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2화: 온기가 남은 그릇
솥뚜껑 가장자리에서 새어 나오던 김이 가늘어졌다.
성운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 끝을 바라봤다. 불은 아직 살아 있었다. 붉은 재 아래에서 숨을 고르듯 한 번씩 빛났고 솥 바닥을 두드리던 끓는 소리는 조금 전보다 낮아져 있었다.
지금 뚜껑을 열면 안 된다.
그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꽉 쥐었다. 밥물 냄새는 이미 부엌을 채우고 있었다. 갓 도정한 쌀의 풋풋한 향이 뜨거운 김을 타고 올라왔다. 그 아래로 샘물의 서늘한 기운이 얇게 남았다.
서울의 주방에서는 기다림이 사치였다. 소스는 졸아들고 접시는 밀려 나갔다. 누군가의 시계는 늘 성운의 손보다 빨랐다.
하지만 이 솥은 아무것도 재촉하지 않았다.
성운은 불쏘시개 막대로 장작을 하나 밀어냈다. 불길이 천천히 작아졌다. 솥 안에서는 쌀알끼리 부딪히는 소리 대신 수분이 바닥을 고르게 훑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알아듣는 자신이 낯설었다.
물기가 센 쌀은 불을 끈 뒤에도 속에서 열을 밀어 낸다. 지금은 남은 물을 힘으로 날릴 때가 아니라 쌀알 사이에 머금게 둘 때였다. 성운은 그렇게 판단한 뒤에도 한참 손을 떼지 못했다.
틀리면 어떡하지.
그 생각은 불보다 먼저 되살아났다. 식은 팬에서 소스를 버리던 손, 손님 접시가 나가는 것을 멀리서 보던 눈, 칼집을 닫으며 느꼈던 비겁함이 차례로 가슴을 눌렀다.
성운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는 주문 표가 없었다. 이 밥은 누구에게 점수를 받을 일도 없었다.
그는 찬장 안에서 낡은 면행주를 꺼냈다. 햇볕에 여러 번 바랜 행주에서는 비누와 장작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가 솥뚜껑 위에 올려 두던 것과 같은 자리였다.
성운은 행주를 얹고 아궁이 문을 닫았다.
“조금만 기다리자.”
혼잣말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그는 부엌 문턱에 앉아 달래장을 내려다봤다. 다진 달래는 간장 속에서 푸른 결을 풀고 있었다. 고춧가루는 매운 빛만 남길 만큼 적었고 손바닥으로 부순 깨는 기름을 얇게 내보냈다.
숟가락으로 한 번 저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간이 맞는지 확인하던 예전의 습관이었다.
성운은 손을 멈췄다.
밥이 먼저였다.
행주가 머금은 김이 잦아들 무렵 성운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한 번 숨을 들이마신 뒤 솥뚜껑을 들었다.
하얀 김이 얼굴을 덮쳤다.
뜨겁다는 감각 뒤로 단내가 번졌다. 쌀알에서 빠져나온 향은 화려하지 않았다. 젖은 나무를 말린 뒤 남는 온기처럼 조용했고 그래서 더 깊었다.
성운은 한동안 숟가락을 넣지 못했다.
솥 안의 밥은 윤기가 과하지 않았다. 짧고 통통한 쌀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은 채 제 모양을 지키고 있었다. 밑바닥에는 아직 누룽지가 생기지 않았다. 지금 뜨면 바닥도 상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밥을 작은 사기그릇에 담았다.
첫 숟갈은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입안에 넣자 밥알이 천천히 풀렸다. 겉은 고슬했고 안쪽은 부드러웠다. 씹을수록 얇은 단맛이 혀끝에서 올라왔다. 샘물의 맑은 차가움이 밥의 단맛을 밀어 올리고 햅쌀 특유의 풋내는 뜸을 지나며 고소한 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운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맛이었다.
그는 서둘러 두 번째 숟갈을 먹었다. 이번에는 달래장을 아주 조금 얹었다. 달래의 알싸한 향이 먼저 코끝을 건드리고 간장의 짠맛은 밥알 사이로 낮게 스며들었다. 참기름은 앞에 나서지 않았다. 뒤에서 향을 받쳐 주며 깨의 고소함만 남겼다.
성운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눈물이 그릇 가장자리에 떨어질까 봐 고개를 숙였다.
맛을 느낀다고 해서 모든 것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호텔로 돌아가도 되는지, 손님에게 내도 되는지, 자신의 손이 다시 믿을 만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 밥은 알 수 있었다.
물은 한 숟갈 덜 들어갔다. 불을 죽인 때도 맞았다. 마지막 뜸을 더 길게 두었다면 밥알의 가장자리가 무뎌졌을 것이다. 성운은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혀와 코와 손끝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밥을 한 숟갈 더 떠 먹었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다물고 오래 씹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지어 주던 밥은 늘 뜨거웠다. 입천장을 데면서도 성운은 밥그릇을 비우곤 했다. 할머니는 그가 물을 벌컥 마시면 웃으며 누룽지를 긁어 주었다.
‘천천히 먹어. 밥은 도망 안 간다.’
그 목소리가 빈 부엌에 잠시 머물렀다.
성운은 남은 밥을 퍼 낸 뒤 솥 바닥에 물을 부었다. 아궁이의 잔불을 다시 살리자 바닥에서 얇은 갈색 막이 일어났다. 누룽지 냄새가 나무 냄새와 섞여 부엌 밖으로 퍼졌다.
그때 마당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성운은 몸을 굳혔다.
낯선 발이 흙마당을 밟았다. 대문은 잠가 두지 않았지만 이 집을 찾을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계십니까?”
낮고 쉰 목소리였다.
성운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회색 모자를 쓴 노인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낡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노인은 성운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성운이 맞구나.”
