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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8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8화: 블루펄 에이드의 기적

어스름한 새벽빛이 라 보나의 아치형 창가를 옅게 물들일 무렵 주방은 이미 연금 가마의 은은한 온기로 차 있었다.

작은 의자에 앉은 아델은 말린 블루민트 잎을 맷돌에 넣고 천천히 돌렸다. 아델의 손목에 감긴 오래된 끈 사이로 옅은 빛이 흘러나왔지만 어제의 불안했던 흔들림은 깨끗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일정한 속도로 돌리면 돼요. 마력 허브는 마찰열이 균일해야 고유의 향이 살아나거든요.”

엘리제는 투명한 유리 가마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연금 반응식을 체크했다.

현대 화학공학에서 기체의 용해도는 온도가 낮고 압력이 높을수록 상승한다. 판타지 세계의 연금술 역시 그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마 내부의 압력을 나선형 마나 서클로 고정하고 밀폐된 액체 속에 마력 기화를 유도하면 톡 쏘는 탄산 성분을 마력 젤리 입자 안에 고스란히 가둘 수 있었다.

“공녀님, 젤리가 동글동글하게 뭉치기 시작했어요.”

아델이 눈을 반짝이며 가마 아래쪽 수용액을 가리켰다.

유리관 끝에서 떨어진 푸른 액방울이 마력 응고제 수용액과 만나자마자 매끄러운 구슬 모양으로 굳어졌다. 그 투명한 푸른 구슬 안에서는 미세한 탄산 기포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게 블루펄이에요. 씹는 순간 갇혀 있던 탄산 반응과 마력 순화 성분이 한 번에 터져 나오게 설계했죠.”

엘리제는 얼음이 가득 담긴 투명한 유리잔에 블루민트 에센스와 갓 짜낸 탄산수를 붓고 바닥에 동글동글한 블루펄을 듬뿍 올렸다. 긴 갈대 빨대를 꽂아 아델 앞으로 내밀었다.

“첫 잔은 우리 주방 견습 몫이에요.”

아델은 두 손으로 잔을 쥐고 조심스럽게 빨대를 물었다. 동그란 펄이 빨대를 따라 올라와 입안에서 톡 터졌다. 아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입안에서 작은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아요!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가슴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기사들이나 마력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근육 조직에 미세한 마력 파편이 쌓여요. 그걸 이 탄산 펄의 미세 진동으로 깨부수어 풀어주는 거죠.”

엘리제는 만족스럽게 장부에 ‘블루펄 에이드’의 공정과 배합비를 기록했다. 아델은 부지런히 맷돌을 돌리며 펄 제조용 재료를 추가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라 보나의 문종이 거세게 울렸다.

들어온 이들은 레온과 그의 동료 기사 둘이었다. 셋 모두 황실 검술 훈련을 막 마친 듯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어깨와 팔근육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공녀님, 오늘도 타르트를 받을 수 있습니까? 어제 검술 훈련이 과했던 탓에 몸의 마력선이 단단히 꼬였습니다.”

레온이 뻐근한 목덜미를 짚으며 말했다. 곁에 선 체구가 거대한 기사는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타르트는 굽는 데 시간이 걸려요. 대신 오늘 새로 출시한 전용 음료가 있어요.”

엘리제는 미리 준비해 둔 얼음 잔에 탄산수와 블루펄을 섞은 음료 세 잔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맑고 투명한 푸른빛 액체 아래로 짙은 블루펄이 찰랑이는 음료였다.

“블루펄 에이드입니다. 빨대로 바닥의 푸른 구슬을 함께 씹어서 드세요.”

레온의 동료 기사 브란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잔을 들었다.

“과자도 아니고 이런 음료수로 뭉친 마력선이 풀린단 말입니까? 차라리 독한 마력 안약이나 고통스러운 찜질이 낫겠…….”

말을 끝맺기도 전에 브란은 빨대를 크게 빨아들였다.

톡! 파르르르!

입안에서 블루펄이 터지는 순간 브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브란은 말을 잃은 채 음료를 연속해서 삼켰다.

“이, 이게 무슨……!”

“브란, 왜 그래? 어디 이상해?”

레온이 놀라 물었으나 브란은 대답 대신 잔을 마구 비워 버렸다. 에이드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그의 굳어 있던 어깨 근육이 유연하게 풀리고 목덜미에 돋아 있던 붉은 마력 충혈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깨가 가벼워! 훈련장에서 짓눌려 있던 등줄기 통증이 싹 달아났어! 구슬이 터질 때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야!”

브란은 감격한 얼굴로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레온 역시 잔을 들고 한 모금 크게 삼켰다.

톡 쏘는 탄산의 알싸함과 씹을수록 풍미가 터지는 블루펄이 입안 전체를 청량하게 감쌌다. 목줄기를 타고 내려간 시원한 기운이 엉킨 마력선만을 정확하게 두드려 가라앉혔다.

“훌륭하군요. 텁텁한 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상쾌합니다.”

레온이 탄성을 내뱉으며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냈다.

“공녀님, 이 음료를 저희 기사단에 대량으로 납품받을 수는 없겠습니까?”

“안 돼요. 손수 만드는 연금술 제품이라 하루 생산량이 정해져 있어요. 1인당 한 잔 한정 판매입니다.”

