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5화: 낭비를 깎아낸 자리
마법학부 소강당의 아치형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길게 흘러들었다.
바닥에 깔린 석판 위에는 중앙 단상을 중심으로 불에 타지 않는 경계선이 그려져 있었다. 단상 한가운데에는 붉은 청동으로 받쳐진 투명한 구체 마력 측정구가 올려져 있었다. 측정구 옆에는 무게가 정확히 같은 마력 촉매석 여섯 개가 가지런히 놓였다.
소강당의 객석은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절반 넘게 채워졌다.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학부 전공생들과 헤이든이 불러모은 가문 관련 학부생들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교양 과목 강사가 수석교수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소문은 아침 식사 시간도 지나기 전에 아카데미 행정동까지 퍼져 있었다.
"임시 강사가 첫 주부터 제국 학회 공식에 시비를 걸었다지?"
"훈령 제십칠조를 들먹이며 재현 검증을 요구했다더군."
"열등생 하나가 손목 좀 아팠다고 공식을 바꾸자니 가당치도 않지."
객석 뒤편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비아냥에도 단상 아래에 자리 잡은 교양반 학생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엘 라인하르트는 목재 기록 판자 위에 양피지 세 장을 겹쳐 고정했다. 촉매석의 무게와 마력석의 순도, 단상 주위의 실내 기온과 습도까지 수치로 적어 내려갔다.
그 옆에서 레온 카터는 손목의 붕대를 천천히 고쳐 매었다.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에 와닿는 마력 촉매석의 감촉을 확인하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베르나르 교수가 조교 둘을 거느리고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의 가슴에 달린 마법학부 문장이 아침 햇살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베르나르는 마력 측정구의 수평을 직접 점검한 뒤 객석을 한번 둘러보았다.
"검증 조건을 재차 확인하겠다."
베르나르의 목소리가 소강당 천장을 타고 울렸다.
"시연자는 제국 학회 표준식과 교양 강사가 제시한 비인증 삼행 순환식을 각각 세 번씩 시연한다. 마력 소모량과 불꽃의 지속 시간, 흔들림 수치는 중앙 측정구에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베르나르가 엘리안을 돌아보았다.
엘리안은 단상 구석의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출석부를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임시 강사. 조건에 이의가 있나?"
"없습니다."
엘리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다만 시연자가 느끼는 기혈의 저항과 손목의 압박도 기록 항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측정구의 수치만이 아니라 시연자의 실제 신체 반응도 기록에 남겨 주십시오."
베르나르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마법 발동 중 일어나는 미세한 자극은 체질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그걸 공식의 오류라 부르는 것은 학회의 정통성을 모독하는 일이지."
"체질인지 공식의 마찰인지는 기록이 말해 줄 겁니다."
엘리안은 분필을 꺼내 기록 판자 옆 작은 칠판에 세 가지 확인 지점을 적었다.
첫째, 박자 전환 시 마력의 굴곡 수치.
둘째, 불꽃 유지 시 낭비되는 열량.
셋째, 발동 직후 손목 기혈의 회복 시간.
헤이든 발몬트가 오만한 걸음걸이로 단상 중앙으로 나섰다.
그는 객석의 학부생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쟁반 위의 촉매석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가 제국 표준식 시연을 맡겠습니다. 마법의 정석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요."
헤이든이 오른손을 뻗고 촉매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붉은 불꽃의 원소여, 흐름을 정돈하고 형상을 갖추어 내 명에 응답하라."
길고 엄숙한 영창이 소강당에 퍼졌다. 첫째 박자부터 셋째 박자까지는 촉매석 주위로 붉은 불씨가 안정되게 피어올랐다. 객석의 마법학부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넷째 박자에 이르자 헤이든의 미간이 좁아졌다.
"방향을 꺾어 순환을 강제하고!"
넷째 박자의 주문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중앙 마력 측정구 내부의 붉은 액체가 출렁이며 위로 치솟았다. 수치 지표가 12에서 45로 순식간에 튀었다.
동시에 헤이든의 오른쪽 소매 끝이 꺾이며 손목 힘줄이 도드라졌다. 헤이든은 이를 악물고 다섯째, 여섯째 박자의 보정 주문을 연달아 읊었다.
"흩어지는 마력을 눌러 고정하라!"
과잉 보정문이 더해지자 튀어 오르던 불꽃이 억지로 눌리며 손바닥 위에 고정되었다. 주먹 크기만 한 불꽃이 피어올랐지만 불꽃 주변의 공기는 기괴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측정구에 찍힌 마력 소모 수치는 88단위였다.
