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마트 사장은 갑질이 하고 싶다]

3화 [약탈자들의 방문]
문밖의 옛 주인들
자동문 너머의 그림자 둘은 빗속에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한 놈은 녹슨 철제 파이프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쳤고 다른 놈은 축축한 허리춤에 가죽 칼집을 차고 있었다. 비에 젖어 얼룩진 작업복과 왼쪽 뺨을 길게 가로지른 붉은 화상 자국까지, 도진은 두 사람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정호와 민석.
강두철이 이끄는 약탈단에서 하급 짐꾼들의 식량을 빼앗고 매일같이 발길질을 일삼던 자들이었다. 사흘 전 도진의 오른쪽 발목과 옆구리에 남은 검푸른 멍 자국도 그들이 던진 무거운 목재 상자에서 시작되었다.
“야. 안에 숨은 거 다 안다.”
정호가 굵은 파이프 끝으로 유리문을 둔탁하게 두드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문 열어라. 비린 빗물 말고 진짜 깨끗한 물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잖아.”
도진은 카운터 뒤에 선 채 투명한 입구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방문자 2명. 무장 반응 감지.]
[정호: 철제 파이프 1점. 민석: 둔기 및 도검류 1점.]
[입장 조건을 설정하시겠습니까?]
도진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흘 전만 해도 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쥐새끼처럼 쓰레기더미 밑으로 기어들어 가야 했다. 도진이 아무리 억울하게 맞아도 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하급 짐꾼에 불과하다고 저들은 여전히 믿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도진은 쫓기는 짐꾼이 아니었다. 카운터 안쪽에서 가격표를 쥐고 있는 마트의 사장이었다.
그가 모니터의 입력 창을 누르자 자동문 유리 표면에 선명한 흰색 글자가 떠올랐다.
[입장 조건: 모든 무장 해제. 선불 결제.]
“무기부터 바닥에 내려놓아라. 코어가 있다면 손님으로 들여보내 주지.”
유리문 밖에서 잠시 조용해지더니 민석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저거 한도진 목소리 맞지?”
“짐꾼 새끼가 구멍가게 하나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정호가 어깨에 얹었던 파이프를 냅다 휘둘러 유리문을 내리쳤다. 쨍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만 울릴 뿐, 투명한 결계문에는 작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두철 형님 이름 석 자도 잊었냐? 순순히 문 열면 우리가 형님한테 잘 말해 줄 테니까 가진 것부터 털어놔라.”
“맞아. 우선 그 진열대에 놓인 생수부터 전부 꺼내 오고.”
민석이 턱으로 매장 안쪽의 생수 진열대를 가리켰다.
도진은 두 사람의 눈빛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굶주림에 지쳐 피가 쏠린 눈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피와 땀을 당연하다는 듯 빼앗아 온 약탈자의 눈이기도 했다.
“좋게 말하고 싶으면 무기부터 바닥에 놓아라. 여기는 너희가 짐을 털던 창고가 아니다.”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나!”
정호가 파이프 끝을 자동문 틈새로 억지로 쑤셔 넣으려 들었다.
계산대 앞의 법
철제 파이프가 문틈을 강제로 벌리려 들자 카운터 모니터가 붉은 경고등을 띄웠다.
[무단 침입 시도 감지.]
[무장 보관 기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도진의 손가락이 공중에 뜬 확인 버튼 위에서 멈칫했다. 이 기능이 실패하면 두 사람은 곧바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마트 밖에서 저들과 맨몸으로 맞설 무력은 도진에게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낮게 읊조렸다.
“무장 보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호의 손에 쥐여 있던 철제 파이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어 민석의 허리춤에 차여 있던 식칼도 공중으로 솟구치듯 빠져나갔다. 두 무기는 카운터 옆 벽면에 새로 생겨난 회색 쇠상자 안으로 날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잠겨 버렸다.
“어, 어찌 된 거야!”
정호가 텅 빈 자신의 손바닥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빛을 숨기지 못했다.
