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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6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6화: 닫힌 문 뒤의 민속품

새벽 1시 42분.

동부 보세구역에서 돌아온 섀도 엔틱의 지하 감정실에는 젖은 방청유 냄새와 오래된 흙먼지 냄새가 차갑게 엉켜 있었다. 작업대 위에 놓인 얇은 전표 모서리가 백색 현미경 조명 아래에서 푸르스름하게 떠올랐다.

B-17 / 02:10 / 9-B

신발 밑창 안쪽의 빈 공간에서 꺼낸 전표 조각은 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위에 찍힌 세 줄의 문자열은 방금 지나온 동부 보세구역의 빈 상자가 무엇을 덮어두고 있었는지 똑똑히 말해 주고 있었다.

강태오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새벽 2시 10분까지는 삼십 분 남짓 남은 시각이었다.

그때 가게 외부 감시용 단말의 모니터 구석에서 짧고 가느다란 진동음이 울렸다. 전당포 입구 슬럼가 사거리를 비추는 적외선 카메라 화면에서 승합차 두 대가 불빛을 끄고 차도변에 바짝 붙어 정차했다.

조직원들의 차량이 아니었다. 번호판을 의도적으로 가리지도 않았고, 차량 하부의 높낮이 역시 무거운 장비를 실은 수사 전용 승합차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광역수사대 특수장물 전담팀이었다.

태오는 눈을 감지 않았다. 동부 보세 4구역 C-31 상자의 본부 경보가 울린 직후부터 경찰의 움직임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삼거리파가 폐 냉동창고에서 단속에 걸리고, 보세구역의 야간 개봉 경보가 연달아 터진 이상 장물 수사 라인이 섀도 엔틱으로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는 핀셋을 내려놓고 침착하게 손을 움직였다.

작업대 위의 B-17 전표 조각과 고려 청자 양피지의 고화질 스캔 복사본을 투명 보존 비닐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감정실 뒤편, 19세기 모조 조선 목가구 장식 뒤에 숨겨진 이중 방화 벽의 압축 은닉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은닉함의 마그네틱 잠금장치가 소음 없이 닫혔다.

대신 작업대 전면에는 방금 준비해 놓은 잡동사니 민속품 서류들을 펼쳐 놓았다.

네오 서울 시가지 민속품 수리 및 수탁 판매 장부

19세기 조선 목가구 보존 처리 의뢰서

태오는 시약병 몇 개와 손때 묻은 미세 절삭 정을 일부러 어질러 놓았다. 낡은 놋쇠 향로 하나를 현미경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자외선등의 각도를 무심하게 맞추었다.

새벽 1시 50분.

철제 셔터문이 쿵쿵거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크게 흔들렸다.

“광역수사대 특수장물 전담팀이다! 압수수색 영장 집행 중이니 문 열어!”

태오는 장갑을 천천히 벗어 작업대 위에 올렸다. 구김살 없는 셔츠 소매를 정돈한 뒤 계단을 걸어 올려 올라갔다. 잠금장치를 풀고 셔터를 반쯤 올리자, 서늘한 새벽공기와 함께 굳은 표정의 수사관 넷을 이끌고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짙은 네이비색 트렌치코트 차림에 목에 경찰 신분증을 걸어놓은 여자. 광수대 특수장물 전담팀장 신유경 경감이었다.

“강태오 씨.”

신유경의 시선이 태오의 눈동자에서 멈췄다. 서류 봉투에서 꺼낸 법원 영장을 태오의 가슴 앞까지 바짝 내밀었다.

“압수수색 영장입니다. 대상은 섀도 엔틱 전 구역. 불법 장물 은닉, 출처 미상 고미술품 거래, 위조 문서 감정 혐의.”

태오는 영장의 하단 도인을 눈으로 훑었다. 판사의 직인이 찍혀 있었지만 특정 장물 품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정황 증거와 제보만으로 급히 발부받은 포괄적 수색 영장이었다.

“새벽 2시도 안 된 시각에 손님이 꽤 거칠게 오시는군요, 신 경감님.”

“당신이 이 지하 구석에 쥐새끼처럼 들어앉아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신유경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태오의 과거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미술품 감정원에서 대형 위작 스캔들에 휘말려 감정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추방된 사건.