"첫 번째 표준식 시연 완료. 불꽃 크기 표준, 지속 시간 정상."
베르나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교에게 기록을 명했다.
그때 시엘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록관으로서 측정구의 수치를 덧붙입니다. 넷째 박자 진입 시 마동 수치가 3.7배 상승했습니다. 다섯째 박자에서 억제 보정이 들어가기 전까지 마력 소모의 60퍼센트가 순환 굴곡에서 소실되었습니다."
객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헤이든이 얼굴을 찡그리며 시엘을 노려보았다.
"라인하르트 영애. 불꽃이 정상적으로 피어올랐는데 그까짓 측정구의 일시적 흔들림을 트집 잡는 건가?"
"트집이 아닙니다."
시엘은 깃펜을 들고 양피지를 가리켰다.
"표준 촉매석의 마력 보유량 중 실제 불꽃으로 전환된 비율은 1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6퍼센트는 넷째 박자와 다섯째 박자의 억지 충돌을 무마하는 데 쓰였습니다."
"무슨 소리냐! 표준식은 마법의 안전을 위해 안정 장치를 겹겹이 둔 것이다!"
헤이든이 소리쳤다.
"두 번째 시연을 진행하십시오."
엘리안이 차분하게 말을 막았다.
헤이든은 쌕쌕거리며 두 번째 촉매석을 집어 들었다. 동일한 십 박자 영창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넷째 박자에서 헤이든의 손목이 눈에 띄게 떨렸다. 억지로 마력을 눌러 불꽃을 만들었지만 발동 직후 헤이든은 오른손을 경련하듯 뒤로 감추었다.
측정구에 기록된 마력 소모량은 91단위였다. 불꽃의 크기는 첫 번째보다 오히려 약간 줄어들어 있었다.
베르나르 교수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두 번의 시연 모두 넷째 박자에서 마동 수치가 폭증하고 마력 효율이 바닥을 쳤다는 사실이 소강당 중앙의 측정구에 붉은 숫자로 똑똑히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교양 강사의 삼행 순환식을 검증하겠다."
베르나르가 서둘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했다.
"카터 군. 단상으로."
레온이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왔다.
객석의 귀족 학부생들이 킥킥거렸다.
"저 녀석 지난달 마력 역류로 병동에 실려 갔던 평민 아닌가?"
"손목에 붕대 감은 꼬락서니를 봐라. 저런 녀석이 시연을 한다니 기가 차는군."
야유가 쏟아졌지만 레온은 귀를 닫았다.
그는 쟁반 위에서 세 번째 촉매석을 집어 들었다. 촉매석의 무게는 헤이든이 썼던 것과 정확히 같았다.
레온은 손가락으로 촉매석을 지그시 쥐었다.
영창은 시작되지 않았다.
레온은 엘리안이 칠판에 적어 주었던 세 줄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읊었다.
'불씨를 모은다.'
촉매석 내부의 마력이 손가락을 따라 미끄러지듯 모여들었다. 억지로 박자를 나누지 않자 마력이 길을 찾아 흘렀다.
'흐름을 잇는다.'
손목 안쪽을 강타하던 그 끔찍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마력이 꺾이거나 충돌하지 않고 매끄러운 원을 그리며 손바닥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형태를 고정한다.'
레온이 숨을 깊게 내쉬며 손바닥을 폈다.
슉!
단상 중앙에 맑은 주황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영창도 없었고 손목의 떨림도 없었다.
그 순간 중앙 마력 측정구가 미친 듯이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측정구 내부의 붉은 액체가 바닥으로 뚝 떨어지더니 놀라운 숫자를 표시했다.
마력 소모량: 7단위.
마동 수치: 0.1 이하.
불꽃 전환 효율: 92퍼센트.
소강당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말도 안 돼..."
헤이든이 중얼거렸다.
"7단위라고? 표준식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마력으로 불꽃을 만들었다고?"
베르나르 교수가 턱을 굳힌 채 측정구 앞으로 다가왔다.
"측정구의 오류다! 마력이 부족하면 불꽃의 밀도가 낮아야 한다. 저 불꽃은 속이 빈 허상일 것이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엘리안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온. 마력을 더 밀어 넣지 말고 형태 고정의 인력만 5퍼센트 끌어당겨라."
"예? 하지만 강사님 마력을 더 주입하지 않으면..."
"주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모인 마력에 마찰이 없으니 인력만 더하면 마력이 스스로 정제된다."
레온은 엘리안의 말대로 손가락 끝의 인력을 아주 살짝 끌어당겼다.