민석 역시 허리춤을 더듬다가 황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이내 눈을 흉흉하게 빛내며 덤벼들었다.
“장난질 치지 말고 무기 당장 내놔!”
“계산 끝내고 나갈 때 찾아가라.”
“우리가 왜 돈을 내는데!”
자동문은 두 사람이 문턱 바로 앞까지 접근하자 스르르 옆으로 열렸다. 도진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정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좁은 문틈을 통해 매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민석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군홧발이 하얀 바닥 타일을 밟는 순간 매장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생수 진열대와 과자 매대가 양쪽에서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와 서로 맞닿았다. 조금 전까지 넓었던 통로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어깨를 비틀어야 지나갈 만큼 좁아졌다. 정호가 어깨를 강하게 부딪치며 비틀거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입장을 허가한 적은 없다.”
도진은 카운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조하게 말했다.
“무기는 압류되었지만 너희는 손님으로서의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민석이 좁아진 틈새로 팔을 길게 뻗어 생수병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마개 부분을 이빨로 물어뜯으려 들었다.
[결제 전 상품입니다.]
투명한 생수병이 민석의 손가락 사이를 환영처럼 통과하더니 본래 진열되어 있던 위치로 깔끔하게 돌아갔다.
민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물…… 물도 못 집어?”
“가격표 읽을 줄은 알 테지.”
도진은 진열대 정면에 붙여 둔 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다수 생수 1병 — 2포인트.
핫컵라면 1개 — 3포인트.
선불. 가격표 외 요구 금지. 물건은 계산 후 가져갈 것.
정호가 좁아진 매대 벽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법이냐? 한도진 이 짐꾼 새끼가!”
“적어도 이 안에서는 법이다.”
도진의 목소리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울려 퍼졌다.
역전된 사이다
민석은 가격표의 글씨를 노려보다가 비열한 헛웃음을 흘렸다.
“야, 한도진. 너 지난달에 폐허에서 통조림 주워 왔을 때 우리가 안 뺏고 봐준 거 기억 안 나냐? 우리가 너 먹여 살려 준 거나 다름없어.”
도진의 뇌리에 썩은 통조림 냄새와 흙먼지가 뒤섞였던 지난날이 스쳤다. 민석은 늘 짐꾼들에게 찌꺼기 음식을 던져 주며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던 자였다.
“그 통조림 하나 때문에 내 발목을 군홧발로 짓밟았던 건 똑똑히 기억한다.”
“그러니까 물 한 병 달라는 게 그렇게 큰 대가냐?”
“공짜는 없다.”
도진이 단호하게 끊어 말했다.
민석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정호가 핏대를 세우며 협박을 덧붙였다.
“두철 형님이 이 장소를 알게 되면 네 가게는 그날로 끝이야. 지금이라도 순순히 물자를 바치면 목숨은 건지게 해주겠다.”
그 협박은 3년 동안 매일같이 들었던 문장이라 오히려 차갑게 식어 내렸다.
도진은 카운터 아래 보관해 둔 첫 번째 영수증을 꺼냈다. 박순자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 갔던 종이였다. 화면에는 그녀가 지불했던 하급 코어의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 전 다녀간 손님은 마수 코어를 내고 정상 결제를 했다. 가격표대로 물 세 병과 라면 하나를 사서 돌아갔지.”
“그 순자 계집이 여길 왔었다고?”
정호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 계집 어디로 갔냐? 품에 물을 품고 있었을 텐데 어디 숨었어!”
도진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구 모니터에 새로운 기록을 입력했다.
[위반 기록 1: 무단 침입 시도.]
[위반 기록 2: 무기 소지 상태의 협박 및 폭언.]
“사과하고 정당한 코어를 내면 물을 팔아 주겠다.”
도진이 두 사람을 마주 보며 선언했다.
“너희가 밖에서 누구를 털었는지는 마트 안에서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안에서 행패를 부리면 손님으로 대우받을 수 없다.”
