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만 미술품의 잠재 가치가 보인다

6화: 먼지 쌓인 목판
동래구청 옛 등기 문서고 안쪽은 삭은 종이와 오래된 서류철 냄새로 가득했다.
진우는 차가운 철제 서류함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곁에 선 마두식은 바닥의 묵은 먼지를 구두 끝으로 툭툭 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서고 관리원 노기철은 진우가 내민 제한 열람 확인서를 안경너머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청우운송의 박순덕 어르신과 최병철 사장의 친필 서명이 선명하게 적힌 서류였다.
"피란 시절 동래 송정리 폐가 매각인... 백송으로 시작하는 이름이라."
노기철은 안경을 고쳐 고정하며 1970년대 대장철을 나무 서랍 깊은 곳에서 꺼냈다. 누렇게 빛바랜 종이 장부의 모서리를 천천히 넘기는 손길이 둔중했다.
"찾았소. 백송선(白松仙) 선생이구먼."
진우의 눈매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인사동 궤짝의 은지 조각과 전표 봉인 조각에서 파편으로만 떠돌던 이름이 마침내 온전한 세 글자로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노기철은 손가락 끝으로 대장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피란 당시에 송정리에 거처를 두고 서화와 목공예품을 수탁 보관했던 한학자이자 수집가였지. 1978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품 집기와 창고 짐이 동래 사당 창고에 오래 방치되어 있었어."
진우가 서류 대장으로 시선을 집중하자 시야 위로 맑은 푸른빛 텍스트가 조용히 덧씌워졌다.
[대상: 동래구 송정리 1978년 폐가 유품 인계 대장]
[진위 여부: 진품]
[현재 시세: 15,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85,000,000원]
[핵심 단서: 백송선 수탁 서화 일체 남포동 해동 아트갤러리 일괄 위탁 출품 기록]
잠재 안목은 대장 자체의 사료적 진품 여부와 함께 백송선 유품의 최신 이동 경로를 정확히 지목하고 있었다. 노기철이 대장의 다음 페이지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최근 그 후손들이 창고를 완전히 정리하면서 남은 집기와 그림 몇 점을 남포동 해동 아트갤러리 소규모 경매에 넘겼다는 기록이 있소."
마두식이 진우의 소매 끝을 낮게 당기며 귓속말을 건넸다.
"남포동 해동 아트갤러리면 인사동에서 밀려난 찌꺼기 물건들도 잡다하게 흘러 들어가는 구구식 경매장인데?"
"오히려 잘됐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일수록 원형 그대로의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진우는 노기철 관리원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하고 대장 열람 확인서 하단에 서명했다.
추적자가 출처 기록을 지우려고 현장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구청의 공식 행정 대장까지 손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백송선의 신원과 유품의 향방을 확보한 이상 다음 목적지는 명확했다.
남포동 해동 아트갤러리는 상가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묵은 곰팡이 냄새와 칠이 벗겨진 앤티크 가구 냄새가 매캐하게 밀려왔다. 장내에는 지역 소수집가들과 골동품 브로커 십여 명이 플라스틱 의자에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진우와 마두식은 맨 뒷줄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무대 앞 붉은 천이 깔린 단상 위로 기스 난 도자기와 출처 불명의 병풍들이 차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경매 열기는 서늘할 만큼 썰렁했다.
잠시 후 경매사 정상호가 단상 위로 올라서더니 묵직하고 거친 목판 조각 하나를 들어 올렸다.
"출품 번호 14번입니다. 백송선 선생 유품 창고에서 수거된 근현대 소품 일괄 중 하나입니다. 목판 기름물감 소품, 부제 <아기 보는 소녀>."
목판 표면은 그을음과 묵은 기름때가 두껍게 엉켜 있었다. 형태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얼룩덜룩하게 찌들어 있었다.
앞줄에 앉은 브로커들이 혀를 차며 코웃음을 쳤다.
"저런 땟물 칠해 놓은 썩은 나무판을 뉘라 사겠어. 박수근 흉내 내다 버린 연습장 같은데."
"조선시대 고서화도 아니고 현대 위작 흉내 낸 찌꺼기지. 제대로 된 감정서 한 장 없잖아."
중얼거리는 비아냥이 객석 사이로 흩어졌다. 장내의 그 누구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
진우는 가방에서 루페를 꺼내어 시야를 목판 표면에 정밀하게 고정했다.
투명한 푸른 텍스트가 찌든 목판 표면 위로 선명하게 펼쳐졌다.
[대상: 목판 기름물감 소품 (아기 보는 소녀)]
[진위 여부: 진품 (정밀도 91.2%)]
[현재 시세: 300,000원]
[숨겨진 잠재 가치: 450,000,000원]
[핵심 단서: 목판 후면 덧칠 아래 숨겨진 친필 서명, 백송선의 1954년 붉은 수장인, 1978년 대구 수장가 인계 전표 부속]
관자놀이에 은근한 안구 통증이 찌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진우는 숨을 조용히 내쉬며 시야의 조도를 일정하게 통제했다.
