녀봤지만 오늘 먹은 이 삼겹살 구이는 제 인생 최고의 한 끼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마음이 위로받았다는 느낌을 받아본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성운은 도현의 진심 어린 고백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신이 만든 음식이 타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서울의 차가운 주방에서 잃어버렸던 요리의 이유를 성운은 바로 이곳, 지리산 골목길의 소박한 평상 위에서 찾은 것이었다.

도현은 배낭에서 촬영용 휴대폰과 삼각대를 꺼내며 눈짝을 반짝였다.

“셰프님, 괜찮으시다면 내일 이곳 '온기'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도 될까요? 자극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음식의 온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성운은 대문 옆에 걸린 나무 판자 '온기'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자신의 절대 미식과 정성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불을 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네, 좋습니다. 따뜻한 밥 차려두고 기다리겠습니다.”

성운의 입가에 맑고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리산의 바람이 대문 속으로 불어 들어와 마당의 온기를 촉촉하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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