민석이 바닥에 침을 뱉으려 했으나 입안이 바짝 말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코어가 어디 있어! 오늘 사냥도 못 나가서 배를 곯고 있는데!”
“그럼 코어를 구해서 다음에 다시 와라.”
“우리 보고 굶어 죽으라는 거냐?”
“너희가 남의 식량을 빼앗을 때는 상대가 굶어 죽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도진의 목소리에 아주 짧게 감정이 실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숨을 가다듬었다. 사장의 개인적인 분노로 값을 올리거나 규칙을 깬다면, 이 마트 역시 약탈단의 소굴과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정호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좁은 매대 사이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카운터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죽여 버릴 거야!”
문을 닫는 사장
정호의 손가락이 카운터 상판에 닿기 직전, 그의 몸이 공중에서 딱 단단하게 멈추어 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그의 가슴과 이마를 강력하게 억눌렀다. 정호는 헉 소리를 내며 눈알을 부릅떴다. 뒤에서 민석이 함께 밀어붙였으나 두 사람은 단 1밀리미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방문자 폭행 시도 감지.]
[강제 퇴장 및 출입 제한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도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시스템 모니터가 그에게 최종적인 선택을 묻고 있었다.
[정호, 민석 2명에 대해 강제 퇴장 명령을 집행하시겠습니까?]
도진은 허우적거리는 두 약탈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 저들을 고통스럽게 짓밟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장으로서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화풀이보다 명확한 규칙의 수호가 먼저였다.
“너희가 맡긴 무기는 오늘 해가 질 때까지만 보관하겠다.”
도진이 카운터 뒤에서 묵직하게 말했다.
“그때까지 정당한 코어를 들고 와서 사과하면 손님으로 다시 판단해 주마.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는 이 문을 넘지 못한다.”
“한도진 이 새끼가!”
“강제 퇴장.”
도진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두 사람의 몸이 강한 바람에 밀려나듯 뒤로 튕겨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며 정호와 민석은 빗물이 가득한 바깥 보도 블록 위로 험하게 굴러떨어졌다. 문은 두 사람이 일어서기도 전에 철컥 소리를 내며 완벽하게 잠겼다.
유리 너머에서 정신을 차린 정호가 달려와 문을 주먹과 발로 짓밟았다.
“두철 형님이 오면 네놈 가죽부터 벗겨 버릴 줄 알아라!”
도진은 입구 모니터에 새로 업데이트된 문구를 읽어 내려갔다.
[정호·민석: 24시간 출입 제한 적용.]
[사유: 무단 침입 시도, 무기 협박, 폭행 시도.]
[공개 위반 기록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그는 제한 사유 세 줄을 자동문 바깥쪽 안내 화면에 굵은 글씨로 공개했다. 훗날 다른 생존자나 약탈자가 찾아오더라도 왜 이 두 사람이 마트 출입을 거부당했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고함과 욕설은 비가 그쳐 가는 골목길 너머로 점차 멀어져 갔다. 두 사람은 무기도 챙기지 못한 채 강두철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헐떡이며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도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무릎의 힘이 풀렸다.
카운터를 잡은 그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그때 시스템 화면 상단에 새로운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본 구역 보안 평가가 갱신되었습니다.]
[권고: 상시 보안 인력 확보 필요.]
이어 바깥 경계 결계선에 낯선 마력 반응 하나가 묵직하게 잡혔다. 모니터 중앙에 붉은색 경고 표시가 반짝였다.
[고위험 방문자 접근 중.]
[대상: 신체 강화 C급 마력 반응. 강두철 약탈단 주도자 성향.]
도진은 자동문 유리 너머의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달아난 부하들의 고함 소리를 듣고 찾아온 강두철의 거대한 덩치가 골목 어귀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에 도진은 카운터 아래로 몸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펜을 놓지 않은 채 사장의 자리에 똑바로 서서 다가오는 옛 두목을 조용히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