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1화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시놉시스

대륙 유일의 9클래스 대마법사 엘리안 폰 로젠크로이츠는 수백 년의 은둔 연구 끝에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는 마법 문명이 더 정교해졌으리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학계는 오래된 오류 공식을 권위로 포장했고 학생들은 비효율적인 영창을 자랑처럼 외운다.

분노한 엘리안은 신분을 숨긴 채 제국 하위권 아스테리아 마법 아카데미의 교양 과목 강사로 들어간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마법학 개론]에서 그는 낙제 없는 수업을 시작한다. 단 낙제하지 않으려면 학생들은 진짜 마법을 배워야 한다.

1화: 잠에서 깬 대마법사

북부 설원 끝의 검은 탑은 삼백 년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탑을 둘러싼 일곱 겹의 결계는 왕국 하나를 가둘 수 있는 밀도였고 그 안쪽에서는 계절조차 감히 발을 들이지 못했다. 바깥의 눈보라는 유리벽에 부딪힌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중심에서 엘리안 폰 로젠크로이츠가 눈을 떴다.

마지막 계산식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빛으로 짜인 원환 수천 개가 정숙하게 접히더니 책상 위의 낡은 양피지 한 장으로 내려앉았다.

엘리안은 펜을 놓았다.

"태초 순환식. 완성."

그 말은 환호라기보다 출석 확인에 가까웠다. 수백 년 동안 같은 의자에 앉아 수만 번의 실패를 넘긴 사람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건조했다.

그가 손가락을 들자 탑의 벽면을 가득 채운 마법진들이 차례로 꺼졌다.

한 세대를 지우고 다시 한 세대가 태어나는 동안 닫혀 있던 탑이 숨을 내쉬었다.

엘리안은 창가로 걸어갔다. 눈 아래로 크로노스 대륙의 산맥이 길게 뻗어 있었다. 인간의 도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 남쪽 하늘에 떠오른 마력 등대의 불빛은 선명했다.

"많이 변했군."

그는 조금 기대했다.

자신이 은둔하기 전에도 마법은 이미 문명의 뼈대였다. 학자들은 언젠가 정통 순환식을 복원하겠다고 떠들었고 젊은 마법사들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한 공식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맹세했다.

삼백 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믿어도 되리라 생각했다.

엘리안은 서랍을 열어 은빛 반지를 꺼냈다. 반지 안쪽에는 마력을 가라앉히는 미세한 결계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반지를 끼는 순간 탑 전체를 누르던 9클래스의 영압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평범한 3클래스 하급 마법사 정도의 미약한 파동뿐이었다.

"조용히 둘러보고 조용히 돌아온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학계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면 말이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탑의 문이 열렸다.

산기슭 역참 마을은 엘리안이 기억하던 변경의 촌락이 아니었다.

마력 가로등이 길가를 밝히고 있었다. 상점 간판에는 소형 부유진이 달려 흔들림 없이 공중에 떠 있었다. 마차는 바퀴 대신 얇은 마력판을 깔고 진흙길 위를 미끄러졌다.

겉보기에는 발전했다.

엘리안은 잠시 만족했다.

그 만족은 서점 앞에서 끝났다.

"최신 제국 표준 마법학 개론서라."

그는 진열대 맨 위에 놓인 두꺼운 책을 집어 들었다. 금박으로 찍힌 제목 아래에는 제국 마법 학회 공식 인증이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첫 장을 펼친 엘리안의 눈썹이 움직였다.

두 번째 장을 넘기자 입가가 굳었다.

세 번째 장에서 그는 책을 덮었다.

"이건 마법학이 아니다."

서점 주인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

"손님. 그 책은 올해 아카데미 입학생들이 전부 사 가는 교재입니다. 제국 학회 인증품이라 값도 꽤 나가고요."

"값이 나가는 이유는 알겠군. 종이를 많이 낭비했으니까."

"예?"