“여기는 정식 등록된 민속품 전당포이자 고미술 보존 처리 작업실입니다.”

태오는 문을 넓게 열어주며 몸을 비켜섰다.

“수색하시죠. 다만 깨지기 쉬운 민속 기물이 많으니 주의해 주십시오.”

신유경이 손짓하자 수사관들이 밀고 들어왔다. 장물 감식용 금속 탐지기와 성분 분석 카메라를 든 차 형사가 지하 감정실로 제일 먼저 내려갔다.

신유경은 계단 위에서 태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삼거리파가 폐 냉동창고에서 검역반에 단속당하던 밤, 그 주변에 있었지? 그리고 동부 보세구역 C-31 상자가 경보를 울렸을 때도 당신 냄새가 났어.”

“경찰의 냄새 감각이 지나치게 풍부하군요. 전 그저 슬럼가 사거리에서 폐품 민속품을 사들여 풀칠하고 옻칠해서 풀어놓는 소상인일 뿐입니다.”

“소상인?”

신유경이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한때 이 나라 고미술품 가격을 보증서 한 장으로 올리고 내리던 강태오가, 이런 곰팡이 냄새 나는 지하실에서 놋쇠 향로 닦고 있다는 말을 믿으라고?”

“사람은 자리가 바뀌면 하는 일도 바뀌는 법입니다.”

지하 감정실에서 서류 철을 뒤집는 소리와 금속 상자가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 형사가 금고 문을 억지로 당겨 열며 소리쳤다.

“팀장님! 비밀 금고 확인했습니다!”

신유경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태오도 조용히 그 뒤를 따라 내렸다.

금고 안에는 서류 봉투 여러 개와 소형 목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차 형사가 장갑을 낀 손으로 서류를 꺼내 펼쳤다.

“품목 명세서입니다. 19세기 구한말 놋쇠 향로 삼 점, 모조 조선 목가구 수리 내역서, 세금 납부 증명서, 수탁 판매 계약서…… 전부 합법 서류입니다.”

차 형사의 얼굴에 당혹감이 올랐다.

“장물이나 불법 채권, 양피지 같은 건 안 보입니다. 감정 기구들도 전부 정식 보존 처리용 도구입니다.”

신유경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금고 내부 바닥을 직접 손전등으로 비추며 이중 바닥 여부를 살폈지만, 금고는 지극히 평범한 일방 구조였다.

이어 그녀는 현미경 옆 작업대 위에 놓인 시약들과 시료 용기들을 훑었다.

“이 푸른색 섬유 파편은 뭐지?”

신유경이 핀셋 옆에 놓인 조그만 유리 병을 지적했다. C-31 상자 안에서 수거했던 보냉 상자 안감 파편과는 전혀 다른, 싸구려 융단 섬유 조각이었다.

“조선 후기 목가구 내부 덧대용 융단 보존 시료입니다. 출처와 연대는 장부 37페이지에 적혀 있습니다.”

태오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수사관들이 감정실 전체를 샅샅이 뒤졌다. 벽면 선반의 모조 불상, 깨진 기와 조각, 놋쇠 그릇, 흙먼지가 묻은 민속 족자까지 전부 탐지기로 훑었지만, 나온 것은 오직 영수증이 완비된 합법 민속품들뿐이었다.

새벽 2시 08분.

수색 시작 후 이십 분이 지났다. B-17 전표의 2시 10분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유경은 수사관들에게 잠시 감정실 밖을 수색하라고 지시한 뒤, 태오와 단둘이 지하 감정실에 남았다.

그녀는 백색 조명 아래 놓인 태오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 끝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화학 보존액 냄새와 방청유 흔적.

“태오 씨.”

신유경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신은 물건을 숨긴 게 아니야. 물건을 보고 온 거지.”

태오는 대답 대신 작업대 옆 놋쇠 향로를 장갑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신 경감님. 경찰은 언제나 물건을 훔친 사람과 훔친 장소를 찾으려고 하죠. 하지만 진짜 가격은 물건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붙습니다.”