성운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저를 아세요?”
“모를 리가 있나. 꼬맹이 때 장독대 뒤에 숨어서 감 훔쳐 먹던 녀석인데.”
노인의 입가에 주름이 깊어졌다. 성운은 기억을 더듬었다. 마을 입구 논에서 늘 밀짚모자를 쓰고 있던 사람. 외할머니가 복만 아저씨라고 부르며 반찬을 담아 보내던 사람이었다.
“복만 아저씨요?”
“이제야 생각났어?”
김복만은 지팡이를 바닥에 두 번 짚었다. 타박하는 말투였지만 눈은 성운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네 할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네 얼굴 보고 한바탕 했겠다. 사람 하나가 말도 없이 집을 열고 들어왔으니.”
성운은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정리할 게 좀 있어서요.”
“정리는 무슨. 불부터 켜 놨구먼.”
복만의 코끝이 움직였다. 그는 부엌 쪽을 한번 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밥 냄새가 골목까지 나서 말이지. 혹시 집에 무슨 일 난 줄 알고 와 봤어.”
성운은 그제야 식은땀이 났다. 빈집에서 난 밥 냄새는 누군가에게 불러도 되는 신호처럼 보였을 것이다.
“밥을 좀 지어 봤어요.”
“그렇구나.”
복만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지팡이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비닐봉지 안에서는 약봉지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났다.
성운은 노인의 입술이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아침을 먹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은 너무 쉽게 들킬 것 같았다.
대신 그는 부엌 쪽을 가리켰다.
“누룽지물 끓이고 있는데 드시고 가실래요?”
복만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밥 냄새 맡고 기웃거린 사람처럼 보이겠네.”
“그렇게 말한 건 아니고요.”
“알아. 그래도 사람 체면은 있지.”
복만은 웃으려다 기침을 했다. 성운은 문턱을 한 발 내려섰다.
“저도 혼자 먹기 많아서요. 아저씨가 드셔 주시면 좋겠어요.”
말이 끝난 뒤 가슴이 세게 뛰었다. 드셔 주시면 좋겠다는 말은 손님에게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호텔에서는 접시를 내고 평가를 기다렸다. 먹어 달라고 청한 적은 없었다.
한 그릇을 내놓는 일이 그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다. 이 밥이 틀렸다는 말보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밥을 권하지 못하게 될까 봐 더 겁이 났다.
복만은 한참 성운을 바라봤다.
“그래. 그럼 누룽지물만 한 대접 얻어먹자.”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부엌으로 들어가 밥그릇을 두 개 꺼냈다.
그는 밥을 새로 퍼 담고 달래장을 작은 종지에 나눴다. 복만은 상 앞에 앉으며 손사래를 쳤다.
“누룽지물이라며.”
“밥이 식기 전에 드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복만은 숟가락을 들었다.
성운은 맞은편에 앉지 못하고 싱크대 곁에 섰다. 복만이 밥을 한 숟갈 떠 입에 넣는 동안 그의 손끝은 행주 끝을 접었다 폈다.
노인은 씹는 일을 오래 했다.
성운은 숨을 참았다. 밥이 너무 단단했을까. 달래장이 짰을까. 아궁이 냄새가 배었을까.
복만이 두 번째 숟갈을 떴다. 이번에는 달래장을 얹었다. 그리고 말없이 세 번째 숟갈까지 먹었다.
“아저씨.”
성운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복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밥이 참….”
목소리가 잠겼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누룽지물 쪽으로 손을 뻗었다.
“밥이 제때 익었네.”
그 짧은 말에 성운의 손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쌀이 물 먹을 만큼 먹고 불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이지. 네 할머니 밥이 그랬어.”
복만은 누룽지물을 한 모금 마셨다. 눈가가 붉어진 것은 뜨거운 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허리 아프다고 반찬은 대충 놓고도 밥은 꼭 뜸 들였지. 사람 사는 게 뭐 대단하다고. 배고픈 사람 앞에 뜨거운 밥 한 그릇 놓는 거면 됐다고 했어.”
성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복만은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남은 달래장까지 숟가락으로 긁어 먹은 뒤에야 상에서 손을 뗐다.
“마을회관 점심도 이만하면 걱정 없겠구먼.”
성운은 고개를 들었다.
“마을회관요?”
“아, 혼잣말이다.”
복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잠시 멈췄다.
“원래 거기 밥 맡던 순덕 씨가 어제 다리를 삐끗했어. 며칠은 솥 앞에 못 앉는다고 하더라고. 노인네들 점심이야 대충 빵으로 때워도 된다지만 그게 어디 밥이냐.”
그는 지팡이를 짚고 신을 찾았다.
“네가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벌써 붙잡았을 텐데.”
성운의 어깨가 굳었다.
복만은 성운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부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문턱을 넘으며 말했다.
“오늘 밥 고마웠다. 사람은 밥 냄새 맡고도 좀 살더라.”
대문이 닫힌 뒤 부엌은 다시 조용해졌다.
성운은 복만이 비운 그릇을 내려다봤다. 바닥에는 밥알 하나 남지 않았다.
호텔에서는 깨끗해진 접시가 돌아와도 안도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남긴 빈자리는 늘 다음 평가를 기다리는 자리였다. 그런데 복만의 그릇은 이상하게도 성운의 가슴을 조용히 풀어 주었다.
마을회관의 점심이라는 말이 자꾸 귀에 남았다. 그는 누군가의 끼니를 맡을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 자기 밥 한 솥을 겨우 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궁이의 잔불은 완전히 식지 않았다.
성운은 빈 솥을 들여다봤다.
내일도 이 불을 켤 수 있을까.
그는 대답 대신 쌀통 뚜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