그 직후 일어난 일은 소강당에 있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손바닥 위에 떠 있던 주먹만 한 불꽃이 순간적으로 주먹 절반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마력이 압축되며 색깔이 맑은 주황색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백청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콰아아앙!
공기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백청색 불꽃이 폭발적인 추진력을 뿜어내며 단상 앞쪽으로 방출되었다!
쿠쿠쿠쿵!
소강당 단상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마법 방어 석벽에 불꽃이 충돌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방어벽이 비명을 지르며 금이 갔다. 이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방어벽 중앙이 뻥 뚫려 나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강렬한 후폭풍이 소강당 전체를 흔들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마법학부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조교들은 서류 더미를 놓친 채 바닥에 엎드렸고 베르나르 교수의 로브 자락이 거센 바람에 미친 듯이 휘날렸다.
매캐한 돌가루 연기가 소강당 단상을 가득 채웠다.
연기가 조금씩 걷히자 단상 위의 광경이 드러났다.
레온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붕대가 감긴 손목에는 통증도 역류의 흔적도 없었다. 손끝은 아주 멀쩡했다.
반면 단상 앞의 마법 방어벽은 주먹만 한 불꽃 하나에 뚫려 붉게 달구어진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앙 마력 측정구의 유리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수치 표시판에는 불꽃의 순간 화력이 일반 1클래스 기초 마법의 열 배를 초과했다고 번쩍이고 있었다.
객석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헤이든은 주저앉을 듯이 벽을 짚었고 마법학부생들은 넋이 나간 눈으로 파괴된 방어벽을 바라보았다.
엘리안이 연기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옷에 묻은 돌가루를 무심하게 털어내며 시엘의 기록 판자를 바라보았다.
"시엘 조교. 불꽃 핵의 편향 수치는 어떻게 나왔지?"
시엘은 손을 떨면서도 깃펜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붉은 루비빛 눈동자가 경악과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편향 수치 0입니다. 억지 영창과 보정문을 제거하자 불꽃의 핵이 완벽한 구형을 유지했습니다."
시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세 줄 공식은 마력을 줄인 것이 아닙니다. 기존 표준식이 마력의 90퍼센트를 내부 마찰로 낭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낭비를 깎아내자 기초 마력이 지닌 본래의 파괴력이 그대로 방출된 것입니다."
소강당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학회 표준식이 마법을 안전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마법사의 마력을 90퍼센트나 갉아먹는 비효율의 덩어리였다는 사실이 정밀한 수치와 눈앞의 파괴력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베르나르 교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건 사고다! 교양 실습에서 소강당 방어벽을 파괴하는 고화력 마법을 발동시키다니! 위험해서 수업에 쓸 수 없다!"
베르나르가 지푸라기라도 잡듯 소리쳤다.
엘리안이 베르나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위험하다고요?"
엘리안이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올바른 길로 마력을 흘려보내 본래의 힘이 나온 것이 위험합니까? 아니면 엉터리 공식으로 학생의 손목을 꺾고 마력의 90퍼센트를 허공에 버리게 만든 제국 학회의 교재가 위험합니까?"
"그, 그것은..."
베르나르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측정구에 찍힌 7단위라는 마력 소모량과 뚫려버린 방어벽이 베르나르의 모든 변명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엘리안은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조용히 정리했다.
"교양 실습 중 약간의 마력 전달 오차가 있어 소강당 기물이 손상된 점은 유감입니다. 방어벽 수리비는 임시 강사 연구비에서 공제하십시오."
엘리안이 교양반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검증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 시엘 조교는 오늘 측정된 데이터 사본을 정리해 제출하도록."
시엘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예, 강사님!"
엘리안은 멍하니 서 있는 레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수고했다. 네 손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더군."
레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안이 소강당 문을 향해 걸어가자 객석에 앉아 있던 마법학부생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비켜섰다. 교양 강사를 얕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두려움과 충격이 섞인 시선만이 엘리안의 뒷모습을 쫓았다.
소강당 문 앞에서 엘리안이 잠시 멈춰 섰다.
"아, 참."
엘리안이 뒤를 돌아보며 베르나르 교수와 굳어버린 헤이든을 바라보았다.
"다음 교양 수업 과제는 오늘 관찰한 표준식과 세 줄 공식의 마력 효율비 분석이다. 늦게 제출하는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F학점이니 유념하도록."
엘리안이 나가고 문이 닫혔지만 소강당의 정적은 한참 동안 깨지지 않았다.
파괴된 방어벽 사이로 아침 바람이 흩날리며 붉은 측정구 위의 수치를 쓸고 지나갔다.
제국 학회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권위의 벽에 커다란 균열이 가기 시작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