엘리안은 책을 다시 펼쳐 한 줄을 짚었다.

"마력 순환을 이렇게 꺾으면 출력의 일곱 할이 열로 빠진다. 다음 줄은 더 심각하군. 이대로 영창하면 시전자의 심장 박동과 마력 주파수가 충돌한다."

주인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때 서점 뒤편 골목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으악! 멈춰! 멈추라고!"

엘리안은 책을 들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견습생이 양손으로 지팡이를 붙잡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는 손톱만 한 불씨가 떨고 있었다. 문제는 불씨보다 소년의 팔이었다. 마력 회로가 거꾸로 물려 푸른 혈관처럼 빛났다.

주변 아이들이 겁에 질려 물러섰다.

"교재대로 했는데 왜 이래!"

견습생은 울먹이며 영창을 계속 외웠다.

엘리안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만."

그 한마디에 골목의 공기가 멈췄다.

견습생의 지팡이에서 튀던 불씨가 사라졌다. 역류하던 마력은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 곧게 펴졌다. 엘리안은 소년의 손목을 두 손가락으로 눌렀다.

"숨을 들이마셔라. 마력은 붙잡는 게 아니라 통과시키는 것이다."

"누구세요?"

"지나가던 사람이다."

엘리안은 서점에서 들고 나온 교재를 펼쳐 소년 앞에 보였다.

"네가 외운 공식이 이거냐."

소년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에서 이걸 못 외우면 입학 시험도 못 본대요. 3절창은 반드시 열 박자를 유지해야 한다고..."

"틀렸다."

엘리안은 골목 바닥에 떨어진 숯조각을 주웠다. 그리고 교재의 복잡한 공식 아래에 선 하나를 그었다.

"열 박자가 아니라 반 박자면 충분하다. 여기는 꺾지 말고 직선으로 이어라. 이 부분의 보정문은 삭제해도 된다. 애초에 필요 없는 장식이다."

"장식이요?"

"권위를 세우기 위한 장식."

그는 소년의 손을 바로잡았다.

"다시 해라."

"하지만 방금 터질 뻔했는데요."

"내가 보고 있다."

그 말에 이상한 확신이 실렸다. 소년은 떨리는 입술로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방금까지 열 박자를 끌던 영창은 엘리안이 고쳐 준 한 줄 앞에서 세 음절로 줄었다.

작은 불꽃이 피어났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불꽃은 둥글고 맑았다. 소년의 팔도 더는 파랗게 빛나지 않았다.

"됐어..."

소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진짜 됐어!"

아이들이 환호했다. 서점 주인은 입을 벌린 채 교재와 엘리안을 번갈아 보았다.

엘리안은 웃지 않았다.

삼백 년이었다.

마법은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간판과 도구만 화려해졌을 뿐 핵심은 더 느려지고 더 비싸지고 더 위험해졌다.

그가 은둔 전 남겨 두었던 기초 순환식은 사라졌다. 대신 오류와 장식과 권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교재를 어디서 가르치지?"

서점 주인이 얼른 대답했다.

"대부분 아카데미에서 씁니다. 수도 쪽은 더 어려운 판본을 쓰고 여기 근방이면 아스테리아 마법 아카데미가 제일 가깝습니다."

"아스테리아."

"오래된 학교긴 한데 성적은 바닥입니다. 요즘 교양 마법학 강사를 못 구해서 난리라더군요. 누가 그런 수업을 맡겠습니까. 돈도 안 되고 귀족 학생들은 얕보고 평민 학생들은 따라오질 못하는데."

엘리안은 교재를 덮었다.

"그런 수업이 아직 비어 있다고?"

"예. 왜요?"

엘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안에서 교재 표지가 아주 미세하게 구겨졌다.

아스테리아 마법 아카데미는 제국 수도 외곽 언덕 위에 있었다.