엘리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사들은 아쉬운 기색이 역역했지만 입가를 훔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연병장에 있는 녀석들에게 말해야겠어. 이건 진짜다!”

브란은 라 보나를 나서자마자 연병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실로 폭발적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라 보나 앞 골목길에 기묘한 장관이 펼쳐졌다.

은빛 갑옷과 제복을 차려입은 황실 기사단원 십수 명이 떼를 지어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열정 그리고 펄 에이드를 마시겠다는 집념이 가득했다.

“여기가 그 구슬 에이드를 파는 곳인가!”

“비켜라! 내가 먼저 번호표를 받는다!”

덩치 큰 기사들이 문 앞에 몰려들자 라 보나의 작고 아담한 매장이 터져 나갈 듯했다.

베른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 둔 목재 번호표를 꺼내 들었다.

“모두 줄을 서십시오! 질서를 지키지 않는 분께는 번호표를 드리지 않습니다! 카페 규칙을 위반하면 즉시 퇴장 조치합니다!”

재무관 베른의 엄격한 호통에 거칠기로 이름난 황실 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얌전하게 한 줄로 서기 시작했다.

“자, 순서대로 들어오세요.”

마리가 문을 열어 주자 기사들은 번호표를 꼭 쥐고 안으로 들어왔다. 거구의 사내들이 작은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앉아 긴 빨대를 들고 에이드를 마시는 풍경은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톡! 톡!

매장 곳곳에서 블루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진짜 뭉친 근육이 풀어진다!”

“시원해! 훈련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아!”

아델은 신이 나서 얼음 그릇과 펄 용기를 나르고 마리는 잔을 씻어 나르느라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베른은 장부에 적히는 금화 숫자를 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영지 사교계에서는 엘리제가 사교회를 떠나 낡은 시골 공방에서 망해 갈 것이라고 비웃었지만 현실은 제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해질녘이 되자 준비해 둔 블루펄 에이드 재료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매장 안이 한적해질 무렵 문종이 딸랑거리며 마지막 손님이 걸어 들어왔다. 깊게 눌러쓴 검은 망토,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잘개 부서진 조각 같은 은발.

카일레온이었다.

“마감 시간에 딱 맞춰 오셨네요.”

엘리제는 남은 얼음과 마지막으로 남겨 둔 블루펄 한 도스를 잔에 담았다. 탄산수를 붓자 푸른빛 구슬들이 얼음 사이에서 춤을 추듯 떠올랐다.

카일레온은 카운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시선이 투명한 푸른 잔에 머물렀다.

“기사단 연병장에서 온통 라 보나의 푸른 구슬 이야기뿐이더군. 훈련이 끝난 녀석들이 무기를 팽개치고 이쪽으로 뛰어왔다.”

“기사님들의 근육 피로에 맞춰 제조한 에이드예요. 당신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엘리제는 에이드 잔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카일레온은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빨대를 삼켰다. 차가운 음료와 함께 블루펄 입자들이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

톡!

입안에서 구슬이 깨지는 순간 카일레온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무감각 증후군으로 인해 대부분의 미각과 감각이 차단된 그였지만 물리적으로 톡 터지는 탄산 자극과 강렬한 블루민트의 냉기는 혀 끝의 감각 신경을 유쾌하게 두드렸다.

“……상쾌하군.”

카일레온의 입가에 옅은 호선이 그려졌다.

“맛을 완벽히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이 톡 터지는 감각과 서늘한 향은 명확하게 전달된다. 찌르는 듯한 통증 대신 편안한 청량감이 남는군.”

“다행이네요. 미각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탄산의 물리적 진동은 신경을 자극할 수 있을 거라 계산했거든요.”

엘리제는 장부에 ‘무감각 증후군 환자의 탄산 연금술 반응’을 기록했다.

카일레온은 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제 사교회 봉인이 찍힌 독초 건은 보고 받았다. 중앙 사교회의 일부 세력이 라 보나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어.”

엘리제의 손끝이 멈추었다.

“황실 감찰단이 이미 그들의 뒤를 조사하고 있다. 라 보나는 내 출자처이자 감찰단의 보급 거점이다. 사교회가 감히 선을 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가게는 제가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지킬 거예요.”

카일레온은 엘리제의 단호한 루비빛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겠지. 넌 이미 기사단 전체를 네 단골로 만들어버렸으니까.”

카일레온이 떠난 뒤 엘리제는 라 보나의 문을 닫고 정돈을 시작했다.

오늘 하루 판매한 블루펄 에이드의 매출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뒤 영지 우편함을 통해 도착한 편지 한 장이 엘리제의 눈길을 끌었다.

[제국 연금술 학회 남부 지부]

봉인인장이 찍힌 편지에는 보수적인 연금술 학회가 "고결한 연금술을 한갓 디저트와 음료 따위에 오용하여 학회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조사관을 파견하겠다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사교회의 음해를 넘어서자 이번에는 보수적인 학회의 견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두려워하는 대신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고결한 연금술? 음료 한 잔으로 기사단을 일으키는 게 연금술이 아니면 무엇이 연금술이라는 거지?”

새로운 도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엘리제의 주방에는 향긋한 민트 향과 함께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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