사백오십만 원이 아닌 사억 오천만 원이었다.
이 작품은 어설픈 모조품이 아니었다. 1950년대 피란 시절 박수근 화백이 화방 캔버스를 구하지 못해 해동상회 목판 조각 위에 화강암 특유의 질감을 내는 안료층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 진짜 소품이었다.
훗날 보관 과정에서 화재 그을음과 부적절한 기름 보존재가 덧칠해지며 화면의 형상이 묻혀 버렸을 뿐이었다.
게다가 목판의 뒷면에는 백송선의 수장인과 함께 진우가 찾던 종이 상자의 이동 경로가 적힌 인계 전표가 부속되어 있었다.
정상호 경매사가 단상 위에서 목목히 망치를 들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시초가 오십만 원부터 출발합니다."
장내는 적막했다. 누구 하나 번호표를 들지 않았다.
"오십만 원 안 계십니까? 그럼 사십만 원... 삼십만 원..."
진우가 차분하게 47번 번호표를 들어 올렸다.
"삼십만 원."
경매사의 눈이 번쩍였다.
"47번 손님 삼십만 원 나왔습니다! 더 계십니까?"
그때 경매장 뒤편 출입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입구에 서 있는 검은 모자 남자의 시선을 받은 한 딜러가 황급히 손을 들었다.
"오십만 원!"
마두식이 진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찔렀다.
"저놈, 아까부터 밖에서 기웃거리던 검은 모자 남자가 찔러 넣은 바람잡이다."
진우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명찰 거래 잔금으로 받은 구십만 원이 통장에 들어 있었다.
상대 딜러는 그림의 진가를 알고 입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진우가 관심을 보이는 물건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육십만 원."
진우가 호가를 차분히 얹었다.
바람잡이 딜러가 주춤하더니 입구 쪽을 한번 살피고 다시 손을 들었다.
"칠십만 원!"
주변 딜러들이 진우를 향해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저 찌든 나무판데기를 칠십이나 주고 사다니 미쳤구먼."
진우는 시선을 경매사에게만 고정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팔십만 원."
바람잡이 딜러가 다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모자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작품의 진짜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쓸데없이 액수를 더 올렸다가 진우가 손을 털고 빠지면 자신이 썩은 나무판을 억지로 떠안을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경매사가 망치를 크게 들어 올렸다.
"팔십만 원! 더 안 계십니까? 팔십만 원... 타탕!"
경매장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낙찰 망치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경매장 정산 사무실.
진우는 팔십만 원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공식 영수증과 함께 '백송선 유품 위탁 인계 명세서' 원본을 수령했다.
명세서 하단에는 1978년 백송선 유품 상자 2호가 대구의 고서화 수장가 윤창호에게 넘어갔다는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드로잉과 연계된 종이 상자의 실질적인 다음 행선지가 마침내 입증된 것이다.
진우는 기름때 묻은 목판화를 무산성 포장지로 감싸 가방에 단단히 넣었다.
갤러리 건물 골목으로 나오자 그늘진 어귀에서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걸어 나왔다.
"서진우 씨."
남자의 음성은 낮고 서늘했다.
"그 찌든 나무판과 명세서를 나한테 넘기시오. 백만 원을 주겠소. 십분 만에 이십만 원을 버는 장사요."
진우는 주머니에서 방금 발급받은 정식 낙찰 영수증과 갤러리 보증서를 꺼내어 남자의 눈앞에 내보였다.
"이 작품과 명세서는 정식 경매를 거쳐 법적 소유권을 획득한 제 물건입니다. 거래에 응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자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찢어졌다.
"푼돈 몇 푼 손에 쥐었다고 세상이 쉬워 보이는 모양인데..."
그때 마두식이 갤러리 경비원 둘을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봐요, 명함도 없는 양반. 남포동 경매장 앞에서 정식 낙찰품을 위력으로 빼앗으려 들면 경찰서 정문 구경부터 하게 될 텐데?"
경비원들이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자 검은 모자 남자는 입술을 씹었다.
그는 진우를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차갑게 돌아섰다.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서진우 씨."
남자가 골목 너머로 사라진 뒤 진우는 가방 속 목판화를 단단히 잡았다.
마두식이 혀를 찼다.
"저놈 아주 질기구먼. 그건 그렇고 이 찌든 나무판이 진짜 박수근 화백 거란 말이오?"
진우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이 목판의 묵은 때를 안전하게 벗겨 내어 친필 서명을 증명할 차례입니다."
"그럼 그 종이 상자의 다음 길은?"
진우는 명세서에 적힌 세 글자를 읊조렸다.
"대구입니다. 윤창호 수장가를 찾아가겠습니다."
진우의 눈빛에는 더 이상 억울하게 쫓겨났던 감정사의 불안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