정문은 지나치게 컸고 마당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오래된 명문이라는 표지석은 반쯤 이끼에 덮여 있었다. 마법 결계는 설치되어 있었지만 관리가 엉망이었다. 엘리안이 보기에 세 번째 기둥은 이미 반년 전부터 기능을 멈춘 상태였다.

접수실의 행정관은 서류 더미에 파묻힌 채 그를 맞았다.

"성함."

"엘리안."

"가문명은요?"

"없다고 처리해도 된다."

행정관의 펜끝이 멈췄다. 시선이 엘리안의 낡은 강사 로브와 수수한 반지를 훑었다.

"추천장도 없습니까?"

"없다."

"학회 인증 자격증은요?"

"필요한가?"

행정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강사 지원자 맞으시죠?"

"마법학 개론 강사 자리가 비었다고 들었다."

그 말에 행정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방금까지 귀찮아하던 얼굴에 노골적인 안도감이 떠올랐다.

"아. 교양 101 말씀이군요. 그럼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는 서랍에서 낡은 계약서를 꺼냈다.

"임시 강사입니다. 급여는 낮고 수업 평가는 거칠 겁니다. 수강생은 대부분 전공 배정에서 밀린 학생들입니다. 귀족 학생 몇 명은 출석만 채우러 올 테고 평민 학생들은 기초도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좋군."

"좋다고요?"

"기초부터 다시 가르치면 된다."

행정관은 멍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헛기침했다.

"자신감은 좋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전임 강사도 한 달을 못 버텼습니다. 학생들이 못 따라와서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들을 생각이 없어서입니다."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에게는 성적을 주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귀족가 민원도 있고 학부 교수님들 눈치도 있고..."

"성적표에는 눈치 항목이 없을 텐데."

행정관은 처음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면접은 학장 대리님이 보실 겁니다."

면접은 예상보다 짧았다.

학장 대리는 엘리안의 신분을 확인하려고 했고 은폐 반지는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대리의 감지 마법은 엘리안을 평범한 3클래스 마법사로 판단했다.

그 결과 대리의 태도는 아주 편안해졌다.

"교양 과목은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사고만 치지 마십시오."

"사고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강의실을 부수지 않는 정도면 됩니다."

엘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대리의 얼굴이 굳었다.

"왜 망설이십니까?"

"최대한 자제해 보겠습니다."

"자제로 되는 문제입니까?"

"학생들의 이해도에 따라 다릅니다."

학장 대리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서둘러 도장을 찍었다.

"내일부터 수업입니다. 교재는 제국 표준 마법학 개론서를 쓰십시오. 괜히 독자적인 이론을 들고와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곤란합니다."

엘리안은 책상 위에 놓인 같은 교재를 내려다보았다.

첫 장부터 틀린 책.

견습생의 마력 회로를 뒤틀던 책.

제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책.

"알겠습니다."

그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행정관은 출석부와 낡은 열쇠를 건넸다.

"제3강의동 끝 방입니다. 수강생 명단도 같이 드리죠. 시엘 라인하르트. 레온 카터. 그 외에는 결석이 잦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엘리안은 출석부를 받아 들었다.

종이 위의 이름들은 아직 아무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이름마다 약한 마력 흔적이 묻어 있었다. 불안정하고 거칠고 방치된 흔적이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완성된 공식은 아름답다.

하지만 흐트러진 회로가 바로잡히는 순간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엘리안은 제3강의동 복도를 걸었다. 창밖에서는 신입생들이 웃고 떠들었다. 누군가는 귀족 문장을 자랑했고 누군가는 낡은 지팡이를 소매 속에 숨겼다.

그들 모두가 같은 교재를 들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오류를 정답처럼 품고 있었다.

강의실 문 앞에 선 엘리안은 잠시 출석부를 내려다보았다.

"낙제는 없게 해 주마."

그는 조용히 말했다.

"단 내 수업을 끝까지 버틴다면."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누군가 지루한 목소리로 10초짜리 영창을 외우고 있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5%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7화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