“궤변 늘어놓지 마. 동부 보세구역 C-31 상자에 있던 게 뭐였지? 백사장 측이 움직이고 있는 채권의 진짜 출처가 어디야?”

신유경의 눈빛에 깃든 것은 단순한 실적욕이 아니었다. 이 뒷골목 전체를 쥐고 흔드는 거대한 검은 자금과 위조 카르텔의 실체를 잡겠다는 집념이었다.

태오는 그녀의 원칙주의적 집념을 정확히 읽어냈다. 경찰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경찰이라는 거대한 공권력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김 의원 카르텔과 백사장의 동선으로 돌려놓는다면, 경찰은 태오의 가장 훌륭한 무의식적 방패가 된다.

태오는 서류 장부 사이에서 찌그러진 메모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C-31 상자는 비어 있었습니다.”

“뭐?”

“내가 갔을 땐 이미 비어 있었어. 다만 그 상자가 비기 전에 적혀 있던 수령 표식의 일부는 기억합니다.”

태오는 연필로 메모지에 숫자 세 개를 적었다.

3-1-5

신유경이 메모지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이게 무슨 뜻이지?”

“백사장이 쥐고 있는 100억 대 동해물류공사 채권 압인에도 그 번호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남항 밀수 루트의 분할 입금 계좌 순서와도 연결되어 있죠.”

신유경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지?”

“말했잖습니까. 전 감정사입니다. 물건이 남긴 흔적을 읽는 게 제 일입니다.”

태오는 신유경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진짜 수사해야 할 대상은 이 곰팡이 냄새 나는 전당포가 아니라, 보세구역 장부를 밖에서 주무르고 위조 채권을 들고 판을 치는 진짜 주인들입니다.”

신유경은 메모지 3-1-5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태오가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진짜 카르텔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직감했다.

지하 감정실 계단 위에서 차 형사가 내려왔다.

“팀장님, 가게 내부 및 창고 수색 끝났습니다. 지정 장물이나 위조품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신유경은 메모지를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태오에게 한 걸음 바짝 다가섰다.

“오늘 압수수색은 이걸로 끝내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 강태오.”

그녀의 서늘한 입김이 태오의 뺨에 닿을 듯 가까웠다.

“당신이 나한테 미끼를 던졌다고 해서 당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섀도 엔틱 앞길에 24시간 감시 전담조 붙일 거다. 한 걸음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내 손으로 당신 손목에 쇠사슬을 채울 테니까.”

“감시는 환영합니다. 밤길이 외롭던 참이었으니까요.”

태오는 덤덤하게 목례했다.

새벽 2시 25분.

경찰 수사관들이 섀도 엔틱의 셔터를 내리고 철수했다. 슬럼가 사거리에는 경찰 승합차 한 대가 짙은 선팅을 한 채 정차해 남아 있었다. 신유경이 배치한 감시 차량이었다.

가게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태오는 셔터 잠금장치를 걸어 잠근 뒤 지하 감정실로 내려갔다.

위장 벽 뒤 이중 방화 은닉함의 마그네틱을 다시 해제했다. 그 안에서 아까 숨겨 두었던 B-17 전표 조각과 양피지 복사본을 꺼냈다.

B-17 / 02:10 / 9-B

시각은 이미 2시 25분을 지나고 있었다. 2시 10분의 화물 이동은 이미 어디선가 실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경찰이 섀도 엔틱을 압수수색하고 감시 차량까지 붙여 놓았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백사장이나 은색 핀을 단 세 줄 문양의 회수조가 이 가게를 함부로 강습하거나 태오를 물리적으로 해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안전지대가 되어 주었다.

태오는 작업등 아래에서 B-17 전표를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경찰은 카르텔을 쫓고, 카르텔은 잃어버린 화물을 찾으며, 백사장은 채권의 진위를 의심한다.

그리고 그 모든 얽힌 세력의 중심에서, 물건의 진짜 가치를 쥔 사람은 오직 자신 하나뿐이었다.

태오는 B-17 전표를 투명 보존 봉투에 넣고 금고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이제 밖에서 그를 감시하는 경찰의 눈을 피해, B-17 화물이 도달할 다음 장소를 판별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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